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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화(非電化) 테마파크에 가다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일본 비전화공방 방문기①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비전화공방서울의 모태를 만나러 일본으로!


몸 풀기 체조로 하루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지는 더위가 찾아왔다. 한낮의 기온이 30도에 육박해지면 평소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던 냉방기마저 간절해진다. 야외 작업장에 차양을 치고 수시로 물을 마셨지만 열기는 쉽사리 가시지 않는다. 서로의 땀 냄새에 아랑곳하지 못할 만큼 금세 지치고 근육에 쌓이는 피로도 오래 머문다. 그럼에도 다가오는 여름이 설레는 이유, 바로 일본 비전화공방 현장연수 덕이다.


▶ 카페 덱에서 바라본 전경. 왼편에는 온실이 오른편에는 센세가 거주하는 집이다. 해시계 앞으로 태양열 온수기와 태양광 패널이 보인다. ⓒ사진: 이민영


후지무라 센세가 2007년부터 비전화(非電化; 전기와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로운) 테마파크로 도치기현 나스에 만들어가고 있는 비전화공방은 센세의 주거지면서 일본 비전화제작자들의 수행의 장이다. 또 센세의 철학과 가치를 궁금해 하는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찾아와 교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곳에 일본 비전화공방의 성과와 작업을 직접 살아보며 배우기 위해, 서울의 제작자들이 16박 17일 간 머무른다. 7월 현장연수는 비전화공방서울의 주요한 수행 과정 중 하나다.


비전화 제품과 건축의 원리를 설명할 때 센세가 즐겨 보여주시던 사진 속 공간을 실제로 가게 된다는 기대와, 석 달 남짓 매일 부대끼기는 했지만 12명의 제작자가 2주 넘게 낯선 환경에서 함께 숙식하며 공동생활을 잘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뒤섞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다들 두근두근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공간, 비전화공방


김포에서 하네다까지 비행기로 두 시간, 도쿄에서 나스까지 기차로 세 시간 반 남짓 이동해 쿠로이소(?磯) 역에 도착했다. 역에는 센세의 부인 유리코 상과 그 해의 제자인 유카와 소헤가 마중 나와 있었다. 서툰 일어와 영어로 차 안에서 인사를 나누며 도착한 일본 비전화공방. 도착한 그곳에서 우리를 가장 처음 맞이하는 건 만개한 수국이다.


▶수국이 만개한 후지무라 센세 댁으로 들어오는 길목 ⓒ사진 : 이민영


“여름아침에 보랏빛 수국꽃들. 구름을 잘라서 올려놓은 것 같다. 빗방울과 햇빛으로 엮은 꽃다발 같다. 작은 것들이 모여야 작은 것들을 모아야 이렇게 둥글게 아름다워진다고 색색의 메모지들이 작고 작은 메모지들을 여름날 추억을 불러다가 여름마당을 다 뒤덮는 커다란 사진첩을 만든다. 그리운 날들이여, 수국같이 작은 그리움들로 여름마당이 하늘처럼 넓어진다.” - 윤선희, 여름 수국꽃 中


수국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수국은 비전화공방이라는 거대한 테마파크에 놓인 살아있는 여름철 소품이기도 했다. 수명을 다한 철도의 침목으로 만들었다는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가면 가닿는 비전화카페. 카페보다 눈길을 먼저 사로잡는 이글루처럼 빛나는 흙부대 집과 눈이 쨍한 청록의 양계장. 카페 덱 뒤로는 여러 비전화 제품과 비전화공방의 변천사를 살펴볼 수 있는 새파란 상점. 볏짚과 왕겨로 만든 집들 사이에 손주가 놀러올 때만 열매를 딴다는 블루베리 나무와 형형색색의 꽃. 작은 저수지에 비치는 새하얀 아틀리에의 물그림자. 밤이면 반딧불이가 춤추는 계곡 위로 시집 한 권이 놓인 노란 트리 하우스.


▶일본 나스의 비전화공방 배치도 ⓒ그림: 비전화공방


이곳은 비전화의 테마파크일 뿐만 아니라 그 누구라도 들뜨게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로운 삶 속에서 일상의 경이와 풍요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부모님 덕에 명절이나 방학이 지나면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다녀왔다는 친구가 무척이나 부럽던 유년시절. 까맣게 그을린 피부로 할머니네 집 앞의 개울가에서 원 없이 물장구를 쳤다는, 과수원에서는 참외도 따먹었다며 자랑하던 친구 앞에서 대꾸할 말도 없이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던 이상이 여기 나스에 있었다.


바로 그곳에서, 편안하고 익숙한 미소로 후지무라 센세가 우리를 반겨주신다. 센세 댁 거실에 둘러앉아 비전화공방의 전체 지도와 일정, 머무는 사람들의 목록과 주의해야 할 점을 들으면서도 내가 정말 일본 비전화공방에 와 있는 건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꿈꾸는 공간을 직접 만나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


현장연수에서는 서울에서 이론으로 배우고 실물을 보지 못했던 다양한 제품과 건축물을 실제로 경험해보면서 원리를 깨치고, 대도시에서는 쉽게 이용하기 어려운 도구와 기계를 다뤄보게 된다. 후지무라 센세와 인연을 맺고 있는 지역 활동가와 이제는 자립한 센세의 지난 제자들을 만나보는 시간도 마련되어 있다. 타협 없는 센세가 A+를 준 빵집과 아이스크림 가게, 온천을 가보는 일과 외 일탈 역시 무엇보다 손꼽아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 비전화카페 입구. 동화 속 세계로 초대하는 듯하다. ⓒ사진: 이민영


비전화공방을 떠나는 날. 센세는 자신이 꿈꾸는 공간과 그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는 일은 이 일과 공간이 언젠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동기를 부여해준다며, 일본 비전화공방에서 지낸 시간들이 제작자들에게 각자의 이상향이자 미래에는 현재가 될 이미지로 영감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중요한 건 비전화 제품이나 기술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기에 자신이 살아가고자 하는 삶을 누구나 손쉽게 구현하고 다룰 수 있는 기술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늘 해오시던 그 말을 체득하게 하려고 일본 나스까지 우리를 초대하셨구나. 그때를 추억할 때마다 조곤조곤 말을 건네며 제작자들의 상태를 살피던 센세의 얼굴과 목소리가 떠오르는 까닭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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