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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심청”은 누구인가?
심청 서사를 페미니즘으로 다시 쓴 만화 <그녀의 심청>
어렸을 때 읽었던 심청전. 생후 칠일 만에 어머니를 잃고 눈먼 아버지 밑에서 동냥젖을 먹으며 자랐던 소녀가 열다섯 살에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뱃사람들에게 팔려 가는 심청의 이야기는 슬프고 고통스러웠다. 물론 심청전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비극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바닷물 속에 빠져 죽은 심청이 연꽃에서 환생하여 황후가 되는 걸로 반전. 딸의 목소리에 놀란 심 봉사도 눈을 뜨니까.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고난과 절망으로 버무려진 심청의 지난 삶을 씻어주기에 충분하니까.
그럼에도 치마를 뒤집어쓴 채 깊고 깊은 바닷물로 뛰어들 때 심청은 얼마나 무서웠을까? 왜 그때 공양미 삼백 석을 대신 내주겠다고 한 승상 부인의 제안을 거절했을까? 아버지 눈도 뜨게 하고 죽지도 않았을 텐데…. 어렸을 적 풀리지 않았던 질문은 떠나지 않고 마음 언저리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 저스툰(justoon.co.kr)에서 연재 중인 웹툰 <그녀의 심청> 중에서 ⓒ글 seri, 그림 비완
‘효녀 심청’ 이야기를 전복시키다
어쩌면 어린 시절에 품었음직한 질문들로 웹툰 <그녀의 심청>(글 seri, 그림 비완)은 출발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효녀 심청의 이야기’를 전복시킨다. 심청을 다시, 새롭게 바라보게 해 준다. 그 속엔 곱고 예의 바르며 효성 지극한 심청은 존재하지 않는다. 목소리를 듣고서야 여자아이란 걸 겨우 짐작할 수 있는, 굽은 어깨와 냄새나는 엉킨 머리의 심청이 있을 뿐. 하긴 눈먼 아버지를 대신해 거리에서 구걸하며 생계를 꾸려야 했던 소녀가 깨끗한 모습이라는 것은 너무도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심청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호의 또한 사라진 지 오래다. 심청 부녀는 어느새 마을에서 돌부리처럼 걸려 넘어지는 불편한 존재가 되어갔다. ‘효녀 심청’이란 대외적인 타이틀만 걸머진 채. 사람들의 냉대와 대물림되는 가난의 굴레 속에서 심청의 마음 깊은 곳 소원은 벼락 맞아 죽거나 몹쓸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것. 죽음이 아니고서는 태어날 때부터 지옥이었던 이 삶을 벗어날 길이 없다는 걸 그녀는 일찍이 터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유일한 위로는 절에서 공양하며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인데, 어쩐지 그 시간은 요즘 사람들이 ‘소확행’(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부르는 ‘거짓 위로’처럼 보인다. 절망의 구조를 드러내어 삶의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죽지만 않고 연명하게 해주는, 바스러지기 쉬운 가벼운 희망들.
심청의 고통이 ’여자로 태어난 업 때문’이라며, 그래서 ‘고통을 운명으로 돌리라’는 위로를 덕담처럼 건네는 몽은사 화주승의 말은 그러한 의구심을 확증으로 굳혀준다. ‘여자라서 업을 완전히 없앨 순 없지만, 쉬지 않고 덕을 쌓으면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 성불할 수 있게 된다’는 가부장적인 사고를 종교에 녹여낸 말들을 믿고 따라야 했던 세상에서, 여성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난에 더한 이중고의 고통을 짊어진 심청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서사를 재해석하고 재창작하는 것은 그 이야기 이면에 감춰진 ‘비하인드 스토리’를 찾아내는 여정이 아닐까. <그녀의 심청>은 직설적으로 물어본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효녀 심청’의 이야기는 과연 누구를 위한 이야기였는가? 그리고 이야기 속 여성들에게 새로운 캐릭터의 옷을 입혀준다. 못되고 배은망덕한 인물로만 알려진 뺑덕 어미가 자기 주관이 확실한 걸 크러쉬로 등장하는 것 역시 신선하다. 기존 서사에서 심청을 수양딸로 삼고 공양미 삼백 석을 대신 내주겠다고 선의를 베푸는 승상 부인을, 몰락한 가문의 딸로서 부잣집 늙은 남자에게 팔려가다시피 한 젊은 후처로 설정한 점 또한.
▶ 만화책으로 출간된 <그녀의 심청> 1권(위즈덤하우스) 표지 ⓒ글 seri, 그림 비완
가부장제의 제물이 된 두 여성의 이야기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제물로 바쳐 마을의 평안을 비는 인신공희(人身供犧) 설화는 심청전 외에도 무수히 전해져 내려온다. 지네가 마을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자, 눈먼 아버지를 둔 순이가 마을을 구할 희생 제물로 결정된다는 ‘지네 장터 설화’에서도 알 수 있는 건, 여성과 아이 등 사회적인 약자가 희생 제물이 된다는 사실!
<그녀의 심청>에서는 인당수에 희생 제물로 팔려가는 심청과 마찬가지로, 승상 부인 역시 가부장제의 희생양으로 그려진다. 시집오자마자 장 승상이 쓰러져 병석에 눕자, 그녀는 마을에서 재앙을 몰고 오는 여자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마침 그 시기에 인당수에 파도가 치고 안개가 심해져서 배가 뒤집히는 일이 빈번해진다. <그녀의 심청>은 가부장제 공동체의 희생양이 된 심청과 승상 부인, 이 두 여성의 관계가 주축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다.
이 관계는 백합(여성 간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는 서브컬쳐 장르) 만화의 양상을 보여주지만,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가부장제 사회의 틀을 벗어나 확장된 관계로 발전한다.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서사는 가부장제가 여성들에게 당연하게 요구하는 틀을 부수기 때문이다. 심청과 승상 부인이 이제껏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희생양으로서의 위치를 거부하면서부터, 비로소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심청과 승상 부인이 강에서 처음 우연히 만나는 장면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이 처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보름달이 뜬 어두운 밤 강에 들어가 몸을 씻는 심청의 귓가에 ‘부디 이 삶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여인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온다. 목소리의 진원지를 따라 가자 붉은 치마를 입은 어떤 여인이 강물 위에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혼례를 치르러 가기 위해 승상 부인이 탄 배가 그만 작은 사고로 뒤집혀 버린 것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채 늘 죽고 싶은 생각을 달고 사는 심청은 그녀에게 슬픈 동질감을 느낀다. 강물에 떠 있는 부인을 ‘물 위에 뜬 연꽃’으로 착각한 심청의 생각이야말로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바닷물에 빠져 죽어 연꽃에 들어가 환생한 심청을 <그녀의 심청>에서 승상 부인을 통해 재현하고 있는 장면이 아닐 수 없을 터.
승상 부인을 구해준 이가 곧 남편이 될 남자도, 오빠도 아닌 심청이라는 점 역시 유의미하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여성들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는 것, 그 진실을 말해주고 있으니까. 더 나아가 계층도, 살아온 배경도 다르지만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받는 존재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 그러한 구조를 변화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여성들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켰던 왜곡된 신념들-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하고, 여성은 남성의 말에 순종해야 하며, 참고 인내하는 것이 여성의 미덕이라는-을 죽이고 여성들 스스로 다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 저스툰(justoon.co.kr)에서 연재 중인 웹툰 <그녀의 심청>은 2018년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글 seri, 그림 비완
가부장제의 통념 중에서도 특히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몸’으로만 바라보는 시선을 <그녀의 심청>은 관심 있게 들여다본다. 승상 부인의 혼례 날 마을 여자들이 모여 신부의 몸을 꽃으로 치장해주는 의식의 이름이 ‘꽃꽂이’인 것은 얼마나 풍자적인가? 뿌리 없는 채 장식에 붙들려 간 꽃들이 금세 말라비틀어져 버린다는 진실은 눈 감은 채 여자들이 꽃꽂이에 골몰하는 장면은 역설적이다. 어린 시절에는 착한 딸로, 자라서는 현숙한 아내로, 더 세월이 지나면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틀 속에 갇혔던 여성들, 그녀들이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간 슬픈 세월을 <그녀의 심청>은 ‘꽃’에 담긴 함의로 통렬하게 풀어낸다.
승상 부인의 탈코르셋
심청은 혼례를 치르자마자 쓰러져 누운 남편을 지극정성 간병하는 승상 부인을 도와주고, 승상 부인은 그런 심청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준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한 공생 관계로 보인다. 하지만 남편을 병들게 했다는 모함으로 고통 받는 승상 부인이 흔들리지 않고 안주인으로서 위치를 잡는데 심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그런 심청에게 승상 부인은 가부장제 공동체에서 여성이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음으로써 살아남는’ 비결이었는데, 아무리 부당한 일을 당해도 참는 ‘착한 여자’로서의 본분을 다할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착한 딸, 현숙한 아내, 자애로운 어머니라는 이름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행동했을 때만이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걸 그녀는 일찍이 터득한 것이다.
그렇게 처세하는 것이 가부장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일임을 알게 된 심청에게, 승상 부인은 여세를 몰아 (심청이 자신이 속한 세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가난으로 인해 갖춰 입지 못했던 예쁜 옷들을 입힌다. 하지만 명문가의 참한 아가씨처럼 행색이 바뀐 심청은 오히려 성폭력의 위협에 노출되고 만다.
마을 사람들은 성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에게 ‘저항한’ 심청을 오히려 비난한다. 승상 부인 때문에 장 승상이 몸져눕고 인당수에 재앙이 왔다고 비난하는 것처럼. 성폭행 당한 여성을 오히려 ‘꽃뱀’으로 몰며 이차 피해를 가하는 지금 우리 사회를 되비쳐주는 장면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세상을 <그녀의 심청>은 세월을 거슬러 비쳐주며, 여성에 대한 폭력과 혐오가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전해주고 있다.
▶ 만화책으로 출간된 <그녀의 심청> 2권(위즈덤하우스) 표지 ⓒ글 seri, 그림 비완
명문가에 태어난 딸이란 이유로 그전엔 하지 못했던 일들을 심청의 도움으로 감행하는 승상 부인의 모습을 보는 것은 그래서, 통쾌하다. 아무리 사랑받으려고 애써도 억울한 단죄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된 승상 부인.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살아남아야 했던 지난 시간이 숨만 쉬었지, 결코 살아있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서서히 깨달아간다.
기와지붕에 올라가고 맨발로 들판을 가로지르며, 남편을 옆에서 보필하는 현숙한 아내 역할 외에는 미래를 꿈꿀 수 없었던 그녀가 순수한 욕망에 솔직할 수 있는 작은 일탈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심청이 말한 것처럼 ‘뭐가 좋은지 싫은지 스스로 알게 되는’, ‘나’라는 주체를 세워가는 여정이었을 터.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에게 허락한 좁은 세상을 벗어나 세상을 확장시키는, 마치 하나의 통과의례 같은 야생적인 체험이다.
가부장제 사회가 한계를 지운 ‘몸’을 벗어난다는 점에서, 심청과 승상 부인의 이야기는 지난해 우리 사회에서 들불처럼 번진 ‘탈(脫)코르셋 운동’을 떠올리게 한다. 둘은 각자 옥죄던 코르셋을 벗어나게 해주는 동력이 되어주었다. 두 사람이 만나지 않았다면 몰랐을 세상을 서로에게 눈 뜨게 해주었다. 이들은 여성이 몸으로서만 존재하길 원하는 가부장제의 틀을 벗어나, 자신들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인당수 재앙의 원인이 혼인날 용왕의 자식인 금자라를 장 승상이 잡아먹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심청은 용왕의 원한을 풀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고 만다. 승상 부인이 울부짖으며 심청이 탄 배를 쫓아오는 장면은, 이제 그녀가 더는 그 좁은 코르셋 속에서 죽은 것처럼 살지 않으리란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다. 심청으로 인해 승상 부인은 세상으로 나갈 수 있었다. 자신을 보호해준 높은 성벽이 실은 자신을 하루하루 말라 가는 꽃처럼 만드는 족쇄였음을 마침내 발견한 것이다.
아직 이야기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이야기가, 그 벽 너머 파도가 되어 더 큰 바다로 헤엄쳐가는 걸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필자 지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영화, 웹툰, 그림책 등 문화예술 비평도 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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