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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한동안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지쳤던 때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프리랜서라고 하면 아무 때나 쉴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새벽이고 밤이고 아무 때나 일해야 되는 게 허울 좋은 프리랜서의 실상이다.

며칠씩 날밤을 새는 것도 밥 먹듯이 한다. 시간 관리를 못해서가 아니라, 으레 프리랜서는 자기 쪽 마감기한에 맞추기 위해 밤을 새서 일할 것이고 시간에 촉박하게 일을 부탁해도 된다는 암묵적인 생각으로 일을 맡기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어느 날 거울을 보고, 피부과 정보를 검색하다

정은의 일러스트

20대 때는 일주일씩 철야 작업을 해도 지친다는 느낌 없이 일했는데, 서른이 넘어서면서 체력적으로 부담을 많이 느끼게 되었다. 건강을 돌보기는커녕, 아침에 일어나 거울 볼 틈도 없이 연이은 철야 작업에 매진하던 어느 날이었다. 문득 창으로 비친 아침 햇살 속에서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보는데 ‘이게 누군가’ 싶은 마음에 가슴이 철렁해졌다.

푸석푸석 꺼칠한 피부에 이른바, 귤 껍질에 비유되는 늘어질 대로 늘어진 모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한 때는 피부 좋다는 소리도 들었는데, 왜 이렇게 아프고 불쌍해 보이나. 별별 생각이 다 들면서 인터넷으로 모공을 좁히고 피부를 개선해준다는 피부과적 시술을 검색했다.

크로스니, PCS니, MTS니 별별 시술들이 다 있었다. 박피만 해도 종류가 수십 가지는 될 듯해 보였다. 여러 번의 시술을 거치면 피부가 좋아진다는 홍보문구와 사진들이 유혹해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피부과로 뛰어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비용이 정말로 만만치 않았다. 이래저래 2,3백만 원은 쉽게 없어질 정도였다. 금액자체도 부담스러웠지만, 그런 큰 돈을 다른 의미 있는 일에 쓰는 게 옳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스미면서 갈등하게 되었다.

그러다 문득 ‘아, 나는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도 준비가 안되어 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모공이 커지고 잔주름이 생기고 피부에 탄력이 떨어지는 것. 무리한 생활로 인해 피부 노화가 일찍 와서 문제이긴 하지만, 아무튼 언젠가는 겪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변화를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겪을 준비가 안되어 있던 것이다.

나이든다는 건 자연스러워…나의 몸에 익숙해지기

예전부터 나는 멋진 할머니들을 동경해왔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씩씩하고 괄괄한 할머니처럼, 나이 들어서 소녀들의 든든한 지지자가 되는 모습을 꿈꾸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나이 들어가는 과정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삼십 대라면 아직은 소위 ‘한창’일 나이지만, 또한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기도 하고 '나이 듦'에 대해서 생각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늙지 않는 법’에 대해서는 과잉 된 정보를 쏟아내고 있지만, 늙은 몸을 받아 들이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몸의 가치는 젊은 몸에 집중되어 있고 나이든 사람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나이 든다는 것을 긍정적이거나 담백하게 생각해 볼 여유나 경험을 갖지 못한다. 특히 남성들은 주름이나 흰머리가 연륜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여성들에게 육체적 노화는 완전한 가치의 상실을 의미할 뿐이다.

육체적으로 노화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행동의 제약을 받게 되는 게 사실이고, 가능하면 건강을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노력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겉모습에 변화가 생기고, 체력적으로 변화를 느끼고, 육체적 변화는 또 다른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 노화 방지라고 주어지는 정보들도 정말로 노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조금 늦출 뿐이다. 따라서 이를 받아들이고 적응해갈 수 있는 연습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

거기까지 생각을 하자, 크로스니 pcs니 하는 모공 축소술에 대해서 좀 초연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게 뭐였던 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나는 망가진 게 아니라, 그냥 나이가 든 거다. 좀 빨리 나이들 게 한 노동환경에 대한 문제는 또 그 문제대로 제기야 하는 숙제가 있는 거지만.

이후 나는 피부과 시술에 들었을 뻔한 돈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단언컨대 나는 그 돈을 피부과 시술 대 위에서 쓰지 않은 것을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박정은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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