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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피해자들 “왜 이제 와서 말하냐고 묻지 마라”
문화예술계 성폭력의 철저한 수사 촉구하는 기자회견
연극계의 거장이라 불리던 이윤택 연출가의 추악한 성폭력을 폭로한 피해자들과 공동변호인단이 철저한 경/검찰 조사를 촉구하며 ‘미투(#MeToo)운동 그 이후, 피해자가 말하다!’ 기자회견을 오늘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열었다.
이윤택 성폭력 피해자 16인과 공동변호인단 101인을 포함한 ‘문화예술계 내 공동대책위원회’(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한국성폭력상담소,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한국여상단체연합,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아동인권센터,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주최한 자리다. 이 자리에는 지난 2월 21일 연극인 긴급회의 이후 결성된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의 이산 활동가와 사건 당사자인 연극인 김수희, 홍선주, 이재령 씨가 함께했다.
▶ 이윤택 성폭력 사건에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고 피해자를 지지하는 피켓을 든 기자회견 참석자들 ⓒ일다(박주연)
하루만에 백여명 모인 공동변호인단 ‘사회를 변혁하자’
서혜진 변호사는 사건과 관련된 경과를 공유하며 “지난 2월 28일, 피해자 16인을 고소인으로 하여 서울중앙지검에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형사 고소장을 접수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공동변호인단 대표로 발언한 이명숙 변호사는 이 사건의 공동변호인단을 모집한다고 알리자마자 하루 만에 약 100명이 모였으며, 신입 변호사부터 30년 넘는 경력의 변호사, 그리고 약 30명의 남성 변호사들이 참여한 사실을 밝혔다. 이어 이 사건을 계기로 정말 사회 변혁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들이 많다고 말하며, 피해자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고 발언했다.
“미투 운동을 통해 피해자들이 폭로하는 것에 대하여 앞 다투어 보도하는데 많은 힘을 쏟지 마시고, 피해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집중해 주셨으면 좋습니다.”
언론을 향해서도 이렇게 조언을 한 이명숙 변호사는 “공소시효가 끝나서 처벌이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꼭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문제는 처벌이 되느냐 안 되느냐가 아니라 “현재 수사기관인 경/검찰에 충분한 수사 인력이 있는지, 성폭력 담당 전문가가 있는지 그런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조두순 사건 있었을 때 국회에 100개 이상의 법안이 발의되었지만 결국 통과된 건 5개도 안 된 걸로 알고 있다”며,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논의한 제대로 된 ‘이윤택특별법’을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보람 변호사는 “피해자들에 대한 협박 및 강요에 대해서 민형사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히며”, 앞으로 상습적인 성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와 공소시효 폐지를 위한 위헌소송 등 다양한 활동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겪고 있는 2차 피해 심각해”
기자회견에 함께한 여성운동가들은 피해자를 지지하며 미투 운동 이후 무엇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미경 소장은 “형법에서는 아직도 현저히 저항이 불가능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 있어야만 강간죄로 인정하고 있어 2차 피해의 위험이 크다. 이런 2차 피해를 근절하고 예방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소리 높였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배복주 상임대표도 2차 피해가 피해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주변인들로부터 ‘참으라’, ‘잊으라’, ‘너도 책임 있다’라는 말 때문에 침묵을 강요당하고 어렵게 신고를 하면 ‘왜 이제 와서 신고했느냐’, ‘왜 거부하지 않았느냐’. ‘왜 도망가지 않았느냐’고 질문하는 수사.사법기관의 의심에 또 다시 좌절한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이산 활동가는 “피해가 있다고 알려진 극단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만으로 고용 상 불이익을 당하는 상황이 벌써 발생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발언 중인 김수희씨(왼쪽은 이명숙 변호사, 오른쪽은 홍선주, 이재령씨) ⓒ일다(박주연)
피해자들이 세상을 향해 외치는 목소리
마지막으로 발언에 나선 피해자들은 정말 힘들게 말문을 열었지만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전달했다.
■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묻지 마라
“미투 운동으로 어렵게 말을 꺼낸 후, ‘그동안 왜 말하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대답은 ‘그 때는 말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고발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캐스팅에 제외되거나, 정신이 이상하다는 공개적인 모욕을 듣고 더욱 힘든 스탭 일로 내쳐졌습니다. 이런 상황들이 되풀이 되는 걸 지켜보면서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체념하고 포기하고 또 다시 고립되었습니다. 그리고 반항하거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거대한 힘 앞에서 저의 무력함을 깨달았고, 혼자 고뇌하고 아파하며 괴로워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저는 극단을 나왔습니다.” (이재령)
“왜 이제서야 말하냐 묻지 마시고… 이제라도 말해줘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세요. 주목 받고 싶었냐고 묻지 마십시오. 이런 일로 주목 받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홍선주)
■ 용기를 내달라, 하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
“아직도 저희의 행동을 지켜보며 망설이고 있는 많은 피해자 분들이 계신 걸 압니다. 괜찮습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용기 내 주세요. 잘못한 이는 벌을 받고 희망을 품은 이는 기회를 맞을 수 있게, 노력하고 그 결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세상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 용기 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대 잘못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일상은 너무나 소중하며 나를 사랑해 주는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이 가장 중요합니다. 많이 응원해 주시고 끝까지 지켜봐 주시면 됩니다. 고통 받으신 많은 분들과 함께 그 분들을 대신해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김수희)
■ 우리의 열정을 지켜달라
“피해자들을 만나러 전국을 다녔습니다. 그들이 하는 공통적인 말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연극을 지키고 싶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연희단거리패에서 성폭력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우리가 다시 그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까?’ 하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그 기억도 지키고 싶습니다. 동료, 후배님들 힘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재령)
▶ 미투 운동으로 폭로된 성폭력 사건에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는 피켓을 든 기자회견 참석자들 ⓒ일다(박주연)
때로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지만 오늘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은 단지 ‘피해자’만은 아니었다. 용기 있는 고발자이며, 자신들의 꿈과 열정을 품고 있는 멋진 예술가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와 후배들을 염려하며 깊은 동지애를 지닌 동료임을 보여주었다.
이재령씨의 ‘우리의 열정’에 대한 발언은, 이 성폭력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은 고소를 진행하는 16명의 피해자뿐 아니라 연극에 대한 사랑과 열정, 꿈 그리고 동료를 잃은 많은 연극인과 관객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성범죄를 ‘사적인 연애 문제’로 치부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편협한 일인지를 짚어주는 발언이기도 했다.
기자회견 참여자들이 반복했던 발언대로 이제 우리 사회는 “우리 모두가 가해/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미투(#MeToo) 운동으로 폭로된 성폭력 사건들은 철저히 조사되어야 하며, 형사처벌을 받느냐 마느냐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힘써야 한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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