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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남녀 패널 하차, 젠더-언론-교육의 문제

은하선 작가 하차 통보한 EBS에 각계 한목소리로 항의



여성단체, 언론단체, 성소수자 단체, 교육단체가 EBS 앞에 모였다. 국내 최초 젠더토크쇼를 표방한 EBS 프로그램 ‘까칠남녀’가 페미니스트이자 성소수자이며 섹스칼럼니스트인 은하선 작가를 패널에서 하차시킨 것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22일 오전 11시 EBS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EBS는 은하선 작가의 하차통보를 즉각 철회하라’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까칠남녀’ 패널 하차 사태가 젠더와 섹슈얼리티 차별, 언론의 공공성과 교육 문제까지 얽혀있는 심각한 사안이라는 걸 보여준다.


▶ 1월 22일 오전 11시 EBS 사옥 앞. 은하선 작가 하차 통보 철회를 요구하는 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일다(박주연)


민원에 의한 패널 하차? 그 전말은


젠더와 페미니즘을 둘러싼 다양한 논의를 해 보겠다는 의도로 만들어진 프로그램 ‘까칠남녀’는 작년 3월 첫 방송 이후 여러 주제를 다루며 화제를 몰고 왔다. 그간 방송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던 청소년의 성적 결정권, 여성혐오와 성희롱 문제, 노브라, 겨털 등의 주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호평을 받았다. 인권교육 자료로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 나왔다며 반기는 목소리도 있었다.


작년 12월 25일과 올해 1월 1일, 연이어 방송된 성소수자 특집 또한 성소수자의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든 포장하지 않고 당사자의 목소리를 반영해 생생히 보여준 점이 돋보였다. 하지만 방송 이후 보수 기독교 성향의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교육방송에서 어떻게 성소수자를 다룰 수 있냐’, ‘성소수자를 미화했다’며 항의하기 시작했고 폐방 요구 시위를 벌였다. 그리고 지난 13일, EBS는 프로그램의 주요 패널인 은하선 작가에게 하차를 통보했다.


교육방송이 혐오세력의 요구에 굴복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EBS는 패널 하차 조치가 성소수자 탄압이 아니라, 제기된 민원을 확인한 결과 은하선 작가가 공영방송인 EBS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 민원의 내용은, 은하선 작가가 성소수자 특집 방송 이후 제작진을 향해 쏟아진 항의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퀴어문화축제의 후원하는 번호를 제작진의 연락처라며 올린 것이 사기라는 것. 그리고 은하선 작가가 2016년 1월에 SNS 계정에 십자가 모양의 딜도(dildo) 사진을 올린 것이 기독교를 조롱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①젠더와 섹슈얼리티: 마녀사냥 중단하라


▶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EBS가 공영방송으로서 역할과 책임을 저버렸다고 비판했다.   ⓒ일다(박주연)


EBS의 입장에 대해, 여성단체들은 18일 논평을 통해 반론을 제기했다. 은하선 작가가 퀴어문화축제 후원번호를 알린 것은, 성소수자 혐오세력이 까칠남녀 제작진의 개인 연락처로 폭력적 언사를 반복한 것에 대한 대항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EBS가 ‘사기’라고 단정하여 하차 결정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한 ‘까칠남녀’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이야기해 온 은하선 작가가 십자가 모양의 딜도 사진을 게시한 것을, 왜 EBS에서 패널 하차 사유로 삼는지 되물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도 17일 논평을 통해, EBS가 ‘출연진 결격 사유’를 이유로 하차의 입장을 밝힌 것은 ‘성소수자 차별’이자 ‘혐오세력에 대한 굴복’이라고 짚었다. 퀴어문화축제 후원번호 건에 대해서는 이미 EBS가 구두경고 조치를 한 바 있고, 딜도 사진은 은하선 작가가 ‘까칠남녀’를 출연하기 훨씬 전인 2016년에 게시한 것이라는 사실도 언급했다. 그러다가 성소수자 특집 방송 직후의 제보와 민원에 의해 패널 하차 결정을 했다는 것은, 성소수자 혐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다.


EBS 사옥 앞에서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QUV 연지현 부의장은 “퀴어문화축제 후원번호 게재 건은 혐오를 행하려고 했던 사람들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이었으며, 그 일은 은하선 작가가 그만큼 외부로부터 많은 차별과 공격을 받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야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하차 결정은 그저 부담스러운 성소수자 쳐내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집행위원장도 “성소수자 바이섹슈얼이자,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독립적이고,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성적 욕망에 솔직하고 당당한 여성을 하차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있는 그대로 마녀사냥에 부응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②언론: 제작권 침해, EBS는 공영방송 자격있나


언론개혁시민연대 김동찬 사무처장은 이번 일이 ‘촛불 이후에 들어선 방송 체제에서 발생한 가장 충격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10년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에서 지체된 공영방송의 역할을 상기시켰다.


“아시다시피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의 공영방송은 심각한 발전 지체를 거듭해왔습니다. 성장하는 시민의 생각을 반영하지도 못했고, 다양한 인권 담론을 수용하지도 못한 채 구시대적인 국가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도구로만 이용되어 왔습니다. (중략) 만약 여기서 우리가 멈춰버린다면, 우리가 그 동안 외쳐왔던 공영방송 정상화라는 범위는 겨우 이 정도 수준에서 멈춰버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 문제가 성소수자 인권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앞으로 펼쳐나가야 할 공영방송의 정상화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를 가늠하는 아주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김동찬 사무처장은 소수자 차별과 혐오가 행해질 때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역할이라며 “지금 언론에서 은하선 작가의 자질, 자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금 EBS 장해랑 사장이 공영방송 사장으로서 적절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그것을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


나아가 이번 사태가 프로그램 제작진들과 협의 없이 ‘윗선’에서 결정된 것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지난 10년간 언론노동자들이 언론 자유와 제작 자율성을 외쳐왔다는 것을 밝히며, 이번 사태를 ‘제작 자율성의 침해’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가)페미니즘교육실현을위한네트워크,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전교조 여성위원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등 기자회견 공동주최 단위가 ‘은하선 작가 하차통보 철회 요구서’를 EBS에 제출했다. ⓒ일다


③교육: 교실 안에도 페미니즘이 있다!


기자회견에서 초등성평등연구회 소속 교사라고 밝힌 참가자가 이번 사태를 보면서 ‘교실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불평등 사례와 유사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발언했다.


현재 교실에서는 동성애 반대가 아니라 동성애자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다.


“어떤 페미니스트도 혼자서는 나아갈 수 없습니다. 페미니즘을 교실에서 주장하면 직장을 잃을 수도 있구나, 나의 밥그릇이 뺏길 수도 있구나, 나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구나 하는 언론들만 보게 된다면 선뜻 함께 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함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해당 교사는 페미니스트 선생님으로서 겪은 경험을 이야기하며, 늘 힘든 일만 겪는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학교에서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교사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학부모님들이 있습니다. 같은 세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시민으로서, 지지와 연대를 보내주시는 학부모님들이 존재합니다. 여성혐오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자정 작용을 교실 안에서 하고 있는 남학생과 여학생이 공존하고 있는 곳이 바로 교실입니다. 그런 것들이 마치 없는 것처럼, 교실은 여성혐오에 찌들어 있는 것처럼, 이런 것을 타개하려고 하는 교사들이 핍박만 받고 있는 것처럼 비추는 것,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폄하하지 말고 목소리를 막지 말아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성소수자 혐오세력과는 달리, 이번 기자회견 참여자들은 ‘까칠남녀’의 폐방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까칠남녀가 지속되고 본래의 목적대로 더 많은 목소리를 반영하기를 희망했다. 기자회견 공동 주최 단위들은 은하선 작가의 하차 통보를 철회하라는 요구하는 담은 민원을 EBS에 전달했다. 이 민원에 대해 어떤 결정을 할지는 공영방송이자 교육방송인 EBS에 달렸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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