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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분단…거대서사에서 비켜나 ‘북한’을 기록하다

경화 글·그림 『나의 살던 북한은』


※ 노동자 출신의 여성이 말하는 남북한 문화 『나의 살던 북한은』(경화 글·그림)이 출간되었습니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의 추천 글을 싣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노동자 출신의 여성이 말하는 남북한 문화 『나의 살던 북한은』(경화 글·그림, 미디어일다, 2019)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탈북자의 이야기는 비통하다. 한국 사회에서 북한사람들이 가시화된 이후 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들이 경험한 그 극한의 고통을 말하는 것뿐이었다. 국경을 넘어 한국에 도착하기까지 수천, 수만 킬로에 이르는 목숨을 건 여정,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절박했던 이유, 거기에 북한에서의 고단한 삶까지… 그 아픔이 깊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귀 기울였다. 미디어 환경 변화에 발맞춰 그들의 고통은 하나의 스펙터클로 소비되었으며, 그마저도 더 자극적인 이미지와 서사를 쏟아내야만 빠르게 변하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디어에 재현된 북한사람들의 아픔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멋대로 부풀려지거나 혹은 마치 딴 세상의 이야기인 양 치부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의 외침이 몇몇 선한 이들의 공감을 얻을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수잔 손탁의 지적처럼 공감이라는 감정 또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고통과 자신의 삶이 관련이 없다는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뻔뻔스럽고 부적절한’ 반응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고통받는 이는 ‘그들’이며, 그 고통을 듣고 잠시나마 도덕적인 부채감을 느끼지만 이내 일상으로 돌아가는 이들은 ‘우리’인 것이다.


게다가 피해자의 자리는 고단하다. 피해자성을 인정하는 타자의 시선에 따라 재단되기 때문이다. 즉 ‘탈북자’라는 피해자는 결국 그것을 인식하는 한국사회의 동정과 연민이 있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주변의 동정 어린 시선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의지로 삶을 바꿔 갈 여지가 적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 사회는 탈북자라는 분단의 피해자에게 반북(反北)적이기를, 한국 사회에 감사하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평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 만약 이들이 피해자이기를 멈추고 자신의 삶을 바꿔 가려 한다면 여지없이 불편한 시선을 맞닥뜨리게 된다.


더 이상의 동정은 필요 없다고, 힘겹게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도 이제 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이들의 용기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눈치채는 이들은 거의 없다. 소소하지만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자 하며, 힘겨워서 떠나왔지만 ‘북한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그리고 국가, 분단 등 거대서사에서 한 걸음 비켜나 한 사람으로서 의미 있게 살아가려는 몇몇에게 한국 사회가 보여준 것은 무관심뿐이다.


▲ 노동자 출신의 여성이 말하는 남북한 문화 『나의 살던 북한은』(경화 글·그림, 미디어일다, 2019)

 

‘노동자’이자 ‘여성’인 탈북민 경화의 독특한 시선


이런 까닭에 경화의 『나의 살던 북한은』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작가인 경화는 북한 출신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어언 20여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북한에서부터 다기능 운전사를 꿈꾸었던 당찬 여성이었고, 남한으로 이주해 온 이후에는 계약직 청소 노동자로 오랫동안 일했다. 성분도, 그렇다고 백도 없었던 그녀가 노동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어렵게 도착한 남한에서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성분 좋고 교육받았다는 다른 북한 출신자들이 언론에 나와 남한사람의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노동하는 자신이 더 가치 있는 삶을 산다고 느낀다. 그만큼 북에서도 남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몸을 열심히 움직여 생활하는 독립적인 노동자이다.


경화는 탈북자이지만 북한을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정착해야만 하는 남한을 마냥 추종하지도 않는다. 남한에 정착한 북한 출신, 그것도 노동자이며 여성인 그녀의 위치가 남과 북 모두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그녀의 이야기는 단순하지만 힘이 있다. 거기에 재미있기까지 하다. 그녀의 이야기에서는 극한의 경제난 속에서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북한사람이 보인다.


그녀의 표현으로는 ‘전쟁터와 같은’ 경쟁사회인 한국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정과 사랑이 느껴진다. 밀주를 만들어 팔아 가계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는 이야기나, 영화와 음악을 즐기는 흥 많기로 소문난 북한사람들, 북한 지역의 특산물로 만든 소박하지만 정겨운 음식들, 굶주림 속에서도 따뜻한 위로의 눈빛으로 서로 힘을 북돋웠던 이들까지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지 조금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북한의 사회 체계에 대한 소개도 인상적이다. 주민들에게도 생소한 북한의 은행과 재해보험, 150일간 보장되는 출산휴가와 탁아소, 집단주의와 수령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 교육, 경제난을 겪으며 약화되기는 했지만 한방과 양방을 독특하게 결합한 의료체계까지 단편적으로 알려진 북한의 사회구조 및 체계가 실제로 어떤 성격으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 노동자 출신의 여성이 말하는 남북한 문화 『나의 살던 북한은』(경화 글·그림, 미디어일다, 2019)



경화는 북한에서의 경험을 남한의 삶과 비교하면서 이야기한다. 어느 한쪽이 더 낫다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서로의 장단점이 무엇인지를 두 곳에서 다 살아온 경계인으로서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다. 북한에서 흥미진진하게 봐온 북한 영화 탓인지 사랑 타령만 하는 한국 드라마가 재미가 없다고 고백하기도 하고, 지도자를 찬양하는 것에 집중된 북한 음악과는 달리 다양한 장르와 창법의 한국 대중음악에 매혹되기도 한다. 남북을 막론하고 사람들은(특히 남자들은!) 술을 좋아하지만, 남북의 음식은 재료 사용이나 조리 방법에서 이미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평가도 곁들인다. 개인주의만을 추종하는 한국 사회는 주변을 배려하거나 집단의 이익을 간과하는 문제점도 있지만, 동시에 힘 있는 자의 전횡을 막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서로를 ‘동무’라고 부르면서 상대적으로 평등한 관계를 구축한 북한이 경제난을 거치면서 인간성마저도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면, 경쟁만을 일삼으며 개인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는 자신보다 약하거나 서열이 낮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만큼 남북은 각자의 문제와 한계가 있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남북은 또 나름의 이유로 아직은 충분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경화에게 남북을 가로지르는 공통점은 바로 ‘여성이라는 위치’일지도 모르겠다. 북한의 여성들은 출산휴가와 탁아소가 상대적으로 잘 되어 있기는 했지만 경제난을 겪으면서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장과 직장을 오가며 살 수밖에 없었고, 남한의 여성들은 젠더화된 일자리에서의 차별과 점점 더 심해져 가는 외모를 우선시하는 문화로 인해 일상이 고통스럽다. 그 경험의 층위는 다르지만 남북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일, 가정, 문화에 깊숙이 배여 있는 젠더적 불평등과 성적 대상화를 견뎌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남성중심(북한에서는 성분과 권력, 남한에서는 돈)의 사회체계 내 수동적 존재이기를 거부한다. 피해의식에 젖어 원망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공고한 남성중심적 체계에 동조하지도 않는다. 그녀만의 방식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느리게 아주 조금씩 터득해간다.


다른 친구들이 음악가, 과학자, 군인 등의 꿈을 이야기할 때 홀로 ‘노동자가 될 터이다’라고 외쳤던 작은 소녀는 자신의 몸을 놀려 가족을 부양해야만 했다. 어렸을 적부터 책을 좋아했던 그녀는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책을 읽어주며 아이들을 도닥거리는 낭만적인 엄마였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한국에 와서도, 아직 배우고 싶은 것이 많은 한 여성으로 진화하였다.


▲ 경화 글·그림 『나의 살던 북한은』(미디어일다, 2019) 중에서


“살려고 왔어요. 나도, 살려고 왔습니다”


애초부터 그녀는 복지체계에 의존하거나 그렇다고 남한이 원하는 탈북자가 되고자 하지 않았다. 그녀는 몸은 고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노동하고 그것의 정당한 대가로 현재를 살고 미래를 설계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전쟁터 같은 남한 사회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청소부와 요양보호사와 같이 꼭 필요한 노동을 하는 이를 향한 무시와 차별이다. 북한사람에 대한 불신 또한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녀는 탈북자를 향한 몇 푼의 정착금이나 이벤트성의 선물보다는 이들의 삶에 대한 조금은 차분하면서도 진중한 이해와 더불어 이들이 열심히 일하며 자신들의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매 순간을 전쟁터에서 싸움하듯이 자신을 증명해왔다면, 이제 또 다른 탈북자들은 적어도 조금 진일보한 한국사회의 인식 속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덧붙여 패배주의에 빠져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는 탈북자에 대한 충고 또한 잊지 않는다. “현실을 빨리 깨닫고 다시 도전해보거나, 아니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는 따끔한 말은 아프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북한 출신자로서 신자유주의가 정언명령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에서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화는 한국에 왜 왔냐는 주변의 질문에 “살려고 왔어요. 나도, 살려고 왔습니다”고 말한다. 한동안은 조선족인 척도 해보았지만, 이제는 북한 출신이라고 당당히 말한다. 그리고 당신들이 ‘살려고 하는 것’처럼 나도 살려고 한다고 외치는 것이다. ‘북한 출신자’로서, ‘여성’으로서,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체계 내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노동자’로서 말이다.


그런 그녀에게 글쓰기는 어떤 의미일까? 오래전 맑스가 꿈꿨던 소외되지 않는 노동, 즉 “오전에는 사냥하고, 오후에는 고기잡이하고, 저녁 무렵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 식사 후에는 비평”을 하는 것과 일견 닮아 있는 듯하다. 청소를 하면서 그 일의 의미를 찾고, 북한 출신자로서 북한과 남한 사회를 이해하려 하고, 그리고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쓰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이야기를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혼자라고 생각하고 있을 이곳의 모든 ‘경화’가 이 글에서 용기를 얻게 되기를 바란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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