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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눈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측정하다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일본 비전화공방 방문기③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차로 30분이면 후쿠시마 현에 닿을 만큼, 비전화공방은 사고발생지인 제1원자력 발전소와 가까운 거리다. ⓒ그림 출처: 구글 지도 갈무리


비전화공방에서 2011년 3월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사고가 있었던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까지의 거리는 약 100km 남짓. 서울역에서 천안역까지의 거리와 비슷하고, 차로 두 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다.


비전화공방의 위치는 방사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근거리라 방문 전 피폭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제작자 모집 당시 ‘일본 답사가 필수인지’ 묻는 지원자도 몇 있었다고 들었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일본 열도가 과연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가 누구도 단정 지을 수 없지만, 현장연수 전부터 후지무라 센세와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여러 차례 이야기해왔다.


후쿠시마 현 인근에서 산다는 것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발생 후, 일본 내 방사선 계측기는 순식간에 동이 났다. 조금씩 겨우 들어오는 수입품은 통상 수배의 가격으로 거래되는데도 그것조차 몇 개월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내부 피폭은 건강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식품의 방사능 노출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량의 방사능까지 측정할 수 있는 고정밀도의 스펙트로미터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공간섬량계에 비해 식품까지 검사할 수 있는 계측기는 1대에 300만 엔 이상의 고액이어서 접근성이 낮았다.


▶ 비전화공방 서울에 비치되어 있는 측정체임버와 SPECTRA 분석기가 설치된 노트북 ⓒ촬영: 이민영


문제의식을 느낀 비전화공방에서는 후지무라 센세의 아들이자 부대표인 켄스케 상을 필두로 1년 간 개발에 매진해, 대 당 100만 엔이면 제공할 수 있는 스펙트로미터인 SPECTRA를 제작해 보급하게 된다. 현재 SPECTRA는 일본 40개 지역에서 시민들을 중심으로 자체 방사능 측정소를 운영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한다. 방사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정확한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SPECTRA는 서울혁신파크 내 비전화공방서울 사무실에도 한 대 비치되어 있다.


켄스케 상은 서울에 방문해 방사선의 종류와 투과력, 방사능 측정방법, 여러 계측수단 중 SPECTRA의 특징과 사용법에 대해 설명해주신 바 있다. 비전화공방서울 제작자들의 일본 방문에서는 실습과 더불어 그래프 해석법을 좀 더 자세하게 알려주시기로 했다. 서울에서의 강의 후 제작자들이 여러 차폐 실습한 결과 치를 두고 질의응답한 뒤, 비전화공방 인근의 먹거리 무엇이든 하나씩 가져와 실제로 측정해보았다.


대형 상점에서 구입해 하루 세 끼를 책임지던 쌀, 집 앞 밭에서 수확한 각종 채소, 수돗물과 비전화정수기로 정수한 물….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내왔지만 내심 가슴 한켠에 남아있는 불안을 끄집어내듯 제작자들은 사방을 뒤져 측정할 무언가를 가져왔다. 고체 시료는 푸드 프로세서에 넣어 가능한 잘게 분쇄한 뒤, 시료를 넣은 봉투를 틈이 생기지 않도록 꼭꼭 마리넬리 용기에 담은 뒤 무게를 재고 수치를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 켄스케 상이 분석 진행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며 그래프를 설명하고 있다. ⓒ촬영: 정재욱


SPECTRA 분석기는 감마선 에너지를 방출하는 세 가지 핵종인 세슘-137, 세슘-134, 칼륨-40의 방사선 검출율을 측정한다. 세슘-137과 세슘-134는 대기핵실험과 원전 사고로 방출되는 대표적인 인공방사능이다. 자연방사능인 칼륨-40은 검체 본래의 방사선을 파악하기 위해 측정한다. 방사선 스펙트르 그래프가 그려지면 시스템이 계측으로 얻은 결과를 환산식에 넣어 자동으로 수치를 산출한다. 오차범위를 줄이기 위해서 최소 30분 이상 실험시간을 길게 갖고 액체시료는 끓이는 등 사료의 농도를 높게 하는 편이 좋다.


서울에서 연습해보았을 때 늘 그랬듯 계속 ‘불검출되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값이 유사하니 과연 SPECTRA가 정확한 걸까 의심이 들 찰나, 켄스케 상이 사고 직후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인근 부지에서 채취해온 흙이라며 비교해보잔다. 눈을 반짝이며 그래프의 변동을 지켜보고 있는데, 과연 기존에 보던 것과는 다른 수치와 결과가 나온다. 이런 흙을 집에 보관하고 있다니 괜찮은 걸까, 아무리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믿는다 해도 눈에 보이는 위험지역 인근에서 산다는 건 어떤 심정일까, 갑자기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재난 예방은 이르지 않다


일본 연수 동안 비전화공방이 있는 나스 지역에서 비전화(非電化, 전기와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로운)의 가치에 동의하는 여러 기관과 활동가를 만날 때면, 그들이 공통적으로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원전 사고 후 모두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하고 있을 때 후지무라 센세가 바람의 이동 방향에 따른 주요 오염 지역과 오염식품 섭취 회피 방법부터 오염된 땅을 걷어내는 제염, 당장의 생계가 우려되었을 때 이를 대처할 수 있는 대안 등을 제시해주셔서 나스는 상대적으로 덜 혼란을 겪으며 상황을 타개해나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 켄스케 상과의 수업 후, 서울에 돌아와 황태를 가루 내어 측정한 수치 결과. 다른 수산물에 비해 명태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을 듣고 가공이 쉬운 황태를 측정해보았다. ⓒ그림: 오수정


일본 연수 마지막 날, 후지무라 센세가 제작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이 있다. 흔히 원전이 전력 공급을 위해 반드시 필요할까 묻지만, 본인은 언제든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원전(핵발전소)을 폐기할 의지가 없는 게 아닐까 의심한다고. 우리의 일상을 전기와 화학물질로부터 자유롭게 꾸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 문명이 어떤 이유와 방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도 촉각을 곤두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인간 사회는 절대 원전 사고에 대응할 수 없다. 그저 농락당할 뿐이라는 교훈은, 앞서 체르노빌 사고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하지만 세계 각국은 이번 사고가 자신을 향한 경고일 수 있다고 받아들이지 않은 채 냉담했다. 사고를 통해 일본 원전 관계자들의 수준이 낮다는 사실은 드러났다. 하지만 과연 다른 나라였다면 극복할 수 있었을까? … 방사능이 위험 물질인 한 불가능할 것이다.” -기무라 히데아키 『관저의 100시간』 중


원전이 있는 한 사고는 언젠가 반드시 일어나며, 지금 당장 모든 원전을 폐쇄할 수 없다면 피해나 희생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기 위해서라도 사고가 일어나기 전부터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방사능에 대해 올바른 지식을 갖추고 정확한 계측 수단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것. 이것이 원전 사고를 먼저 겪은 일본이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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