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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미투,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
학생들이 고발한 건 ‘일부 교사’가 아니라 ‘학교’다
※ 스쿨미투 운동을 확산시키고 제도적인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서 스쿨미투 현황과 의의, 과제와 전망을 담은 기록을 4회 연재합니다. 첫 기사는 전국 스쿨미투 집회 제안자인 양지혜 님의 기록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새롭지 않은 ‘새 학기’를 맞이한 학생들
“요즘엔 학생들이 인권 운운해서, 농담도 못하겠어요.”
최근 모 학교의 교원 대상으로 성평등 강연을 하던 중에 한 교사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지루하지 않게 농담을 섞으며 수업을 진행했지만, 요즘은 말 한마디가 무서워 형식적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도 재미를 못 느끼고, 교사들도 직업에 대한 애정이 줄어든다는 푸념이었다.
학교에서 ‘농담’으로 소비되었던 차별과 혐오의 말들이 전혀 재밌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재미’로 해왔던 말들에 누군가 ‘상처받았다’고 하면, 그동안 해온 일을 되돌아보는 것이 제대로 된 태도 아닌가? 피해자의 처지가 아니라 가해자의 처지에 이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강연을 마쳤다.
▶ 작년 11월 3일 학생의 날 기념으로 열린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에서 참가자가 교실 내 여성혐오 발언이 적힌 칠판을 지우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혁진/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태프
지난 한 해, 한국에서 SNS상에 가장 많이 리트윗된 사회 분야 이슈는 #스쿨미투(#SchoolMeToo)였다. 학내 성폭력에 대한 용기 있는 고발이 한국 사회 전체를 흔들었다. 그런데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학교’다. 지난 2월, 반 년 가까이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서 함께 활동해온 스쿨미투 고발자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길고 끔찍한 악몽을 꾼 것이 아닐까”라고 말했을 때, 나는 어떠한 말도 덧대지 못하고 숨죽여 울었다.
우리는 조금도 새롭지 않은 ‘새 학기’를 맞아야 한다. 성폭력 가해 교사는 고작 정직 몇 개월 이후 학교에 돌아오거나, 다른 학교로 발령받는다. 교육청의 감사와 경찰의 수사는 미온적이고, 고발자들은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용기 내어 외쳤던 고발자의 목소리는 또다시 갈 곳을 잃는다. 스쿨미투는 ‘한때의 불미스러운 일’로 여겨지고, 학내 차별을 지적하려는 이들에게는 ‘너도 미투할 거냐’는 조롱이 이어진다.
학내 성폭력은 또다시 ‘말할 수 없는 일’이 되어 공론장 밖으로 추방되고 있다. 가장 공신력 있는 교원단체로 알려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서는 스쿨미투 대책으로 정부에 “신체 접촉 가이드라인”을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하는 등 오히려 ‘펜스 룰’(Pence rule,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가해자로 몰리지 않기 위해 이성 간의 접촉을 차단하겠다는 식의 기계적인 분리를 내세우는 것)이 강화되고 있다.
스쿨미투가 고발한 것은 무엇인가
학생들이 문제 제기한 것은 ‘일부 교사의 비상식적 만행’이 아니다. 스쿨미투가 고발하는 것은 첫째, 성폭력이 상식이 되어버린 한국의 학교 현장이다. 언론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으로 학내 성폭력 사안을 보도했고, 사람들은 일부 교사들의 비상식적 만행에 분노했다. 그러나 학내 성폭력은 결코 ‘일부’가 아니었다. 한 명의 여학생이 용기를 내어 진실을 말하자, 그간 침묵을 강요받았던 수많은 여학생들이 함께 말했다. 학내 성폭력 고발은 들불처럼 번졌고, 여학생의 일상이 얼마나 차별과 혐오,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스쿨미투가 고발하는 것은 둘째, 학내 성폭력을 해결하지 못한 공적 체계다. 아동복지법 등에는 아동성폭력에 대한 교육기관의 ‘신고 의무’가 명시되어 있으나, 학내 성폭력은 제대로 인지되지도, 신고되지도 않았다. 위클래스, 청소년상담 1388 등은 전문적이지 않고 다분히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으며, 상담원이 스쿨미투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도 있는 등 ‘성인지 감수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스쿨미투 고발이 일어난 지금도, 수사 과정에 진입한 사례는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공개한 교육부의 ‘교육분야 성희롱·성폭력 신고센터 운영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까지 접수된 중·고교 피해 사례 33건(학생이 가해자로 지목된 신고는 제외) 중 교원 등이 성폭력으로 중징계를 받은 건 1건(직권면직)밖에 없었다. 그만큼 학내 성폭력은 방조되고 용인되었으며, 공적 체계에서 발화될 수 없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준다.
▶ 작년 11월 3일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참가자들의 행진. ⓒ아영/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태프
셋째, 스쿨미투는 청소년 대상 성폭력에 대한 사회의 왜곡된 통념을 드러내고 부수는 운동이다. 그간 우리 사회는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를 더욱 미성숙하고 무력한 존재로 묘사했다.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사회는 청소년 성폭력 사안에 대해서, 청소년이 처한 ‘폭력’의 구조가 아닌 ‘성’ 그 자체를 문제시한다. 그 결과, 청소년 성폭력의 해결책은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격리시키는 것’이 되어버린다. 자연스레 청소년 성폭력은 ‘위력’과 ‘위계’의 문제가 아니라, 미성숙한 청소년이 ‘길들여지거나 세뇌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된다. 이러한 구조에서 청소년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수동적이고 비(非)청소년에 의해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스쿨미투를 통해 청소년들은 언론에서 소비하는 무력하고 수동적인 객체가 아닌, 학교를 바꾸는 고발자로서 이 세상에 등장했다. 스쿨미투는 그간 침묵을 강요받았던 여성과 청소년, 소수자들의 말하기였다. 청소년들은 소수자를 차별해온 학교의 ‘폭력’에 문제 제기하며 근본적인 변화를 위한 대책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넷째, 스쿨미투 운동은 학교의 복합적인 폭력을 고발하는 운동이다. 학내 성폭력 문제는 입시경쟁교육과 이에 얽힌 복합적인 위계가 존재한다. 특히 학교에서 ‘여성’이자 ‘청소년’으로 살아왔던 여학생이 겪는 폭력은 복합적이다. ‘여성인권 없는 학교’에서 여학생은 인간이 아닌 성적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서 여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은 출석번호 앞 번호가 아니라 뒷 번호로 불리는 일, 운동장의 전체를 누리지 못하는 일,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래의 가능성을 폄하당하는 일, 나 자신이 아닌 남성의 부수적 존재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 일, 그렇게 차별에 익숙해지는 일이었다.
학교 성교육은 성평등이 아니라, 성차별을 가르쳤다. 2015년 교육부는 ‘데이트 성폭력의 원인은 여성이 데이트 비용을 내지 않아 발생한다’(고등), ‘남성의 성적 욕망은 충독적으로 나타난다’(초등 1~2) 등 잘못된 강간 통념을 고스란히 드러낸 성교육 표준안을 발표했다. 이렇듯 성폭력의 원인을 피해자에게서 찾고, 여성 청소년에게 성적 접근을 차단하는 교육은 성폭력을 오히려 심화시킨다. 3년이 지났지만, 차별과 혐오로 뒤범벅된 성교육은 그대로다. 비단 성교육뿐만 아니라, 모든 교육에서 여성의 존재는 쉬이 지워지거나 폄하되고 있다.
또한 ‘학생인권 없는 학교’는 성폭력을 은폐했다. 학교에서 학생은 교사의 말에 따라야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된다. 교사는 생활기록부, 추천서 등 학생의 진로를 좌지우지할 권력을 가지고, 학생은 두발복장규제, 연애금지 등 교사들이 일방적으로 정한 교칙을 지켜야 학교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렇듯 압도적이고 수직적인 위계 관계 속에서, 학생이 교사의 부당한 행위를 거부하거나 고발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고 말한 이유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이 작년 11월 학생의 날 맞이 스쿨미투 집회를 열고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라고 말한 이유는, ‘여성주의’와 ‘학생인권’이 부재한 학교의 현실을 동시에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스쿨미투 집회를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는 ‘스쿨미투 고발자들이 학교에서 고립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청소년이거나, 페미니스트로 청소년기를 지나온 20대 초반 여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모두 학내 성차별/성폭력에 침묵해야 했던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다. 수십 년간의 침묵을 깨고 비로소 시작된 스쿨미투 고발이 ‘피해사실’로만 남지 않기를 바랐다. 11월 3일,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는 함께라면 세상을 바꿀 수 있음을, 우리의 말하기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집회였다.
▶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기획자이며, 이번 글의 필자인 양지혜 씨 ⓒ아영/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 스태프
11월 3일 집회 이후, 우리는 전국 각지에서 스쿨미투 집회를 열 것을 제안했다. 서울 집회를 기획했던 계기가 그랬듯, 전국 집회 때에도 각 지역의 고발자들과 지역 사회와의 연대를 통해 스쿨미투 고발운동이 확장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서울 집회의 결과가 집회를 준비하고 참여한 많은 이들에게 자긍심을 주었듯이, 전국적인 스쿨미투 운동이 모여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에서는 스쿨미투 집회를 열고 싶다는 뜻을 표하는 지역이 있으면, 한 사람이든 열 사람이든 만나러 다녔다. 천안, 인천 등… 어느 지역이든 직접 가서, 해당 지역의 스쿨미투 운동의 현황을 듣고, 집회가 어떤 힘이 될 수 있을지 고민을 모았다. 시민사회 운동이 활발한 곳도 있었지만, 집회를 한 번도 준비해본 적 없는 청소년 당사자들이 중심이 된 적도 있었다. 서울 집회에서의 다양한 실무 경험과 고민과 의미 등을 공유하며 각 지역에 맞는 집회를 고민했다. “스쿨미투는 끝나지 않았다”, “스쿨미투가 학교를 바꾼다” 등의 제목은 회의 과정에서 청소년 당사자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내어 만들어졌다.
집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쿨미투 고발자들과 지역 사회의 활동가들이 만나며 서로 고립되지 않고 함께 학내 성폭력과 ‘2차 피해’에 대응하는 힘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2월 16일에 열린 전국 스쿨미투 집회 <스쿨미투, 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에서는 전국의 고발자들이 힘을 모아 정부에 4대 요구안을 제출했다. 청와대는 한 달 뒤 고발자들의 의견에 답변을 줄 예정이다. 3월부터는 계속되는 스쿨미투 고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지역별로 지원단을 구성할 계획이다.
말하기 시작한 우리는 되돌아갈 수 없다
지난 1년간, 학교를 바꾸는 말하기를 이어온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말하기 시작한 우리는 세상을 조금씩 바꿔왔다.
11월 3일 학생의 날을 맞아 스쿨미투 집회 <여학생을 위한 학교는 없다>를 개최했으며, 이후 다섯 번의 스쿨미투 집회를 이어갔다. 서울 스쿨미투 집회 이후, 조희연 교육감은 해당 집회를 인용하며 “행정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천에서는 시민들의 스쿨미투 지지운동의 결과로, 교육청 내에 성인권 전담팀이 신설되었다. 전국 각지의 고발자들이 청와대에 모여 4대 요구안을 발표했고, 청와대는 한 달 내로 이에 대해 답변하겠다고 밝혔다.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UN아동권리위원회에 한국 스쿨미투 운동의 현황을 알리고 근본적 해결책을 요구하는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그 결과, 최근에는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쟁점 질의 목록으로 #스쿨미투가 선정되는 성과도 있었다.
이 기사를 시작으로 <청소년 페미니즘 모임>은 총 4회 기고를 통해 지난 1년간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만들어온 스쿨미투 운동의 과정과 의의,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상세히 기록하려고 한다. 성폭력이 만연한 한국의 학교를 바꾸기 위한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의 시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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