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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여신이 던지는 흥미로운 에피소드 
 

바비인형에 관한 논문, 에세이 23편 엮은책

바비인형에 하나의 완결된 입장을 제시하기란 쉬우면서도, 어렵다. 바비인형이 표상하는 성차별적 이데올로기는 명백하다. 그러나 아이들의 장난감(애착의 대상)이자, 당대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바비인형의 무게감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바비인형이 소녀들의 수많은 장난감들 가운데서 단연코 압도적인 매력을 과시하며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엄청난 자본을 끌어 모은 이유는, 바비인형이 미국 사회의 '성인여성'을 체현하기 때문이다.
 
<바비 이야기>(새움)는 그간 바비인형에 대해 쓰여진 논문 및 에세이 23개를 엮은 책이다. 이 글들은 하나의 입장으로 모이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바비의 심장에 말뚝을 꽂거나 케이크 몇 조각을 더 먹이자"라고, 다소 격하게 바비가 상징하는 '날씬한 몸매'를 비판하는 글 바로 뒤에 바비인형에 대한 향수어린 에세이가 딸려 있는 식이다.

바비인형은 당대 여성들을 반영한다

바비인형은 기존의 성차별적 사회에 순응적인 여성상을 주입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는 바비인형이 등장한 195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문화사적 해석에 의해 뒷받침된다. 1950년대는 전후 보수적 정치가 불어닥치고 텔레비전을 통해 중산층 가정의 '스위트 홈' 가치관이 설파되는 와중에도, 여성들이 사회로 진출하고 있었으며 전업주부의 권태로움이 여성잡지 등을 통해 조금씩 드러나는 등 여성의 삶이 그 이전과는 근본적인 변화를 겪던 시기였다.

딸들은 어머니들을 바라보며 '전업주부'에 대한 양가 감정을 느낀다. 소녀들은 기존의 성도덕을 지키면서도 좀더 사회적인 이니셔티브를 얻기 위해서는 권력이나 특권에 있어서 남녀간 불균형에 도전하지 말고 섹시함을 무기로 소비사회를 즐기는 것이 가장 온건하다는 것을 배운다. 한편 1950년대의 풍요로운 경제력은 역사상 처음으로 수중에 돈을 가지고 소비하는 소년, 소녀 소비자들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파티 걸' 같은 바비인형이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바비인형의 옷과 액세서리들이 오늘날 소녀들이 행하는 '보디 프로젝트'에 딱 들어맞는다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즉 오늘날의 소녀들은 과거의 젊은여성들과 다르게 하나의 프로젝트처럼 체형과 피부, 옷, 머리, 성적매력을 가꾼다. 바비는 소녀들처럼 매일 옷을 갈아입고 다른 직업을 가진다. 바비의 가게는 몸을 꾸미기 위해 들르는 '옷가게'와 몸에 대한 소비를 수행하는 '수퍼마켓'이다. 그리고 옷가게와 수퍼마켓은 의미심장하게도 섭식장애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가장 자주 찾는 곳이다.

미국 마텔사의 '축구스타 바비'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비인형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이 있어왔다. "수학이 어려워" 사건은 대표적 에피소드. 1992년 마텔사가 출시한 <틴 토크 바비>는 270여 문장을 반복할 줄 아는 인형이다. 그런데 그 문장 중 하나가 "수학은 어려워"였다. 전미대학여성협회까지 가담한 비판의 물결에, 마텔사는 고개를 숙였다.

재미있는 것은, 바비인형을 만든 사람이 루스 핸들러라는 여성이라는 점. 그녀는 신문 인기만화에서 따온 '외설적' 인형에서 착안하여 딸 바브라를 위해 성인 여성인형을 만들었다. 그녀가 창출한 바비인형의 몸매는 '섹스 없는 섹슈얼리티'. 즉 유두를 제거하는 등 '섹스'적 요소를 제거한 것. 캐롤 오코먼은 바비인형의 몸매에 대해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상징하는 거대한 유방과 이를 부인하는 듯한 가는 몸통을 가진 일종의 정신 분열증적 신체"라고 표현했다.

한편 성인인형이다 보니, 바비인형을 생산하는 마텔사에서는 아이들에게 '성차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는 바비의 남자친구 켄의 성기 표현 여부를 둘러싸고 가시화 되는데, 결국 마텔사에서는 켄의 성기를 '거세'하고 짧은 팬츠로 대체 하기로 결정 내렸다. 소녀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직설적인 '성' 표현을 자제하면서도 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신체를 조형한 결과, 바비와 켄의 기형적인 몸이 탄생한 것이다.

바비인형의 역사, 흥미로운 에피소드


한편 장난감이라는 특징상 아이들은 바비를 통해 성장에 필요한 다양한 사건을 경험한다.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은 특별한 정서적 애착 대상이다. 대상관계이론가 중 한 명인 위니캇은 아이가 자신이 아닌 타자와 관계를 맺기 전 '중간 대상'을 거친다고 주장한다. 이 '중간 대상'은 인형, 담요처럼 아이 자신이 투사된, 아이 자신이면서, 자신이 아닌 대상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책에 실린 몇 편의 에세이는 바비인형과 자신 사이에 일어난, 정서적으로 충격을 안긴 사건들을 이야기한다.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렸던 한 소녀는, '여성스러움=병' 으로 생각하고 캔의 바지를 벗겨 바비에게 입힌다. 옷을 갈아 입혀, 여성스러움을 숨기고 싶었던 것. 어떤 소녀는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바비인형에게 '핀업 걸' 포즈를 취하게 했다.

마텔사 마이씬 시리즈 Barbie & Madison

특히 사춘기 소녀들의 성적인 성장에 대한 관심은, 바비 시리즈 가운데 <그로잉 업 스키퍼>로 표현된다. 스키퍼는 바비의 자매로, 소녀 같은 몸매를 하고 있지만 왼팔을 돌리면 가슴이 솟아나는 인형. 스키퍼는 발랄한 바비 가족이 내면에 품고 있을 유방과 신체에 가진 강박관념을 무의식적으로 드러낸다.

바비와 관련된 사건은 소녀 시절에서 끝나지 않는다. 바비 컬렉터들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 망을 형성하고 있다. 마텔사는 바비인형 덕분에 의상업계 매출 4위를 차지했다.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를 패러디한 BLO(바비해방기구)는 바비가 소녀들을 수동적으로 만든다는 이유로, 바비가 '총알 먹어'라는 욕을 하게 하고 대신 그 옆의 병사 인형이 '쇼핑 가자'라고 말하도록 몇백 개의 인형을 조작하는 프로젝트을 연출했다. 귀고리를 낀 <이어링 매직 켄> 시리즈는 흔히 '게이 패션'이라 불리는 것을 모방한 것으로, 어느 게이 잡지에서는 켄을 화보로 사용하기도 했다.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는 플라스틱 인형

바비인형은 현재 140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으며, 1959년 이후 제작된 바비인형을 일열로 놓으면 지구 4바퀴를 도는 길이라고 한다. 1초마다 바비인형은 2개씩 판매되고 있으며, 미국 소녀들은 바비인형을 평균 잡아 10개씩 소유하고 있다.

수많은 여성들이 바비의 '미모'와 바비에 얽힌 개인사적인 기억 때문에 바비인형을 사랑하고 싶겠지만, 바비인형이 표상 하는 여성상이 여성들에게 페티시즘을 상품화하고, 성별을 고정시키며, 이성애의 절대적 우위를 가르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혹자는 바비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을 미국 중산층 틴에이저의 이성애 의례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인간은 외부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수용하는 존재가 아니므로 바비인형만을 무조건 마녀사냥 할 이유는 없다(책에서는 이를 "바비는 (사회의) 원인이자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바비 이야기>는 단순한 긍정과 열광도, 무조건적인 부정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이 복잡한 존재가, 현대의 '플라스틱 여신'으로 오래도록 그 신화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김윤은미일다는 어떤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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