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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퀴어. 여성. 미디어. 팬덤’ 축제가 남긴 것들
변화를 이끄는 퀴어여성들의 팬덤, <클렉사콘>에 가다 下
※ 성차별적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지만, 여전히 미디어에서 퀴어여성의 존재는 가시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안고서, 미국에서 퀴어여성 시청자/팬들이 만들어 낸 적극적 변화라 할 수 있는 컨벤션 행사 <클렉사콘>(Clexacon) 소식을 상, 하로 나눠 전달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 4월 11일 라스베가스 트로피카나 호텔에서 열린 클렉사콘(Clexacon) ‘배지 픽업 풀 파티’(Badge pick-up pool party). 신나는 음악과 어우러진 무지개 튜브들이 수영장 곳곳에 둥둥 떠 있었다. ⓒ일다(박주연 기자)
<클렉사콘>(SF드라마 시리즈 <원 헌드레드> 등장인물 클락과 렉사의 커플명을 붙인 퀴어여성 팬들의 컨벤션 행사. 관련 기사: “레즈비언 캐릭터 좀 그만 죽여라!” 외친 팬들)이 열리는 미국 라스베가스 트로피카나 호텔에 도착한 건 지난 4월 11일 목요일 오후. 햇살이 눈부시게 밝고 하늘이 맑은 데다 기온도 20도 후반대, 이게 라스베가스구나 체감이 오는 날씨였다.
도착 후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배지 픽업 풀 파티’(Badge pick-up pool party)다. 배지를 받고서 퀴어를 상징하는 커다란 무지개 튜브와 앙증맞은 유니콘 튜브 사이의 웃는 얼굴들, 빵빵 울리는 음악 소리의 여백을 메우는 들뜬 목소리들 속에 서 있으면서 든 생각은 하나였다. ‘여기가 파라다이스인가?!’
처음 보는 낯선 이에게 친근하게 말을 걸고 간식을 건네주는 사람들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경계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걸 느끼게 되자 말을 섞는 게 점점 편해졌다. 무엇보다도,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하게 느껴졌다.
행사가 처음 열린 2017년에만 약 2천2백 명이 참가하는 성과를 낸 <클렉사콘>의 작년 참가자 수는 거의 2배에 달하는 약 4천1백 명을 기록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팬들이 찾아왔다. 주최 측의 정확한 발표가 아직 없지만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정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던 한 명의 팬일 뿐이었지만, ‘퀴어. 여성. 미디어. 팬덤’이라는 주제로 모인 <클렉사콘> 현장에서 변화를 맞이했다. 내가 미국이 아니라 ‘터틀 아일랜드’(Turtle Island) 땅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내 정체성의 ‘이름’(Labeling)이 무엇인지 다시 치열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나에겐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은 즐기지 못하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전엔 눈치채지 못하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던 세계를 향해 시야가 열리게 된 거다.
4일이라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 버린 지금, <클렉사콘>이 내게 ‘남긴 것들’을 하나둘 풀어보며 독자들에게 전한다.
▲ 다양한 부스에서 스티커, 핀뱃지, 엽서, 포스터, 만화책, 티셔츠 등 2차 창작물들을 판매하고 있다. ⓒ일다
팬과 스타가 만나는 ‘팬덤 행사’라고만 여긴다면 오산!
기사 상편에서 <클렉사콘>이 만들어진 계기를 설명했지만, 여전히 ‘그게 뭐 하는 행사지?’ 하고 궁금해할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간단히 얘기하면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퀴어여성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영화를 제작한 창작자를 만날 수 있고, 그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도 만날 수 있으며, 토크/패널 행사에 참가해 제작과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듣고 질문을 던질 수도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설명한다면 <클렉사콘>을 반만 설명하는 꼴이 된다.
일단 <클렉사콘>엔 많은 연결(연대)의 장이 열린다. 팬과 배우, 그리고 창작자를 연결해주며 팬과 연구자, 연구자와 연구자, 창작자를 꿈꾸는 사람들과 창작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디어에서 더 다양한 퀴어여성의 모습이 드러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서로가 가진 힘을 공유한다. 올해 신설된 ‘아카데믹 랩’(Academic Lab)과 ‘크리에이터 랩’(Creator Lab)이 그 예다.
‘아카데믹 랩’은 퀴어 콘텐츠 및 퀴어 팬덤, 퀴어 문화 등을 연구하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연구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연구에 대한 조언을 제공한다. 퀴어 콘텐츠를 어떻게 읽어내고 비평해야 하는지, 그에 대한 팬들의 반응은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팬덤 조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퀴어 콘텐츠를 어떻게 학교 교육에서 이용할 수 있는지 등. 각 분야에서 경험을 가진 학자와 전문가들이 함께 이야기 나눈다.
퀴어여성 및 논바이너리(non-binary, 여자와 남자라고 이분화한 성별에 속하지 않는 사람) 창작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크리에이터 랩’은 패널과 워크숍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성 중심 프로덕션 A부터 Z까지: 각본 쓰기, 제작하기, 배급하기, 법 알기>, <예산 꾸리기>, <캐스팅하기>, <피칭부터 프로덕션까지>, <배우 계약 관련: 당신이 알고 싶었던 모든 것> 등 창작자라면 귀가 솔깃할 주제로 꾸려졌다.
그뿐 아니라 영상 콘텐츠에서 만들어진 2차 창작물인 글(소설, 팬픽 등)과 그림, 만화, 다양한 디자인 소품을 제작하는 퀴어여성들과 이들을 지지하는 앨라이(ALLY) 창작자들도 메인 행사장 내에서 부스를 차리고 자신의 창작물을 소개하고 판매한다. 팬이자 창작자인 이들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2차 창작물은 팬덤을 더 활성화시키는 중요한 매개체이며 예술로 메시지를 전하는 강력한 힘이 있기 때문에 <클렉사콘>에선 당연히 빠질 수 없다.
▲ 클렉사콘 행사에 참여한 다양한 부스에서 구입한 2차 창작물 굿즈들. ⓒ일다(박주연 기자)
더 다양한 사람들, 더 많은 논의들: 60개 패널 토의
물론, 최고 인기가 있고 많은 참가자들이 몰리는 메인 행사는 퀴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 혹은 커밍아웃한 배우들이 참석하는 ‘게스트 패널’이다. 가장 크고 넓은 행사장에서 열리며,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줄서기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패널’ 행사의 전부는 아니다. 4개 행사장에서 팬, 연구자, 창작자들이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지고 와서 토론하는 다양한 패널 행사가 3일 동안 약 60개나 진행된다. 몇 개만 꼽아보자면 이런 주제들이 다뤄졌다.
<코스플레이를 통한 젠더 표현>, <부치(Butch) 재현: 미디어에서 보이지 않는 여성들>, <미디어의 트랜스젠더 재현>, <토크니즘(Tokenism, 구색 맞추거나 생색내기 위해 ‘소수자’를 끼워주는 방식) 없이 다양성을 갖춘 스토리 만들기>, <퀴어 공간을 탈식민지화하기>, <게이 아시안 프로젝트>, <장애와 LGBT+>, <우리가 쓰는 언어: 퀴어 vs 레즈비언>, <LGBT+의 ‘+’를 둘러싼 오해>, <교차로에서 살아가기: 퀴어 미디어의 교차성>, <섹스 긍정적인 미디어 & 심의>,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퀴어 부모들의 양육> 등이다.
<클렉사콘>에 참가해 놀란 것 중 하나는 ‘퀴어여성’이라는 카테고리로만 묶일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부모와 함께 온 청소년들, 머리가 하얀 노년의 여성들도 심심치 않게 보였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 진동휠체어를 타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수어 통역이 지원되는 행사가 대부분이었고 수어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참가자 대부분이 백인이지 않을까 내심 우려했던 것과 달리 인종도 다양했다.
또한 참가자들은 몸의 형태도 달랐고, 긴 머리부터 삭발까지 헤어 스타일도 각양각색이었다. ‘그녀’(She/Her)가 아닌 ‘그들’(They/Them, 영미권에선 자신을 여성 혹은 남성으로 정체화하지 않는 논바이너리나 트랜스젠더가 스스로를 칭할 때 3인칭대명사 They를 사용한다)이라고 불러 달라는 내용의 배지 혹은 스티커를 붙인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레즈비언/바이섹슈얼 여성 캐릭터 좀 그만 죽여라!” 외쳤던 팬들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었던 거다. 패널 행사에 참여한 패널리스트와 참가자들의 모습에는 함께 고민을 나누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난 시스젠더(cisgender, 타고난 지정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이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인데…’, ‘난 백인이지만…’이라고 말을 꺼내며 그동안 몰랐던 소수자들의 이슈에 연대하고 싶다는 고백을 털어놓는 사람들, 진솔한 이야기와 때로 날카로운 조언을 건네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건 긴장감이라기보다는 생동감이었다.
▲ “게이 아시안 프로젝트”(The Gaysian Project)에선 아시안 그리고 퀴어여성의 위치와 상황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일다(박주연 기자)
‘두 영혼’(Two spirit) 젠더를 복구하자! 퀴어 원주민 이야기
특히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두 개의 패널 행사를 소개한다. <퀴어 공간을 탈식민지화하기>, 그리고 <우리가 쓰는 언어: 퀴어 vs 레즈비언>에서 나온 이야기들이다.
“지금 우리가 있는 이 땅은 라스베가스가 아니라 ‘파이우트(Paiute) 부족’의 땅이라는 걸 다시 한번 기억하면서 이 패널을 시작합시다.” 이렇게 포문을 연 <퀴어 공간을 탈식민지화하기> 패널은 ‘터틀 아일랜드’(현재의 미국)의 원래 주인인 원주민이자, 퀴어 정체성을 가진 네 명의 패널리스트가 나와 퀴어 커뮤니티에서 아직 가시화되지 못한 원주민의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다.
무려 몇천 명의 원주민 여성들이 실종되고 살해당했는데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건들을 해결하자는 연대의 목소리가 나왔다. 미국 등 서구권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DNA 조사를 통한 나의 뿌리 찾기’가 마치 그냥 하나의 인증처럼 ‘와, 나도 OO% 원주민이래~’ 정도에서 멈춰버릴 뿐 정작 원주민의 삶과 문화, 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비판의 목소리도 제기됐다.
‘식민지화가 원주민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에 대한 내용은 흥미로움을 넘어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영국 등 유럽에 침략당하기 전, 6개의 부족으로 이뤄진 이로쿼이/하우데노사우니(Iroquois/Haudenosaunee) 연맹에서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2개의 젠더가 아니라 적어도 3개에서 5개의 젠더가 존재했다고 한다. 여성, 남성, 두 영혼(Two spirit, 젠더퀴어/논바이너리에 가까운 개념인 것으로 보인다) 여성, 두 영혼 남성, 트랜스젠더.
하지만 성경을 손에 들고 터틀 아일랜드에 도착한 영국인들은 여성과 남성이라는 2개의 젠더만 사용하도록 강요했고, 다른 젠더들을 삭제시켰다. 원주민들의 언어, 문화, 법만 없애버린 게 아니라 젠더와 섹슈얼리티도 파괴한 것이다.
패널들은 이제라도 ‘두 영혼’을 다시 복구하고자 하는 퀴어 원주민 커뮤니티의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영혼’의 의미와 역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개념의 복원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이 ‘두 영혼’을 오용해 사용하는 문제에 직면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나한테도 또 다른 내가 있어~’라며 조롱하는 식으로 말이다. 패널리스트 중 한 명은 그런 문제들 때문에 자신을 ‘두 영혼 여성’이라고 소개하는 것에 부끄러움과 두려움을 느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 막강한 퀴어여성 팬덤을 가진 드라마 시리즈 <위노나 어프>(Wynnona Earp)의 시즌4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자, 제작 복귀를 요구하는 팬들의 목소리가 #FightForWynonna 해시태그 운동 뿐 아니라 뉴욕 타임스퀘어 광고까지 내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일다(박주연 기자)
‘퀴어 vs 레즈비언’ 용어를 둘러싼 서로 다른 경험과 논쟁
젠더와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언어에 씌워진 오해와 낙인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건, 다른 퀴어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리가 쓰는 언어: 퀴어 vs 레즈비언> 패널에선 퀴어와 레즈비언 등의 호칭들 사이에서 자신을 어떻게 정체화하고 어떤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지에 대해 뜨거운 공방이 오갔다.
미국에서 1990년 발행되기 시작한 레즈비언 잡지 <커브>(Curve)를 만든 프란시스 스티븐슨(Frances “Franco” Stevens)은 2018년에 잡지 표지에서 ‘레즈비언 잡지’라는 말이 빠졌을 때(현재는 다른 발행인이 운영 중) 받은 충격을 이야기했다. <커브>가 더이상 레즈비언 잡지라고 표기하지 않는 이유는 딱 짚어서 얘기할 수는 없지만, 성소수자 정체성을 정의하고 분류하는 언어들이 다양하게 생겨났고 구독자 중에 레즈비언이 아닌 퀴어여성들도 많다는 점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프란시스 스티븐슨은 ‘레즈비언 잡지라는 말을 쓰는 것이 다른 퀴어여성 독자들을 배제한다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특별히 배제적이라고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도 있지만, 배제적이라고 생각된다는 의견을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레즈비언 잡지’, ‘레즈비언 클럽’이라고 하면 레즈비언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되고 다양성을 포용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전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레즈비언이란 말에 대해 여전히 사회적 낙인이 강하다는 점에서, 레즈비언이라는 용어를 긍정적으로 계속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포럼에서는 개인적으로 자신을 칭할 때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의 고민과 갈등도 쏟아져 나왔다. ‘게이’(Gay, 미국에서는 게이라는 용어가 남성 동성애자에게 한정되지 않고 여성 동성애자들을 칭하는 용어로도 흔히 사용된다)라고 말이 더 익숙하다는 사람들, ‘레즈비언’ 이미지가 이성애자 남성의 시선에서 성적으로 왜곡되게 그려져 왔기 때문에 커밍아웃한 뒤 성추행을 겪었고, 그 뒤부터 레즈비언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다.
한편, 어떤 참가자는 ‘퀴어’(Queer)라는 단어가 오랫동안 성소수자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인 탓에, 그 용어를 사용하는데 거부감이 든고 말하기도 했다.
이 패널 행사는 ‘그래서 어떤 단어를 쓰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 내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각각의 단어가 가진 의미와 오해, 사회적 인식과 낙인, 그리고 개인의 경험 차이를 드러내면서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용어를 찾기 위해 고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팬과 창작자, 배우들이 서로의 힘이자 영감이 되어주는 축제
‘퀴어. 여성. 미디어. 팬덤’ 축제인 2019 <클렉사콘>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은 사실 마냥 행사를 즐길 수만은 없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 LGBT 팬들은 더 나은 대접을 받을 필요가 있다”(#LGBTFansDeserveBetter)고 함께 큰 목소리를 내며 만든 행사가 3회를 맞이하는 올해, 퀴어여성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드라마 시리즈들이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 드라마 시리즈 <위노나 어프>(Wynnona Earp) 시즌 4 제작이 무기한 연기되자, 팬들이 제작 복귀를 요구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페이스북 위노나 어프 팬 페이지
“민주사회를 사는 시민이라면 꼭 봐야 하는 콘텐츠”라는 칭송과 함께 “이것이 다양성과 소수자를 보여주는 방식”라는 평을 받던 <원 데이 앳 어 타임>(관련 기사: ‘여성, 이주민, 퀴어’는 더 이상 들러리가 아니다)이 시즌3을 끝으로 제작 취소가 결정되었다. 거기다 막강한 퀴어여성 팬덤을 가지고 있는 드라마 시리즈 <위노나 어프>(Wynnona Earp)의 시즌4 제작이 무기한 연기됐다.
팬들은 다시 분노하고 있다. 다양한 소수자를 재현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미디어가 ‘시청률 탓’을 하며(정말 시청률이 얼마나 낮게 나왔는지는 밝히지 않으면서) 관련 콘텐츠 제작을 중단하는 것에 대해 말이다.
창작자와 배우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이렇게 TV에서 볼 수 있게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눈물 흘리며 감사를 전하던 퀴어여성 팬들은 3년 사이에 더 강해졌다. 이젠 창작자와 배우들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내며 지치지 않고 “우리 쇼를 살려내라”고 요구하고 있다. 서로가 서로의 힘이자 영감이 되어주고 있다.
“죽이지 말라”고 외칠 퀴어여성 캐릭터조차 없는 한국에선 이 모든 이야기가 너무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2019 <클렉사콘>이 나에게 남긴 것은 팬들과 창작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가진 힘,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경험을 끌어안으려 하는 모습들, 함께 할수록 변화를 만들기 쉽고 우리는 외롭지 않다는 깨달음이다. (박주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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