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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의 시초였던 ‘위안부’ 할머니들은 지금…

15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열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저는 10개월 동안 차루크(Carruk)라는 곳에 갇혀 있었고 강제노동과 ‘위안부’ 생활을 했는데 그때의 일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일본이 패전한 후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이 마을에 살면서 일본군의 찌꺼기라는 말을 듣는 것보다 다른 곳에 가서 살겠다’고 어머니한테 말씀 드리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홀로 살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온 누라이니 할머니(88세)는 반세기도 전에 일어난 일을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헤랑 할머니(87세)와 중국에서 온 천롄춘 할머니(92세)도 끔찍했던 그 시절의 경험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일본군이 자신을 언제, 어떻게 끌고 갔는지, 그곳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증언했다.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지만, 일본군이 행했던 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가 책임을 지고 공식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는 말을 할 때는 소리를 높였다.


일본군 성노예제의 피해 생존자들의 발언은 세계여성의날인 3월 8일(목) 하이서울유스호스텔에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주최로 열린 <15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실현되지 않은 정의, 일본군 성노예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에서 발표됐다.


▶15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발언 중인 피해생존자 누라이니, 자헤랑, 천롄춘, 길원옥.(왼쪽부터) 길원옥 할머니는 증언 대신 노래를 부르며 자리를 빛냈다. ⓒ일다(박주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미투(#MeToo) 이후


1992년부터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는 아시아 각 지역의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과 아시아를 비롯해 미국, 유럽, 호주 등 세계 각지의 활동가들이 모여,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과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내왔다.


한국 사회를 흔들고 있는 미투(#MeToo)운동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1991년 8월 14일 역사적인 “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입니다” 증언 이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논의하고 노력해왔다. 15회를 맞은 이날 연대회의에서는 최근 아시아 각지에서 일어나고 있는 활동이 공유됐다.


■ 필리핀: 역사적 증거를 보존하는 자료관 설립 예정


“피해 여성들 대부분이 80대이며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잊혀지지 않도록 자료관 설립을 준비 중이다. 자료관에는 증언 기록, 미술 작품, 피해자 자신 등을 포함한 역사적 증거로 구성될 것이다. 필리핀 위안부 여성이 겪은 참상과 투쟁을 증명하는 방대한 양의 자료를 지지자 및 후세대에 제공하고자 한다. 우리의 투쟁은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다. 차세대를 위한 것이다. 전 세계를 군림하고 통제하는 제국주의 권력을 무너뜨리지 않는다면 고통은 우리 세대에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필리핀 위안부 단체 ‘릴라 필리피나’ 조안 살바도르)


■ 중국: ‘위안부’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가 흥행 최고 기록


“2017년 8월에 개봉한 다큐멘터리 <이십이>가 개봉 20일 만에 1억7천만 위안이라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제작 100만 위안이 없어서 자금 모집을 하러 다녔었는데, 다큐멘터리 중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한국인 출신으로 중국에서 위안부 생활을 겪으신 ‘모은매’ 할머니의 인터뷰 장면 중, 한국어는 이제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시면서도 고향 이름을 기억하는 것과 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중국의 많은 학생들을 울렸다. 전쟁의 아픔이 깊은 상처로 남고, 일본 군국주의의 죄악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젊은 세대에게도 전달되었다.”(중국 ‘위안부’문제연구센터 주임, 쑤즈량 상하이사범대학교 교수)


▶ 중국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이십이>(Twenty-Two, 2017, 감독 Ke Guo) 포스터

 

■ 인도네시아: 피해자들이 기력을 찾을 수 있도록 지원 


“인도네시아에서는 정부의 건강보험제도(BPJS)에 의해 매달 보험료를 납부하면 치료, 입원, 수술 등이 무료다. 그러나 비혼인 피해자는 이 제도를 이용하기 위한 절차와 보험료를 지불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가입 절차 지원을 하고, 빈곤 가정에 대해서는 정부의 쌀 지급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때로는 한방약을 지원하기도 하고, 피해자들이 기력을 낼 수 있도록,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남술라웨시 ‘위안부’지원협회 달마위 대표) 


■ 대만: 할머니의 유산(Legacy) 잇기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에 맞춰 작년 8월 5일부터 19일까지 국제 ‘위안부’영화제를 개최했다. ‘위안부’에 관한 4편의 영화와 전쟁 지역에서의 성폭력에 관한 2편의 영화를 상영했다. 또한 예술가가 만든 위안부 할머니에 대한 작품을 2개의 인권박물관과 협력으로 전시하고 역사 강의를 하는 등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대만 여성구제재단 예더 란 이사)


■ 일본: 밖으로, 거리로! 수요시위 열려


“한국을 본받아 수요시위를 하고 있다. 다만 우리는 매달 한 번 한다. 세 번째 수요일 12시 30분부터 13시 30분까지 도쿄 신주쿠 역 근처에서 하는데, 이것은 2017년 전국행동 회의에서 ‘좀 더 밖으로 나가서 호소하자’는 의견을 따른 것이다. 실내에서 하는 집회와 학습도 중요하지만, 밖으로 나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위안부 문제는 끝났다’고 하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정보가 침투해 갈 뿐이라는 위기감도 있었다. ‘위안부’ 문제가 무엇인지 알리기 위해 거리로 나갈 필요를 느꼈다. 가끔 심한 말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려되는 방해 행위는 없다.” (일본 일본군’위안부’문제해결전국행동 시바 요코 공동대표)


“알려져 있는 건 빙산의 일각, 더 많은 증거 나올 것” 


아시아를 비롯해 세계 11개국에서 180여명이 참가한 <1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 참여자들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공통적인 의견 중 첫 번째는 “당사자인 피해 생존자를 배제한 ‘2015 한일 합의’를 파기하고 진실 규명과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지난 2월 27일 유엔인권이사회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이 ‘2015 한일 합의’가 해결이 아니었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전한 점”을 들며,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지속적으로 이슈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전세계적 연대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 평화비 건립과 관련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국의 쑤즈량 교수 ⓒ일다(박주연) 


두 번째 과제는 “‘평화비 건립’을 계속 진행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를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국 상하이 사범대의 한중 소녀상이 2016년 10월, 건립되자마자 주 상하이 일본 외교관이 건립을 취소하라고 요구”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림비 설립과 관련해서도 샌프란시스코와 자매시로 맺어져 있던 일본 오사카시에서 반발하며 결국 자매결연을 끊은 점” 등의 사례를 봤을 때 “‘일본 정부가 왜 이렇게까지 반응하는가?’ 할 정도로 평화비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 번째 과제는 “일본군‘위안부’ 관련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이다. “지난 2015년 4월 23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공동등재를 위한 한국위원회’가 결성되어 활동해 왔다. 중국, 네덜란드, 대만, 일본, 필리핀, 인도네시아, 동티모르가 함께 참여하여 등재신청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의 방해와 압력으로 인해 2017년 10월 31일 보류 결정을 받았다.” 연대회의 참가자들은 “포기하지 말고 등재 운동을 계속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꼽은 과제는 “반전평화 연대활동, 교육의 필요성”이다. “전 세계 모든 분쟁 지역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성/젠더에 근거한 여성폭력 및 다양한 폭력을 방지하기 위한 반전운동, 평화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중국의 쑤즈량 교수는 “20년 전에는 믿지 않았던 위안소 설치의 증거 등 중국에서 계속 새로운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위안부 제도의 완벽성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많은 증거가 나올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많은 활동가와 연구자들 덕분에 새로운 증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초경도 하기 전인 12,13세 소녀들부터 20대 청년들에 이르기까지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겨우 살아남은 이들은 이제 80세가 훌쩍 넘었다. 국내에는 30여명의 생존자가, 중국은 다큐멘터리 <이십이>의 등장인물 22명 중 14명이, 대만에는 단 2명의 생존자가 남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생존자들에게는 정말 남아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생존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정확한 진실 규명, 일본 정부의 공식 인정, 그에 대한 사죄와 배상, 그리고 교육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필리핀 생존자 버지니아 빌라마 할머니는 “우리가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마지막 세대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내가 피해자”라고 외친 일본군‘위안부’의 미투(#MeToo)는 단지 자신의 경험을 밝히고자 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그만 끝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불행하게도 아직 끝나지 않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기 위한 과제가 우리에게 남아 있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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