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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 2019 세계여성의날 청년여성들의 목소리

대학 내 성평등, 탈연애 선언, 강간문화 타파… 



미투(#MeToo)와 위드유(#WithYou)가 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2018년 세계 여성의 날에는 미투를 외치는 목소리와 그에 대한 지지가 이어졌다.(관련 기사: “우리가 말한다, 이제는 들어라” http://ildaro.com/8150) 올해 세계 여성의 날에는 어떤 외침들이 광장을 울렸을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급부상한 청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따라가보았다.


▶ 서울 보신각 앞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대학 페미 퍼포먼스 <마녀행진>’에서, 각 대학 학생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발언을 하고 있다. ⓒ일다(박주연 기자)


“대학은 마녀사냥을 멈춰라, 마녀는 죽지 않는다!”


“작년 한해 페미니즘은 불온한 추문이 되었고, 성평등한 대학을 위해 활동하던 페미니스트들은 마녀가 되었습니다.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만으로 신상 털기와 인신공격, 낙인으로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2019년 38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마녀가 된 우리들이 죽지 않고 마침내 대학을 바꾸겠다’ 선언하려 합니다. 우리들은 미투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서울 종각역 보신각 앞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 대학 페미 퍼포먼스 <마녀행진>’에는 ‘성균관대 성평등 어디로 가나’를 비롯한 대학 모임 약 30여개가 함께 “대학 내 민주주의를 위해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대학 내에서 페미니즘을 외치던 페미니스트들이 ‘마녀사냥’을 당한 건 한두 번의 일이 아니다. 2016년에 고려대학교 지리교육과 여성주의 소모임 <난파>가 페이스북에 페이지를 개설한 지 며칠 만에 없어지고, 멤버들이 온라인에서 신상이 털리고 학내 양성평등센터에 제소까지 당하는 등 수난을 겪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관련 기사: 대학 캠퍼스에서 일어난 페미니스트 ‘마녀사냥’ http://ildaro.com/7906)


2018년, 미투 운동이 사회를 뒤흔드는 동안 페미니즘에 대한 반격은 대학 사회에 몰려왔다. “다섯 개의 캠퍼스에서 총여학생회가 폐지된 2018년의 대학 사회”를 살아가는 대학 내 페미니스트들은 배제와 낙인 속에서 지내야 했다. 대학 내 미투도 외쳤지만 학교가 “가해자를 과잉보호”하는 모습을 목격했고, “피해자가 경거망동했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 <마녀행진>이 시작된 보신각 앞에 행진을 응원하는 민주노총 현수막이 걸려있다. ⓒ일다(박주연 기자)


그 뿐 아니다. “여성학생위원회가 담당해 오던 문과대 새터(새내기 새로 배움터) 여성 주체 교육을 문과대 학생회로부터 일방적으로 폐지를 통보 받는” 등 학생 사회 내부의 민주주의를 의심하게 하는 일도 일어났다. “대학 사회는 ‘성차별과 불평등’이 기본 값으로 설정되어 있고, 이 안에서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그리고 우리 마녀는 설 곳이 없다”는 호소처럼 대학 사회는 페미니스트들에게 가혹했다.


하지만 마녀들은 죽지 않고, 사라지지 않고, 한 자리에 모여 목소리를 냈다. ‘마녀는 죽지 않는다’는 피켓을 들고 대낮의 거리를 행진하며 “대학 내 소수자 정치 이제 시작이다, 아무도 마녀를 막을 수 없다”고 외쳤다.


“대학은 계속해서 우리를 지우고 막아내고 꺾으려고 하지만, 우린 독하게 버텨서 대학을 바꿔나갈 것”이라는 이들의 선언은 미투 이후 피해자를 넘어서 ‘생존자’가 된 여성들이 이대로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거라는 의지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연애’ 안팎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수평이 되려면…


여성들이 놓이는 ‘관계’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재 우리 사회의 ‘정상연애’ 중심 문화에 균열을 내어 이 사회의 ‘정상성’을 규정하는 가부장제를 뒤흔들기 위해 모였다”고 밝힌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이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서 ‘정상연애’ 장례식 퍼포먼스를 진행한 거다.


▶ ‘정상연애’와 관련된 문구들을 관 속에 넣고 무지개 깃발로 관을 덮는 ‘정상연애’ 장례식 퍼포먼스. ⓒ일다(박주연 기자)


<탈연애선언>은 ‘정상연애 타파’를 외치는 칼럼니스트 도우리와 디나이너 수리, ‘정상가족 타파’를 외치는 비혼지향 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 홍혜은이 뭉쳐서 만든 프로젝트팀이다. 이들은 “정상가족이 부계 혈통주의, 성별 분업, 이성애주의, 1부1처제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정상연애 역시 남성중심주의, 성별 역할극, 이성애 중심주의, 1대1 독점소유관계를 기반으로 한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우리 사회가 정상연애를 강요하고 있지만, “정상연애야말로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 및 소수자의 섹슈얼리티를 구속하고, 데이트 폭력과 이별 살인까지 정당화하지 않고 있냐?”며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현재 사회는 연애 못하는 사람들을 ‘연애고자’, 연애를 한 번도 못 해 본 사람을 ‘모태솔로’라 칭하며 ‘정상가족’ 안에 정착하지 못한 여성노인이 가난하고 쓸쓸하게 죽고 마는 서사를 통해 가난하고 불안정한 여성들에게 빈곤한 노년기에 대한 공포, 고독사의 공포를 제공한다.”


홍혜은 탈연애선언팀 공동 대표는 이렇게 말하며, 이러한 문화 속에서 지속적으로 연애에 매달렸던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도 했다. “무수한 정상연애에 실패하고 나서야 다른 식의 관계 맺기를 상상하게 되었다. 인간은 인간을 ‘소유’할 수 없다. 그렇게 하려고 하면 둘 사이에는 반드시 폭력이 발생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것. 홍혜은 씨의 발언은 ‘정상연애’, ‘독점연애’에 갇힌 사고에 의문을 가져보는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알리는 말이기도 했다.


▶ 광화문 광장에서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이 ‘정상연애’를 탈주하기로 선언하고 있다. ⓒ일다(박주연 기자)


“정상연애에서 탈주하기로 결심한 우리에게는 더 다양한 고민과 언어가 필요하다.” <탈연애선언>의 목소리는 ‘주인(아버지)의 도구로는 결코 주인(아버지)의 집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오드리 로드(<시스터 아웃사이더>의 저자)의 말처럼, 이성애중심으로 세워진 가부장제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적 관계에서 벗어나 ‘내가, 내가 될 수 있는 자유의 길’을 더 다양하게 고민하고 모색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불태우자 강간문화!” 우리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2019년 세계 여성의 날에 지치지 않는 페미니스트들의 외침은 밤까지 계속되었다. 유흥이 넘쳐 나는 금요일 밤이기도 했던 저녁 8시 서울 강남 일대에선, 강남 클럽 버닝썬에서 일어난 ‘약물을 이용한 강간 및 경찰 유착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며 “강간문화을 타파하자”는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불꽃페미액션, 녹색당,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찍는페미,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두잉,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행동하는이화인이 공동 주최한 <버닝워닝>(Burning, Warning) 참가자들은 신사역에서 출발하여 신논현에 위치한 클럽 버닝썬까지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성폭력이 난무하는 클럽문화 불태우자”고 외쳤으며, 고추로 만들어진 줄을 커팅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 <버닝워닝>(Burning, Warning) 행사에서, 고추를 이어서 만든 끈을 가위로 자른 후 고추를 밟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일다(박주연 기자)


현장 발언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현직 클럽 MD라 밝힌 한 발언자는 “물 좋은 ‘물게’(물 좋은 여성 게스트의 줄임말)를 픽업해오라고 하고, 여자 손님들에게 계속 술을 먹이고 스킨십을 하고 ‘섹시한’ 춤을 추게 시키는” 클럽의 일상을 비판했다. 이어 “버닝썬게이트에서 폭로된 국내 클럽 실태는 철저히 젠더화되어 있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또한 “현재 클럽들이 여성혐오로 돈을 벌고 있음은 분명하나, 여성들에게도 즐길 공간이 필요하고, 여성이 주류가 되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앞으로 그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길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클럽의 문제는 남성 유흥문화의 문제점이며 성매매 산업의 연장이라고 지적한 목소리도 나왔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혜진 활동가는 “이 사회가 남성들의 유흥을 위해 여성을 소비할 수 있는 키스방, 노래방, 텐프로, 쩜오, 란제리룸, 오피 등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냈고 거대한 규모의 성산업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여성 손님에게는 돈을 받지 않고 남성 손님에게만 돈을 받는 현재의 클럽 문화는 “돈을 냈으니까 (여성에 대한) 재단과 평가, 선택은 (남성의) 권리가 되고, 더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이니까 희롱과 추행, 강간, 물리적 폭력 등 갖은 폭력은 더욱 쉬운 일이 된다.” 혜진 활동가는 클럽 문화가 여성들이 쉽게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 신사역에서 신논현의 버닝썬 클럽이 있던 자리까지 <버닝워닝> 행진은 쉬지 않고 구호를 외쳤다. ⓒ일다(박주연 기자)


클럽에 가는 여성들에게 낙인을 씌워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문제는 사람을 기절 시키고 정신을 잃게 하는 약물을 먹여서라도 강간을 하고야 말겠다는 남성들의 강간문화에 있지, 여성들에게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강간문화가 버젓이 존재하는데, 여성들이 클럽에만 가지 않으면 안전한 것입니까? 클럽 다음엔 어떤 곳에 여성들의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할 것입니까?” <찍는페미> 정윤 활동가의 외침은 피해자를 탓하는 질문은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당부이기도 했다.


약물강간 관련된 경찰 조사가 진행됨과 동시에 문을 닫아 버려서 이젠 사라진 버닝썬 클럽 앞에 모인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들도 즐기고 싶다’, ‘안전하고 자유롭게 거리를 돌아다니며 춤을 추고 싶다’고 말하며 길거리 한복판에서 신나는 음악을 틀고 춤을 췄다. 흥에 겨운 춤사위는 늦은 밤까지 한참을 멈출 줄 몰랐다.


2019년 세계 여성의 날의 현장에서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더 진화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거리를 울렸다. 리베카 솔닛은 저서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폭력은 무엇보다도 일단 권위주의적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폭력은 내게 상대를 통제할 권리가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고 얘기했다. 이제 많은 여성들, 페미니스트들은 무엇이 성/폭력을 만들고, 어떻게 해야 여성이 한 인간으로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 답을 찾아가고 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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