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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제 ‘정상가족이 허구’라는 걸 알죠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대표 인터뷰
‘1인가구가 증가한다’는 사실은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체 가구 중에서 1인가구는 28.6%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부모 가족의 비율이 10.9%, 다문화 가족 비율이 1.6%다. 일명 ‘정상가족’이라 불리는 이성애 중심의 한국인 남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가구 형태는 이제 ‘다수’가 아니다.
▶ 1인가구 비율 및 증가 그래프 ⓒ출처: 통계로 보는 사회보장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의 많은 기준이 ‘정상가족’에 맞춰져 있다. 신혼부부들을 위한 주택 공급 사업에는 성애적/비성애적 관계를 떠나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2인의 관계는 해당 사항이 없다.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내 ‘정상가족’의 일원이 아니면 나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 ‘정상가족’ 밖의 사람들은 공적 혜택에서 배제되거나,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권리를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현실에 맞지 않게 ‘정상성’을 강화하는 한국 가족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구하고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했던 목소리를 모으고 정리해온 모임이 최근 <가족구성권연구소>라는 이름의 연구소를 창립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올해 1월 24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창립 심포지엄에서, 이들이 연구해 온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를 접할 수 있었다.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하라는 요구가 청와대 청원에 올라가고,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가족구성권’에 대한 논의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무엇이(누가) ‘정상가족’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고수하게 만드는 것인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한 담론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가족구성권연구소>의 김순남 대표를 만났다.
새로운 가족 형태, 다양한 관계들을 불러모으자
2005년에 호주제가 폐지되었지만, 여전히 가족을 ‘특정한 혈연관계 중심으로 정의’하는 법률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모여 이듬해 ‘다양한 가족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을 구성했다. 연구자들은 대안적 파트너십, 차별금지법, 동성결합, 주거권 등을 논의해왔으며 2018년 여름, <가족구성권연구소>를 창립하기로 결심했다.
▶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순남 대표. ⓒ일다(박주연 기자)
“호주제 폐지 이후 2000년도 중반은, 가족을 좀 더 구체적으로 의제로 삼고 이전과 다른 질문을 시작한 중요한 시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언니네트워크가 ‘비혼’이라는 키워드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이주민과 퀴어, 장애인 등 다양한 위치에서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이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악화됐다. 보수적인 정부의 기조 아래 ‘정상가족’ 개념을 강화하는 건강가족기본법, 저출산/고령화 대책 등이 만들어졌다. 연구모임은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며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논의했지만, 이를 공론화할 수 있는 사회적 장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이제서야 ‘가족의 정상성’ 자체가 모든 인간의 생애에 정상적으로 획득되어야 될 자연스러운 수순이 아니라는 걸 시민들이 깨닫고 있는 것 같아요. ‘정상가족’ 내부에 진입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에 계급이 있다는 것도요. 법적,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정상 가족’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학적인 변화와 ‘친밀함’에 대한 생각의 변화 등의 흐름이 나오고… 이제 많은 가족 의제가 모이고 있죠.
비혼 뿐만 아니라 생활동반자법과 동성결혼 논의, 장애인들의 탈(脫)시설 이슈도 있고요. 이렇듯 새로운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고 있는 와중에, 이러한 흐름을 지속적이고 교차적으로 의제화할 다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모든 걸 다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도 더 확대할 필요가 있겠다 싶어서 연구소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가족구성권연구소가 탄생했다. 갑자기 어느 땅에 씨앗 하나 심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 차근차근 땅을 갈구고 보살피며 주변 환경까지 고려한 후에야 만들어진 연구소인 것이다. 그만큼 연구소 이름에 들어가 있는 ‘가족구성권’이라는 말 속에 담긴 뜻이 깊을 것 같아서 물어보았다. ‘정상가족’ 담론에 맞서서 가족 해체가 아니라 ‘가족구성권’을 이야기한다는 것의 의미를.
“언뜻 들으면 ‘가족 구성? 가족을 강화하는 거야?’라고 생각되기도 하죠. ‘재생산권을 이야기하면 재생산하라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처럼요. 사람들은 (아직 주어지지 않은) 권리에 대해 상상할 때 너무 단편적으로 상상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핵심은 생애-정상성 프레임이에요.
한국 사회에서는 생애-정상성이 집단화된 가족주의와 이성애 규범과 자녀, 재생산 중심의 미래주의로 특정화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재생산의 안정된 단위로서,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 ‘가족’의 핵심적인 역할이었던 거죠. 가족주의라는 이름 아래 국가가 ‘가족 단위’로 부양자/피부양자 의무를 부여하면서, 한편으로는 ‘가족 단위’로 집을 장만해 준다든지 세금을 감면해 주는 방식으로, 가족의 형태와 시민권이 교환되어 왔어요.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그런 방식으로 가족 형태에 기반하여 교환되어 온 시민권 자체가 얼마나 취약한지 깨닫고 있는 거죠.”
김순남 대표는 “가족을 매개로 삶의 생애-안정성을 상상해 왔던 여러 축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연구소가 가장 주목하는 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가족을 만들자는 게 아니라, 기존의 가족을 매개로 정당해왔던 개인, 사회, 국가의 관계성 자체를 재구축하는 게 첫 번째 주제에요. 그리고 인간이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적인 존재라고 했을 때, 어떻게 다양한 친밀한 관계성을 맺는지 주목하고, 그 욕망을 사회적으로 끌어와 새로운 가족 질서로 재편하여 정치학으로 삼는 것이 두 번째 주제입니다.”
그러니까 가족구성권은 특정한 가족 규범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논의에서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상가족’ 담론 안에서 논의될 수 없었던 친밀한 관계들, 성애적 관계인 동거 커플 혹은 형제자매 또는 친구끼리 사는 경우나 주거 공간만 공유하는 등의 비성애적 관계까지 모두 불러 모아 함께 논의를 펼쳐보자는 제안이다.
“여러 형태의 친밀한 관계가 국가의 승인을 받는 것보다는, 개인이 그런 친밀성을 만들어 나가는 실천의 양상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친밀성이 국가가 상상했던 가족/미래의 모델들을 변형시키는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도요.”
▶ 가족구성권연구소는 다양한 개인들이 친밀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는 실천 양상에 주목한다. ⓒ일러스트: 정은
‘특정한 가족만 위기를 겪는다’는 허상
국가가 ‘승인’하지 않았을 뿐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이 이미 살아가고 있다. 국가가 이들을 ‘정상가족’이 아닌 ‘위기가족’으로 분류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김순남 대표는 “위기가족이 있는 게 아니라, 위기는 모든 인간이 경험하는 보편적 경험”이라고 설명하며 ‘정상가족’의 허상을 짚었다.
“우리가 기존의 가족을 상상했을 때 생각하는 건 소속감, 안정감, 지속성, 이런 거잖아요. 그리고 위기의 순간에 나를 돌볼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죠. 하지만 모든 관계에는 위기가 있을 수 있고 모든 삶에는 위기가 있는데, 지금까지 국가는 ‘특정 가족 형태가 위기다. 저들만 위기를 경험하고 있고 나머지는 괜찮다’고 말해왔어요. 저는 ‘위기’라는 것 자체를 부정적이고 문제적으로 보지 않아요. 모든 인간이 어떤 위기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특수한 게 아니라) 보편적인 가치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기존의 가족 안에서도 소수자들은 위기를 경험하잖아요. 그런데 ‘정상가족은 위기가 없다’고 말하면 그 가족 내부의 폭력이나, 차이를 가진 존재로서의 가족 구성원의 삶은 계속 누락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김순남 대표는 “가난한 사람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과 같은 특정 그룹을 위기화하고 다른 쪽은 낭만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성애 결혼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불평등과 폭력 등을 여전히 안정적인 로맨스로 그리면서, 성차별 문제나 내부의 위기를 주변화해버리는 거죠. 그리고 그 외의 그룹들을 ‘위기’라고 부르면서 굉장히 낙인 찍고 차별하고요. 사실 그 위기를 해결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잖아요?”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이 관계를 정상가족과 위기가족으로 분절화하는 게 아니라, “모든 관계에는 특정한 방식의 위기가 있을 수 있으며, 그 위기는 사회적인 위치에 따라 굉장히 다를 수 있다. 각자 다른 위치에 따라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욕구 또한 있다”는 논의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그렇게 되었을 때 “위기를 경험하는 방식도 이전과 다른 다양한 양상이 될 것”이며, “가족의 개념에 대한 더 다양한 가능성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차별금지법은 가족구성권 논의에서도 중요해
가족을 둘러싼 차별은 사실상 “비혼 상황으로 인해 겪는 차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거 커플, 동성 커플, 한부모 가정, 1인가구도 모두 비혼 상태인데 우리 사회의 복지나 주거, 의료, 노동 시장의 관행들은 다 ‘정상가족’ 기준이다.
“이성애 결혼하면 회사에서 제공하는 결혼, 출산, 육아 관련 휴가를 받을 수 있는 것에 반해, 1인가구도 실제로 돌봄노동을 하는데도 불구하고 관련 휴가를 받을 수 없잖아요?”
비혼이냐, 기혼이냐에 따른 구분과 차별을 해소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다. 김순남 대표는 더 핵심적인 부분은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소속감, 가족/집이 있는가? 그런 관계를 상상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고 그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성 결혼, 혼인 평등의 경우에도 이제 ‘혼인권’이라고 이야기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시민권’의 문제라고 이야기하죠. 그 이유가 뭐냐면요, 동성 결혼이 법제화된 나라에서 (성소수자) 청소년들의 자살률이 낮아지는 현상이 발견되는데, 이 청소년들에게 동성 결혼은 혼인권이 아니라 사회권이기 때문이에요. 청소년들이 그 사회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거죠. 내가 존중 받는다고 느끼는 감각 자체가 그들에게 소속감을 제공하는 거예요.”
내가 나로서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소속감은 어떤 관계를 벗어났을 때에도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가족구성권과 차별금지법이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생활동반자법이 생긴다고 해도, 그 관계 내 평등이 이뤄지려면 불만이 생기거나 폭력이 발생했을 때 떠날 수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주거, 의료, 고용 등에서 성차별과 소수자 차별 등의 관행이 해소되지 않으면 관계에 대한 권리 자체도 굉장히 취약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가족구성권 뿐만 아니라 ‘시민권’을 이야기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주장하는 이유는 이런 문제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 1월 24일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가족구성권연구소 창립 기념 심포지엄 “가족을 구성할 권리, 가족 넘어 가족”이 열렸다. ⓒ가족구성권연구소
무연고화(化)되는 사회, 새로운 연결이 필요하다
김순남 대표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족구성권연구소>가 짊어진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점이 확연해졌다. “연구소를 만들자마자 너무 많은 요구들이 몰려와서 놀랐다”는 그의 말처럼, 최근 다양한 가족/가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고 있는 시점에 딱 맞춰 창립한 연구소의 활동이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다.
인터뷰는 지금 사회가 ‘정상가족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독려하지만, 빈곤 계층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무연고(無緣故)가 되는 개인들이 늘어나는 등 ‘가족을 유지하는 일’에는 무심하지 않은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무연고 상태가 아니라, 무연고화(化) 되고 있는 사회”라고 설명한 김순남 대표는 “경제 빈곤뿐 아니라 관계 빈곤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신자유주의 이후 계급 양극화는 경제적 격차를 만들어 냈고, 그로 인해 기존의 가족 질서를 유지할 수 없어서 내몰리거나 그 질서와 맞지 않아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경제적 빈곤이 관계적 빈곤을 불러온 거죠.”
경제적인 이유뿐 아니라 정서적인 이유로도 당장 부모와의 관계를 끊어내야 자신의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다. “가족과의 단절이 또 다른 생존의 방식으로 등장”하는 경우다. 김순남 대표는 ‘다양한 가족’에 대한 보장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족에서 벗어나는 무연고를 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의 선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무연고화되는 사회’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국가와 사회가 무연고 상태를 조장하고 있는데, 그걸 국가의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전 방식의 ‘가족의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개인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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