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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사회적 흐름!
“이게 나라냐! 우리는 달라진 세상을 원한다”
지난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조직 내 성폭력을 고발한 뒤 문단과 연극계, 영화계, 만화계를 비롯한 문화예술계와 종교, 학교, 정치, 언론 등 사회 다방면에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른바 미투(MeToo) 운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운동계는 ‘이제 정말 변화해야 할 때’라며 사회구조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 2월 23일 저녁 신촌 유플렉스 앞 광장에서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발언대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 ‘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 참가자들이 쓴 손피켓들 ⓒ일다(박주연)
2월 26일 저녁 7시 서울 종각역 마이크임팩트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미투(MeToo)운동 긴급 토론회”는 미투 운동의 파급력을 진단하고, 향후 전망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여성들은 늘 말해왔다
“지금의 (미투) 운동은 새삼스런 것이 아니다.”
이나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들은 계속해서 말해왔다’며, 한국 여성운동의 역사와 반성폭력 운동의 세월을 살펴보라고 말했다. “길게는 일제 강점기부터, 짧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기, 더 최근에는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지속적으로 당연하다고 여겨진 관습에 의문을 던지며 차별적 구조에 저항하고 시대를 거슬렀던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는 것.
“한샘 성폭력 사건을 보면서 놀랐던 건,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주체가 등장했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이런 사건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여성이 생겼다는 게 놀라웠어요.”
권김현영 여성주의 활동가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2003년에 ‘1회 성폭력 생존자 말하기 대회’를 진행했던경험을 이야기하며, 현재의 상황을 반성폭력 운동의 흐름과 연결시켰다.
“서지현 검사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성은 저 정도 권력을 가져도 성폭력에 대응할 수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분노했지만, 서지현 검사가 한 말에 위로를 받았어요. ‘내 잘못이 아니라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그동안의 페미니즘 운동과 반성폭력 운동이 그래도 피해자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 2월 26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열린 “#미투(MeToo)운동 긴급 토론회” 패널들 ⓒ일다(박주연)
미투 운동의 파급력, 저변을 움직이고 있어
“미투 운동을 공작이나 진영 논리라고 하는 걸 보면 웃음이 난다. 지금 그럴 때가 아니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미투 운동에 대해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이라고 말하며, 음모론을 꺼내는 일부 여론에 대해 꼬집었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단체 회원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며, 지금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 어디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야기했다.
“회원 분이 설 연휴 동안 고향에 내려갔는데, 그 마을 85세 할머니들이 미투 이야기를 하더래요. 동네 한의사가 치료한다는 명목 하에 여성노인들을 성추행한 거죠. ‘그게 뭔지 몰랐는데 이 얘긴가 보다’ 이러면서.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 분들이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된 거죠.”
단순히 ‘나쁜 짓’ 혹은 ‘철없는 행동’이 아니라 그것이 성범죄임을 깨닫게 된 시골 여성노인들의 이야기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저변을 바꾸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
이나영 교수는 지금 여성들의 움직임이 “미안한 감정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을 넘어 결의의 감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투 운동의 확산은 특수한 사건이나 피해자에 대한 개별적인 응원이 아니라, ①여성들이 자신의 경험과의 연결성을 인지하고 ②자신이 겪은 고통에 대해 환기하고 이를 커밍아웃하며 ③그동안의 무지와 무책임에 대해 자각하고 반성하면서 ④변화를 위한 다짐으로 나아가는 서사구조를 가졌다고 이나영 교수는 분석했다. 나아가 여성들은 각성을 넘어 이제 행동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다.
여성예술인들, 가해자만이 아니라 ‘구조’가 바뀌어야
연출가 이윤택을 비롯해 유명 극단 대표, 기획자에 의한 끔찍한 성폭력 사건들이 연이어 밝혀지며 혼란에 빠진 연극계에서는, 미투 운동에 참여하고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이라는 모임을 꾸려졌다.
오성화 연극기획자는 21일 수요일 저녁, 약 150명의 연극인이 모여 밤샘 토론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논의했다고 밝혔다.
▶ 연극인 성폭력 제보 및 상담을 위한 피해신고센터 안내문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페이스북 페이지
“연극계는 국립, 시립극단 소속이 아니고선 극단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어떤 공연에서는 내가 연출자 또 다른 공연에서는 내가 배우, 이런 경우들이 있어서 피해/가해의 상황이 혼재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오성화 기획자는 이어 “예술 지원 사업을 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그런 지원금을 받아서 관리하는 사람에게 많은 권력이 집중되는 구조”라고 말하며, 연극계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와 밀접하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 측은 내부 성폭력 예방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 부처와도 만남을 가졌으며 앞으로 대안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발언 중인 신희주 감독과 오성화 연극기획자 ⓒ일다(박주연)
한편, 2016년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이후 문화예술계에서 반성폭력 운동을 펼쳐오고 있는 여성문화예술연합도 이 자리에 함께했다. 신희주 감독은 지난 1년의 활동을 발표하며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안한 정책제안서를 보여주었다. (관련기사: 여성예술인들, 문체부에 ‘성폭력 전담기구’ 요구 http://ildaro.com/7770)
여성문화예술연합은 정부 차원에서 ‘예술분야 성폭력 실태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하며, 진상조사위원회를 포괄하는 문체부 내 대책위 설립을 제안했다.
신희주 감독은 “미투 운동은 촛불을 들고 민주주의를 외쳤던 것의 연장이 아니라, 촛불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여성들의 분노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강간문화를 부수고자 하는 이 거대한 목소리를 듣고, 정부 부처가 적극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다
성폭력 문제에 적극 대응하지 않고 방치해온 책임이 정부에게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에 접수된 직장 내 성희롱 진정 사건은 2012년 249건에서 2016년 556건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검찰 기소 건은 지난 5년간 9건에 불과하며, 시정 조치도 대부분 행정종결(진정 취하 또는 시정 완료)됐다.
김명숙 한국여성노동자회 노동정책국장은 “관계 부처의 변화가 급선무”라며 특히 “민간 부문은 전적으로 고용노동부 소관임에도, 제대로 대응하고 있지 못한 점”을 비판했다. “가해자 처벌, 피해자 보호와 불이익 조치 금지, 성차별 조직문화 개선 등 관련 업무에 대한 철저한 이행”을 통해 고용노동부가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심각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미투(MeToo)운동 긴급 토론회” 패널들은 정부 부처가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제대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여성가족부 뿐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역할을, 노동계에서는 고용노동부의 역할을 강조했고, 이나영 교수는 ‘페미니즘 교육 필수화’를 언급하며 교육부의 역할을 짚었다. 나아가 예산을 분배하는 기획재정부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법제도 개선에 있어서는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현행법은 허위가 아닌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성립될 수 있다)를 폐지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를 순식간에 가해자로 만들고 입을 다물게 만드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피해자를 가장 크게 괴롭히고 범죄 고발을 주저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 2월 23일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한 발언대 <달라진 우리는 당신의 세계를 부술 것이다 - ‘강간문화’의 시대는 끝났다> 피켓 문구를 쓰는 시민들 ⓒ일다(박주연)
무엇보다 참가자들은 ‘강간문화’를 용인해 온 사회규범을 변화시키고, 개인도 변화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이나영 교수는 “우리는 구조적인 부정의 재/생산 회로를 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여성문제가 아니라 남성문제라는 새로운 명명 작업을 통해 프레임을 전환”하자고 주장했다.
약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는 웃음도 있었고 울음도 있었고 분노도 있었다. 그리고 뜨거운 열기의 외침이 있었다. “이게 나라냐! 우리는 달라진 세상을 원한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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