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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청년’들의 마음건강은 어떨까?
성남 일하는학교, 청년 3백명의 마음건강 실태조사 발표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들의 노동 환경과,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생활하는 청년들의 의식주 환경을 보고했던 ‘일하는학교’에서, 이번에는 일하는 청년들의 마음건강 상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일하는학교’는 경기도 성남 기반으로 일하는 청년들, 특히 소외된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일하는 청년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이들이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불안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에 주목하여, 2017년에는 시민건강증진연구소와 함께 9월부터 11월까지 ‘청년 마음건강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 일하는학교와 시민건강증진연구소가 진행한 ‘청년 마음건강 실태조사’ 참여자의 특성
우울위험군 ‘여성’ ‘30~34세’ 비율 높아
조사 참여자는 성남에 거주하는 만19세부터 만34세까지 일하는 청년 3백명(여성 194명, 남성 106명)이고 평균 연령은 24.4세였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43.3%, 비정규직은 53.9%였고, 평균 임금 소득은 146.9만원으로 작년 최저임금인 135만원에 비해 약간 높은 정도였다.
채무가 있다고 응답한 청년은 93명이었으며, 평균 채무액은 482.4만원이었고 1천만원 이상인 비율이 37.6%로 가장 높았다. 그에 반해 저축은 월 저축액이 없다고 답한 청년이 36.7%나 됐고, 51~100만원 이하가 21.2%, 21-50만원이 19.5% 순으로 나타났다.
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마음건강 상태를 알아본 결과, 우울위험군은 응답자의 33.7%, 여성청년이 38.1%이고 남성청년은 25.5%로 여성 비율이 높았다. 여성은 세 명 중 한 명이 우울위험군이라면 남성은 네 명 중 한 명이 우울위험군인 수준이다. 우울뿐만 아니라 자살 생각의 비율도 여성이 높았다. 일에 대한 직무소진과 직무스트레스 위험군 또한 여성 비율이 높았다. 연령대로 봤을 때는 30~34세에서 우울위험군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 성별과 마음건강 결과 표 (출처: 일하는학교,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아프니까 청춘이다? 청년들이 아픈 진짜 이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알바를 비롯해 다양한 일을 계속해 온 청년들, 그들의 마음을 조금 더 세부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일하는학교’는 스무 명의 청년들과 심층 면담을 진행했다. 청년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한 것은 우울, 압박감, 불안감, 무력함, 불면증, 자살생각 등이었다.
구직 활동을 하면서는 불안감과 압박감에 시달리고, 취업을 하고 난 뒤에는 노동 현장에서 갑질, 성희롱 등의 차별을 겪어 우울과 무력함을 느끼고, 과도한 노동 시간으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외로운 혼자만의 분투를 하게 된다. 이런 현실이 결국 불면증 혹은 신체 건강의 이상, 그리고 자살에 대한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즘에는 돈이 밀린 것도 있고 그래요?) 네, 월세랑 후불 교통카드. 야간 일을 하고 그거를 채우거나 아무튼 일하고 잠깐 쉬고 풀로 해 가지고 돈을 채워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 갖고 그게 안 돼요. 밀리면 안 되는데…” (22세 여성)
“제가 지금 구직 상태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나 카카오톡 프로필 보면 딴 사람들은 잘 살고 있을 때 ‘얘는 잘 살고 있는데. 나는?’ 그런 거 느껴요.” (25세 여성)
“높은 설산 위에 성이 있는데요, 아이젠이 없어요. 그래서 바라만 봐요. 설산 위에 성이 있는데 그 쪽을 가면 그 성이 제 꺼가 될 수 있어요. 근데 아이젠이나 패딩이나,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장비들이 없어서 올라갈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그런…” (23세 남성)
“제가 건강이 나빠지고 있는데 병원에 못 가겠는 거예요. 내시경 받으라고 하겠지, 나보고 생활습관을 이렇게 바꾸라고 하겠지, 커피 마시지 말라거나 술 마시지 말라거나. 근데 그런 걸 하나씩 제하다 보면 버틸 수 없을 거라는 그것 때문에 그래서 건강 문제를 아예 치워 버렸어요. 그냥 이렇게 아프게 살지 뭐 하고. 그게 좀 서러운 거 같아요.” (23세 여성)
가족은 안식처다? 가족이 부담스러운 청년들
흔히 기댈 곳은 그래도 가족뿐이다, 가족이 있어서 다행인 줄 알라는 등의 말을 접하곤 한다. 가족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는, 그러니까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한다는 결혼, 출산에 대한 압박과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가족이란 다 그런 것일까?
가구 형태에 따른 마음건강 위험군 비율을 살펴보면 1인가구와 1인가구 외의 형태에서 살고 있는 청년들의 마음건강 사이에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1인가구가 아닌 가구 형태에서 위험군이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 가구 형태와 마음건강 결과 표 (출처: 일하는학교,시민건강증진연구소)
심층 면담에 참여한 청년들은 가족에 대한 부담과 불편을 토로하기도 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청년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억지로 지고 있었고, 가족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심지어 폭력 상태에 놓여있는 경우도 있었다.
“제가 돈을 벌면 제가 제대로 써본 적도 없고 그리고 나를 먼저 생각하기 전에 항상 가족을 먼저 생각해야 했었고. 뭔가… 이번 해에는 그게 목표였는데…” (24세 여성)
“태생을 (바꾸고 싶어요). 그러면 일단 살아가는데 덜 피곤하지 않았을까? 일단 돈이 제일 크고. (중략) 집 안에서 뭔가를 제가 원하는 걸 할 수가 없어요. 술도 못 마셔요. 짧은 바지도 못 입게 하고 그런 것도 있어요. 입을 때 마다 욕하시죠.” (22세 여성)
“계속 (무조건 선생님, 공무원 하라고). 아니면 아무데나 그냥 공장 가 이러고. 그런 거 할 바에는 돈이나 벌어서 집안 살림에 보태라는 이런 느낌이어서. 그런 거에 대한 압박이 굉장히 크죠. 가뜩이나 그런 거 옆에서 푸쉬 안 해도 저도 죽을 거 같은데, 매일매일 그러니까.” (27세 여성)
“아빠를 가정폭력으로 고소하고 집을 나오면서 살게 됐는데 다른 가족들이랑도 연락이 끊기면서 그 집이 제 집이 되어버렸죠. (빈집에 살지 않고 지금 고시원에 살고 있는 이유는) 거기가 너무 불행의 상징이 되어버렸어요.” (23세 여성)
청년들끼리, 그리고 다른 세대와 ‘소통’이 필요해
마음건강 실태조사에 참여하고, 지난 15일 저녁 수내동 카페온에서 열린 결과 발표회 자리에도 참석한 청년들은, 공통적으로 ‘청년들끼리 혹은 다른 세대와 소통의 장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 2018년 1월 15일 저녁 7시, 성남 수내동 카페온에서 열린 '청년 마음건강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 ⓒ일다(박주연)
한 여성청년은 “조사에 참여하면서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해서 더 세부적으로 알게 되었고, 또 그것과 관련해서 소통하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힘을 낼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또, 실태조사를 진행한 한 남성청년은 “청년들의 위한 많은 제도들이 청년들에게 닿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많은 청년들이 자신들을 위한 어떤 제도가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발표회 자리에서는 고용노동부가 진행 중인 취성패(취업성공패키지) 제도의 부족한 지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취성패를 하게 되면 지원금을 받지만 알바를 못하게 되는데, 그 지원금으로 생활을 할 수는 없거든요. 제도적인 모순이 있는 것 같아요. (※2018년도 취업성공패키지 업무 메뉴얼에 따르면, 근로시간이 주 30시간 미만이어야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알선해 주는 직업들이 정말 당사자를 고려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많았어요. 아무 일자리나 던져주는 느낌이랄까. 상담 서비스도 있는데,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었지만 ‘친구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라’는 등의 너무 빤한 이야기를 해서 실망이었어요. 상담 요청하는 사람한테 주변인이 없을 수도 있는데, 그러니까 상담을 받으러 온 걸 수도 있는데… 그런 말을 하셔서 좀 그랬어요.”
일하는 청년들은 자신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적극적으로 이야기했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청년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라며 토닥거리는 사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프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그 삶을 든든하게 해 줄 제도를 제공하는 사회가 필요하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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