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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밖에 쓸 줄 모르는데 햇빛식품건조기를?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공구를 익히듯 나를 발견하다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햇빛식품건조기 제작으로 시작하는 목공
“햇빛에 말린 식재료는 맛이 더 응축되죠. 토마토를 햇빛식품건조기에 넣어 말려보세요. 감칠맛이 배가될 거예요. 얼마나 말려야 하는지는 어떤 요리를 만드느냐, 그날의 일조량과 건조도는 어떠냐에 따라 다릅니다. 몇 가지 조리법을 알려줄게요. 앞으로 더 많은 조리법을 개발해서 소책자를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당장 다음 만남에서는 말린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을 내게 선보여주세요. 기대하고 있을게요.”
후지무라 센세가 알려주신 햇빛식품건조기 만드는 법은 이 말과 함께 설계도 한 장이 전부였다. 목공을 하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레 닥칠 줄이야. 센세, 전 노루발 하나 바꿔달지 못해 우리 집 현관문이 여닫을 때마다 쿵 하고 닫히는 걸 내버려 두고 있다고요. 그런데 다음 달 센세가 한국으로 오시기 전까지 햇빛식품건조기를 목재로 만들어 놓으라고요?
측정하기, 고정하기, 자르기, 뚫기…. 교과서처럼 체계적으로 기초부터 시작할 줄 알았건만, 나의 첫 목공은 햇빛식품건조기라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학습 목표로 거침없이 찾아왔다.
▶ 완성된 햇빛식품건조기가 놓인 풍경 ⓒ오수정
자의 개수만큼 넓어지는 목공의 세계
목공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 공구의 종류와 사용법부터 배우기로 했다. 이부터 신세계다. 자만 해도 그렇다. 삼각자, 모양자, 방안자 정도가 전부였던 내 머릿속 자의 세계에 곱자, 철직자, T자, 각도자, 수평자까지 정신없이 수많은 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진돗개, 푸들, 삽살개, 요크셔테리어 정도가 전부였는데 강형욱 조련사가 등장했다고나 할까.
정밀한 측정이 필요한 목공에 다양한 자가 있으리라 예상은 했지만 이름이 쉽사리 외워지지 않는다. 한동안 ‘연기자’인줄로 알았는데 ‘연귀자’라니. 여전히 자의 이름과 사용법을 적확하게 이해하고 사용하지는 못하고 있다. 감각적으로 지난 번 누가 이 작업을 할 땐 이 자를 쓰던데, 또는 이 작업해보니까 이 자를 쓰는 게 편하던데 하는 식으로 공구함에서 자를 꺼내 쓴다.
세상엔 내가 아직 모르는 얼마나 많은 모양의 자가 있는 걸까. 그리고 각기 다른 자의 명칭과 용도만큼 얼마나 더 넓고 다양한 목공의 세계가 있는 걸까. 목공뿐 아니라 이 세상은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얼마나 다채로운 무언가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 목재와 공구를 늘어놓고 햇빛식품건조기 조립순서를 확인하고 있다. ⓒ박새로미
목공하며 드러나는 동료들의 성향
자야 익숙한 도구니 쉽게 사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지그소, 원형톱, 테이블톱 등 평소 쓸 기회가 없었던 공구들은 오히려 사용법을 처음 익히기 때문에 배우기 어렵지 않았다. 도리어 자를 대고 원하는 지점까지 줄을 긋는 천편일률적인 자의 이용법을 확장하는 일이 어려웠다.
원거리의 점과 점을 이으려면 측정한 치수에 점을 찍는 방식이 아니라 측정한 지점을 가운데로 놓이게 V를 표시해 선을 긋고 싶은 양쪽의 두 V의 꼭짓점을 잇는, 더 정확하지만 새로운 측정법을 익히는 일이 몸에 금방 배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겠다 싶은데 하다보면 자꾸 예전 버릇대로 줄을 그었다. 재확인하면 영락없이 치수가 다른 상황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악기 운지법부터 바이엘, 체르니30, 40, 50… 정규 과정을 순차적으로 밟는 배움에 친숙했던 내게, 갑작스레 피아노 연주로 고백 방식을 결정해놓고 연주곡을 연습하듯 떠듬떠듬 목공을 배우는 일은 묘하게 즐겁고 설렜다. 홀로 작업하지 않고 셋이 모둠을 이루어 작업하다보니 제작자 한 명 한 명의 성향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H가 재단한 목재는 나사를 박으면 한 치의 오차 없이 딱 들어맞고, J는 문제가 풀리지 않아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러 다녀오는 동안 홀로 요리조리 들여다보곤 해결해버렸다. 목재를 잘못 절단해 아깝게 버리게 되었을 때 S는 궂은 내색 하나 없이 ‘괜찮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며 마음을 풀어준다. 몸을 부대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그 사이의 간극은 말로 메우는 형태의 관계 맺기는 낯설지만 편안하고 끈끈했다.
▶ 조립을 마친 햇빛식품건조기를 도색하고 있다. ⓒ신수미
목공을 배우듯 관계를 배우다
글을 쓸 때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적어보고 문단을 구성하듯, 목재를 고르고 공구를 다루고 목제품을 만든다. 무엇 하나 손에 익지 않은 나는 매번 동료의 도움을 받는다. 나사 하나 박으면서 뒤편의 목재가 밀리지 않게 잡아줄래 부탁하고, 긴 목재를 자를 때면 쳐지지 않게 받쳐줄래 요청한다. 클램프로 고정하고 버팀목을 괴면 될 일인데 말이다.
몸이 굼떠 더디기도 하고 일이 느려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도와 달라 손 내밀고 그 손을 기꺼이 잡아주는 동료가 옆에 있다는 사실을 체감하는 일이 좋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거지 물어보고 상대가 고개를 끄덕여주며 작업할 때야말로 함께 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동료와 손발이 탁탁 맞는다는 느낌이 들 때의 쾌감은 목제품이 완성되었을 때의 행복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내 손으로 만들어지는 걸 지켜보는 황홀감은 크다. 하지만 목공을 하면서 그보다 더 크게 느낀 기쁨은 내가 수다스럽게 누군가와 쿵짝대는 일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점이다.
손기술이 젬병인 내게 목공을 배우는 일은 우리 집을 내가 만든 목가구로 채워야지 가열한 포부와 거리가 멀다. 머리를 맞대어 설계를 고쳐나가고 목공을 마친 뒤 컴프레서로 서로 옷에 묻은 톱밥을 털어주는 일상의 충만감을 늘리는 일에 가깝다. 그 만족감이 자연스레 기술의 습득과 발전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진실을, 난 왜 오랫동안 잊었던 걸까.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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