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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인기 테마로 자리잡은 남성 누드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3. 21. 14:28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

여신, 님프, 혹은 고대 로마나 오리엔트의 백일몽 속에 있는 존재. ‘누드’라고 하면 통상 성적인 측면이 강조된 이상화된 여성의 몸을 떠올리기 쉽다. 특히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의 영향이 커지면서 미술계에서 여성의 누드는 논쟁적인 주제로 떠올랐다. 즉 많은 연구자들이 기존의 남성중심적인 미술사를 페미니즘적 시각으로 다시 쓰면서, 역사의 뒤로 사라진 여성 예술가들의 작업을 발굴하는 한편 미술의 전통적인 작업들을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 -영웅의 누드 편

이 과정에서 여성의 누드가 여성의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나아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사회적 시선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이 알려지게 된다. 또한 미술계 자체적으로도 다양한 소수자 그룹들이 수용되면서, 성적 존재로 이상화된 여성 누드들은 점차 그 모습을 감춘다.

그런데 누드에 대한 일련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술계를 넘어선 대중문화 영역에서는 상업성과 예술적인 성질을 동시에 보유한 수많은 누드들, 특히 누드 사진들이 생산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현대 회화와 조각에서 인물과 같은 구체화된 이미지를 더 이상 선호하지 않는다는 점과 관계가 있으며, 누드를 바라보는 관점을 보다 다양화시킬 것을 요구한다.


<남자를 보는 시선의 역사>는 여성 누드 대신 남성의 누드 작업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통해 살펴보면서 상대화된 시각을 제공한다.

지은이 에드워드 루시-스미스에 따르면, 실제로 미술사에는 여성의 누드 이상으로 남성의 누드가 상당한 양을 차지하다가 19세기 중반 경에 와서야 자취를 감추었다. 그 이유는 미술의 주요 고객이 귀족에서 부르주아지 대중으로 변했기 때문인데, 이들은 누드화가 성적인 자극만을 제공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했다. 때문에 화가들은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고객들에게 보다 쉽게 작품을 팔기 위해 벗은 남성 대신 벗은 여성의 이상화된 몸을 주로 그렸다는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부터 남성의 누드는 여성의 누드만큼 남성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반영했다. 남성의 신체는 모든 사물의 척도이자 미의 기준으로 여겨졌다. 영웅들 또한 근육질의 남성으로 화폭에 등장했다. 그리스도까지 근육질의 남성이 되어 인간의 죄를 대속한 영웅적 면모를 강조하는 인물로 변신했다. 이 대속하는 남성 누드는 고통과 격렬함으로 가득 찬 이야기 가운데 감정 이입의 중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에드워드 루시-스미스 저, 개마고원

그런데 죄를 대속하는 남성 누드의 정 반대에, ‘고상한 야만인’의 이미지가 있었다. 서구의 제국들이 팽창하면서 비서구인들의 누드가 차례로 서구에 유입됐는데, 이들이 신체에 상처를 내어 장식을 하는 관습 등은 야만적이면서도 예술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특히 문신은 현대사회에서 ‘고상한 야만인’의 은유를 통해 현대사회가 가하는 여러 제약과 규범들을 거부하는 사람을 상징, 패션의 관습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상화된 소년상 또한 자주 등장했다. 서양미술에서 사춘기 소년의 표현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특히 그리스 사회의 동성애 문화는 소년들의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소년들은 남/녀 양성적인 존재 앤드로자인(androgyne)로 그려지기도 했는데,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헤르마프로디토스가 그 예다.
 
헤르마프로디토스는 그를 사랑한 님프 살마키스와 한 몸이 된 존재로 여러 차례 조각의 주제가 된다. 현대의 대중음악계에 나타난 앤드로자인, 데이빗 보위는 남성과 여성의 경계가 모호한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듯한 신비로움과 소외의 정서를 환기했다.

이처럼 남성의 누드는 여성의 몸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만큼, 남성의 성기를 노출하는 것은 여성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충격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서양미술은 남성의 성기를 처리하는 데 있어 만족할 만한 방법을 고안해내지 못했다. 특히 사진 발명 이후 남성 누드는 사진이라는 매체의 정확성으로 인해 그림과는 달리 성적인 맥락을 분명하게 담게 됐다. 때문에 여성의 그릴 권리와 남성 누드는 깊은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후반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기 시작할 때 미술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가장 유명한 미국화가 중 한 명이자 교육자였던 토머스 에이킨스는 ‘모델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아카데미 학생이면 누구나 누드를 완벽하게 연구하고 습작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동료 교수와 학부모들의 눈총을 견디지 못해 사임해야 했다.

현대에 와서 남성의 누드는 감정의 정직함을 중시하는 아방가르드 운동 및 이후 현대 미술의 중심 테마로 자리 잡게 된다. 많은 남성 작가들은 자신의 무능력함과 솔직함, 충격유발을 위해 자신의 누드를 작품으로 삼았다. 남성의 누드는 성적인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이미지를 연출하여, 여전히 종속적인 성을 드러내는 대부분의 여성 누드와 비교해볼 때 불공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또한 미국 게이들이 주축이 된 동성애자해방운동의 영향은 남성 누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다. 1950년대의 게이 미술가인 로버트 라우셴버그와 재스퍼 존스는 미술계로부터 배제됐으며, 1960년대의 앤디워홀과 데이빗 호크니도 상당한 경멸을 받았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면 남성 동성간의 로맨틱한 사진들이 자유롭게 출판되기 시작한다.

현재 남성의 누드는 게이 남성, 자신의 성적 욕구에 솔직해진 이성애자 여성, 그리고 매력적인 남성 모델과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일반 남성들 모두에게 잘 팔리는 상품이자, 엘리트 미술 영역에서 인기를 끄는 테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예 터부시되거나 혹은 가치가 낮은 관습적 작업으로 인식되는 여성 누드에 비해 썩 괜찮은 대접이다.

지은이는 여성의 누드에 비해 남성의 누드가 에로티시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억제된 대상으로 수용되기 때문에, 대중문화영역과 미술계 모두에서 인기를 끈다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이는 레즈비언이나, 여성의 누드에서 새로운 감각을 찾는 여성들에게 또 다른 불평등인 셈이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고 있다. “다만 남성 누드를 찾는 여성 관람객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오랜 시간이 지나 마침내 여성 자신이 그것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수 있게 된 것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 주제를 다루는 권위 있는 여성 화가나 여성 사진가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윤은미일다는 어떤 곳?

[ ] 미술을 우리 가까이에, 박민영씨 루미  2005/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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