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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와의 전쟁, 카페 건축 기초공사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건물 시공 첫 단계, 기초공사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나무를 최대한 베지 않고 카페 터 정하기


비전화카페가 지어질 위치는 서울혁신파크 부지 내 ‘혁신가의 놀이터’. 놀이터란 명칭이 붙어있긴 하지만 실은 파크 정문으로 입장하면 오른편 경비초소 뒤로 보이는 작은 숲이다. 혁신가의 놀이터란 이름을 달기 훨씬 이전부터 이곳을 지키고 서 있었을 나무들을 최대한 베지 않고 카페 터 정하기, 이것이 우리의 첫 번째 과제였다.


▶ 밭을 갈 듯 건물터를 평평하게 수평을 맞춰가며 다진다.  ⓒ촬영 : 조채윤


죽은 나무 세 그루만 베기로 하고 대략적인 터를 잡은 뒤 규준틀을 설치했다. 규준틀은 건축물의 기초공사 전, 기토의 높이와 직각을 잡기 위해 설치하는 가설물이다. 꼭짓점을 찾아 말뚝을 박고, 말뚝에 실을 띄워 수평을 잡았다.


제자리를 찾기 위해 수십 차례 말뚝을 박고 뽑길 반복하니 요령이 생긴다. 팀을 이뤄 각 모서리에서 한 명은 망치를 들고 한 명은 자로 재고 한 명은 끈을 묶는다. 여럿이 하는 일은 언제나 합이 중요하다. 각 꼭짓점의 직각은 대형합판을 올려 임시로 맞춰본 다음 임의의 위치를 점찍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계산해 맞추었다. 경험과 이론의 조화란 이런 걸까.


기초공사의 핵심은 ‘수평잡기’


박은 규준 말뚝에 메어 띄운 실을 따라 래커로 선을 그었다. 래커로 칠한 선을 기준으로 터를 파고 상하수도관을 설치하는 일은 중장비와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 어찌나 후딱 진행되는지 수차례 말뚝 옮기기를 반복했던 일이 떠올라 머쓱해졌다. 굴착기 행차 한 번으로 번듯이 갖춰진 꼴에 잡석을 부어 터를 다지며 수평을 맞췄다. 손수레에 자갈을 담아 옮겨 붓고 농기구 창고에서 삽과 써레를 가져와 땅을 평탄하게 다진다.


▶ 측량기사의 측량에 따라 제작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촬영: 홍정현


평탄화 작업을 하다가 고되다 싶으면 측량 팀에 투입된다. 삼각대 위에 측량기를 올려놓고 구석구석 수평을 확인하는 작업은 언뜻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중요한 작업이다. 둘이 짝을 이루어 한 명은 기준점의 높낮이를 측정하는 잣대인 스타프(STAFF)를 들고 위치를 옮겨가며 선다. 다른 한 명은 측량기로 스타프의 눈금을 재 도면에 표시하면서, 다짐 작업 중인 제작자들에게 어디에 잡석을 더 부어라와 같은 임무를 준다. 측량기를 들여다보는 행위 자체가 건설현장의 제대로 된 일꾼이 된 듯한 묘한 쾌감을 주기도 했다.


두 차례에 나눠 진행되는 레미콘 붓기


터를 판 뒤 잡석다짐까지 마치면 토양의 수분이 콘크리트를 통해 건물 바닥으로 이동하는 걸 막으려 비닐을 깔고 버림 콘크리트를 붓는다. 기초를 시공하기 전에 얇게 까는 콘크리트라 밑장 콘크리트라 부르기도 한다. 버림 콘크리트 타설 후 서너 일 양생의 시간을 갖는다. 콘크리트가 수분과 온도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굳지 않으면 강도가 낮아지거나 금이 가기 때문이다.


▶ 거푸집을 세운 후 콘크리트를 붓고 굳히는 과정에서 거푸집이 벌어지지 않도록 철재 파이프를 연결해 보강한다. ⓒ촬영 : 조채윤


버림 콘크리트 후엔 먹줄로 레이아웃을 그린다. 이 레이아웃에 따라 대여한 거푸집을 설치하고 동바리로 보강한다. 거푸집만 설치하면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양생하는 과정 중에 발생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할 수도 있어 철재로 만든 강재 파이프로 된 동바리를 설치해주었다.


건물터에는 받침대 위에 철근을 배근해 인장력을 높인다. 그 위에 회반죽차가 레미콘(ready-mixed concrete, RMC)을 부으면 굳기 전 빠르고 편평하게 편다. 이렇게 일주일 이상 양생을 마치고 거푸집을 해체하는 것으로 기초공사는 끝이다.


콘크리트 타설 후유증


기초공사 중 가장 힘든 일은 콘크리트 타설이었다. 유압식 회반죽차에 연결된 관 출구로 레미콘이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흡사 애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미야자키 하야오, 2001)에서 가오나시가 오물을 토해내는 장면과 유사했다. 실상은 그 광경을 지켜볼 여유 없이 콘크리트를 펴주어야 한다. 레미콘은 만든 후 1시간이 지나면 유동성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 써레에 합판을 고정해 밀대로 사용했다. ⓒ촬영: 조채윤


밀대로 레미콘을 밀고 펴는 일은 그야말로 중노동이다.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가 수분을 머금은 채 빠른 속도로 쏟아지는데, 그 속도에 사람이 맞추어 움직여야 한다. 가능한 자국 없이 말끔하게 펴야 하지만, 타설 중반부에 들어서면 주의사항 따위는 머릿속에서 하얗게 지워지고 이 일이 끝나기만을 간절히 바라게 된다. 후반부가 되면 바람조차 잊어버린 채 얼마 남지 않은 힘까지 끌어 모아 무념무상으로 벌벌 팔다리를 떨며 밀대를 붙잡고 있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힘은 탕진되고 사람은 탈진한다.


작업 날만 체력을 소진했던 게 아니다. 몇몇 제작자들은 피부를 노출하지 않는 작업복을 입고 장갑과 입마개를 낀 채 일을 했음에도 호흡기가 따갑거나 피부에 발진이 생기는 등 고생을 해야 했다. 냄새에 어지럼증을 호소하기도 했다.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과로에 면역력이 약해진데다 콘크리트와 그 가루에 예민한 이들에게 먼저 반응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통기초(Mat Foundation)가 최선이었을까


기초공사 이후 작업과정을 점검하면서 통기초가 아닌 점기초를 선택하면 어땠을까 하는 의견이 여럿 나왔다. 기초공사에는 점기초, 줄기초, 통기초, 이 세 방식이 주로 쓰인다. 통기초는 맨땅을 다져 건물바닥 모양대로 콘크리트를 한 번에 가득 채우는 형태의 기초로, 비전화카페를 지을 때 사용한 방식이다. 공사기간이 짧고 일반적으로 공사비용이 적게 들어 기단부가 낮고 경사가 적은 터에서 흔히 쓰는 기초방식이기도 하다. 그에 반해 점기초는 한 개의 기초가 한 개의 지둥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기초가 되는 지점에만 콘크리트를 타설하면 되며, 전통한옥에서 주로 쓰던 방식이다.


▶ 인부의 수고를 덜려면 관의 위치를 조정해 위치별로 적당량의 레미콘이 쌓이게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촬영: 박새로미


국내에서는 줄기초와 통기초가 전체 건축물 기초공사의 9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콘크리트만 해도 얼마나 많은 양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대지의 여건 및 환경에 따라 시공법을 택하기에 어느 하나가 최선이라 할 수는 없지만, 획일적인 건물의 쓰임과 관습이 단일한 시공법의 활용은 물론 단조로운 도시의 풍광을 만드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축 초입에 들어서니 색색 다른 건축주의 개성과 지역이나 기후의 특징에 어울리는 다양한 시공법이 적용된 건물들이 서 있는 도시의 장면들을 상상해보게 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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