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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힘”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봄을 발견하다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매해 봄이면 뉴스는 벚꽃 개화 시기를 등고선처럼 그린 지도를 띄우고, 산수유와 매화가 만개한 어느 남쪽 지역으로 놀러 온 관광객의 인터뷰를 싣는다. 내게도 봄이란 늘 그런 것이었다. 점퍼가 버거워 한결 가벼운 외투를 걸치고 나서야 깨닫는, ‘어느새’ 그리고 ‘나도 모르게’라는 말이 자연스레 앞에 따라붙는 그런 시기.
하지만 작년 봄 만큼은 하나의 또렷한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다. 한 그루의 목련나무가 우뚝한 중정(中庭)으로 말이다. 해가 지나가는 길목 따라 하얗게 꽃이 피고, 그 나무 아래 놓인 원목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머리 위로 스스럼없이 뚝뚝 떨어지던 목련. 떨어진 목련을 주워 입에 대고 볼을 부풀리며 바람을 넣던 사람들. 여태껏 그 어느 봄도 이토록 분명한 인상으로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2017년 봄은 그렇게 내게 조금 특별했다.
▶ 비전화제작자 1기들과 함께, 목련이 있는 중정(中庭)에서, 서울혁신파크 ⓒ비전화공방 서울
1년 전, 나의 일상에 억울함이 차올랐다
쑥스러워 엄벙덤벙 소개하자니 실상 남들과 별 다를 것이 없고, 상세하게 말하자니 낯 뜨거워지는 나는, 보통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아무나 쉽게 누릴 수 없는 평범한 일과를 누리던 30대 초반의 직장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만 7년가량 꼬박꼬박 통장에 급여를 쌓고 허물기를 반복하는, 근로계약뿐만 아니라 주택담보대출, 혼인신고 등 각종 서류에 서명을 하는 방식으로 차곡차곡 사회가 원하는 어른이 되어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난 운이 참 좋았다. 헬조선이라는 탐탁지 않은 별명이 붙었지만 OECD에도 가입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태어나 입에 풀칠하기를 걱정하며 살지는 않았다. 고등교육을 받고 중위 연봉을 받으며, 애써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서울에서 편도 한 시간 걸어 출퇴근하는 엄청난 재수와 심폐지구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복원된 하천을 따라 수백 번 출퇴근하면서도 내에 찾아드는 오리 떼나 어린이집 팻말만 꽂혀있을 뿐, 공공근로하는 어르신들이 주로 가꾸는 천변의 텃밭에 대한 기억거리는 딱히 없다. 별 것 아닐 수 있는 봄에 대한 그리고 여름, 가을, 겨울에 대한 추억. 언제부턴가 손에 잡히지도 말로 표현할 줄도 모르는 그런 모호한 것들이 애타게 간절해졌다.
점심식사 할 때쯤부터 저리기 시작해 공식 근무가 끝날 시각 즈음에는 마우스를 클릭할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나는, 한참 팔을 주물러야 겨우 잠이 드는데 기분 나쁜 저릿함으로 자꾸 잠을 깨는 날이 잦아지면서부터였던가. 먹고 살기가 참 힘들다는데 꼬박꼬박 월급 받는 주제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는데 하고 싶은 일은 잊어버렸다’는 억울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투정부리기엔 뭔지 모르게, 누구에게인지 모르게 미안했다. 모니터 아래 쌓여있는 초콜릿 봉지 개수만큼 쌓여가는 기획서와 보고서, 행사들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정말 그들에게 도움은 된 건가 자문하는 날만큼 자답을 회피하는 날이 늘어갔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시기이건만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기엔 지쳐 있던 그 시절, 나는 하루를 온전히 살고 있다는 충만함이 절실했다.
내 삶에 질문을 던지던 중 만난 ‘비전화공방’
이제는 정말 쉬어야겠다, 더 이상 버틸 이유를 부스러기도 찾지 못할 즈음, 우연히 하나의 공고를 보았다.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과정에 함께 해요.” 바라는 삶이라는 게 도대체 뭐지? 이 애매한 표현에 끌릴 만큼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건가?
▶ 비전화제작자 1기 모집 포스터 중에서. 비전화(非電化)는 전기와 화학물질에 의존하지 않으면서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의 방식을 뜻한다. ⓒ비전화공방 서울
“바라는 삶을 살아내기 위한 힘, 자립에서 시작합니다.
내 삶에 필요한 기술들을 스스로 만들 수 있을까요?
지향하는 가치가 실제 내 일상에 녹아있나요?
생각을 경험하고 구현하며 함께 풀어내는 사람들이 곁에 있나요?“
그럼에도 이 질문이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깜빡이는 모니터 속에 파일 소유자로만 살고 있는 내가 볏짚으로 채운 스트로베일하우스와 햇빛달빛 냉장고, 빵이 노릇노릇 돌 가마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다. 언젠가는 한 번쯤 하고 막연하게 꿈꾸던 동경을 현재로 당겨올 수 있다고 착각한 그 순간, 나는 이미 ‘비전화공방 서울’의 1기 비전화(非電化)제작자로 태세가 바뀌었다. 그렇게 바로 지원서를 쓰고, 정말 1년 간 비전화제작자로 살게 되었다.
일상이 바뀌니 표정도 바뀌다
휴직하면 아침에는 뒷산을 오르내리고 오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 오후에는 낮잠 좀 자야지, 하던 꽤나 진지했던 계획은 순식간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대신 아침에는 체조로 몸을 푼 뒤 컨테이너에서 각도절단기와 테이블톱을 꺼내고, 스무 명이 점심에 먹을 국을 남지 않게 준비하려면 이 솥의 어디까지 물을 부어야 적절할지 고민하며, 오후에는 공사장 헬멧을 쓰고 주머니 가득 못을 채워 비계 위에 올라 망치로 서까래를 박는 날들이 시작되었다.
어느 날은 해 뜨기 전부터 배춧잎 속을 뒤져가며 28점박이무당벌레 애벌레를 잡고, 어떤 날은 부엌 위 태양광 발전기와 연결된 축전지가 방전돼 분쇄기를 사용해야 하는 오늘의 요리를 포기할 것인가 다른 방안을 시급히 찾아볼 것인가 궁량해야 했다.
▶ 즐거운 한 때. ⓒ비전화공방 서울
역시나 운이 좋았다. 대도시에서 비전화(非電化, 전기와 화학물질이 없는) 삶을 실험해보는 기회는 아무에게나 찾아오지 않는다. 운이 좋았다고 말할 도리밖에 없다. 그렇게 1년 뒤, 다시 회갈색의 목련 꽃눈이 부풀어 오르는 시기를 맞았다. 그래서 너는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찾았냐고, 바라는 삶을 살아내는 힘을 얻었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이렇게 답하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한 그루의 목련을 보았다고. 그 목련 아래에서 도시락을 펼쳐놓고 왁자지껄하게 웃는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서 웃고 있는 나를 보았다고.
그리고 당신의 손을 잡고 그 목련 앞에 데려가 조잘거리려 한다. 내가 보냈던 일상을, 내가 꿈꾸는 삶을.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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