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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주인공 된 ‘진짜 생일’을 바란다

장애여성단체 활동을 하는 내게 4월은 아마도 일년 중 가장 바쁜 달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봄바람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든 계절이기에, 평소 장애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이동해야만 하는 장애인들을 움직이게 하기에 충분한 날씨인 탓이다.

 
장애인들은 으레 날씨에 민감하기 마련이어서, 비나 눈이 오거나 바람이 불면 외출을 되도록 자제하므로 모임이 성사되기가 어렵다. 하지만 4월은 그렇지가 않아 여러 가지 모임으로 분주해지곤 한다.
 
게다가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어서 20일부터 한 주일 동안으로 정해진 장애인주간에는 장애 관련 각 단체들의 행사와 모임이 다채롭게 펼쳐지곤 한다. 때문에 단체활동가들이라면 누구라도 눈코 뜰새 없이 바빠진다.
 
장애인의 날이 12월 3일 아닌 4월 20일이 된 이유
 

2005년 4월 20일, 장애단체 활동가들의 가두시위 행렬 ⓒ일다

장애인의 날은 유엔에서 1981년을 ‘세계 장애인의 해’로 선언하고 각국에 기념사업을 추진하도록 권장한 데에서 출발한다. 한국에서도 ‘장애인의 해’ 선언 취지를 달성하기 위해 ‘세계 장애인의 해 한국 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각종 사업을 추진하면서 비롯된 것이다. 장애인의 날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건 1991년부터인데, 올해로 벌써 29회 장애인의 날을 맞이하고 있다.
 
1991년부터 시작되었는데 2009년인 올해 장애인의 날이 20회가 아니고 29회인 것은 1982년부터 ‘한국장애인재활협회’라는 단체의 주관으로 개최하였던 ‘장애인재활대회’ 기념식의 전통을 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전세계 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이 아닌, 재활대회가 개최되었던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로 지정된 과정에는 장애인당사자의 참여가 배제되고 우리의 권익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던 뼈아픈 역사가 있다.
 
사실 유엔이 ‘세계장애인의 해’를 선포하고 12월 3일을 세계장애인의 날로 만들도록 한 장본인은 바로 장애인당사자들이었다. 즉 세계장애인의 날은 다른 누군가가 장애인들에게 선물로 준 날이 아니고, 장애인당사자들의 힘으로 일구어낸 의미 있는 날이다. 이는 전세계 노동자들에게 메이데이가 있고, 여성들에게 여성의 날이 생기게 된 배경과 거의 비슷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2월 3일이 아니라 4월 20일로 장애인의 날이 정해졌고, 그 과정에서 장애인은 주인공이 아니라 객체가 되어버린 것이다. 매년 성대한 기념식과 함께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지만, 장애인들은 자신의 진짜 생일이 아니라 누군가 지정해준 엉뚱한 날에 누군가 대신 차려준 생일상을 받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장애인단체 활동가들과 회원들은 어느 순간부터 매년 4월 20일이 되면 정부가 마련해준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고 스스로 조직한 집회나 행사를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어왔다. 그런 이유로 나 역시 4월이면 몹시 분주해지곤 하는 것이다.
 
장애 극복? 차별환경을 바꾸는 방향으로!
 
장애인의 날에 정부는 매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으며, 1997년부터는 ‘올해의 장애극복상’을 제정해 장애를 훌륭하게 극복하는 장애인을 발굴, 시상해왔다. 이로 인해 장애인에 대한 국민의 이해도는 상당히 높아져, 장애인을 멸시나 조롱의 대상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으로 인식되게 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장애인을 인권을 누려야 할 존재로 인식시키기보다는,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굳히는 데 기여한 측면이 강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1997년부터 매년 장애인의 날에 시상해왔던 장애극복상도 장애인을 대상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애극복상은 장애인을 차별하는 환경을 바꾸려는 노력은 뒤로 한 채,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보고 개인적으로 극복할 것을 강요하는 논리를 강화하는 잘못된 표창제도라는 지적이 꾸준히 있어왔다. 오히려 소수의 성공한 장애인을 내세워 장애인을 차별하는 환경을 바꾸려는 의지를 약화시키는 데 기여한 측면이 더 크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그런 비판이 받아들여진 탓에, 올해 제29회 장애인의 날부터는 장애극복상을 장애인상으로 바꾸어 시상한다는 소식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된 이후 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음을 반증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다.
 
기왕에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되었으니, 이제 우리들의 장애인의 날을 되찾는 일만 남았다. 세계장애인의 날인 12월 3일에 전세계 장애인들과 함께 진짜 신명 나는 우리들의 축제를 벌여보고 싶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일이다. 
김효진/<일다> 편집위원, 장애여성네트워크 대표이며 <오늘도 난, 외출한다>의 저자입니다.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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