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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네의 첫 앨범「absinthe(압생트)」 
 
누구라도 돌아볼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음색을 처음 들었을 때 갑자기 어떤 음악들이 현실적인, 너무나 현실적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는 루네가 전한 낯섦의 충격에서 비롯된 기분으로, 절대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것이지요. 정말이지 그녀의 음악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거든요.

첫 앨범을 낸 루네 (LUNE 미니홈피)

기이한 나비가 바람에 취해 흩날리는 꽃잎을 따라가듯이, 그녀의 손가락에서 힘을 받은 피아노는 몇 가지 반복적인 연주를 시작합니다. 곧 루네의 노래가 여기에 합쳐지는데 그건 마치 몽롱한 화면 밖으로 새어 나온 숨소리 같아요.
 
‘내일은 더 다가가겠지/ 아무도 없다던 그곳’ (「The Memory Of Nobody」중에서)
‘꿈에 지쳐 날 버린 곳/ 하, 모두 기억나/ 너에 지쳐 날 버리고/ 다 모두 지워 버려’ (「유리날개」중에서)
‘눈물에 잠긴 나를 건져내’ (「압생트」중에서)
 
앨범을 채운 한 곡 한 곡은 일반적인 대중음악과는 조금 다른 체험을 선사합니다. 북유럽의 여성아티스트들에게서 종종 접할 수 있듯이 그녀의 신비로운 면모는 직접적인 생활언어를 벗어나 제각각 흔들리고 엉클어진 기억 속의 아픔과 갈증을 울립니다. 사색적인 언어가 듣는 이의 시각적인 상상을 자극하는 루네의 가사와 창법은 가히 환상적이죠. 그녀는 문학작품 속의 활자들을 생생하게 만드는, 시인적인 음악가 같아요.
 
음악문화에서 ‘현실성’과 ‘반反현실성’?
 
그런데 그녀의 음악이 상대적인 의미로라도 ‘비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인 음악이란 어떤 걸까요. ‘뭔가 다르다’는 감상에 영향을 미친 건 (그 음악을 포함하여) ‘지금’의 여건과도 관계가 있을 텐데 말이에요.
 
우선 표면적으로는 정석적인 코드진행에 사랑이나 배신 등의 통속적인 노랫말을 적용한 곡들이 ‘현실적’인 음악의 한 예가 될 수 있겠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연주 스타일을 차용하여 즐거움을 주는 음악들 역시 업계에 있어 ‘현실적’인 부류이겠고요. 이런 맥락에서라면 ‘보통’ 스타일에 도전하여, 가사와 편곡 그리고 사운드에 변혁을 가한 행위들(마니아를 겨냥한 음악들)을 잠정적으로나마 ‘반反현실적’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될 겁니다.
 
하지만 무엇이 현실인지, 모두에게 그 현실은 동일한지는 명확치 않아요. 그리고 현실적이라는 건 현실에 순응하는 것만이 아니라 거기에 나름의 입장을 갖고 있는 것도 포함되니까 더욱 간단하지 않은 얘기죠.
 
또한 관행적인 음악 스타일이 사람의 ‘진심’보다는 (팔기 쉬운) 상품적 기술에 치중한다는 입장과 가장 ‘대중적인’ 것이 가장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입장들은 얼핏 반대되어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두 가지가 뒤섞여 혼란을 일으킬 때가 더 많습니다.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대표적인 축 ‘현실순응/현실비판’

루네(LUNE)의 1집 "압생트"(Absinthe) 2009

대중음악사에는 이와 비슷한 가치경쟁들이 줄곧 있어왔습니다. 전에는 어쿠스틱 혹은 일렉트릭 기타의 ‘진정한’ 록음악 연주가 ‘주어진’ 현실을 성토하거나 일탈하는 표현으로 여겨졌었고, 비슷한 관점에서 댄스플로어를 지향하는 음악들이 일상의 가벼운 향락을 긍정한다거나 이데올로기의 진지함을 거부한다고 여겨지기도 했지요.

이러한 입장들은 분명 문화적인 맥락에서 생겨난 판단들입니다. 더욱이 비평 대상으로서의 대중음악은 주로 ‘대량산업’ 아니면 ‘민중들의 문화’라는 사회학적인 관점에서만 다뤄졌기에, 순응과 비판이라는 나누기 방식이 은연중에 장르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도구가 되곤 했어요. 그러니까 대중음악은 언제나 집단적인 총체성을 가지고 있고 가져야만 한다는, 일종의 계급 음악처럼 이해되었던 것이죠.
 
그러나 최근 대중음악계에 한 가지 큰 변화가 생겼어요. 그 조류에 기대어보면, 루네의 방법도 짧게 보아 10여 년 전부터 다른 예술문화계는 물론 음악계에서도 화두가 되었던 장르해체와 연관시킬 수 있습니다. 음악문화 현상을 가리키기 위한 용어로 말하자면 얼터너티브(Alternative)죠.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넓은 범위의 얼터너티브, 즉 대안적인 시도 자체가 음악 만들기의 양적이고 질적인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어요.
 
물론 궁극적으로 대중음악사는 늘 대안적인 시도들에 의해 흘러왔습니다. 그리고 이 시도들의 결과물이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며, 거의 20여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대안의 대안이 거듭되었음에도 다시금 장르 해체가 규격화된 감도 없지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어떤 장르에 집단적 특권을 부여했던 관습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점만은 사뭇 흥미롭습니다. 마니아장르에서도 ‘그런 기법은 너무 팝적이다’라든지 하는 폐쇄적인 음악 기준들이 점차 약화되고 있지요.
 
더 많은 음악의 장점을 흡수하기 위해서 장르의 간격을 좁히는 그들은, 개인의 표현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에 관심을 갖고, 장르간의 관계를 교란시킵니다.
 
루네의 ‘비현실적’인 음악에 내포된 현실성

출처:클럽오뙤르cafe.naver.com/clubAuteur

지난 3월 말에는 루네의 데뷔앨범의 쇼케이스가 있었습니다. 관객에게 멘트를 할 때는 담백하지만, 노래와 연주에 돌입하게 되면 열광적인 영혼으로 변신(?)하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에 썼던 것처럼 루네의 음악이 묘한 건 확실히 그녀의 특별한 목소리와 건반연주에서 기인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개성의 씨앗이 만든 그녀 음악들의 일관성은 동시대의 흐름과 함께 얘기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음악도 하나의 장르를 ‘재현’했다고 보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한편으로는 무겁게 반복되는 앰비언트 비트 속에서 느리고 몽환적으로 노래하는 트립합(Trip-Hop)의 보컬리스트를 연상시키기도 하죠. 그리고 얼터너티브록들이 종종 그렇게 하듯이 기타연주 대신 건반악기가 리프(riff)를 연주하며 곡을 리드하고요. 또한 독특한 목소리와 닮은 앨범자켓과 공연에서 연출한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도 (국외로 눈을 돌리면) 그녀만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루네의 데뷔작은 ‘현실/반현실’의 단순구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음악적인 신선함을 마음껏 충족시킵니다. ‘이것’과 ‘저것’을 크로스오버(crossover)한 작업들이 역설적으로 스타일 사이의 경계나 구별을 부각시킨다면, 루네의 <absinthe(압생트)>는 그녀의 표현욕구에 의해 무너지고 합쳐진 기법들이 하나의 감각처럼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녀가 도입한 음악 연주들이 결과적으로는 ‘그녀만의 것’으로 느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는 듯 합니다.
 
음악들이 거기에 속하는 하위그룹들을 대변하는 게 아니듯이, 그녀에게 있어서도 대중음악은 ‘대중’을 대변하는 것이기 이전에, ‘모든 것’에 대해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이자 신체기관입니다. 그렇기에 루네의 비현실적인 뉘앙스는 완전히 추상적이라거나 현실을 왜곡한다는 의미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현실의 재창조와 관계가 깊은 것이죠.
 
언제나 그렇듯 새로움은 그것을 만든 사람에 의해 일방적으로 알려지기보다는, 거기에 반응하는 현실과의 공명을 통해 솟아나지요. 그녀는 우리에게 여성/인디/뮤지션으로서 여성스러움과 여성스럽지 않음, 현실적인 것과 현실비판적인 것의 지난 대립과는 다른 진실성을, 충실함의 색다른 유형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이는 그녀의 음악가적 개성이지만 청자들이 원한 새로움의 한 방식이기도 할 거라 생각해요.
 
지금 여기에서, 그녀의 ‘비현실적’인 음악이 세상사람들에게 연결되기를 바라는 독특한 신호처럼 움트고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 거기에 연결되어 귀를 기울인다면, 색다른 기쁨을 주는 음악들의 행성은 더욱 깊고 광대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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