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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 제조기를 손수 만들어야 하는 이유

[이민영의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시간을 들인 만큼 가까워진다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잔반은 어떻게 처리하지


작업장 안에 들어서면 코끝에 아리게 퍼지는 톱밥 냄새, 유압식 펌프를 오르내리며 힘차게 비전화(非電化) 착유기를 작동하는 팔 근육, 멀리서부터 반짝이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태양광 판넬과 만약을 대비해 실내 구석에 자리한 초와 성냥…. 사람들이 상상하는 비전화공방 그리고 비전화제작자의 모습은 이런 걸까?


▶ 만드는 이의 성향과, 농사를 배우는 밭에서 나는 작물의 수확량에 따라 다양하게 식단을 꾸리고 즐긴다. ⓒ사진: 이민영


비전화제작자의 여러 단면 중 내가 가장 즐기는 수행은 하루 한 끼 함께 하는 중식이다. 점심식사는 비전화제작자 생활에서 중요한 일과다. 급식이나 도시락과는 다른, 여럿이 식단을 짜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일은 별 볼 일 없던 일상을 축제로 바꾸어놓는다. 셋이 한 팀을 이뤄 점심을 마련하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차례가 돌아와 부담스럽지 않다. 다음에는 어떤 음식을 해볼까 은근히 설레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고나면 자연스레 잔여물이 남는다. 가능한 잔반 없이 먹으려 하고 남은 음식은 나누어 싸가기도 하지만 음식을 준비하며 발생한 생 쓰레기, 설거지를 하며 생긴 남은 음식은 처치곤란이다. 없거나 더 줄이는 것이 최선이지만 아예 없기는 어려우니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담아 처분할 수밖에 없다. 퇴비장은 새로운 작업의 시도인 동시에 자립하는 일상을 운용하려면 무엇보다 시급하게 필요한 도구였다.


목공은 일상의 필요에서부터 시작한다


햇빛 식품 건조기를 만든 뒤 목공에 자신감이 붙었다. 후지무라 센세가 제안한 회전식 퇴비 제조기는 기본 틀은 목재로, 두엄이 만들어질 내부 공간은 함석판으로 둘러싸인 기구였다. 설계도와 센세가 이미 만들어본 몇 장의 제조기 사진을 살피며 우리가 만들 것을 구상하고, 설계도대로 제작하면 완성될 수 있을지 꼼꼼하게 확인하는 작업으로부터 출발했다.


▶ 센세가 주신 설계도. 머리를 맞대어 우리만의 설계도로 완성한다. ⓒ출처: 후지무라 야스유키


목공이라고 하면 흔히 톱으로 자르고 못으로 박는 행위를 쉽게 상상하지만 ‘설계’는 못지않은 시간이 소요됨과 동시에 우리가 만든 제품을 어떻게 사용할지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중요한 순서다. 물론 만들다보면 설계된 대로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아 유연하게 대응해야할 때도 있다. 하지만 공동으로 하는 일인 만큼 서로의 이해가 같은 형태와 모습인지 확인하고 조정하는 일은 꼭 선행되어야 한다.


같은 설계도인데 다르게 생각할게 뭐 있어 싶지만 놀랍게도 해석이 각기 다르다. 아직 센세 식 설계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약속된 규칙을 몰라서, 표기를 오해해서, 다르게 생각하는 이유도 제각각이다. 여럿이 하나의 설계도를 같은 방향으로 이해하고 수용하는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누구는 하다보면 방법이 생긴다며 제작에 어서 돌입하기를 바라고 또 누군가는 두 번 일하는 우를 범하고 싶지 않아 꼼꼼하게 여러 차례 점검을 거듭한다.


시간을 쏟는 만큼 넓어지는 세계


막상 설계를 마치고 나니 만드는 일은 후다닥 진행됐다. 자주 사용하는 목공도구들이 손에 익고 나니 거침이 없다. 능숙하게 역할을 나누어 한 팀은 지탱할 버팀 구조를, 다른 한 팀은 구조 위에 올릴 회전 통을 만든다. 잘 들어맞지 않는 부위가 있어도 조바심 내지 않는다. 요령껏 깎아내기도 하고 다음 차례에 보완할 방안을 빠르게 구상하기도 한다. 손이 척척 맞는 순간마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쾌감을 맛본다.


▶ 완성된 퇴비 제조기. 뚜껑을 열어 통 안에 흙과 분해효소, 잔반 등을 넣어 틈틈이 회전시켜 1차 발효한다. ⓒ사진: 이민영


완성된 퇴비 제조기를 구석구석 검토하고 나서 후지무라 센세는 한 일화를 들려주셨다.


“일본에서 과거 한때 전국의 농축산가에 무료로 퇴비 제조기를 보급했어요. 환경오염이 심각해지면서 음식물 쓰레기나 분뇨를 발효해 퇴비를 자체 수급하도록 지원했죠. 이 사업의 결과는 어땠을까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취지는 좋았지만 어쩌다 얻게 된 퇴비 제조기를 신경 써 관리하는 이들이 없었던 거죠. 직접 만드는 일은 단순히 손발을 놀리는 즐거움을 얻기 위한 것이 아녜요. 사람들은 자신이 스스로 시간을 내어 공을 들이는 만큼 아끼고 애용하죠. 앞으로 퇴비를 만들려면 수시로 통을 돌려주어야 하고 발효가 잘 되고 있는지 관찰해야 해요. 여러분이 직접 만든 제조기여야 앞으로도 그만큼 퇴비에 애정이 가지 않겠어요?”


▶ 비전화제작자 1기들이 함께 만든 가구와 생활용품에 둘러싸여 있다. 주방도구꽂이, 책꽂이, 옷걸이, 책상. ⓒ사진: 이민영 


공구를 다룰 줄 알게 되면서 여유가 날 때마다 제작자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구들을 만들고 있다. 버려진 나뭇가지를 주워와 옷걸이를 만들고, 작업복을 갈아입기 위해 간이 탈의실을 만든다. 팔레트를 갈고 칠해 휴식 공간을 분리하고, 남은 목재를 다듬어 실내를 꾸밀만한 전시품을 만들기도 한다. 각종 조리용품을 진열할 걸이도 부엌 벽에 드르륵 나사 한 번 박으면 되고, 양치도구와 책을 정리해둘 수납장과 다 같이 둘러앉을 책상도 하루 이틀이면 뚝딱이다.


일상의 필요를 느끼면 그 즉시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 목공의 매력이다. 더불어 내가 손댄 만큼 아끼는 누군가와 함께한 만큼 켜켜이 쌓아가는 행복감은 덤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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