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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으로 들어온 ‘나의 페미니즘’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연재를 끝내며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칼럼 연재가 막을 내립니다.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을 공유해 준 작가와,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칼럼을 애독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누마루와 뜰 ⓒ일다(김혜련)
개인적인 이야기가 정치적인 이야기
“이 글은 자기 탐험의 끝에서 ‘일상’에 도달한 이의 이야기다. 집을 가꾸고, 밥을 해먹는 ‘아무 것도 아닌’ 일이 평생의 방황과 추구 끝에서야 가능해진, 한 여자의 이야기다.
삶의 의미를 ‘저 너머 나 밖에 있는 것’에서 찾지 않고, 밥 먹고 청소하고 빨래를 개고 동네를 한 바퀴 도는, 평이한 일상 자체가 삶의 의미고 자기다움이며 자기초월일 수조차 있다는 것을 몸으로 겪어가는 이야기다.”
연재를 처음 시작할 때 썼던 말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면서 경주 남산마을에 터를 잡고 백년 된 낡은 집을 고치고 가꾸면서 살아온 지난 십년을 돌아본다. 절실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동안 나는 조금 더 단순하고 고요하고 심심한 사람이 되었다. 심심해서 더욱 밀도 깊은 삶을 살게 되었다고 할까.
돌아보니 지난 십년이 오십대를 통과해 온 시간이었다. 오십대 초에 새로운 삶을 시작해서 그 삶에서 어떤 빛 같은 것을 보기까지의 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삶의 초기부터 시작된 허기나 결핍을 해소하고, 삶을 즐기는 능력을 몸에 익히는 시간이었다고 해야 하나. 집을 가꾸고 밥을 하고 몸을 돌보고 자연을 만나면서 자신을 통합한 시간이라고 해야 하나….
▶ 글을 쓰던 방과 책상 ⓒ일다(김혜련)
이 년여 동안 이 주에 한 번씩 글을 썼다. 때로는 절실하게, 때론 신 오른 듯 저절로, 또 어떤 때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글을 쓰면서 새롭게 본 것도 있고, 막연했던 것들이 명료해지기도 했다. 대체로 정성스럽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내가 써온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어떤 보편성을 지니고도 있다. 내 세대들이 봉착한 삶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일상의 평범함이 더 이상 평범함이 되지 못하는 시대적 상황에서 나온 글이기도 하다. 또한 페미니즘의 역사 속에서 나온, 페미니스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임을, 일상의 중요성을 정치화하고 이론화하기에도 시간과 여력이 모자랐던 페미니즘의 역사를 거쳐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었을 게다.
이제쯤이면 페미니즘이 말해왔던 것을 자기 삶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을까. 모든 이념과 주의, 사상은 그것이 지향하는 삶의 일상적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어야 할 게다. 나는 내 식으로 ‘나의 페미니즘’을 삶 속에서 살아낸 것이라고 할까. 그 역사성을 그리고 싶었고, 일상의 즐거움이나 깨달음을 나누고 싶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은 무엇이 다른가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가 지닌 의미를 생각한다.
요즘 일상성에 대한 관심들이 늘어났다. 여성들에게는 여전히 일상이 억압이고 구속인 사회에서 ‘일상’이 삶의 근원적 자리라는 ‘값싼 통찰’을 언제나 일상 ‘밖’에 있던 남성들이 또 다시 유행시키고 있다. 한 순간의 솜사탕 같은 달콤함으로.
▶ 마당에서 고추 말리기 ⓒ일다(김혜련)
내 글은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자기 부정의 시간들을 지나 새롭게 다시 만난 일상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지난한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제 일상 너머의 삶의 초월을 꿈꾸지 않는다.
일상, 그것이 궁극의 자리므로.
밥, 집, 몸, 땅, 하늘…
이 묵직하고도 경건한 언어들이여!
여자들이 쓰는 일상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동안 글을 읽어 준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일다> 독자위원들이 보내준 세심한 관심과, 따뜻하고 정성스러운 댓글, 예리하고 명민한 댓글들을 통해 독자와 소통되는 느낌이 소중했다. 연재의 처음부터 끝까지 글을 읽고 편집을 해 준 조이여울 편집장의 정성에 감사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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