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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 엔터테인먼트’는 어떻게 강간문화를 조장했나

대중문화를 즐기는 페미니스트들을 위한 책 <을들의 당나귀 귀>



‘약물을 이용한 강간 사건 및 경찰의 유착’ 문제로 시작한 클럽 버닝썬 사태는 고구마 캐듯이 줄줄이 나온다고 할 만큼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부패와 부정의를 들춰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것은 만연한 ‘강간문화’의 실태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통해 세계적인 공감을 불러온 ‘맨스플레인’(mansplain)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리베카 솔닛에 따르면, ‘강간문화’란 강간이 만연한 환경, 미디어와 대중문화가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규범화하고 용인하는 환경을 말한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용인하는 문화


항간에서는 이른바 ‘승리 게이트’를 ‘승츠비’(20세기 미국문학 대표작 중 하나인 <위대한 개츠비>에서 따온 표현으로, 승리가 ‘파티를 즐기는 개츠비가 되고 싶다’고 말한 이후 방송 매체에서 젊은 사업가인 그를 치켜세우며 ‘위대한 승츠비’라는 별명을 붙여줌)의 몰락으로 얘기하지만, 이 사건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여성비하를 일삼는 단톡방 성희롱부터 여성의 몸을 접대의 도구로 삼는 성매매 알선, 약물을 이용한 강간, 불법촬영물 촬영 및 유포, 음주운전 단속을 피하기 위한 금품공여 혐의까지. 승리뿐 아니라 그의 단톡방 친구들인 정준영, 최종훈, 이종현 등 ‘한류 스타’의 범죄 사실이 연이어 밝혀지고 있다. 몇몇의 유명 남성 연예인들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그 단톡방엔 ‘XX대표’ 등 아직 누군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문제의 그 단톡방 내용은 여성을 비하하고 성적으로 도구화하며 강간(을 조장)하고 성행위 영상을 상대 몰래 찍어 공유하는 등의 행위를 묘사하는 대화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것이 돈 많고 권력 가까이에 있는 남성들만의 문제일까?


지난 며칠 간 서울교대, 경인교대, 대구교대 남학생들이 동기인 여학생들의 외모를 품평하며 등급을 매기는 등 성적으로 도구화한 ‘단톡방 성희롱’ 사건들이 밝혀졌다. 특히 이들이 앞으로 초등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할 예비 교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대학가에서는 교수와 강사들이 이 사건을 ‘농담’의 소재로 사용하거나 오히려 가해학생들을 두둔하는 발언 등을 해서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준영의 단톡방 불법촬영 영상 공유 건에 대해서도 ‘남자라면 다들 보는 야동인데 연예인이라서 재수없게 걸린 것’이라는 동정 여론이 심상치 않다. 심지어 피해여성의 신원을 캐려고 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고, ‘정준영 동영상’이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한 것은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강간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 책 <을들의 당나귀 귀>(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 한국여성노동자회.손희정 기획, 후마니타스, 2019)


이미 경고장을 날린 페미니스트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어쩌다가 ‘강간문화’가 이렇게 사회 곳곳에 침투하게 된 걸까? 일찌감치 그 원인을 대중문화를 통해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한 페미니스트들이 있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진행하고 있는 <을들의 당나귀 귀>라는 팟캐스트를 통해서다.


이 팟캐스트에선 2016년부터 2017년까지 ‘대중문화와 젠더’라는 주제를 통해 문화연구자 손희정 및 다양한 게스트들과 함께 TV, 영화, 문학, 게임 속 ‘남성 중심 문화’를 지적해 왔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정리되어 동일명의 책 <을들의 당나귀 귀>(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 한국여성노동자회.손희정 기획, 후마니타스, 2019)으로 발간되었다.


책에선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문화가 그동안 어떻게 여성을 배제하고 희화화하고 혐오했으며 남성들의 연대를 강화시켰는지, 남성연대가 웃고 즐기며 자신들의 삐뚤어진 욕망을 어떻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남성의 일’로 만들어 냈는지 콕콕 짚어낸다.


책을 읽다 보면 지금의 ‘승리 게이트’와 같은 사태가 발생할 것을 이미 페미니스트들이 이렇게 경고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한남 엔터’와 ‘아재 엔터’로 장악된 TV


한 때는 50~60%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중들의 친구라는 역할을 수행했던 TV가 이제 10%의 시청률 넘기기도 벅찬 상황이 된 건, VOD서비스나 유투브, 넷플릭스 등 다양한 플랫폼과 시청 방식이 생겼기 때문만은 아니다. 많은 여성들이 TV를 끊고 ‘넷플릭스로 갈아탄다’고 하는 이유에 대해 ‘한남 엔터테인먼트’로 장악된 TV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 서울YWCA의 2018년 상반기 <대중매체 양성평등 모니터링 보고서 예능.오락> 보고서 중 출연자 여남 비율 (출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을들의 당나귀 귀>에선 ‘한남 엔터테인먼트’를 두 가지 성격으로 규정한다. 최지은 칼럼니스트는 “첫째는 여성을 배제하는 예능, 여성이 없는 예능. 둘째는 여성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여성 혐오적 성격이 강하고 여성을 비하하거나 여성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강화하는 예능”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한남 엔터’는 단지 TV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대중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고 얘기한다.


승리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한남 엔터’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아는 형님>이나 <라디오스타> 등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범죄 영상을 ‘야동’이라고 부르며 웃음으로 소비했던 걸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 치부하고 넘어가는 여성혐오와 성차별이 부지기수다.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는 개그나, 타인의 신체를 희화화하거나 여성을 무시하는 행동 등이 “나쁜 웃음으로 연결”되고 “TV가 가진 권력을 통해 그런 행동들이 ‘사실’이나 ‘믿을 만한 일’이 되어 버린다”는 점도 문제다. “저 사람도 저렇게 하는데”, “역시 남자란 다 그런 거지”라는 생각이 주입되는 것이다.


30~40대 이상의 중년 남성들이 중심이 되는 ‘아재 엔터’의 문제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낭만아재’, ‘욜로아재’, ‘아재파탈’이라는 새로운 이름까지 붙여주며 그들을 우쭈쭈 하면서 “아재 기 살려주기”를 해 온 대중문화는 아재와 대비되는 여성들, 특히 중년 여성에 대한 배제를 만들어냈고 ‘잔소리하는 아내, 매력 없는 아줌마’ 이미지를 생산해 냈다.


“아재 기 살려주기”는 IMF 이후로 줄곧 시도되어온 것인데, 이와 관련해 한국여성노동자회 임윤옥 전 상임대표는 이렇게 지적한다. “사실 IMF 이후 남성의 지위가 ‘추락’하는 건 여성이 남성의 몫을 빼앗아 가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의해 노동시장이 유연해지고 남성노동자의 지위가 허약해졌기 때문인데, 그걸 여자들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여성의 캐릭터와 여성의 노동은 매우 주변화되어 있다.


걸그룹과 워킹맘 사이, 여성은 어떻게 보여지는가?


‘한남 엔터’와 ‘아재 엔터’가 번창해 가는 동안 미디어에서 여성이 설 자리는 점점 사라져갔다. 기껏 보이는 여성의 모습이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점도 여성의 위치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나마 여성의 활동이 눈에 띄게 보이는 분야인 아이돌 걸그룹은 화려한 이면과 달리 정말 “극한 직업”이라 불릴 만큼 “열정 노동”에 시달리고 있고, “날씬해야 하지만 잘 먹어야 하고, 잘 먹어야 하지만 가시적이지 않게 잘 먹어야 하고, 또 절대로 음식을 거절해서는 안 되는 한편 그들이 실제로 그렇게 음식을 ‘잘 먹기’ 위해서 얼마나 굶고 운동하는지는 이야기하지 않는 이중 잣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최지은 칼럼니스트는 설명한다.


‘어린 여성’들이 대부분인 아이돌은, 자신을 좋아해 주는 남성들의 입맛에 거스르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성희롱이나 성폭력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에 놓이기도 한다. 남성 팬들이 치마 속 안을 불법촬영하는 일도 있고, 라이브 방송 중에 정수리를 보여달라고(일부 남성 팬들 사이에선 정수리를 보면 구강 성교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거나 가슴 골을 볼 수 있다고 하기도 한다) 하는 등의 요구를 들어줘야 할 때도 있다.


물론 여성 아이돌이 그런 환경 속에서 무기력하게 있기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대중문화를 통해 드러나는 ‘어린 여성’들의 이미지가 여성 아이돌로 한정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 여성 아이돌을 소비하는 미디어 환경은 남성들로 하여금, 자신이 여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떤 요구도 할 수 있다는 황당한 착각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한다.


여성의 ‘노동’을 재현하는 방식도 여전히 큰 틀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가족드라마를 통해 “여성의 공간은 부엌, 남성은 거실이라는 이분법을 공고히 하고 가사노동을 당연한 여성의 의무로 그리지만 ‘노동’으로서는 제대로 그리지 않는” 행동을 반복하거나, 일하는 여성을 “생수통 하나도 교체 못하는” 민폐 캐릭터로 보여주거나 억척스럽고 독한 슈퍼우먼 워킹맘으로 보여준다. 거기다 여성의 노동은 제대로 조명 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 동료가 아니라 늘 남성의 ‘연애 대상’으로 소환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오수경 칼럼니스트는 “여성이 노동하는 인간으로 자리 잡는 것 자체가 고난의 연속”이라며 “서바이벌 게임같다”고 표현한다.


▶ 책 <을들의 당나귀 귀>(페미니스트를 위한 대중문화 실전 가이드) 목차


여성의 이미지가 상품이 되는 곳, 성매매 산업


이 책에서 꼬집어 내는 부분이 한둘이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지점은 여성의 이미지가 상품이 되는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는 성매매 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문화는 ‘한남 엔터’와 ‘아재 엔터’를 통해 남성연대가 가능하도록 끊임없이 장을 만들어줬다. 그 남성연대는 여성을 성희롱하고 자신의 트로피로 삼고 불법촬영물을 공유하며 여성을 성적으로 소비하면서 끈끈하게 관계를 유지해왔다. ‘승리 단톡방’은 그걸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그리고 여성을 동료로 보지 않고 ‘연애 대상/성적인 대상’으로 재현해 오는 방식도 “여성의 몸을 자원”으로 이용하는 성매매 산업과 연결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의 몸이 자원이 된 건 오래된 얘기”라고 말한 서강대학교 트랜스내셔널인문학연구소 김주희 교수는 “남성이 경제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여성의 몸이 사용되어 온 점을 설명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매매 산업이 나와 멀리 떨어져 있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매매 산업의 규모는 상상 이상으로 크다”고 지적한 김주희 교수는 “그곳이 남성들의 일상이 조직되는 곳이고 또 ‘남자 되기’가 실천되는 곳이며 그 무대에서 남자들끼리의 유대와 연대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일명 남성들의 “룸살롱 연대에서 볼 수 있는 ‘접대’ 같은 문화”도 “사실은 남성 노동자들 간에 카르텔이 형성되는 중요한 장이고, 여기서 정보가 공유되는 곳”으로 이용된다. 거기서 여성이 배제되는 것 또한 당연한 수순이다.


‘한남 엔터’ 같은 대중문화의 재현이 그런 현실을 더욱 북돋우는지, 대중문화가 그런 현실의 문제점을 바꾸지 않고 반복해서 찍어내는 일에 그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건 이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을들의 당나귀 귀> 속 대중문화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놀랍도록 날카로운 페미니스트들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여성혐오적인 대중문화에 분노를 쏟아내는 걸 넘어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처럼 많은 걸 피하고 떠나왔지만 대중문화마저 떠나 보낼 필요는 없다. 이 책에서도 설명하듯 다행스럽게도 변화의 물꼬가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 모든 이야기가 세세하게 설명된 책 <을들의 당나귀 귀>는 대중문화를 즐기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강력한 힘이 되어줄 것이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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