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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미투’하는데, 남성들은 무얼 하고 있나?
남자들의 ‘침묵의 동조’에 일침을 놓은 무타 카즈에 교수 기고
※ 미투 운동에 대한 남성들의 침묵 혹은 방관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이 기사의 필자 무타 카즈에 씨는 일본 오사카대학 대학원 인간과학연구과 교수(전공은 사회학, 젠더론)로 재임 중이다. 일본 사회에서 처음 제기된 직장내 성희롱 재판(1989년)에서 피해자 지원인들의 대표를 맡은 바 있으며, 한국에도 번역 출간된 책 <부장님, 그건 성희롱입니다>(나름북스, 2015)의 저자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충격적인 성차별…2018년은 일본 사회도 흔들렸다
2017년부터 전 세계에서 일어난 여성들의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 운동. 그 확산과 고조는 정말 멋졌다. 2018년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는 정보가 돌 정도로.
안타깝게도 일본에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미투 운동이 크게 고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작년 4월에 발각된 재무성 차관의 여성 기자 성희롱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너무도 몰상식한 발언의 내용뿐 아니라, 이 사건이 문제가 되자 차관 본인과 마오 재무장관 등은 “단순한 말장난”, “함정에 빠트린 것”, “성희롱 죄라는 것은 없다”, “피해자는 실명을 드러내라” 등의 극도로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발언으로 많은 이들의 분노를 샀다.
그 후 밝혀진 의과대학과 의학부 입시에서의 ‘여성수험생 점수 조작’도 깜짝 놀랄 만한 성차별 사건이었다. (도쿄대 의대 등 10개 대학이 의대입시에서 “여성은 결혼, 출산 등으로 인해 장시간 근무를 못한다”는 등의 이유로 여성수험생의 점수를 일괄 감점. 2018년 8월 처음 사실이 밝혀지고, 12월 일본 정부의 최종 조사 결과 발표가 있었다.)
의과대학이 남학생들을 입학시키기 위해 여학생들의 점수를 깎다니, 이런 비리가 드러난 것 자체도 충격이었지만 대학 관계자들의 반응을 보며 더욱 아연실색했다. “여의사는 격무를 견디지 못하기 때문”, “여성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기 때문에 남성(입시생)의 점수를 ‘보완’했다”는 등의 황당한 이유를 대며 “차별은 아니다”라고 핑계를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핑계에 동조해 ‘필요악’이라며 지지하는 의견을 당당하게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2018년은 그야말로 일본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린 성차별, 여성혐오의 양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해였다.
여성 기자들 ‘성희롱 당할 때 남성 기자들은 웃으며 방관’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처럼 몇 십만 명이 모인 집회와 같은 형식으로 나타나지는 않았고, 현실 개혁으로도 아직 이어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도 일련의 사태에 놀라고 분노한 목소리들은 상당히 가시화되었다. 온라인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국회에서, 다양한 조직과 모임에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변혁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여성뿐이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여성들은 성폭력이 용납될 수 없다는 것, 이를 용납해온 사회를 변혁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면 남성들은?
이러한 목소리를 남성들은 어떻게 듣고 있을까. 남성 모두가 성희롱,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물론 아니다. 아마 다수의 남성은 성폭력 가해자보다 성에 대한 ‘건전한 상식’을 가졌을 것이다. 하지만 남성들 다수는 직장이나 전철에서, 거리에서 성희롱 발언을 듣게 되거나 성폭력 피해자를 탓하는 말들이 오갈 때, 침묵하고 방관해오지 않았나?
차관의 기자 성희롱 사건이 알려진 이후, 언론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겪은 성희롱 피해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를 통해 밝혀진 것은, 당시 동석했던 남성 기자들은 그 상황을 웃으며 보고 있기만 했다는 사실이었다.
▶ 성폭력, 성차별에 대해 침묵하고 방관하는 것은 가해 행위를 두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일러스트: 몬나이 유키에
“침묵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필요한 때
미투(#MeToo) 운동에서는 위드유(#WithYou), 위투(#WeToo) 등 생각을 공유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지하는 해시태그도 나타났다. 유럽에서는 한 발 더 나아가 “더 이상 공범자가 되지 않겠다”, “침묵에 가담하지 않겠다”, “침묵으로 공범자 되기를 멈추자”는 의미의 해시태그가 만들어졌다. 특히 이러한 해시태그 운동은 남성들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침묵하며 상황을 그냥 보기만 하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과는 상관없이 성폭력 가해자에게 암묵적인 동의를 보내고 있다는 의미이다. 피해자에게 “당신이 당하고 있는 성희롱을 나는 용납하고 있다, 그건 아무 문제도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자못 ‘정의파’인 척 나서서 가해자를 규탄하지 않아도 되니, 직장에서 “그러면 여성 직원들이 안됐잖아요”, “그거, 지금 시대에 하면 안 되는 일 아닌가요?”라고 가볍게 목소리를 내는 것만으로도 피해자를 지지하는 일이 된다. ‘그러한 발언과 행위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남성들에게 보내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여성들 역시 이렇게 발언할 수 있고, 이미 그렇게 하고 있고, 더 많은 여성들이 의식하길 바라지만, 특히 성희롱과 성차별을 하는 남성들은 여성이 목소리를 내면 ‘망신을 준다’며 감정적으로 반발하기 일쑤다. 그러나 그들은 남성이 목소리를 내면 들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일각에서는 남성들로부터 “미투 운동을 응원하고 싶지만, 나 자신도 성희롱을 한 적이 있을지도 모르니, 나만 잘난 척 말할 수가 없다”며 망설이는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방관자를 자청해 침묵하는 것은 계속해서 이 심각한 성차별 사회,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의 한 축을 맡는 것이라는 사실을 남성들이 자각하길 바란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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