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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찰관이 ‘세상의 모든 언니’에게 묻다
원도 작가의 <경찰관속으로>
<경찰관속으로>는 ‘원도’라는 필명에 기대어 경찰관으로서 겪은 일들을 ‘언니’에게 전하는 편지다. 작가가 부르는 언니는 작가의 친언니나 특정 인물이 아니다. 학교에서 만난 언니, 사회에서 만난 언니, 경찰관 동기 언니 등 불특정한 언니 모두를 뜻한다. 우리에게도 살아오면서 삶의 고민과 아픔을 들어주던 언니들이 있지 않았던가. 이제는 우리가 언니가 되어줄 차례다. 일상을 버티려고 언니를 부르는 외침이 너무나도 절박해 그녀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 <경찰관속으로>(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원도 지음, 영빈관, 2019)
<경찰관속으로>는 경찰 업무를 수행하면서 겪은 일에 대해 느낀 작가의 감정과 생각을 전한다. 그녀의 편지에는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산 사람, 죽은 사람, 남은 사람 이야기로 나뉜 그녀의 편지는 다시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과 ‘이해가 돼서 오히려 마음이 아픈 사람’ 이야기로 나뉜다.
여자친구에 대한 의심과 분노로 여자친구가 키우던 동물에게 해코지한 남자,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억울해하는 남자 등이 전자(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에 속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후자(이해가 돼서 오히려 마음이 아픈 사람)에 속한 사람은 여자가 대부분이다. 물건 취급을 당하는 결혼이주여성, 데이트 폭력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성, 사내가 아니라며 화가 난 아버지 탓에 출생신고도 하지 못하고 80년을 살아온 할머니….
경찰로 일하며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직접 보고 겪은 작가는 분명히 세상에 무언가가 잘못됐다고 느낀다.
“언니, 나는 정말 묻고 싶어, 이 상황에서 누가 짐승이고 누가 인간이야? 누가 인간이길 포기한 거지?”(p.22)
작가는 언니를 향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어떻게 해서든 납득해보려는 절실함으로 읽힌다. 사악한 사람 한 명의 개인적 일탈로 판단하고 경찰이 체포해 사회와 격리시키면 문제는 해결될까? ‘누가 인간이야?’라는 작가의 질문은 여기서 끝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잔혹한 인간의 행위가 등장하게 된 사회적 구조에 대한 고민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이해되지 않는 범죄의 발생을 막기 위해선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강간이라는 끔찍한 범죄에 ‘문화’라는 용어가 따라붙을 만큼 성차별이 만연해있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불법촬영, 불법약물사용의 피해자가 될 것을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 흔히 ‘묻지마 살인’이라 부르는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대부분 사회적 약자에 속한다. 난민, 장애인, 젊은 엄마, 어린이 등 혐오범죄의 대상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바로 지금도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연이어 드러나는 남성 유명인들의 카톡방 대화에서 절대로 개인의 문제로 축소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들을 목격하고 있다. 책 속에 등장한 에피소드와 닮아있는 잔인한 사건이 최근 진주에서 발생했다. ‘이해할 수 없는’ 범죄와 폭력의 반복을 멈추기 위해서 또다시 고민하게 된다.
<경찰관속으로> 속 사건들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보여준다. 공정과 정의를 기대할 수 없는 사회에서 각자 생존이 급급해진 개인은 위만 바라볼 뿐 타인을 배려할 여유가 없다. 상대적으로 약한 소수자에게 쉽게 화풀이해대는 양상이 반복되고 확산된다. <경찰관속으로>를 통해 ‘인간이 무엇인지’ 물어보는 작가의 질문에 대해 ‘사회에서 답을 찾아보자’고 얘기하고 싶다.
지난 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헙법불합치 판결에 많은 여성들이 서로 껴안고 환호했다. 10여 년 전 호주제 폐지를 이루었던 당시의 모습도 함께 주목받았다. 멈추지 않았던 여성들의 움직임 덕분에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는 조금씩 나은 삶을 내다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계속해서 물어보고 행동하면 그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호주제를 없애고 낙태죄를 없앤 언니들처럼 말이다.
편지가 끝나면 지금을 이겨내고 있을 자신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는 그녀를 위해 나도 기도를 올린다. 함께 질문하고 함께 해결해보자. 힘이 들고 지칠 때는 언니가 여기에 있을 테니 언제든지 불러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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