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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말한다, 이제는 들어라”
#MeToo #WithYou 거리로 나온 여성들이 외친 것
1908년 뉴욕시, 약 1만5천명의 여성들이 행진을 하며 ‘근무 시간 단축’과 ‘더 나은 임금’ 그리고 ‘투표할 권리’를 외쳤다. 1917년에는 3월 8일에, 전쟁 중이던 러시아의 여성들이 ‘빵과 평화’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참고: 유엔 세계 여성의 날 안내 http://un.org/en/events/womensday/history.shtml)
뉴욕 여성행진으로부터 110년이 지난 2018년 3월 8일 세계여성의날을 맞은 한국의 여성들은 오후 3시 광화문광장에서 조기퇴근시위를 벌이며 ‘근무 시간 단축’과 ‘더 나은 임금’을 외쳤다.
▶ 3월 7일(수)에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주최한 ‘여성의날 기념 토크쇼’에서, 한 참가자가 작성한 ‘이제는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그림 및 문구 ⓒ일다(박주연)
무엇보다 여성들은 현재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미투’(#MeToo)와 ‘위드유’(WithYou)를 함께 외쳤다. 많은 이들이 ‘미투’(#MeToo)에 대한 각자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성폭력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이 바뀌기를 원하는지’를 소리 높여 주장했다.
바로 그 이야기들, 3월 4일(일) 광화문에서 열린 34회 한국여성대회와 3월 7일(수) 서울여성가족재단에서 열린 ‘여성의날 기념 토크쇼’, 그리고 3월 8일(목)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열린 ‘페미 퍼레이드’와 3월 9일(금) 국회의원회관에서 있었던 ‘이주여성들의 MeToo 간담회’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외침을 모아 전한다.
학교와 직장, 집과 온라인까지 안전한 곳은 없다
사람들은 생애주기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끔찍한 경험이 있다. 바로 성폭력이다. 학교에 다닐 때도, 직장에 들어가서도, 취미 생활 혹은 자기계발을 위한 모임 활동을 하다가도, 심지어는 집에서도 겪는다. 이제는 사이버 공간에서도 그 악몽이 이어지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담임 교사인 남성 교사가 나를 함부로 안고 무릎에 앉히는 등 1년간 성추행을 했습니다. 주변 교사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무시당했고 ‘설마 선생님이 그러시겠어?’라는 답변만 들을 뿐이었습니다. 청소년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반드시 참정권이 필요합니다.” <이은선 학생, 제34회 한국여성대회>
“교수가 무슨 성추행을 당하겠냐 싶으시겠지만 그런 상황을 겪게 됩니다. 우리 나라 여성들은 과장이 되면 부장한테 당하고, 부장이 되면 전무한테 당하고, 사장이 되면 회장에게 당합니다. 이런 권력형 성폭력이 만연해 있지만 아직 법과 제도가 부족합니다. 피해자가 성폭력에 대한 고발을 한 후에도 노동권과 생존권을 보호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해당 조직은 가해자를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조직 내 성폭력 피해자에게 피해에 대한 보상을 하는 등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남정숙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 34회 한국여성대회>
▶ 3월 4일(일)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34회 한국여성대회 ⓒ일다(박주연)
“저는 성교육 교사인데, 교육을 갔다가 성희롱을 당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특히 남고 갔을 때 그런 경우가 있어요. 한번은 어떤 남고를 갔는데 거기 교사가 ‘얘들아 성교육 시간이다. 예쁜 선생님 오니까 좋지?’라고 소개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학생들은 ‘선생님 (성관계) 해 봤어요?’이런 질문을 하고 ‘선생님 때문에 성교육이 안 될 것 같아요’ 라고 하는 거죠. 이제는 이런 일이 좀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발언자A, 여성의날 기념 토크쇼>
“저는 돌봄과 안정적인 삶을 보장 받았어야 할 가정에서, 친오빠한테서 성폭력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가족 안에서만 쉬쉬하고 다른 사람들은 몰라요. 저는 성폭력 피해자이자 생존자이고 제가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저라는 사람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말해야 하는데 친족성폭력이다 보니까 용기 내서 말하기가 무서워요. 지금도 이런 성폭력 피해자 분들이 ‘왜 도망치지 않았냐?’ 라는 질문을 받으면서 2차 피해를 당하고 있는데, 저는 도망칠 곳이 없었거든요… 이제는 피해자한테 질문하는 사회가 아니라 가해자한테 ‘왜 그랬냐? 그러지 말았어야 하지 않냐?’고 묻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용기 냈던 것처럼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같이 이겨내고 바뀔 사회를 기다려 봐요.” <발언자B, 페미 퍼레이드>
“4년간 사귄 전 남자친구가 이별에 앙심을 품고 텀블러 등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저를 사칭하는 계정을 만들고 제 신상 정보를 올렸습니다. 제 얼굴 사진과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을 합성하여 올리거나 ‘하룻밤 상대를 구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신고를 하려고 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오히려 섣불리 신고했다가 역고소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사이버 성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아져야 이런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제 피해는 아직 현재진행중입니다.” <발언자C, 34회 한국여성대회>
▶ 3월 8일(목) 저녁, 최근 결성된 페미니스트 모임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한 ‘페미 퍼레이드’ 자유발언대. ⓒ일다(박주연)
미투 운동으로 밝힐 수 없는 사건들도 많아
여자‘아이’부터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여성, 피해 고발이 자신의 생존과 바로 직결되는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부터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권력을 가졌다고 생각되는 여성까지. 그 누구도 피해가지 못한 성폭력의 경험들이 쏟아져나왔다.
“저는 제가 어렸을 때 겪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강원도 홍천, 그 중에서도 굉장히 인적이 드문 시골에 살았어요. 초등학교도 걸어서 30분이 걸리는 곳을 다녔는데요. 그 초등학교 통학 길에 있었던 사건들을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한 번은 2차선 도로 건너편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어떤 중년의 남성이 절 불러 세웠어요. 그리고 했던 말이 '얘, 보지 좀 보여줄래?'였습니다. 전 그 사람의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신고를 할 수 없지만 그 사람이 가해를 했다는 사실은 분명하죠. 아마 경찰에 신고를 했다고 하더라도 경찰이 오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을 거예요. 이렇게 경찰 행정의 보호를 받기 어려운 지역이 있고 그리고 그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여자아이들도 살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으로 밝힐 수 없는 이런 사건들도 있다는 걸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발언자D, 페미 퍼레이드>
“전 저를 당당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런 성추행과 성폭력에서 자유롭나요? (참가자들: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단지 우리가 가슴이 있고 보지가 달렸다는 이유만으로 많은 남성들이 우리를 늘 만지려고 하고 우리를 단지 생물학적인 여자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회가 미투 운동을 계기 삼아서 뿌리부터 바뀌었으면 합니다.” <발언자E, 페미 퍼레이드>
▶ 3월 4일(일) 열린 34회 한국여성대회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스에 있던 ‘시민들의 포스트잇 발언’ ⓒ일다(박주연)
성폭력을 겪는 이주여성들에게도 '위드유'를…
“제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지원한 사건 중 하나를 이야기하겠습니다. 피해자 여성은 캄보디아에서 취업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지 2달 밖에 되지 않았을 때 사장이 데려가는 곳이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갔다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피해자는 법에 대해서 잘 몰랐고, 무엇보다 권력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과의 재판 과정에서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현재 한국의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면 사업주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사업주의 동의 없이 사업장을 이탈하면 불법체류의 신분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업주를 대상으로 한국어도, 법도 잘 모르는 피해자들이 고소, 고발을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이런 환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시고, 대책이 마련되길 바랍니다.” <캇소파니, 캄보디아공동체, 이주여성들의 MeToo 간담회>
“20년째 경찰생활을 하고 있는 경찰입니다. 저는 후배 여경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가해자인 순경을 고발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지구대장은 ‘너 때문에 성과점수 꼴찌를 받게 됐다’고 질책했고, 가해자는 저의 신상 정보를 경찰 조직 내에 유포하거나 ‘꽃뱀’으로 몰고 갔습니다. 경찰조직에 남아있는 악습들, 성범죄에 대한 남성들의 폐쇄적인 시각, 2차 피해가 무엇인지 모르고 가해자가 큰 소리를 내는 잘못된 성문화 등이 우리 사회가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라도 제가 사랑하는 대한민국 경찰조직이 민주경찰로 거듭나길 바랍니다.” <임희경 경위, 34회 한국여성대회>
많은 여성들의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가해자가 유명인이라서, 눈에 보이는 거대한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 권력 속에서 괴물이 되어버린 사람이라서, 그들이 특별해서’ 여성들이 ‘미투’(#MeToo)를 외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해자들은 너무나 흔한 ‘일상 속’에 있다.
▶ 3월 8일(목) 당일 열린 ‘페미 퍼레이드’ 행진을 하고 있는 참가자들 ⓒ일다(박주연)
100년 전 러시아에서 ‘빵과 평화’를 외쳤던 여성들이 요구한 건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생존이었던 것처럼, 2018년 한국의 여성들도 ‘미투’(#MeToo)를 외쳤다. 너무나 많고 흔한 성폭력 속에서 ‘그래 나도 당했어’라고 말한 게 아니라, ‘우리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 함께 사회를 바꾸자’고 외친 것이다. (박주연)
“내가 말한다. 너는 들어라.
우리가 말한다. 이제는 들어라.
우리는 여기서 세상을 바꾼다.
우리는 여기 있다. 너를 위해 여기 있다.”
- 페미 퍼레이드 행진 중에 참가자들이 외친 구호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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