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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남산공부모임①


※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공부모임 오 년, 겨울 축제의 풍경


시간이 되자 사람과 음식이 모였다. 잡채, 애호박전, 샐러드, 떡, 직접 빚은 왕만두, 삭힌 고추무침, 버섯 들깨탕, 굴비찜, 동치미… 한쪽에서는 그릇과 수저가 나오고 한쪽에서는 음식이 담아지고, 포도주가 따라지고, 또 다른 쪽에서는 불고기가 익어갔다. 마치 저절로 일어나듯 이 모든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오 년 세월의 내공!


▶ 남산공부모임 겨울 축제 ⓒ일다(김혜련)

 

함께 나누는 밥과 음식이 따뜻하고 푸짐했다. 올 해는 새로운 얼굴과 이웃도 함께했다. 오랜만에 명상으로 시작하니 온방이 고요하다. 한 해를 회고하는 자리. 각자 자신이 선 자리에서의 일 년이라는 시간들이 불려 나왔다.


“음식물 쓰레기가 꽉 막혀 물이 빠지지 않는 싱크대 같았던 공부였는데, 뻥하고 뚫린 배수구처럼 시원한 공부로 바뀌었다”는 S의 말에 ‘아’ 하는 감탄이 여기저기서 터진다. 결혼한 지 일 년이 좀 지난 그는 ‘요리하는 남자’다. 밥하고 설거지를 하면서 남자인 그가 일상의 구체적인 언어를 얻었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R, 아픈 엄마를 위해 108배를 한다는 H, 학교에서 아이들과 일 년 간 벼농사를 한 게 큰 공부가 되었다는 N, 올 한 해가 많이 힘들었던 G, 나날이 공부의 힘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는 P, 동해의 벌떡이는 물고기처럼 생기발랄한 J… 모두의 한 해가 펼쳐진다.


작은 선물들이 오간다. 사과나무 묘목과 헝겊가방, 보랏빛 무릎 담요와 양모 양말, 털실로 짠 벙어리장갑, 새 도감(圖鑑), 손 편지, 면 방석…


시가 낭송되고 오카라나 연주가 울리고,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발그레 달아오른 행복한 웃음들, 따뜻한 마음들이 오고간다. (2014년 겨울)


‘남산공부모임’의 연말 겨울 축제의 풍경이다. 경주 남산마을에 집을 짓고 난 다음 해인 2010년부터 몇몇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공부를 했다. 그 모임이 오 년이 되었다.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일상의 삶을 온전하고 충만하게 살고 싶어서지요. 늘 반복되는, 때로는 지루하고 권태롭고, 지리멸렬한 그 일상을 통해 자기 안의 빛을 창조하는 일, 그게 공부(일종의 수행일 수도 있지요)라고 생각해요. 이를테면 자연에 더욱 가까워지기, 농사짓기, 자신에게 정성 들인 밥 공양하기, 정원 일하기, 내가 사는 공간을 신성한 아름다움으로 가꾸기, 머리보다는 몸으로 살기, 지금 여기에 있기…. 그러니 공부는 자신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거지요.’


공부모임을 같이 하자고 J에게 청한 편지의 일부다. 내가 살아온 삶이 관념과 이상주의로 가득 찬 허공 위의 삶이라는 것을 깨닫고, 너무도 당연해서 물음조차 던지지 않았던 근원의 영역에 대한 새로운 배움을 시작하는 길에 함께 할 동지를 찾는 일. 그것이 공부모임을 시작한 동기였다.


그래서 공부모임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텍스트이기도 했지만 따뜻하고 정결한 공간을 만들고 밥을 나누는 일이기도 했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교감들이 텍스트와 함께 삶에 스며들기를, 그래서 각자의 일상이 바뀌는, 공부와 삶이 분리되지 않는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오 년 동안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모여서 밥을 먹고 명상을 하고, 시를 낭송했다. 깊이 들어주고 격려하며 자신과 서로를 알아갔다. 삼십에서 오십대까지 고루 모였고 그림이나 목공예를 하는 예술인들도 있어 층이 다양했다. 경주 뿐 아니라 포항, 진주, 상주에서 오는 구성원들도 있었다.(가끔 수원에서도 왔다.)


▶ 공부모임을 함께한 사람들 ⓒ일다(김혜련)

 

함께하는 공부는 무엇이 다를까


2010년 공부모임 시작 때의 기본 전제는 여성적이고 영성적인 것, 무엇보다 일상에 발 딛고 있는 공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하는 부분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를 주로 고민했던 시기이다.


2011년은 대안적 삶에 대한 관심이 중심에 있었다. 붓다의 삶과 죽음을 따라가 보았고, 신화 공부를 했다. 나까자와 신이치의 <야생의 산책> 시리즈와 엘리아데의 <성과 속> 등을 읽었다. 삶의 폭이 아주 확장되는 느낌, 새로운 개념들이 생겨나는 신선함이 있었다.


M샘의 ‘공부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한 4번의 강의는 공부모임의 한 획을 그었다. 평생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시적(詩的) 고양이 이루어졌다. 그동안 몸으로 하는 공부, 삶과 분리되지 않는 공부 등으로 규정해온 공부의 개념이 ‘고귀한 인간되기’라는, 말 그대로 고귀한 개념을 얻었다. 평생 ‘책상’과 ‘밥상’(지성의 벼림과 몸의 벼림)이 함께하는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도 생겼다.


2012년 이후의 공부는 한 차원이 높아졌다. 고전 읽기에 제대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했다. 강유원의 <인문고전강의>와 <역사고전강의>를 길잡이로 고전 텍스트들을 읽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기반인 ‘서양 근대사’와 ‘중국사’를 공부했다. 역사 공부는 ‘시간에 대한 감각, 감수성을 기르는’ 과정이기도 했다.


혼자 해도 될 공부를 왜 함께 했을까? 함께하는 공부는 무엇이 다를까? 함께 공부를 하면서 이런저런 변화를 겪었다.


우선 살면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다양한 책을 읽었다. 일상을 새롭게 보기 위한 텍스트들을 찾고, 공부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을 찾기 위해 도서관의 숱한 책들을 뒤졌다. 혼자 읽을 것이 아니니 공부 주제에 가장 적합한 텍스트를 찾아야했다. 그 과정 자체가 공부가 됐다. 길잡이인 내가 텍스트를 완전히 이해해야했기에 한 책을 서너 번씩 읽고 발제하는 과정은 깊고 끈질긴 공부였다. 대충 읽고 안다고 생각하던 예전의 버릇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밤에 열심히 텍스트를 읽고, 아침이면 뒷마당이 바라보이는 안방 창 앞에서 궁금증들을 M과 함께 토론하고 배우고, 깨치는 시간이 몇 시간씩 계속됐다. 수 년 동안의 아침공부는 삶의 지극한 기쁨이었다. 아침밥을 먹는 것을 잊을 만큼 치열하고 아름다운 시간들, 새롭게 전환한 삶의 의미를 더 깊이 이해하고 인식하는 시간들이었다.


이 시간들이 있어서 내 삶의 전환은 서서히 뿌리를 내렸다. 과거의 습관들을 바꾸고, 모르던 세계를 알게 되었다.


▶ 남산공부모임 ⓒ일다(김혜련)

 

신화 공부를 하면서, ‘성(聖)과 속(俗)’이라는 개념을 얻으면서, 내가 남산마을에서 아침이나 저녁에 느끼는 신성한 느낌의 이유를 이해하게 되고, 어느 날 문득 늘 하던 설거지가 최초의 설거지인양 빛나는 이유 또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일회적이거나 단순한 감상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건 인간의 오랜 습성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최초의 시간(신화적 시간)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있다’, ‘성스러운 것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속(俗)이 곧 성(聖)스러움을 드러낸다.’(엘리아데) 내가 느낀 것들이 인간이 지닌 종교성의 발현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느낌과 경험에 신뢰가 생겼다.


농사를 지으면서 느끼는 기쁨 또한 그랬다. 흙을 만지고 농사를 짓는 일이 왜 기쁠까? 18세기 중농주의자들이나 농사를 자기 의식적으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그 기쁨이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보편적 기쁨임을 알게 되기도 했다.


새로운 개념을 얻는 건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일상을 이해할 새 개념을 얻고, 그것으로 다시 일상을 바라보고, 살아보면서 그 개념이 확장되는 경험들을 했다. 그건 인식과 실천이 함께 가는 일이라 온몸으로 희열에 찬 일이었다. 텍스트로 배우고, 배운 것을 일상에서 살아보고, 살면서 다시 배우고… 이 반복적인 시간들이 새로운 삶을 든든하고 창조적이게 했다.


또한 실존적이고 문학, 심리적인 것들에 익숙했던 삶이 역사인식을 얻게 되면서 시간을 길게 보는 눈을 얻게 되었다. 상황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게 되지 않는 자세를 얻은 것이다.


어디 써먹을 곳도 없는, 순수한 자기 기쁨으로 하는 공부였다. 그야말로 위기지학(爲己之學)이었다. 이런 공부의 과정이 없었다면 새로운 삶은 초기의 설렘이 사라진 뒤 권태로워지거나 무의미에 시달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삶이 빛나는 순간들


남산공부모임을 위해 텍스트를 열심히 읽는 것 외에도 내가 했던 일들은 모임을 위해 밥을 올리는 일이었다. 붓다 공부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밥 공양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우러났다. 정성스럽게 밥을 하여 남에게 대접을 한다는 건 내 삶에서 큰 변화다. 끝내 극복되지 않을 것 같았던, 밥의 고통스럽고도 힘겨운 역사의 무게를 떨치고 나는 즐겁게 한 끼의 밥을 올렸다. 밥을 하고 집을 공들여 가꾸면서 이 공간에서 우리들의 삶이 빛나는 순간들이 되기를 기대했다.


매달 마지막 토요일 저녁에 모여 밥을 같이 먹고 공부를 시작해서 11시쯤 마치는 게 우리의 일정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헤어지는 시간은 새벽 1시가 넘어서였다. 이야기하고 나눌 것들이 그만큼 많았다. 공부가 끝나도 갈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진주에 사는 친구는 공부모임을 위해 아예 남산마을에 집을 세 얻기도 했다. 한 겨울이나 한 여름 새벽에 헤어지면서 길 위에 서서 한 달 동안 또 열심히 살다가 다시 만나기를 기약했다. 남산공부모임은 각자에게 일종의 중심축이었다, 삶을 지탱해주고 격려하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다려지는 시간이었다.


▶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G가 해마다 엮어냈던 5권의 자료집 ⓒ일다(김혜련)

 

구성원들의 이야기다.


“매일 반복되는 지루하고 우울한 일상 속에서 나는 곧 먼지로 부서져 사라져버릴 것만 같을 때가 많다. 하루의 절대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직장에서 난 보람이 없다고 느낀다.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낀다. 지겹다. 우울하다. 무기력하다. 신경질난다. 미치겠다. 온갖 감정들이 왁자지껄한 장터처럼 시끄럽게 드나들며 나를 부수어간다. 먼지가 되지 않기 위해 방어하느라 난폭하게 날뛰던 마음은 그러나 오래 버티지 못하고 지쳐 나가떨어진다.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나는 정말 먼지가 되고 말 것 같다.


고통에 짓눌려 먼지로 사라지고 싶지 않다. 나는 살아있으니 살아있는 책임을 다하기 위해 공부를 하는 것 같다. 먼지로 바스러진 나를 다시 끌어 모아 온전한 존재로 재생시키기 위해 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나의 공부는 ‘지금 여기’와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지칠 줄 모르는 도주를 멈추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연습인 셈이다. 상처받은 포악한 영혼을 달래고 안아주기 위해, 망가지고 일그러진 나를 다시 맑게 하기 위해, 내 속에 선한 부분을 끌어올리기 위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자꾸 상기시키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다.”(G)


“올 한해 나는 집을 단장했다. 1층이 싫어 늘 이사 가고 싶었는데 이사 가는 대신 나의 공간을 정돈하는 것을 택했다. 원목으로 가구도 몇 가지 구입하고 광목천을 떠서 커튼도 만들고(세탁소 힘을 빌려) 불필요한 물건들도 정리하고 등등 나름대로 내가 머물고 싶은 공간을 만들기 위해 정성을 들였다. 그랬더니 집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정돈을 하는 일은 중요한 것 같다. 집이 유난히 어지러워져 있을 때는 내 마음이 좋지 않을 때다. 집을 정돈하고 나면 왠지 마음도 한결 정돈되는 기분을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집의 상태를 보며 내 마음을 돌아보곤 한다. 되도록 간소하고 단정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남산공부모임을 하면서 따뜻한 공간에 대한 욕구가 많이 생겼고 그 덕분에 나의 공간을 좀 더 아늑하게 마련하고 있다.”(H)


“‘아 나는 모르는 사람이구나’ 라는 깨침이 부끄럽다기보다는 얼마나 고맙고 가슴 벅찬 느낌인지…. 난 텍스트를 따라 가기 바빴고 늘 소화불량으로 모임에 참석한 것 같다. 삶 속에서 얼마나 실천하며 스스로 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이런 질문은 늘 내게 벅차다. 공부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은 무엇이며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도 궁색하다. 올 해 공부 하면서 얻은 소득은 스스로 겸허해 질 수 밖에 없다는 자기인정이다. 거창하고 괜찮은, 누군가에게 내보일 만큼 시선을 끄는 인생이 아니어도 좋다. 공부 할 수 있으니 괜찮다. 그것으로 족하다.


겨울의 달빛과 여름의 별빛들, 존재를 흔들어 놓던 M선생님의 강의, 정성스런 혜련선생님의 밥상, 그리고 남산집에서 비로소 귀한 존재가 되는 도반들을 기억한다.”(P)


“시간의 축적체인 나 자신을, 내 친구와 가족을,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제대로 보기 위한 공부가 역사 공부다. 그런 희망에 부풀어 시작한 역사 공부였으나 쉽지 않았다. 진득하게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책을 들여다보는 것도 힘든 나인데, 어렵고 지루한 역사책이라니… 공부는 지루함을 견디는 일이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지루함을 이겨내지 못하고 농땡이 피우기와 다시 스스로 채찍질하기를 지금까지 반복해왔다. (…)돌아보니 공부모임을 통해 고전의 깊은 의미들을 깨달아가는 데는 부족했지만 배운 것들은 많다. 선생님들과 구성원들의 삶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힘든 일들을 어떻게 겪어야할 것인지 알게 되었다. 공부모임은 나를 함부로 내버리지 않고 고귀하게 여기도록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는 스승이다.“(R)


“결혼이라는 큰일을 앞두니 괜히 짜증이 많이 났는데 ‘나에게 결혼이란 무엇인가’ 라는 글을 쓰면서 복잡한 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글을 함께 읽고 나서는 후렴함도 느꼈다. 정말 힘들어하는 글쓰기지만 그 이후에 생기는 힘이 나에게 글쓰기를 피할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 나는 공부모임에 와서 잘 울었다. 농담 삼아 울러온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다. 늦게 공부모임에 합류해서 구성원들을 잘 알거나 그리 친한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게 된다. 아마도 남산 집이 주는 분위기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어릴 때 외갓집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이 집은 할머니가 사시던 집 분위기가 난다. 편안하고 고요하다.”(N)


“남산 공부모임에는 일명 ‘나공’(나에게 공부란 무엇인가)을 쓰는 통과의례가 있었다. 참 부담스럽고 낯 뜨거운 과정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나의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아직 누구에게 인생이라고 늘어놓기에는 짧고 부끄럽지만, 내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사람들에게 늘어놓았다. 지금 떠올려보려 해도 어떤 내용을 썼는지는 기억이 다 나지 않지만, 글을 쓰는 동안 지난 세월 왜 그렇게 슬프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아감으로써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음에 행복했던 느낌만은 고스란히 살아있다. (…) 올 해는 학생들과 새로운 수업 방식을 시도하면서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M선생님의 강의를 통해 얻게 되었다. 선생님 말씀처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한 구체적인 정보들을 담고 있는 책을 읽는 것이 어떤 힘을 갖는지 몸소 느꼈다고 해야 할까.”(S)


“‘자신에게 위패를 모셔라’라는 말씀은 큰 하늘이 울리는 듯한 감동이다. 그 감동을 잊을 수가 없다. 고귀한 삶이란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고귀한 삶이란 ‘내 몸과 마음, 영혼에 좋은 것을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좋은 것이 과연 무엇일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설명하기도 힘들지만, 그래도 좋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지식보다는 지혜의 깊이가 더 넓어지기를 바라며… 이렇게 두서없는 생각과 글로라도 표현하는 것은 왕창 깨지고 부서져서 그 잔해에 묻혀있어도, 우뚝 서있어 보고 싶다. 정말 공부를 하고 싶다. 껍데기로 하는 공부가 아닌 진짜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다.


깊은 산에 들꽃 하나가 피고 진다. 아무도 모르지만 그 들꽃은 할 일을 다 하고 갔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당연한 공부를 하고 싶다.”(J)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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