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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0대 초반에 뒤늦게 첫 키스를 경험했다. 늦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10대에 많은 데이트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데이트를 하면서 키스도 안 해봤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면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지지만, 애정의 정도를 불문하고 10대엔 키스를 하지 않았다.

사실은 첫 섹스를 경험했을 때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첫 키스의 경험은 잊지 않고 있다. 내가 첫 키스를 했을 때를 기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 때의 상황을 열심히 글로 써두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나는 사귀는 사람들이 나를 만졌던 경험들에 대해서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굉장히 일방적이라고 느꼈고, 상대방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런데 첫 키스의 경험은 뭔가 달랐다. 그 때 써놓은 글을 보면, 나는 좀 흥분한 상태에서 ‘바로 이거야!’ 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사람과의 스킨십은 뭔가 다르고, 입을 맞추다가 그 사람의 혀가 내 입 속으로 들어왔을 때, 나의 혀와 뒤엉켰을 때, 그 순간 순간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주체적으로 나의 성욕이나 성적인 느낌에 대해서 솔직해지고 즐길 수 있게 된 계기라고 생각했다.

그 때의 글을 읽어보면 지금으로선 민망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는데, 왜냐하면 지금에 와서 보면 첫 키스의 경험이나 그 이후 그 사람과의 성적인 접촉도 역시 솔직함이나 주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뭔가 다를 거라고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얼마 안 가서 나는 그 사람과 관계를 정리해야 했다. 왜냐하면 한 번도 키스가 즐겁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킨십이든 섹스든 무슨 행사라도 치르는 것 같았고, 솔직한 느낌으로 좋지는 않았다.

나는 당황했고, 내가 성욕이 결핍되어 있거나, 스킨십이나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도 생각을 해봤다. 애인이 키스를 자주 하지 않는 것이 불만이라고 말하는 친구를 은근히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 친구는 내게 “키스가 좋을 때도 있고 안 좋을 때도 있지.”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듣고 편하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키스가 좋을 때는 없고 항상 안 좋기만 했으니 문제인 게 분명했다. 이유가 뭘까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렸다.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내가 성욕이 결핍된 사람도 아니고, 스킨십이나 섹스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아니란 걸 알게 됐지만, 사실 많이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런 결론을 얻을 수 있었을까. 그걸 생각해보면 성적인 경험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사랑한 게 아니었던 경험도 있고, 사랑하지 않았어도 섹스를 했던 경험도 있고, 한 번은 사랑하지 않았지만 섹스의 느낌이 좋았던 경험도 있다.

내 주위에는 성적인 경험 때문에 나처럼 고민을 하는 친구가 몇 명 있다. 섹스를 하기 싫다는 게 고민인 친구도 있고, 섹스를 원하기 때문에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애인과 헤어지기 싫다는 친구도 있고, 오르가즘이 뭔지 모르겠고 여자가 과연 섹스를 즐길 수 있는지 조차 모르겠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여자와 사귀는 친구도 있는데 처음엔 섹스가 너무 좋았지만, 지금은 연례행사처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가 더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만약 20대 초반에 나였다면, 그리고 친구들이었다면 어땠을까. 혼전엔 섹스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보수적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섹스를 적극적으로 즐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렇지만 직접 겪어보기 전엔 모르는 것 같다. 처음부터 성적인 경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성욕에 대해서나 성적인 느낌이나 기술에 대해서나 문제될 게 없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성 경험은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다. 나와 성적인 느낌이 서로 잘 맞을 수 있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 사람이 꼭 사랑하는 사람이 아닐 수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성적으로는 잘 맞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혹은 어차피 20대 초반엔 어떤 사람과 스킨십을 했어도 내가 흥분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섹스도 해본 적이 없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평생 다른 사람과는 섹스를 하지 않고 그 사람하고만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그렇게 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나한테는 이해가 안 된다. 섹스에 대한 조언을 한답시고 섹스의 경험이 싫었다는 사람한테 자꾸 애인하고 해보라고 하는 것도 좋은 얘기는 아니지 않나 싶다. 경험을 해보는 건 좋지만 애인이랑 뭔가 맞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그 사람과의 섹스는 싫어도 다른 사람과는 좋을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섹스 경험이 좋을 시기가 따로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인생에서 섹스가 꼭 중요한 건 아니고, 오르가즘이 꼭 중요한 건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섹스에 대해서, 성적인 경험에 대해서, 솔직하게 느끼고 생각하고 이야기하기란 너무 어려운 것 같다는 게 나의 불만이다. 얼마나 어려운가 하면, 내가 내 몸의 솔직한 느낌을 알게 되고, 스스로에게 고백하게 되기까지도 오래 걸렸다. 일다▣ 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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