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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마추어 출점기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저는 아마추어입니다만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일본 비전화공방 아틀리에에는 지금껏 공방에서 만들거나, 만드는데 영감을 준 다양한 비전화(非電化; 전기와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로운) 제품이 전시되어 있다.


나스 연수 시 틈날 때마다 하나의 제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시행착오의 과정물들을 살펴보곤 했다. 원리를 파악해보고 싶어서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시제품을 들여다보면 후지무라 센세 역시 한 번에 뚝딱 만들어내시는 게 아니라 여러 번의 실패와 재도전 끝에 결과물을 만드시는구나 싶어 괜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후에는 상점에 진열된 수많은 상품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고민과 노력이 담겨 개발되고 우리에게 찾아오는 거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 장터가 열린 당일, 매대를 소개하는 입간판을 쓰고 있다. ⓒ촬영: 이재은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 출점하다


매일의 수행에 집중하던 어느 날, 흥미로운 제안이 비전화공방서울 사업단을 통해 건네졌다. 보안여관에서 매달 ‘세상의 모든 아마추어’(이하 세모아)라는 장터를 여는데 그곳에서 비전화 제품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출점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의견이었다.


보안여관은 서울 종로구 통의동에서 80년 가까이 영업한 여관이면서 동시에, 서정주, 김동리 등이 1930년대 한국문학사의 한 획을 그었던 <시인부락>이라는 동인지를 탄생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2007년부터 숙박업뿐만 아니라 문화생산 아지트로 탈바꿈 중인 보안여관에서 열리는 농부시장에 초대받은 것이다.


막상 출점이 결정되니, 익숙하다 믿고 있었던 비전화 제품들이 생소해졌다.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까 관점이 바뀌자 익혀두어야 할 것투성이다. 비전화제작자 두세 명이 짝을 이뤄 마음이 이끌리는 제품을 선택해 세모아에서의 점포를 준비하기로 했다. 최종 선택을 받은 비전화 제품은 태양열 식품 건조기, 탄두르(화덕), 비전화정수기, 커피 로스터기, 수동 쌀 도정기 총 다섯 점.


▶ 태양열 식품 건조기 안에서 마르고 있는 작물들 ⓒ촬영: 이민영


내가 태양열 식품 건조기를 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직접 제작해보았으니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고, 한창 농장에서 수확할 농작물이 생길 철이라 뭐든 건조해 팔 수 있겠다 싶었다. 물론 이런 꼼수가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태양열 식품 건조기와 친숙해지기


제작자들끼리 나눠먹거나 저장을 용이하게 하려 건조할 때는 실험이다 핑계대곤 식재료면 무엇이든 건조해 조리해보곤 했다. 하지만 판매품을 궁리하려니 건조해서 맛있는 식재료가 무엇인지 찾아야 했다. 우선 비전화농장에서 농사 중인 작물 중에 한창 수확할만한 거리들을 정리하고 하나하나 건조해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건조해서 맛이 응축되고 미감이 좋아지는 식재료가 있는 반면, 되려 건조와 어울리지 않는 작물도 있었다.


여러 작물을 동시다발적으로 건조하려드니 날씨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금방 마르는 작물인데 그날은 햇볕이 쨍쨍해 깜빡 다른 수행에 몰두해 잊고 있던 사이 타버리고, 어떤 작물은 습기가 많아 바싹 말라야 하는데 며칠 내내 구름 낀 날이라 말리는 과정 중에 곰팡이가 슬었다. 맛이 응축되면서 향도 강해지는 고추 같은 작물은 말리면 건조기 안에 냄새가 진동하기 때문에 충분히 환기한 다음 다른 작물을 건조해야 한다.


▶ 실패작들. 수박은 수분을 많아 말리는 동안 시어버렸고, 어떤 날은 해 진 뒤 태양열 식품 건조기를 실내로 옮기는 걸 깜빡해 다음날 아침 내부에 습기가 가득 찼다. ⓒ촬영: 이민영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어디에나 적용됐다. 초기엔 잘 말려야겠다는 걱정에 기후에 예민했는데, 건조하는 과정동안 수시로 작물을 수확하고 들여다보며 각각의 작물에 민감해졌다. 얼마나 숙성시켜 수확했냐에 따라 필요한 건조 시간이 달라졌고, 건조 시점마다 맛보다보니 이 작물에 이런 맛이 있었나 놀란 적도 여러 번이다. 통으로 말리냐 어슷 썰거나 편으로 써느냐에 따라 마르는 속도가 달랐고, 말리고 난 이후 형태에 따라 어느 요리를 해먹으려면 이렇게 건조해야 접시에 담길 때 맛있게 보이겠군, 구상이 떠오르기도 했다.


태양열 식품 건조기의 특징을 설명하려니 햇볕을 직접 받아 말리는 방식과 전기 식품 건조기 등과의 차이도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했다. 같은 작물을 동시에 덮개 채반, 태양열과 전기 식품 건조기에 넣고, 동시간대에 꺼내 만지고 먹어보면서 상태를 비교해보았다. 전기 식품 건조기는 전원 코드만 꼽으면 알아서 건조되는 줄 알았는데, 기능에 따라 온도와 시간을 정할 수도 있고 구조도 다양했다. 자료조사 하겠다며 쇼핑몰에 접속해놓곤 감탄을 늘어놓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삼매경에 빠지기도 수차례다.


▶ 세모아 장에 비치한 태양열 식품 건조기와 판매할 건조식품들 ⓒ촬영: 유진


가지, 토마토, 배, 여주, 오크라 다섯 점의 작물을 건조해 판매해봐야겠다 결정하기까지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빛을 받으면 색이 거멓게 퇴색하는 허브들은 빛은 가리고 열만 받아 잎차를 만들었다. 건조식품을 맛있게 즐길 수 있게 가공해 선보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만큼 준비되지 못해 몇 가지 조리법을 찾아 소개하는데 그쳐 아쉬웠다.


아마추어로 살아도 괜찮아


세모아 출점 전, 보안여관에 방문해 매대를 펼 위치를 확인했다. 태양열 식품 건조기니 태양의 동선과 주변 건물 그림자 모양새 변화 파악은 필수다. 어떻게 해야 태양열 식품 건조기가 돋보일까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내가 태양열 식품 건조기를 이용하면서 느낀 충만감을 전달하고 싶었다. 잘 마른 고추를 흔들 때 노란 씨앗이 달랑거리는 경쾌한 음색, 잔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피어오른 증기를 따라 퍼지는 향긋한 잘 말린 가지차 내음, 그런 것들 말이다.


▶ 세모아 장에 출점해 각자의 제품 소개를 준비하는 비전화제작자들 ⓒ촬영: 비전화제작자


직업으로 삼지 않고 취미로 즐기는 사람, 아마추어. 누군가와 차별화되어 선택받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하나쯤 자기 기술은 있어야 살면서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숱하게 들어온 언어에 반해, 온전히 아마추어로 서툴게 만든 태양열 식품 건조기와 그 건조기에서 말린 식품을 들고 시민들과 장터에서 대면했다.


여전히 어떤 이는 더 편리하고 더 정교한 방식을 택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리숙한 내 말에 귀 기울였던 이유는 내가 그 과정을 꽤나 즐거워했다는 걸 눈치 챘기 때문 아니었을까. 능력의 유무가 아니라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일을 대하는 사람을 가늠한다면, 난 앞으로도 아마추어로 살고 싶어졌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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