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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이슈를 국경 밖으로…여성주의 미술가들의 연대

글렌데일 공원에서 내일소녀단의 퍼포먼스 <망각에의 저항>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내일소녀단(Tomorrow Girls Troop, 明日少女隊)은 필자와 일본인 친구가 2015년에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창단한 여성주의 미술/운동 그룹이다. 당시 우리는 한국과 일본 문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여성혐오’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활동을 시작했다.


※ 내일소녀단, “극동의 여인들”(Girls in the Far East, 東の果ての少女, 2015) 영상: https://bit.ly/2Ha86Dk


▶ 내일소녀단, 극동의 여인들(2015), 싱글채널 영상 중에서. 이 작품은 한국의 한 이온음료와 일본의 모 샴푸 광고를 차용하고 변형한 것이다. 전혀 다른 두 광고의 놀랍도록 유사한 스타일에 착안하여 만든 이 영상은 동북아시아 여성들이 매체에서 제한적으로 재현되고 규정되는 방식을 재고찰해보기를 제안한다.


지난 4년간, 내일소녀단은 일본을 주요 활동무대로 하여 일본 내 다른 여성주의 운동 그룹들과 협업하며 성장해왔다. 일본 사회의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지만, 내일소녀단은 다양한 국적과 활동지를 가진 멤버들로 구성된 트랜스내셔널한 그룹이다.


※ 내일소녀단의 작업을 볼 수 있는 곳 https://tomorrowgirlstroop.com/art


이 기사를 통해 작년과 올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초국적인 여성들의 연대를 표명하고 일본 정부의 각성을 촉구하는 퍼포먼스 <망각에의 저항>과 <일본인 위안부 동상되기>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미국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펼쳐진 퍼포먼스


“우리는 침묵을 강요받아온 과거의 ‘위안부’와 군대의 폭력을 경험하는 동시대 여성들을 함께 기억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다.” -내일소녀단 낭독문 중에서


2018년 2월 어느 화창한 일요일 오후, 미국 로스엔젤레스 외곽의 글렌데일 센트럴 공원에 건립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퍼포먼스 행사가 벌어졌다. 내일소녀단의 <망각에의 저항>과 일본 여성 미술가 시마다 요시코씨의 <일본인 위안부 동상되기>를 함께 상연한 30분 남짓의 퍼포먼스다.


▶ 내일소녀단(Tomorrow Girls Troop, 明日少女隊), 망각에의 저항(2018), 글렌데일 센트럴 공원 Photography by Yi Ma


글렌데일 평화의 소녀상을 소개하고 참여 작가에 대해 설명하는 개회사가 끝나고 퍼포먼스가 시작되었다. 단발머리에 일본 전통 의상을 입고 전신에 동분을 바른 시마다 요시코가 소녀상 옆의 빈 의자에 앉았다. 손발을 모으고 앉은 시마다가 ‘일본인 소녀상’이 되어있는 동안에 앞의 잔디밭에서는 내일소녀단 멤버 3인과 현장에 있던 일반 관객 5인의 참여로 <망각에의 저항>이 이루어졌다.


퍼포먼스 참여자들은 잔디밭 곳곳에 널리 퍼져 누워 있다가 한 명씩 일어나 릴레이로 다른 퍼포머를 일으켜 세워주고 그 자리에 선다. 모두 일어서게 되면 참여자들은 팻말과 해바라기가 놓인 곳에 둥글게 모여 손을 잡는다. 팻말에는 영어와 일본어로 각각 “망각에 저항한다”, “그녀들과 함께 합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죄”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가면을 쓴 내일소녀단 멤버가 과거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에게 연대를 표하는 선언문을 낭독하면 일동은 “망각에 저항한다(Against forgetting)”라고 제창한다. 제창을 마친 참여자들은 팻말이나 해바라기를 들고 일렬로 서서 소녀상의 무릎에 해바라기 꽃 한 송이를 두고 시마다에게 포옹을 건넨다. 근처 테이블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웹사이트와 세계적인 전시 성폭력의 실태를 지탄하는 전단지가 비치되었다.


한국땅 밖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이 행사에는 두 가지 의의가 있다. 하나는 일본 우익이 역사 (왜곡)전을 펼치는 주 무대인 미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과 성착취 문제에 저항하는 데 있어서 국가주의를 극복하고 여성/약자로서의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 내일소녀단, 망각에의 저항(2018), 글렌데일 센트럴 공원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 Photography by Sit Weng San


글렌데일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


가주한미포럼(KAFC) 주관 하에 건립된 글렌데일 공원의 ‘평화의 소녀상’은 미 서부 뿐 아니라 한국 이외의 지역 중 처음으로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상징하는 기념비이다. 글렌데일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엔젤레스 북쪽에 있는 인구 약 20만 명의 작은 도시로 한국인과 일본인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사람들이 거주한다.


2013년 7월에 건립된 후 ‘소녀상’을 둘러싼 갈등은 첨예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해외에서 펼치는 역사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글렌데일에 거주하는 몇몇 재미일본인이 이 동상이 반일본 정서를 야기한다며 철거를 요구했다.(보다 자세한 내용은 <바다를 건너간 위안부-우파의 ‘역사전’을 묻는다>(야마구치 도모미, 노가와 모토카즈, 테사 모리스 스즈키, 고야마 에미 저, 임명수 역, 어문학사, 2017)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소녀상’이 이 지역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에게 수치심을 일으키며 일본과 미국의 관계를 손상시킨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일본계 극우단체 ‘역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세계연합회(GAHT)’는 이듬해 2월 소녀상 철거 소송을 제기했다. 일본 측이 제기한 항소심이 기각됨으로써 3년의 갈등 끝에 소녀상은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 뿐 아니라 미국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거나 희생자를 추모하는 행위는 일본 정부의 강력한 저항을 받아왔다. 이 퍼포먼스가 행해지기 불과 몇 달 전인 2017년 10월, 오사카시는 샌프란시스코시와 60년 간 맺어온 자매 결연을 파기했다. 그 이유는 그해 9월 샌프란시스코 세인트 메리 스퀘어 공원에 세워진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 때문이다.


▶ 내일소녀단, 망각에의 저항(2018), 글렌데일 센트럴 공원 Photography by Yi Ma


가해국으로서 자국의 역사적 과오를 반성하는데 있어 소극적인 일본 정부의 태도는 역사 왜곡 문제로 이어질 때 심각성이 더 하다. 필자는 일본인 친구들과 10여년 전 서울을 방문했는데, 친구들이 서울역사박물관과 전쟁기념관을 둘러보고 ‘전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을 알게되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다.


일본인 친구들은 서울의 박물관을 둘러본 뒤 큰 충격을 받았으며, 본인들의 박물관에서 본 것들이 진짜인지 의심했다. 이 친구들은 자국의 제국주의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가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인 친구들이 받아온 역사 교육과 한국인으로서 필자가 받은 역사 교육 사이에는 너무도 큰 간극이 있었다.


국가주의를 넘어, 여성 미술가들의 연대


한편, ‘소녀상’이 건립된 글렌데일은 해외에서 가장 큰 아르메니아 공동체가 있는 지역으로, 주민 중 40퍼센트가 아르메니아계로 알려져 있다. 아르메니아인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사이에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집단 학살을 당한 바 있다.


임지현 서강대 사학과 교수는 그의 저서 <기억 전쟁: 가해자는 어떻게 희생자가 되었는가>(휴머니스트, 2019)에서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에 대한 기억’이 ‘소녀상’ 건립에 있어서 아르메니아인 공동체의 강한 지지를 얻었다고 분석한다. 즉, ‘평화의 소녀상’은 특정 민족의 기억을 넘어, 전쟁의 잔인성에 대한 보편 기억을 이끌어내는 상징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본 여성들이 주체가 된 내일소녀단과 시마다 요시코의 퍼포먼스는 피해국/가해국의 이분법을 넘어 국경을 넘는 연대를 표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 요시코 시마다, “일본인 위안부 동상되기”(2012), 런던의 일본대사관 앞에서

(이미지 출처 http://rafu.com/2018/02/japanese-artist-to-commemorate-comfort-women)


미군기지가 있는 일본의 도시에서 1960년대에 성장한 요시코 시마다는 미국-일본 전후의 긴장 상태를 경험했다. 시마다가 작품에서 주로 다루는 주제 중 하나는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침략자이자 피해자로서 여성의 위치와 문화적인 기억에 관한 것이다.


2012년 런던의 일본 대사관 앞에서 처음으로 상연한 “일본인 위안부 동상 되기” 퍼포먼스는 일본 정부 뿐 아니라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잊혀진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인 위안부 여성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일본군을, 그리고 전쟁 후에 미군을 상대해야 했으나, 자신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시마다의 작품은 과거의 전쟁 범죄 뿐 아니라 제도화된 성차별주의를 인정하지 못하는 일본 정부의 폐부를 찌른다.


초국적 여성주의 미술/운동 그룹 내일소녀단(Tomorrow Girls Troop, 明日少女隊)은 일본을 주 무대로 활동한다. 내일소녀단의 멤버는 일본, 한국, 미국에 활동기반을 둔 예술가, 활동가, 학자, 기획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백래시(backlash, 사회적 변화에 대한 반발)에 대한 대응책이자, 그룹의 정체성을 강조하기 위해 멤버들은 특수 제작한 토끼 가면을 쓰고 익명으로 활동한다. 일본 전통 우화에서 주로 나약하고 온순하게 그려지는 동물인 토끼를 힘과 용기의 상징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멤버들은 작고한 자국의 페미니스트의 이름을 가명으로 사용하는데, 필자의 이름 역시 20세기 초반의 문학가 "김명순"에서 따온 것이다.


▶ 내일소녀단, 망각에의 저항(2018), 글렌데일 센트럴 공원 Photography by Qianwen Jiang


글렌데일의 퍼포먼스 <망각에의 저항>은 일본의 양심적인 학자들이 만든 웹사이트 ‘정의를 위한 싸움’(Fight for Justice)(http://fightforjustice.info)에 있는 문구 “일본군 ‘위안부’ 망각에 대한 저항, 미래의 책임”에서 따온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비교적 간단한 안무를 통해 현장의 관객을 추모의 주체로 참여시키며 연대를 도모한다.


글렌데일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모르는 참여자들과 함께하며 이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참여자들과 관객들은 퍼포먼스 후에 배포된 자료를 통해 보다 상세한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이러한 협업은 역사의 문제를 국경에 가두지 않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동시대에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성착취의 문제와 연결시키며 각성을 촉구하는 시도다.


서울과 일본에서 펼쳐질 ‘망각에의 저항’


필자를 포함한 내일소녀단의 한국인 멤버들은 작년 글렌데일에서 있었던 <망각에의 저항>을 올여름에 서울과 도쿄에서 진행할 계획이다. 미국에서의 퍼포먼스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제3의 장소에서 국제적인 이해를 얻고자 했다면, 서울과 도쿄에서는 그 맥락이 달라진다. 이 문제가 종종 양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한 카드로 활용되거나 민족주의적 재현의 한계에 부딪혀왔던 만큼,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특히 일본에서의 퍼포먼스는 ‘혐한’ 문화를 부추기는 우익의 선전과 역사 문제에 대한 대중의 무관심을 염두에 두었을 때 중요하면서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망각에의 저항>은 도쿄의 한 대학에서 7월과 8월 사이에 예정되어 있다. 시마다의 <일본인 위안부 동상되기> 퍼포먼스와 함께 진행될 예정이며, 현지의 대학생들을 참여시키고자 한다.


한편 서울에서의 퍼포먼스는 광화문 ‘평화의 소녀상’에 시마다를 초청하고, 한국의 여자 대학생들의 협력을 구하여 진행될 예정이다. ‘일본인 위안부 동상’과 한국인 여학생들을 조우하게 하는 이 협업은 상징적으로나마 남성들이 쓴 폭력의 역사가 만들어낸 가해자-피해자 이분법을 넘어 여성들 간의 연대와 자매애를 통해 평화를 향한 미래를 꿈꾸고자 한다. (김명순)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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