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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준지의 만화 <토미에> 
 

이토 준지의 만화 "토미에"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공포영화의 주인공은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소복을 입은 처녀귀신이다. 귀신이면 귀신이지 성별이 무슨 문제가 되겠냐 마는, 왠지 남자귀신보다는 여자귀신이 더 귀신답고 섬뜩하다.

방영 기간 동안 큰 인기를 모았던 TV 시리즈 <전설의 고향>에서도 주인공은 어김없이 처녀귀신이다. 한국의 전통적 귀신 모티브는 현대의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유사한 캐릭터로 만들어진다.

공포를 일으키는 소재로 여자귀신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을 할 수 있다. 귀신은 자고로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간절한 바램, 억울한 죽음에 대한 ‘한’(恨), 자신을 죽음으로 내 몬 사람들에 대한 ‘원한’(怨恨)등을 품고 있어야 한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강력하고도 어두운 에너지들이 뭉쳐, 사후에도 그 기운을 뿜어내는 존재가 귀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을 품고 있음직해 보이는 캐릭터로 처녀귀신이 주로 등장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恨)이란 여성들이 주로 품게 되는 한국 사회 특유의 정신적 에너지다. 한은 자신들의 욕구나 권리를 추구하지 못하고 억눌린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생겨나는 억울함, 원망들이 뭉쳐지고 화학적 변화를 거쳐 승화된 상태다. 한을 여성들이 품게 되는 이유는 여성이라는 이유로 억압을 받고,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구조 때문이리라.

한을 품은 처녀귀신은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공포물에 등장하는 처녀귀신들이 이승에 이루지 못한 한을 사후에나마 풀게 되니 다행이다. 관객들 중 누군가는 오싹해 하겠지만 말이다.

남성들이 가진 끔찍한 공포, 토미에

여성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시킨다

일본 공포 만화작가 이토준지의 작품은 만화왕국인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들은 인간의 무의식과 내면에 잠재된 심리를 자극해 심도 깊은 공포를 맛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토준지의 공포 시리즈 중 <토미에>는 그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지난 1999년에는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토미에>는 남성들이 가지는 여성에 대한 공포를 극대화시킨 작품이다. 우리 나라의 처녀귀신과 유사한 이미지(긴 검정 생머리에 창백한 피부)를 가진 여주인공을 등장시켜, 남성들이 가진 여성혐오와 공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토미에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다. 그녀는 누구나 한 번 보면 반하게 만드는 미모의 여성이다. 그녀에게 반한 남성들은 점점 토미에를 살해하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반드시 살해하고 만다. 그것도 최대한 잔혹하게 토막을 내서. 그러나 살해 당한 토미에는 죽지 않고, 토막 난 조각의 개수만큼 또 다시 토미에로 부활한다.

<토미에>뿐 아니라 이토준지의 다른 작품들에서도 여성이 공포의 대상으로 일관되게 등장한다. 작가는 자신의 어릴 적 경험에서 유래한 일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상당히 억압적 환경에서 자랐다. 여성을 성적대상이자 공포의 대상으로 본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예컨대 토미에를 보면 남자들이 토미에라는 여성을 살해하지만 잘게 부서진 시체토막들이 각기 다시 부활한다. 난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사고하는 남자 만화가이므로 토막 난 조각마저 재생시키려는 것 아닐까” (씨네21. 1999. 이토준지와의 인터뷰 중에서)

재미있는 점은 토미에가 성적대상이라 할지라도 남성들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대상이기보다는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성적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토미에는 주변의 남성들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미모와 인기를 증명하기 위해 남성들의 관심을 원할 뿐이다. 게임을 하듯이 자신에게 매달리는 무수한 남성들을 거느린 후에는 더 이상 그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만약 토미에가 한 남성에게 반하고 그 남성에게 모든 걸 바치는 순종적인 여성이었다면 어떨까? 그렇다면 그녀는 그다지 공포스러운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에 공포의 포인트가 있다. 남성들에게 순종적이지 않은 여성, 즉 남성들에게 무수한 욕망을 불러일으키지만 결코 종속되지 않는 여성이야말로 남성이 가지는 공포의 핵심인 것이다.

토미에는 남성들의 성적욕망을 불러일으키지만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는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그녀를 원하는 모든 남성들에게 위협으로 작동한다. 남성들은 토미에를 원하면 원할수록 그녀를 소유하고 싶어지지만, 동시에 결코 소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충족되지 않는 남성의 욕망은 토미에를 살해하게 되는 동기를 교묘하게 정당화한다.

종속되지 않는 여성에 대한 증오

무한대로 증식되는 토미에, 공포

<토미에>의 인기는 이 만화가 현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잠재의식을 드러내며 어떤 부분을 자극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들의 소유욕은 여성에 대한 지배와 파괴까지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욕망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데이트 강간, 아내학대, 스토킹 등 폭력행위가 난무하다. 연인이나 아내, 헤어진 애인에 대한 학대와 폭력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묵인되곤 한다. 토미에처럼 한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은 여성, ‘문란한’ 여성들은 죽어 마땅한 사람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사랑(이성애)과 소유욕의 밑바탕에는 남성이 가진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혐오가 깔려있다. 남성에게 여성은 동등한 존재가 아닌 열등한 존재, 결여된 존재로서의 대상일 뿐이다. 따라서 남성들은 여성을 원하지만 동시에 혐오하며, 파괴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토미에를 원하는 수많은 남성들은 어김없이 사랑에 빠지고, 그녀가 가진 아름다움의 근원, 욕망의 근인인 육체를 갈기갈기 조각 낸 후에야, 자신들의 궁극적인 욕망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다.

잘게 토막 난 토미에의 살점들은 마치 새싹이 자라듯 자란다. 작은 손가락 살점에서 또 다른 손가락이 돋고, 다리가 돋고, 얼굴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자라난다. 각각의 찢긴 살점이 자라나 수 천, 수만의 토미에가 된다. 부활한 토미에는 복수하지 않는다. 과거의 기억엔 관심 없다는 듯이 또 다른 세상으로 걸어간다. 이는 반복되는 끔찍한 살해, 동시에 무한 증식되는 토미에의 존재를 암시한다. 끔찍한 살인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토미에는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무한대의 양으로 증식된다.

독자들은 무한 증식되는 토미에를 상상하면서 이 만화가 주는 공포감을 배로 느끼게 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토미에는 누구도 죽이지 않는다. 때문에 무한 증식 후 토미에가 존재하는 세상은 그다지 끔찍할 것 같지 않다. 토미에를 살해할 남성들만 사라진다면 말이다. 물론 이토준지의 책에서는 토미에를 질투하고 경쟁하는 또 다른 토미에가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의 경쟁목표인 남성의 욕망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라면 어떻게 될까. 토미에 스스로 소멸해버릴까, 아니면 완전하게 존재하는 여성들로 이루어진 세상이 될까. 시로 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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