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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非電化)도 기계 좋아해요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일본 비전화공방 방문기②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비전화공방에서 일과를 보내다보면 정말 이렇게 살 수도 있겠구나 싶거든요. 그런데 퇴근하는 사람들과 뒤섞여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만 타면 경쟁과 자본 중심의 과거로 회귀하는 기분이 들어요.”


서울과 일본 나스에서의 제작자 일과는 비슷하다. 단, 24시간 비전화공방 안에서 모든 생활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점에서 느껴지는 차이가 크다. 도시농업의 성공 여부는 집과 텃밭과의 거리에 달려있다는 말처럼, 생활반경 내에서 호흡을 끊지 않아도 되는 환경은 수행에 상당한 몰입을 가져왔다.


▶ 일어나자마자 햇빛이 더 강렬해지기 전에 밭에 모여 호미질을 하며 몸을 깨운다. ⓒ사진 : 정재욱


부담이 적은 기계를 다루는 비전화 농법


서울과 학습내용에서 또 다른 점 중 하나는 기계 사용법을 주로 익힌다는 점이다. 농사를 예로 들면 80평 남짓의 땅을 12명이 농사짓는 서울에서는 써레, 호미, 괭이 등 몸을 사용하는 도구를 이용했는데, 350평가량을 서넛이 경작하는 나스에서는 굴착기와 트랙터는 물론이고 엔진 톱 작동법을 배운다.


無농약, 無화학비료는 알겠는데 多기계라는 후지무라 센세의 농업철학은 일반적인 관행농과도, 유기농과도 다르다. 기계를 즐겨 쓰지 않는 유기농과 달리, 후지무라 센세는 환경 부하와 경제적 부담이 적은 기계 사용을 권하는 편이다.


취미나 여가가 아닌 자급자족에 목적을 둔 비전화식 농업은 자신과 가까운 이의 먹거리를 자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약간의 경제적 자립도 염두에 둔다. 그런 농사는 체력만으로 짓기 어렵고, 적잖은 양의 일을 해내려다보면 농사는 힘들고 지저분하다는 고정관념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농사 역시 아름답고 즐거워야 한다는 센세의 농업 철학과 거리가 멀어지기 쉽다는 뜻이다. 그래서 비전화식 농법에서 기계를 다루는 기술은 필수다.


다만 비싼 기계를 구입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대출금을 갚기 위해 대량으로 농사를 짓는 관례에 후지무라 센세는 동의하지 않는다. 일례로 최근의 기계들은 자동화되어 다루기 쉽지만 고장 나면 업체에 의뢰해 점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자립도가 떨어지게 된다. 센세의 대안은 디젤 엔진이 탑재된 오래된 기계를 골라 싸게 구입하고, 연료는 폐식용유를 정제해 쓰며, 고장이 나도 스스로 고칠 수 있는 수리 기술까지 습득하는 것이다.


▶ 폐식용유를 미세하게 정제할 수 있는 거름망을 들어 보이며 설명 중인 후지무라 야스유키 센세 ⓒ사진 : 정재욱


센세의 제안은 늘 처음에는 무슨 말이지 갸우뚱하다가도 차근히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몸을 써서 일할 수 있는 체력을 늘 구비해두되 누구와도 나눌 수 있는 적당한 기술을 습득하여 이를 적절히 이롭게 쓸 줄 아는 것. 이 방식은 농업에도 적용된다. 그래서 아침 한 시간 씩은 손발을 놀려 밭일을 하고, 일과 중에는 트랙터로는 메밀밭을 굴착기로는 트레일러하우스 짓기 워크숍을 할 부지를 만들기로 했다.


간지 나는 트랙터와 굴착기 운전


간단한 조작법을 배우고 제작자 4인이 한 조를 구성해 두 대의 트랙터와 한 대의 굴착기로 실습을 했다. 조마다 한 명씩 후지무라 센세의 일본 제자들이 선생이 되어 한국 제작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주의 사항을 알려주었다. 수동 변속기 차량과 다루는 방식이 흡사하다는데, 평소 운전을 하지 않는 나는 인터넷으로 매뉴얼을 찾아가며 복습했다. 작동하는 법은 까다롭지 않았지만 드럼 치듯 두 손과 두 발을 각각 놀릴 줄 알아야 했다.


트랙터로는 처음에는 천천히 깊고 세게 나중에는 빠르고 얕게 밭을 간다. 가장 어려운 작업은 180도 회전해 옆 이랑으로 이동하는 것인데, 돌고자 하는 방향의 뒷바퀴를 멈춘 뒤 앞바퀴를 최대한 돌려 이랑과 이랑 사이가 벌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잘못하면 트랙터가 뒤집힌다. 어느 제작자는 회전을 하다 트랙터가 흙에 박히기도 했다.


▶ 한 명이 트랙터를 몰면 두 명은 트랙터 뒤를 따라가며 트랙터가 골라낸 돌을 줍는다. ⓒ사진 : 정재욱


땅을 깎거나 고르게 펴는 역할을 하는 굴착기의 블레이드는 너무 깊으면 땅이 패고, 얕으면 풀이 눕기만 하지 뿌리가 뽑히지 않아 지면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블레이드의 높이가 적절하지 않으면 여러 차례 옮겨가며 작업해야 하는데, 굴착기는 가능한 덜 이동하는 편이 좋다. 하중이 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땅이 딱딱하게 눌리기 때문이다. 트랙터도 그렇지만 굴착기가 한 번 지나가면 풀숲의 곤충들이 마구 튀어 오르는데 그들의 서식지를 해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실습과 이론을 함께


우리가 구동하고 있는 농기계의 연료인 SVO(Straight Vegetable Oil)에 대한 이론 수업도 병행됐다. 가솔린 엔진과 디젤 엔진은 차를 작동하는 원리와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SVO는 디젤 차량에서만 쓸 수 있다. 후지무라 센세는 SVO를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한 차량의 보닛을 열어 주입탱크 설치와 연결법 같은 실전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세부적인 노하우부터 전 세계의 연료 시장 판세와 주요 쟁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SVO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게 설치한 디젤 발전기로 자리를 옮겨 작동원리와 소음을 줄이기 위한 방안과 장치 등도 해설해주셨다. 디젤 발전은 소음이 발생하기도 하고 충분한 양의 SVO를 수거하고 정제하는 일이 쉽지 않아서인지 평소에 쓰지는 않는다고 한다. 비전화공방에서는 SVO 발전기처럼 시도 중이거나 추가연구를 기다리는 다양한 비전화 제품을 여기 저기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차량 보닛을 열어 디젤 차량에서의 SVO 사용법을 강의하는 후지무라 센세 ⓒ사진 : 정재욱


비전화공방은 비전화의 테마파크로 매력적인 공간임은 분명하지만, 엄격하게 전기와 화학물질을 배제하며 일과를 보내는 곳은 아니다. 테마파크라는 표현 그대로 비전화를 실험하는 연출된 작품으로서의 장소다. 실제로 후지무라 센세는 여러 차례 손기술과 기계 조작법을 두루 다룰 수 있어야 하며, 우리가 다가서고 싶은 삶의 방식에 타인들도 동참할 수 있도록 우리의 일과 삶을 연출하는 일의 중요성을 힘주어 주장하시곤 했다.


배움이 삶에 녹아들수록 무엇을 어느 수준으로 선택해 실천하며 살 것인지 스스로에게 그리고 동료 제작자들에게 서로 묻게 된다. 센세는 우리가 물으면 언제든 답해주시겠지만, 이 가르침을 어떻게 소화하고 수용할 지는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이민영)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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