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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극우 정치의 부상’에 맞서 여성주의 정치를!

덴마크 여성주의 정당 F!의 목소리



“여성이여, 거대한 생각을 한다는 건 당신에게 불가능하다네.”

노동자이자 공산주의 활동가인 남편이 신문을 읽으면서 아내에게 하는 말.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커피를 더 가져오라, 맥주를 가져오라며 보챈다. 마지 못해 맥주를 가져다주며 아내가 하는 말.

“그 거대한… 뭐? 아마도 자기 맥주는 자기가 가져오는 법을 배울 때 가능하겠지.”


덴마크 최고의 드라마라고 불리는 <마타도어>에 나오는 대목이다. 드라마 전체가 여성을 깎아내리고 있지는 않지만(오히려 그 반대의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대사는 곱씹어 볼 만하다. 이 장면은 1930년대 말의 덴마크를 그리고 있고, 1980년에 방영됐다. 그러면 오늘날의 덴마크는 어떠할까?


2017년 6월 5일, 덴마크 여성주의 정당(Feministisk Initiativ Danmark, F!)이 만들어졌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는데, 같은 해 1월 31일에 열린 토론모임이다. 당의 누리집에 따르면 창당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다.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과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계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대통령이 되는 것을 지켜보며 덴마크의 페미니스트들은 절망했다.


또 하나는 덴마크가 국제 성평등 지수에서 북유럽 이웃국가들에 비해 많이 떨어져 있는 현실이다. 당시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16년 자료에 따르면 1위는 아이슬란드, 2위는 핀란드, 3위는 노르웨이, 4위는 스웨덴이다. 그렇다면 또 다른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는? 19위였다.(참고로 한국은 116위)


▲ 덴마크 여성주의 정당 사람들. 스웨덴 여성주의 정당의 구드룬 휘만(검은 우산을 든 이)도 함께했다. ©F! 페이스북


‘성-계급-소수자’ 평등을 내세운 여성주의 정당 F!


이런 상황에서 열렸던 토론모임에는 스웨덴에서 여성주의 정당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구드룬 휘만(Gudrun Schyman)도 함께했다. 참석자들은 덴마크에도 스웨덴 당과 같은 조직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노르웨이와 핀란드에는 스웨덴 여성주의 정당의 자매정당이라 할 수 있는 당이 2015년과 2016년 이미 출범했는데, 덴마크에도 이와 같은 자매정당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당을 세우기 위한 모임과 행사가 이어졌고, 이듬해 덴마크 헌법의 날인 2017년 6월 5일 덴마크 여성주의 정당 F!가 공식 출범한다.


F!는 “여성주의란 우리가 함께 실천하는 그 무엇”이라는 구호 아래 여성주의 정치를 실현하려 노력한다. 특히 여성주의 정당은 성별, 인종, 섹슈얼리티, 종교, 나이 또는 장애를 바탕으로 한 모든 차별과 억압과 싸우는 것을 핵심 활동으로 하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여성주의 정치를 여성과 관련된 것만으로 오인하곤 한다. 덴마크 여성주의 정당의 강령과 정책은 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보여준다.


무엇보다 F!는 성-계급-소수자 집단이라는 세 영역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에서 F!는 평등과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지향한다. 이를 위해 여러 정책을 제시하는데, 몇 가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교육 관련해서, 한국의 초중등학교라 할 수 있는 공립기초학교(Folkeskole)의 한 반당 최대 학생 수를 24명으로 제한하자고 한다.(현재 관련 법 17조에는 28명으로 되어 있다.) 그래야만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고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빈곤 문제와 관련해서는 덴마크의 68세 이상 인구의 4% 정도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고, 특히 여성 그리고 교육 수준이 낮은 소수인종 출신이 대부분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F!는 이들을 위한 특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힌다.


2017년 11월 21일, 여성주의 정당은 덴마크 지방선거에 참여했다. 하지만 성적은 좋지 않았다. 수도인 코펜하겐에서는 0.7%, 코펜하겐을 포함한 수도권 전체에서는 0.4%의 득표율을 보였다.


▲ 덴마크 여성주의 정당 당원들의 모습. ©F! 페이스북.


유럽의회 선거: ‘기후’ 문제가 여성주의 정치와 관련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회 선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5년마다 열리는데 올해는 5월 23일부터 26일까지 치러진다. 구체적인 선거일은 유럽연합 28개 회원국가들이 직접 선택할 수 있다.(예정대로라면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이미 나갔어야 하고 그래서 27개국이 되어야 했지만, 탈퇴 협상 기한이 늘어나면서 영국 역시 이번 선거에 참여하게 되었다.) 예컨대 덴마크와 핀란드의 경우 5월 26일에 선거가 치러지고, 영국과 네덜란드는 5월 23일이 선거일이다. 유럽의회 선거는 751명의 의원을 뽑게 되는데 의원 수는 회원국의 인구에 따라 다르다. 덴마크와 핀란드처럼 인구가 적은 나라는 13명, 인구가 많은 영국과 네덜란드는 73명과 26명을 각각 뽑게 된다.


이번 선거의 핵심 사안들은 국가별로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첫째는 ‘기후변화’이고 둘째는 ‘난민(또는 이민자)’이다. 덴마크의 경우 선거 홍보물, 거리 팻말, 그리고 토론회에 거의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안들이다. 또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관련해 유럽의 정체성 등의 문제가 진지하게 논의되는 분위기다. 참고로 덴마크는 1973년 유럽연합에 가입했는데 탈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제기되어 왔다. 이를 적극 대변하는 당이 이미 1972년에 만들어졌고, 현재 유럽의회에서 1석을 차지하고 있다.


여성주의 정당은 아쉽게도 이번 선거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래도 핵심적인 정치 사안들에 대해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후 문제가 여성주의 정치와 관련이 있다’고 알리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서구 국가들의 산업화와 개발 정책으로 초래된 면이 많은데, 이는 선진국들과 나머지 국가들의 권력 구조에 관한 것이고, 따라서 성-계급-소수자 집단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이야기다. 이런 관점을 바탕으로 F!는 덴마크를 포함한 서구 국가들이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이를 ‘기후정의’라는 개념을 빌려 설명한다.


선거와는 별도로, F!는 유럽(연합) 안에서의 연대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작년 11월 30일 “유럽은 여성주의가 필요하다”는 구호 아래 유럽 여성주의 연합단체가 생겼다. 덴마크 여성주의 정당도 여기에 함께하고 있다.


▲ 덴마크 여성주의 정당 행사 모습. ©F! 페이스북.



그리고 유럽의회 선거보다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는 선거가 곧 다가온다. 덴마크 총선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4년마다 있다. 이번 총선은 6월 5일에 치러질 예정이다. 총 179명을 뽑는데, 여기에는 덴마크 영역 안에 있는 페로 제도와 그린랜드 의원들이 2명씩 포함된다.


덴마크의 현재 정치 지형은 보수 성향의 정부를 이루고 있는 ‘청색 연합’(Blå blok)과 이에 대응하는 ‘적색 연합’(Rød blok)으로 나눠진다. 청색 연합은 자유당을 중심으로 자유연합과 보수인민당이 함께하는데, 여기에 거의 극우 성향에 가까운 덴마크인민당이 적극 협력하고 있다. 총리는 라스 뢰게 라스무슨 자유당 대표다.


야당이라 할 수 있는 적색 연합에는 사회민주당, 적녹연합, 대안당, 사회자유당 그리고 사회주의인민당이 함께하고 있다. 참고로 페로 제도 소속 두 개의 당은 각각 청색 연합과 적색 연합으로 나뉘어 있고, 그린랜드의 두 당은 모두 야당 성향이라 할 수 있다.


덴마크 총선: 이민자 정책과 ‘이슬람 혐오’가 쟁점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번 총선은 사회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적색 연합이 이길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 공영방송 DR에 공표된 결과에 따르면, 5월 21일 기준 사회민주당 지지율은 29.8%, 자유당 지지율은 17.1%다. 여기에 다른 당의 지지율을 보태면 적색 연합은 56.5%, 청색 연합은 37% 정도가 된다.


만약 적색 연합이 선거에서 이기게 되면 덴마크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총리가 나올 수 있다. 사회민주당 대표인 메데 프레데릭슨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덴마크의 첫 여성 총리는 헬레 토닝-슈미트 전 사회민주당 대표로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재직했다.


현재 프레데릭슨의 사회민주당은 ‘오른쪽으로 많이 옮겨갔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이민자 관련 정책을 보면 굉장히 보수적이라 할 수 있고, 극우에 가까운 덴마크인민당과 거의 협력 관계를 이룰 정도다. 프레데릭슨이 5월 1일 노동절 행사에서 연설했을 때, 사회민주당 계열의 청년들로부터 “위선자(Hykler)”라는 비난을 공개적으로 들었다. 아울러 이 청년들과 그녀의 지지자들 사이에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다툼이 있어 연설이 몇 번이나 중단되었다. 필자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보수 색채가 강화된 사회민주당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볼 수 있었다.


적색 연합의 승리를 가정했을 때 그녀를 대신할 총리 후보로 떠오르는 이가 있는데, 페닐레 스기퍼 적녹연합 대표다. 34세의 여성으로 비교적 인기가 많고 진보 색채가 짙은 정치인이다. 또 가능성이 많지 않지만, 대안당의 우페 엘백 대표도 총리 후보다. 누가 되든 지금으로서는 여성(또는 진보 정치인)이 덴마크의 새 총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인종주의자들을 내보내요! 여성주의자들을 들여보내요!” 2017년 덴마크 지방선거 당시 여성주의 정당의 홍보 팻말. ©F! 페이스북.


총선의 핵심 사안으로 (유럽의회 선거와 마찬가지로) 먼저 기후 문제를 들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비행기 표에 세금을 물리는 것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이민자, 특히 이슬람교도에 대한 혐오 문제를 빼놓을 수 없다. 이 문제의 중심에 선 인물은 라스무스 팔루댄 ‘강경 노선’(Stram Kurs) 대표다. 그는 이슬람교도들이 많이 사는 곳에 의도적으로 찾아가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불태우는 등 자극적인 행동을 해왔다. 그가 2017년에 만든 이 당은 이슬람을 금지하고 (덴마크 시민을 제외한) 비서구 출신들을 모두 추방해야 한다는 정책을 내걸고 있다. 올해 4월에는 팔루댄의 행동에 자극을 받은 이슬람교도들이 코펜하겐 지역에서 자동차에 불을 지르며 격렬히 항의해 큰 논란이 일었다. 팔루댄의 당만큼 논란을 일으키고 있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극우당(Nye Borgerlige)이 2015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정말 아쉽게도 이번 총선에 여성주의 정당은 참여하지 않는다. 특정 당이 덴마크 총선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최소 2만109명의 지지자 서명이 필요한데 이를 채우지 못한 것이다.(덴마크 인구는 5백 7십만 명 정도) 그래도 F!는 정성껏 마련한 정책들을 바탕으로 나름의 목소리를 내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에도 당을 홍보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여성주의 정치, 기후변화, 인종주의와 관련해 의미 있는 논의를 진행했다. 필자도 이 자리에 직접 갔는데 당 구성원들과 참여자들의 진지하면서도 활기찬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덴마크의 현실은…


위에서 이야기한 팔루댄의 강경 노선은 4월 14일 아침 기준 5천526명의 서명을 받았다고 한다.(코펜하겐 포스트, 2019년 5월 4일자 보도) 큰 논란을 일으킨 그의 ‘이슬람 혐오’ 행동은 같은 날 낮에 있었는데, 이를 계기로 약 2주 만에 1만5천명 정도의 서명을 더 받아냈다. 다시 말해 혐오를 정책으로 내건 극우 정당은 총선에 참여할 수 있지만,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하는 여성주의 정당은 그러지 못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덴마크의 현실이다. 다가오는 총선, 덴마크는 어떤 선택을 할까? (박강성주/ 국제관계학 연구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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