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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 예수”라 불리는 팝가수, 헤일리 키요코

지금 그대로 너여도 괜찮아…소녀들의 역할모델이 되다


“제가 이 상을 받는 의미는, 비(非)백인 퀴어 여성들이 자신의 꿈을 좇아가도 괜찮다는 걸 보여준 거라고 생각해요.” -헤일리 키요코, 2018년 MTV Video Music Awards ‘Push Artist of the Year’ 수상 소감 중


가수 헤일리 키요코의 수상 모습을 지켜보던 유투버 <올드 레즈비언>의 벨리타, 필리스, 세이블은 “헤일리가 자신의 모습이 퀴어 청소년 커뮤니티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잘 안다는 게 좋네요”, “정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였어요”, “퀴어 청소년들에게 ‘지금 그대로 너여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거네요.” 라고 말하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 헤일리 키요코를 만난 유튜버 <올드 레즈비언>의 이야기가 담긴 영상 ⓒ출처: https://youtu.be/Byz6sfCWy2Y


이후, 그들은 자신들 앞에 깜짝 등장한 헤일리 키요코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70대 중반, 60대 후반인 <올드 레즈비언>들이 헤일리 키요코의 뮤직비디오를 보는 유튜브 영상이 백만 뷰 넘게 시청된 이후 성사된 만남이었다. (영상 링크: ‘Old Lesbians Watch Hayley Kiyoko’ https://youtu.be/_vcybr9HNfQ)


<올드 레즈비언>들은 헤일리 키요코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우리가 어렸을 때도 이런 게 있었어야 했어, 그럼 우리도 (레즈비언인 게 괜찮다는 걸) 알았을 것 아냐”라고 말하며 아쉬워하면서도 지금 젊은 세대의 퀴어에게 헤일리와 같은 역할모델이 생겼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요즘 젊은 레즈비언들은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는지 알게 되었다며 자신들 세대와 비교하기도 했다.


“소녀들이 소녀들을 좋아하는 건 새로운 일이 아냐”


<올드 레즈비언>들이 이렇게 엄지를 치켜든 뮤직비디오와 노래를 만든 헤일리 키요코는 1991년생인 젊은 아티스트다. 어린 시절부터 배우와 가수로 활동하던 그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 건, 2015년 6월 발표한 “걸즈 라이크 걸즈”(Girls Like Girls) 뮤직비디오다.


▶ 헤일리 키요코의 “걸즈 라이크 걸즈”(Girls Like Girls) 뮤직비디오 ⓒhttps://youtube.com/watch?v=I0MT8SwNa_U


“소녀들은 소년들이 그러는 것처럼 소녀들을 좋아해, 이건 새로운 일이 아냐. 난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왔어. 소년들아, 난 너의 여자친구에게 키스를 하고 널 울게 만들 거야.”


친구인 듯 보이는 두 소녀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키스를 하는, 행복한 웃음으로 마무리 되는 이 뮤직비디오는 퀴어 스토리의 전형적인 이야기-슬프고 절망적인 결말-와는 전혀 다른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남자로부터 여자친구를 뺏어온다는 설정 또한 저돌적이다. 그래서였을까? 유튜브에서 1억 뷰를 넘긴 이 뮤직비디오의 댓글 창엔 ‘이 노래 덕분에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거나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나와서 좋다’는 말들로 가득하다.


이 노래로 많은 이들에게 이름을 알린 헤일리 키요코는 조금 더 대담하고 솔직하게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2016년에 발매된 EP Citrine에 담긴 Ease my mind에선 “난 멈추고 싶지 않아. 넌 날 깨어있게 해. 밤새도록 말야.” 라는 가사와 함께 ‘Girl’이라는 대명사를 지칭했다. Pretty Girl에선 “난 그냥 네가 정말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야. 난 그냥 네가 날 받아줄 수 있을지 알고 싶을 뿐이야”라고 말한다.


솔직하게 여성/소녀들의 욕망을 담아내는 노래 가사 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도 직접 연출함으로써 여성의 시선에서 여성들 사이에 느끼는 로맨틱한 감정과 서로를 향한 욕망을 그려냈다. 이처럼 여성들 간의 사랑을 가시화하는데 주력해 온 헤일리는 2016년 12월, 잡지 페이퍼(Paper)를 통해 공개적으로 자신이 레즈비언임을 밝히며 커밍아웃을 했다.



#20gayteen, 2018년을 게이의 해로 만들다


“어머니가 그러더라고요. ‘떠오르는 신인’(Rising Star)이 되는 건 지금 한번 뿐이야.’ 그래서 전 이 순간을 천천히 즐기려고요.”


작년 11월 <빌보드 우먼 인 뮤직>(2007년을 시작으로, 한 해 동안 음악업계에서 활약한 여성에게 수상하는 시상식)의 신인상을 수상한 헤일리 키요코(Hayley Kiyoko)는 웃으며 이렇게 농담을 했지만, 상을 건네받았을 땐 “이렇게 큰 무대에서 상을 받는 게 처음”이라며 울먹였다.


공교롭게도 헤일리는 작년 1월 1일, 2018년(Twenty-eightteen)을 게이(Gay)의 해로 만들자며 #20gayteen 문구를 제안했었다. 그런 그가 <빌보드 우먼 인 뮤직> 신인상을 수상한 것은, 2018년을 정말 #20gayteen으로 만들었다는 증명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소녀를 좋아하는 소녀’들을 대변하며 노래해 온, 커밍아웃한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이기도 했다.


▶ 헤일리 키요코의 미국 투어 콘서트장에는 브래지어를 던지며 헤일리를 지지하는 팬들이 넘쳐났다. 헤일리는 그 브래지어를 모아 홈리스 소녀들에게 기부했다. ⓒ출처: 헤일리 키요코 인스타그램


2018년 첫 앨범 <Expectation>을 발표한 후엔 미국 전역을 도는 콘서트는 물론, 유럽 투어를 할 정도의 인기를 얻은 헤일리는 음악업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전반에 걸쳐 ‘#20gayteen’이라는 트랜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팬들은 그를 ‘레즈비언 예수’(Lesbian Jesus)라 부르기 시작했다.


‘레즈비언 예수’라 불리는 팝가수의 등장은, 그동안 레즈비언들이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가수가 별로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이전에도 티건 앤 사라(Tegan & Sara, 관련 기사: 쌍둥이 여성 듀오 ‘티건 앤 사라’의 매력 속으로 http://ildaro.com/8411)나 케이디 랭(KD Lang), 멜리사 엘더리지(Melissa Etheridge) 등 유명한 레즈비언 가수들이 존재한다. 다만 지금 10대 20대 여성들이 공감할 수 있는 롤모델은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퀴어함’을 드러내는 헤일리인 것이다.


타인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 여성 가수들


혹자는 가수가 노래만 좋으면 됐지, 성별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에 대해 팬들이 꼭 알아야 하는지 반문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가수를 좋아하거나 그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 그 노래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나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일, 이 노래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등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마련. 심지어 팬들은 그 가수가 어떤 동물을 좋아하고, 어떤 음식을 즐겨 먹으며, 어떤 차를 모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 가수, 레즈비언이야’라는 것에 대해서만 ‘아니, 난 그것까진 알고 싶지 않아’라고 반응한다면, 과연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성적 지향에 대한 이야기는 늘 ‘비밀스럽게’ 다뤄져왔다. 누군가 당신에게 커밍아웃한 퀴어 팝 가수의 이름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선뜻 떠오르는 사람이 없을지도 모른다.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엘튼 존, 리키 마틴, 샘 스미스’ 정도를 떠올릴 것이다. 오랜 시간 팝 음악계에서 여성 가수의 ‘퀴어함’ 그리고 ‘다른 여성을 성적으로 갈구한다는 욕망’은 대중에 의해서, 언론에 의해서 혹은 본인에 의해서 가려지거나 숨겨져 왔다.


하지만 이제 환경이 변하고 있다. 밀레니얼(1980년대 생)과 Z세대(1990년대 생)를 대변하는 젊은 팝가수들인 켈라니(Kehlani), 홀지(Halsey), 로렌 하우레기(Lauren Jauregui) 데미 로바토(Demi Lovato), 자넬 모네(Janelle Monáe) 등은 레즈비언/양성애자/범성애자/퀴어로 커밍아웃했다. 이들은 자신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음악으로 담아내는데 주저함이 없다.


로렌 하우레기는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였던 2016년 11월, 빌보드지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표출했던 ‘반反이주민, 반反퀴어’는 잘못됐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고, 위대한 미국을 다시 만들겠다면서 트럼프를 선택한 건 위선이라고 그의 지지자들을 비판했다. 로렌은 “나는 바이섹슈얼 쿠바-미국인 여성이고, 나는 그게 자랑스럽다”고 당당히 말했다. (참고: https://www.billboard.com/articles/columns/pop/7581388/fifth-harmony-lauren-jauregui-open-letter-donald-trump-voters)


▶ 자넬 모네의 ‘Make me feel’ 뮤직비디오 중. 이 노래는 ‘양성애자들의 국가’라 불리며 큰 인기를 얻었다. ⓒ출처: https://youtu.be/tGRzz0oqgUE


롤링스톤지를 통해 ‘흑인 퀴어 여성으로 미국에서 산다는 일’에 대해 언급한 자넬 모네 또한 “난 여성과 남성과 연애했었고 날 양성애자라고 생각했지만, 범성애자에 대해 알고 난 후엔 그게 나한테 더 맞는 말인 것 같았다. 난 자유로운 사람이고,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해 계속 알아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참고: https://www.rollingstone.com/music/music-features/janelle-monae-frees-herself-629204) 자넬은 타인의 판단에 자신을 맡기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관련 기사: ‘블랙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팝스타, 자넬 모네 http://ildaro.com/7864)


그리고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 틴보그(Teen Vouge)는 2018년 4월 헤일리 키요코의 앨범 <Expectation> 리뷰 기사를 내며, “<Expectation>은 ‘20gayteen’에 걸맞는,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는 퀴어 팝 명작”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이제 소녀들, 특히 자신을 퀴어로 정체화하는 소녀들과 젊은 여성들은 ‘남자’(He)의 이야기를 ‘여자’(She)의 이야기로 바꿔서 상상하지 않아도 된다. 그들은 이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헤일리 키요코 같은 여성 음악인들을 찾을 수 있다.


소녀들/여성들이 주변의 시선을 끊임없이 신경 써야 하고 작은 일에도 쉽게 움츠리며 사과해야 하는 여성상을 강요받던 시대가 서서히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당당한(unapologetic) 여성의 목소리가 음악에서도 울려 퍼지고 있으니까.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헤일리 키요코의 “Curiou” 뮤직비디오: https://youtu.be/YXTzMOmmEfE

※ 자넬 모네의 “Make me feel” 뮤직비디오: https://youtu.be/tGRzz0oqgUE

※ 로렌 하우레기의 “More Than That” 뮤직비디오: https://youtu.be/uDb3RKqwT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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