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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감성 충전

살아있는 시체들을 위한 고딕음악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03.22 17:27

고딕음악과 고딕 하위문화

핏기가 하나도 없는, 시체 같은 매력을 자랑하는 아담스 가족의 이야기 <아담스 패밀리2>에서 아담스 가문의 사랑스런 아기가 병에 걸리자 가족들은 공포에 휩싸인다. 병을 고치지 못하면 ‘아이의 머리칼이 (흑발에서) 금발로 변하고’, ‘연신 (행복한 듯) 웃음을 짓게 되며’, 심지어는 성장한 후에 ‘변호사, 최악의 경우에는 미국 대통령’과 같은 직업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절망적인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 고딕 가족에게는 기존 사회의 규격에 맞는 몸을 갖게 되는 것이 가장 추악한 질병인 것이다. 18, 19세기 독자들에게 고딕적 공포가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었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는 아담스 가족과 ‘추악한 질병에 대한 거부감’을 공유하는 고딕적 인물들이 실제로 거리를 걸어 다니게 된다.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르고, 거무스레하게 눈을 칠한 이 살아있는 시체들은 ‘고딕 음악’이라고 불리는 음산한 사운드와 함께 나타난다.

팝 음악계 고딕밴드의 등장

1978년 영국 맨체스터 출신 밴드 조이 디비젼(Joy Division)에 대해 한 평론가가 ‘주류 팝과 비교할 때 고딕적’라고 평하면서 팝 음악계에 최초로 ‘고딕’이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의 고딕은 고딕 밴드로 분류되기보다는 당시 시들해져 가고 있던 펑크록의 조류로 인식되어 ‘포스트 펑크’, ‘포지티브 펑크’, ‘퓨쳐리스트’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음악적 스타일에 있어서도 공격적이고 활기찬 펑크적 사운드의 영향이 강했으며 복장에 있어서도 펑크 팬과 고딕 팬을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딕의 고유한 성향을 드러내는 밴드들이 등장한다.

"조이 디비전"의 보컬 이안 커티스

바우하우스(Bauhaus)의 데뷔 싱글 ‘벨라 루고시는 죽었다(Bela Lugosi's Dead)’ (벨라 루고시는 토드 브라우닝 감독의 영화 <드라큘라(1931)> 및 여러 B급 영화에 뱀파이어 역으로 출연한 헝가리 배우)는 고딕의 송가(혹은 고딕 신앙의 찬송가?)와 같은 추앙을 받는다. 신경을 거스르는 기타 소리, 지하에서 들려오는 듯한 불길한 베이스 라인, 공포감을 조성하는 드럼머쉰의 울림과 다양한 전자 음향의 사용 등으로 특징 지워지는 바우하우스의 음악은 마치 고딕 영화 한 편을 보고 있는 것처럼 시각적으로 들린다.

바우하우스의 괴기스러운 무대연출과 보컬인 피터 머피의 ‘재림한 드라큘라 백작다운 태도’는 너무나도 유명한데, 이들의 라이브를 듣거나 바우하우스가 잠깐 출연한 영화들(<더 헝거>, <이레이져헤드> 등)을 보면 피터 머피가 고딕적 쇼맨십으로 ‘마치 관중들의 목을 물어 피를 빤 것처럼 그들을 중독시킨다’는 이야기가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다.

펑크 밴드에서 출발한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도 바우하우스와 함께 영국 고딕 록 씬의 스타급 밴드로 부상했다. 보컬 수지 수는 마치 여성 주술사가 낮은 목소리로 마법을 거는 것처럼 죽음, 자살, 부두 신앙, 가학적 섹스, 관음증, 주술 등의 주제들을 노래했다.

고딕 분장을 한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을 창조해 낸 그녀는 ‘고딕 아이스 퀸’ 또는 ‘프랑켄슈타인의 신부’라는 별명을 얻었다. (소설 속에서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신부를 만들어 달라는 괴물의 요청을 거절한다. 그가 창조한 ‘괴물 신부’가 ‘괴물’을 따르지 않고 ‘정상적인 남자’를 욕망-남성을 강간-하는, 즉 기존 사회에 또 다른 위협적인 존재가 될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이 그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 외 시스터 오브 머시(Sister of Mercy)나 U. K 디케이(U. K Decay), 서던 데스 컬트(Southern Death Cult), 에일리언 섹스 핀드(Alien Sex Fiend), 그리고 정확히 고딕 밴드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유사한 음악적 느낌을 보유하고 있는 조이 디비전이나 큐어(Cure), 닉 케이브(Nick Cave)등이 등장한다.

고딕적인 음악, 패션, 태도

'수지 앤 더 밴시스'의 보컬 수지 수

고딕 음악의 성격이 규정되어가면서 팬들도 점차 고딕적인 취향에 탐닉해 가는 모습을 보인다.

초기에는 순수하게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모여들었던 고딕 팬들은 점점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 애드가 앨런 포우의 작품들과 같은 18, 19세기 고딕 문학에서,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가 대표적)와 같은 현대의 고딕 리바이벌,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그림들이나 <안달루시아의 개>와 같은 실험적인 영화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1982년 6월, 런던에 등장한 담배연기 자욱한 클럽 배트케이브(Batcave)는 새로운 언더그라운드 고딕세대들을 위한 지하공간을 제공한다. 복장코드도 변화해 고딕 추종자들은 거친 펑크의 외양을 벗어 던지고, 창백한 화장과 길고 검은 코트, 뾰쪽한 구두로 갈아 신었다. 드디어 이들은 고딕 음악을 듣고, 고딕 패션을 하고, 고딕의 미학적 가치에 대해 논하는, 즉 음악과 패션과 태도에 있어 모두 고딕인 하위문화를 탄생시키게 된 것이다.

히피들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고, 펑크족들이 분노를 외부로 표출하려고 했다면 고딕 세대는 자기 안으로 한없이 침잠해 버리는 자세를 취했다. 허무주의적이고 탐미적이면서도 신경증적인 이들은 현실적인 것에서 떨어져 나온, 스스로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말하는 대신, 초현실적인 이슈, 시적인 죽음과 악, 비이성의 영역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고 기독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와 이교도적인 제의들, 지금까지 역사 속에서 악의 상징으로 취급 받았던 각종 금기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으며, 다분히 반기독교적인 태도로 ‘성경’을 즐겨 읽었다.

고딕 문화 속 여성, ‘이브’보다는 ‘릴리즈’

헝가리 배우 벨라 루고시

18세기의 고딕 문학에서 작가와 독자 양쪽 모두 여성의 비중이 컸던 것처럼, 1980년대의 고딕 컬쳐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상당했다고 한다. 고딕 컬쳐에서 여성은 희생자로서의 순수한 여성이거나 악의 화신으로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팜므파탈(femme fatale: 남성을 유혹해 죽음이나 고통 등 극한의 상황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을 뜻하는 사회심리학 용어),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이러한 여성의 이미지는 그 역할을 수행하는 여성들에게 어떠한 매력을 주었던 것일까?

히피운동에선 여성에게 자연의 어머니, 모성이라는 역할을 부여하여 여성이 남성의 모험을 보조하는 존재가 된 것과는 달리, 고딕 컬쳐에서는 여성에게 모성을 강조하는 경우는 없다. 고딕에서는 ‘이브’ 보다는 ‘릴리즈’(신화에 따르면 릴리즈는 아담처럼 먼지로 빚어 만들어졌으나, 수동적인 어머니의 역할과 아담의 충실한 배우자로서의 역할을 거부하여 지옥에 떨어진다)의 모습이 훨씬 매력적인 것으로 간주되며, 이브의 모습이 등장한다면 그것은 이브가 뱀과 함께 있을 때뿐이다.

또한 고딕적인 여성은 단순한 섹스뿐 아니라 SM(사도 마조히즘) 등 각종 금기시되는 성적 판타지를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하지만 여성의 욕망을 강조하는 것이 단지 여성의 성적인 대상으로서의 역할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가져올 뿐이라는 혐의도 있다. 여성은 순수한 희생자이든, 팜므파탈이건 간에 모두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형상화된다.

고딕 컬쳐가 외모의 치장을 중시하기 때문에 여성이 많다는 지적도 있지만, 남성간의 우애가 중시되는 ‘모드’나 ‘비트족’들의 문화와는 달리 고딕 컬쳐에서는 여성의 역할(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이 필수적이라는, 즉 고딕 컬쳐는 근본적으로 여성 없이는 성립하지 못한다는 존재론적인 이유도 여성의 왕성한 참여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죽음에 대한 탐미와 여성에 대한 탐미는 결합되어 ‘사랑하는 여인을 살해’한다는 메시지가 공공연하게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고딕 컬쳐에서 여성혐오자는 여성숭배자의 동의어이다. 고딕 컬쳐에서 숭배 받는 작가 에드가 앨런 포우가 아름다운 여성의 죽음이 가장 흥미로운 문학적인 주제라고 말한 것은 이러한 고딕 정신에 잘 부합되는 것이다.

패션에만 관심을 쏟으며 가벼워졌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1980년대 중반이 되자 기이하고 우울한 세계를 탐구하던 고딕의 에너지도 약해져 간다. 고딕의 황제나 다름없었던 시스터 오브 머시는 해산하면서 그룹 이름의 사용권을 두고 멤버들 간 소송을 벌이느라 정신 없었고(고딕의 세속화!), 고딕 하위문화도 예전의 창조적인 모습을 잃고 분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고딕 미학에 진지했던 고딕 컬쳐의 초기 세대들은 ‘태도’에 대한 고민 없이 ‘패션’만 받아들이는 이후의 고딕 세대들을 비판한다. 최근의 고딕 사이트들을 검색해보면 유명한 고딕 소설 작품 몇 개에 대한 가벼운 소개나 몇몇 고딕 밴드들에 대한 글이 조금 올라와 있을 뿐 대부분은 어떻게 고딕 옷을 입고 화장하는지, 고딕 춤은 어떻게 추는지에 대한 설명이나 가벼운 고딕적 농담들로 도배돼 있다. 고딕 키드들은 이런 질문을 하면서 서로가 얼마나 고딕적 인간에 가까운지 고딕지수를 매기며 시간을 보낸다.

질문) 당신이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야, 괴물(Freak), 너 왜 그딴 식으로 입고 다니냐?”하고 시비를 건다면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1) “나는 지금 이 사회를 애도하고 있는 중이거든.”
2) “나한테는 매일이 할로윈이기 때문이지.”
3) “난 뱀파이어야, 뱀파이어들은 원래 이런 식으로 입어.”
4) “널 두려움에 빠지게 하고 싶거든, 내 사랑.”
5) “너를 엿 먹이려고 그러지.”
6) “(진지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넌 왜 그런 식으로 입는데?”
7) “내 무기를 감출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거든.”
8) 그냥 무시하고 어두운 곳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전의 진지했던 고딕 컬쳐를 보아온 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한심하다’고 비판하거나 ‘가짜 고딕’이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패션이 태도를 앞질렀다고 해서 ‘고딕 컬쳐의 완전한 패배’를 선언하고 곡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저항적인 하위문화도 그 생성기 때만큼 전복적인 힘을 보유할 수는 없는 것이고 나름의 세속화 과정과 권태를 경험하게 마련이다. 하위문화에 대해서 강박증적으로 혁명성과 진정성, 유의미성을 요구하는 것처럼 그것을 경건화, 규격화시키는 것은 없다. 어떤 진지한 실험에도, 혹은 피가 튀기는 혁명의 와중에도 농담과 가벼움은 필요한 것이다.

또한 움베르토 에코가 “나는 의상들을 통해 말한다”고 했듯이 ‘패션의 정치학’도 의미 있는 일일 수 있다. 단순해 보이는 주류 문화의 단정한 스타일들에도 모두 권력과 규범의 논리가 숨어있음을 생각할 때, 주류의 스타일을 거부하고 불경한 고딕적 패션을 선택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기호와 언어로, 쉴새 없이 숨겨진 메시지들을 뿜어내는 행위이기도 하다.

자본의 메뉴판에 첨가된 ‘고딕 취향’

문제는 고딕 하위집단이 패션에만 관심을 쏟으며 가벼워진다는 것보다는 이들의 취향이 주류 문화에 편입되어 가면서 그것이 가졌던 배타적인 의미를 상실해 가고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이제 수많은 영화들에서 고딕적인 이미지는 단순한 배경으로서 부담 없이 차용되며, 각종 뮤직비디오에서도 ‘어제 마루 인형의 모습으로 귀여운 척 하던’ 여성이 이번에는 고딕 퀸의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주술사, 미친 여성의 역할을 수행한다. (칼리 미노그, 박지윤, 이정현의 뮤직 비디오를 보라.)

수많은 여성 잡지들이 ‘고딕 화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고딕 퀸의 선정이나 고딕 바비 인형 꾸미기 대회가 한창이다. 고딕이 일상화되었을 때, 즉 고딕이 더 이상 기이한 취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을 때, 고딕적 태도라는 것이 계속해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이제는 고딕적 가치관이 기존의 미와 규범의 세계를 위협하며 자신의 불길한 영역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미와 규범들이 고딕의 세계를 침범하여 자신의 영역을 탐욕스럽게 확장시켜 버리고 있는 것 같다. 자본주의적 사회질서의 식욕은 너무나 왕성하고 무감해 소화장애라고는 몰라 아무것이나 무작정 삼켜 버린다. 그리고는 ‘자신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까지도 내부의 규격에 맞춰 상품화하여 자본의 메뉴판에 추가시켜 뱉어낸다. 이제는 고딕이란 취향도 그 메뉴판에서 찾아내어 쉽게 주문할 수 있다.

새로운 코드를 생산하는 스타일의 정치학

고딕 문화가 지나치게 탐미적으로 흘러 사회에 대한 저항적인 힘이 약하다는 지적이 있다. 그러나. 막강한 기존 질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태도, 혹은 그것에 작은 균열을 내거나 그 균열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식하는 것, 사회가 만든 선악의 관점 중에서 기꺼이 악에게도 관심을 부여하는 시도만으로도 하위문화의 도전은 의미 있을지도 모른다.

하위 문화는 주류 문화에 대항하는 새로운 코드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그 속성상 언제나 가변적이어서 늘 자기모순과 의심 속에 사로잡혀 분열에 분열을 거듭해 가는 것이 오히려 스스로에게 어울린다. 그것이 기존 문화처럼 견고하고 논리 정연하게 보이는 순간, 의심할 것이 전혀 없다고 누군가에 의해 선언되는 순간 그 가치는 죽는 것이다.

고딕 하위 문화 역시도 그 틀이 새로운 세대에 의해 계속 변형되고 있는 지도 모르며 새로운 가치와 결합하여 새로운 무언가로 다시 태어날지 모른다. 그러기 위해 적어도 기존 자본주의 사회가 저항들을 먹어 치우는 속도만큼 전복적 상상력에도 반대의 속력을 가해주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현주일다는 어떤 곳?

[고딕문화] 고딕문학과 전복적 힘 김현주  2005/01/31/
[고딕문화] 욕망 속에서 미끄러지는 기형인간들 김현주  200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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