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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말하다

옆방의 주인이 될 친구를 찾으며…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3. 13. 13:59

▲ 가족관계의 굴레에서 드디어 독립하다
 
고함소리, 밖으로 나와 구경하는 동네 사람들, 성인이 된 자녀들을 이젠 힘으로 제압시킬 수 없는 아버지는 분노를 집안의 옷을 다 꺼내 칼로 찢는 행동으로 대신 풀었다. 내 신고로 온 경찰은 큰 따님이 아버님을 잘 달래서 말리라는 얘기만 남기고 가버렸다.

내가 집을 나온 날 상황이다. 그 이후 다시 들어가지 못하고 강제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서 나에게 독립이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매 맞던 초등학생 아이

내 부모는 아이를 양육하기에는 준비가 안 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결혼에 이은 출산, 양육 외에 다른 삶의 방식이 흔치 않던 그 시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부모도 결혼을 했고 자동으로 아이를 셋이나 낳았다.

많은 부모들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있는데, 자신들이 바라는 자식의 모습이 있다면 자식도 부모에 대해 바라는 모습이 있다는 것이다. 항상 자식들이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한다지만, 본인들은 자식들의 기대에 미쳤는지 생각해보지 못한다.

나의 부모도 나에 대해 실망이 많았던 것 같다. 원하는 모습대로 만들기 위해 애썼을 것이리라. 아버지가 물리적인 폭력을 주로 썼다면, 어머니는 정서적인 학대를 했던 것 같다. 간혹 잠을 설치게 하는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때 정한 귀가시간 5시를 어겼다는 이유로 입을 수건으로 틀어막고 각목으로 때리던 아버지 얼굴이라던가, 말리기는커녕 작은방 문을 꼭 닫고 모른 척하던 어머니도 있었지.

혼나는 이유도 어떤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그날 부모의 기분에 따라 심하게 혼나기도 하고 그냥 넘어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어떤 느낌인지보다는 부모가 화가 났는지 기분이 괜찮은지는 살피는 훈련을 했다.

그래도 매일 맞지는 않았으니까,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집들처럼 그렇게 심한 경우는 아니었으니까, 가끔 외식을 하거나 새 옷을 사주기도 하고 같이 웃을 때도 있었으니까, 내가 불행하단 생각은 안 했다.

그렇게 커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박도 하고, 운동권이 되기도 하고, 그렇게 나름대로 반항을 했지만, 나의 어떤 면들은 매 맞던 초등학생 아이에서 그리 크지 않은 듯 했다.

몸이 분리돼야 마음도 분리된다

집을 나가서 살겠다는 소망은 항상 머리 속에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하기에는 돈이나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기가 힘들었다. 돈을 2천만 원만 모으면 독립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지만, 2천만 원을 모을 동안 가족과 한집에서 사는 생활은 불안했고, 그래서 학원수강이나 쇼핑에 돈을 써야 했고 모아지는 돈은 없었고 악순환은 계속 반복됐다.

그러다 어머니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된 아버지의 싸움상대가 결국 온 식구로 확장된 그날 밤, 나는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옷가지조차 챙겨 나오지 못한 그 때 친척집에 잠깐, 선배 집에 잠깐, 그렇게 전전하다 지금의 집을 가지게 됐다. 아무 밑천도 없이 어떻게 집을 얻게 됐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다 살아지게 된다는 말밖에는…. 각자 경우가 다를 테니까.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드디어 그들이 나와 다른 존재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몸이 분리되어야 가족과의 부정적인 심리적 연결도 끊어지는 것 같다. 매일 얼굴을 마주보고 일정 정도 경제적인 도움을 받는 동거생활은 안 좋은 가족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다.

혼자 산다는 것은 매 순간 행복감보다는 나름대로 규율과 계획성을 요구한다. 세금 내는 날과 월급날 시기를 맞추고, 난방이나 전기 사용도 조절해야 한다. 내가 치우지 않으면 더러움은 지속된다. 그러나 내 생활리듬과 조건에 따라 수행하는 가사노동은 내가 성인이라는 자각을 갖게 한다.

방 한 칸의 ‘연대’

전에도 혼자 사는 친구 집에서 잠깐 같이 사는 등 독립을 시도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번 몇 달 못 가서 집으로 다시 돌아온 이유는, 내가 집을 얻는 데 경제적으로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미안함이나 열등감 탓이다. 친구 눈치를 보게 되고, 친구 또한 내가 기분 상할까봐 과도하게 신경을 써주고 하면서 서로 피곤해졌다. 독립하겠다고 나갔으면서 같이 사는 친구와 다시 가족관계 비슷한 걸 유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족 이외에 다른 관계를 가져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와 깊은 교감을 병행하는데 익숙지 않다. 그러나 당장 목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나의 방 한 칸이 독립을 시작하게 해주는 큰 밑천이다. 그러니 당신이 혼자 살면서 방이 하나 남는다면, 독립하고 싶어도 당장 방법이 없는 친구에게 그 방을 세주길 제안한다. 단, 능력에 맞게 방세를 내도록 서로 계약하고 사생활을 존중해줘야 한다.

방을 내준 사람은 집주인이라는 유세로 보일까봐 너무 신경을 쓰거나 돈 받는 것을 미안해하지 말아야 하고, 방을 빌려 쓰는 사람은 정해진 날짜에 꼭 방세를 내야 하며, 예의는 지키되 눈치보지 말아야 한다. 섣불리 서로의 삶에 조언을 해주거나 힘들 때 힘이 되어주겠다는 시도도 위험하다. 도와달라고, 들어달라고 요청하면 그때 개입해야 한다. 독립한다면서 친구와 또 다른 가족관계를 맺는다면 그건 진정한 독립이 아닐 것이다.

돈을 모으기 위해 너무 오래 참았거나, 결혼을 통하지 않으면 가족을 떠날 수 없는 여성들의 현실을 여성들간의 연대를 통해 바꿨으면 한다. 그래서 나도 지금 비워져 있는 내 옆방의 주인을 찾고 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는 어떤 곳?

[나의 독립기] 이혼기념 선물을 받다 / 박상은 2007/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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