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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외모지상주의를 희화화 한 영화
하지만 살아있는 시체에 불과한 그녀들의 몸뚱이는 성형외과의사인 남편의 손에 끊임없이 수리(!)를 받아야 하고 죽어지지도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친구는 뜯어진 피부에 뿌릴 스프레이 페인트를 찾으며 다툰다.
오늘 나는 홈쇼핑 광고를 보면서 한 화장품을 살까말까를 한참이나 망설였다. 20대 초반만 지나도 늘어지는 모공을 줄여주고, 쳐지는 피부를 강화시켜 주름도 예방한다는 모 화장품. 30,40을 넘어가도 20대 부럽지 않은 미모를 자랑하는 연예인 여성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그 화장품을 보면서, '죽어야 사는 여자'에 나오던 스프레이 페인트가 떠올랐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지금 이순간에도 여자들은 '젊어야 산다'는 명제를 참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세상 어디를 둘러봐도 젊은 여자보다는 안 젊은 여자들이 더 많은 것이 당연한데도, 그러나 늙은 여자는 보이지 않는다. 젊은 여자와 젊음을 유지하려는 여자,젊으려고 노력하는 여자만 있다. 나이듦을 즐기거나 기뻐하거나 하다못해 만족해 하는 여자란 보이지 않는다.
사실은.....있다!! 다만 그녀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세상이 나이듦을 긍정하는 여자는 여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눈치챘을 것이다. 지금은 '나이든 여자는 여자가 아니다'라는 요상한 말이 힘을 가진 세상이라는 것을.
나는 젊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요즘 연하 남성과 연상 여성의 사랑을 다루는 영화나 드라마가 많아졌다. 아직은 그런 식의 연상연하 커플에 대한 시선이 많이 닫혀 있기 때문에, 좀 더 특이하고 도발적인 소재라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모양이다. 나이든 여성의 로맨스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식의 포장과는 달리, 알고보면 그 이면엔 더 잔인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언젠가 읽은 모 잡지의 칼럼에서 연상의 여성들이 연하의 남성을 사귀는 심리에 대해 쓴 것이 있었는데, 그 심리란 다름아닌 일종의 '젊음에 대한 대리만족'이라고 했다. 자신이 젊은 남성에게 어필하는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자신이 물리적으로는 나이들었을지 모르나 외적으로도 충분히 젊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느낌을 받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연상 여성들의 실제 심리가 어떤지 그들이 어떻게 다 알겠는가. 약간의 인터뷰만으로 대충 찍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본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와는 상관없이, 연하 남성과 연애하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그 주변의 반응을 보면 확실히 남성이 자신보다 어린 여성을 사귀는 것과는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 평가 속에서는 분명히 이 '대리만족'과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보다 어린 여성을 사귀는 남성에게는 '능력있다'라는 말이 따라온다. 어디서 그렇게 어린 애를 주웠느냐, 좋겠다, 나도 하나만... 하는 식의 부러움을 받는다. 자신보다 어린 남성을 사귀는 여성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의 '능력있다'는 말이 들려온다. 네가 나이보다 어려보여서 그런가보다, 젊은 애들한테 인기도 있고 좋겠다... 능력있는 남성이 젊고 예쁜 여자를 얻게 된다는 것이고, 젊어보이고 예쁜 여성이라서 어린 남성에게도 인기있다는 것이다.
매체에서 다루고 있는 연상 연하 커플들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한다. 나이답지 않게(?) 아름다운 연상의 여성을 연하의 남성이 낚는 것이다. 결국 젊고 아름다운 (즉, 자신이 보호할 만한)여성을 낚는다는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20대여 영원하라. 돈이 있다면
"외모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회 ©일러스트 -정은
여성들에게 소비가 허락된(혹은 강요된) 몇가지 물품들은 실로 여성들을 젊어보이게 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이른바 안티 에이징 화장품들은 효과가 있다는 소문에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여기 저기 광고나 잡지에 등장하는 여성복들은 소녀풍의 옷들을 잔뜩 보여주며 젊고 어려보인다며 유혹한다. 젊다못해 이제 13-14살을 겨우 넘긴 어린 모델들이 켓워크를 가득 채우고, 그렇게 어린 여성들의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세워진다.
실제 20대 초반의 여성들을 모델로 하고 그들에게 어울릴만한 상품들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20대 초반의 여성들만이 그 상품을 소비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제 20대 초반에게는 그 상품들을 다 소비할만한 구매력이 없다. 젊음을 어필하는 상품들은 젊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더 다가설 수 있는 상품이다.
생각해보라. '19세에서 22세까지의 젊고 패기있는(또는 젊고 아름다운) 젊은이를 대상으로 하는 브랜드'라는 식의 컨셉을 달고 있는 수많은 상품들이 있지만, 한국은 그것을 다 소비할만한 인구수도 되지 않는 나라다. 바로 'young marketing' 인 것이다.
젊음의 이미지를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상술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것이 유포하는 이미지는 여성의 목을 조르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적은 부를 가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여성이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위해(하다못해 유지라도하기 위해) 젊어져야만 하는 이데올로기에 밀려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비싸게 팔 수 있을 때 팔기 위해 일찌감치 결혼시장에 자신을 내놓거나, 떨어진 가격을 만회할 수 있는 돈벌이 능력을 구비해야 한다. 여기에 그녀의 내적 가치와 의미는 없다. 자연이 정해놓은 노화의 흐름은 여성에게는 평생을 투자해서 역행해야만 하는 시지프스의 바위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나이 듦이 아름답고 멋진 여성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정말 진부한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는 나이가 숫자에 불과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얼굴에 못보던 주름이라도 생길라치면 하루종일 신경쓰여 웃지도 못하게 만드는 세상이다. 나이든 여자는 무조건 아줌마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은근히 부아가 나면서도, 따지고 보면 나이든 여자를 적당히 호칭할만한 말조차도 없는 세상이다.
이제 달짝지근한 봄이 되었지만, 봄은 한 때고 결국 여름과 가을, 겨울은 오는 것. 일년 365일 봄이어야 한다고 우기고, 봄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돌아오는 당신의 생일에 당당하게 외쳐보길 바란다. "한 살 더 먹었다, 앗싸~!" 유치한 나이놀이는 그만두자. 스무살의 우리가 아름다웠듯이 서른 살, 마흔 살의 우리는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고 유쾌한 여자들이다. 헤라 ▣일다는 어떤 곳?
[외모 스트레스] “가슴이 예뻐야 여자지” [] 노화를 막는다? 막아야 한다? []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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