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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여, 세상을 바꿀 시간이 되었다!

미투(#Me too) 운동이 타임즈업(Time’s up)의 결실을 맺기까지



2017년 10월, 뉴욕타임즈를 통해 할리우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다. 이어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에 ‘성희롱이나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는 여성들은 #미투(#Me too: 나도 겪었다)를 써 주시길 바랍니다. 이 행동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라는 글을 띄우면서 미투(Me too) 캠페인이 시작됐다. (참고 기사: 용기 있는 고발이 할리우드를 흔들다)


▶ #미투(Me too) (출처: Pixabay) 


#미투(Me too)는 순식간에 미국 전역으로 퍼졌고, 세계 곳곳의 여성들이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영화, 방송, 언론, 정치 영역에서 활약해 온 남성들을 성희롱/성폭행의 가해자로 고발했으며, 다양한 노동 현장에서 고발이 이어졌다. 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냈고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경각심과 변화를 촉구했다.


현재까지 약 세 달 동안 #미투(Me too) 운동은 다양한 논쟁의 중심에 있었다. 어떤 결실을 바라는 많은 이들의 희망을 담은 격정적인 움직임이었다.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모인 건 처음 있는 일”


사실 #미투(Me too)운동은 시작되자마자 문제 제기에 부딪혔다. #미투(Me too)의 시작은 이미 10년 전에 있었다는 것. #미투(Me too)는 ‘흑인’ 여성 타나라 버크(Tarana Burke)가 성폭력 생존자를 지지하고 돕기 위해 만든 운동이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취약 계층으로 분류되는 유색인종의 소녀였다. 이후 그 활동은 범위를 확대하여 성인 여성과 남성 및 다양한 성폭력 생존자를 돕고 지역 사회가 그들에 대한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이 운동은 당시 크게 조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7년 ‘백인’ 여성인 유명배우의 언급으로 운동에 불이 붙게 된 것이다. #미투(Me too)의 진짜 시작이 타나라 버크였다는 사실이 곧 알려지고 그의 운동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지만, 이런 현상을 두고 미국 페미니즘 역사에서 흑인 여성을 비롯한 비(非)백인 여성들의 역할과 역사가 배제되거나 지워진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된다.


이러한 지적은 흔히 중산층으로 분류되는 백인 여성의 입장을 주로 대변해 온 미국 페미니즘 진영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해 12월 8일 보스턴에서 열린 ‘메사츄스 여성 컨퍼런스’에서,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지금 이렇게 많은 목소리가 모인 건 그 전엔 없었던 일이다”라고 말하며 #미투(Me too)의 성취를 높이 평가했다. 그리고 1975년에 직장 내 성희롱(sexual harassment) 개념이 생긴 후 진행된 세 개의 소송의 원고가 전부 ‘흑인’ 여성이었던 점을 언급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또 현재의 페미니즘이 교차성(intersectionality)을 중요하게 포함하는 것에 실패한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유색 인종 여성, 특히 흑인 여성에 대해서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 문제는 바로 그들이 백인 여성들보다 늘 좀 더 페미니스트였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그 동안 여성운동 혹은 페미니스트 운동이 백인의 것이었고 그 자리에 있었던 다양한 여성들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흑인 여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종의 여성들이 전보다 더 크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백인 커뮤니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자신들의 커뮤니티에서 #미투(Me too) 운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현실을 토로하기도 했다. 인종 간의 차이와 그로 인한 계급 차이 등을 세부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것은 곧 다양한 여성들이 #미투(Me too)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미국 대학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더 헌팅 그라운드>(the Hunting Ground, 커비 딕, 2015)


여자랑은 일 못해? 불어 닥친 ‘반격’(Backlash)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끝이 없이 이어지는 고발에 두려움을 느끼는 집단이 있었다. 가해자들, 누군가가 자신을 가해자로 고발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 자신은 가해 사실이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잠재적 가해자로 분류되는 것이 싫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남성들이었다.


그들은 과연 그 고발이 진실한 것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면서, #미투(Me too)가 일종의 유행처럼 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 단순히 분노의 표출로 보기도 했다. 배우 맷 데이먼은 지난 12월 12일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분노와 상처의 사회에 살고 있어요. 우리는 일들을 바로 잡아야 하지만 ‘잠시만, 우리 모두가 사실 완벽하지 않잖아’ 라는 생각도 해야죠.”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브랫 스테판(Bret Stephens)은 12월 20일자 칼럼에서 “#미투(Me too) 운동이 너무 과할 때”(When #Me too goes too far)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모든 여성 그리고 모든 “사려 깊은” 남성들은 이 운동이 성공하길 바란다. 그 성공은 남성의 행동을 폭로하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해야 이룰 수 있다.’ 고발이 너무 과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많은 고발 중에 ‘가짜’가 있다는 게 밝혀지게 되면 이 운동이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조성했다. 일터에서 고발이 지속되면 여성을 고용하려는 회사가 줄어들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투(Me too) 운동에 참여하는 여성들을 위축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


▶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셰릴 샌드버그의 페이스북 포스팅 Ⓒfacebook.com/sheryl/posts/10159569315265177

 

이와 관련해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인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는 ‘이래서 여성을 고용해서는 안 된다는 백래시(Backlash, 반격)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장문의 글을 올려 백래시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셰릴은 남성 경영자들이 자신이 성추행으로 고발당할 것이 두려워 여성 동료나 여성 직원들과 함께 있지 못하겠다, 일하기 어렵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못하겠으면 여성들이 서로 멘토가 되고 조언을 하고 도울 수 있도록 더 많은 여성들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면 된다고 말했다.


거대해지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을 해체하고 그 힘을 빼앗으려 하는 움직임이 꿈틀거렸지만, 그 백래시에 당하지 않겠다, 맞서겠다는 움직임 또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당선 유력 공화당 후보, 성추행 전력 알려지며 ‘패배’


지난 12월 13일은 미국 앨러바마주의 상원의원 보궐선거 결과가 있는 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를 받으며 공화당 후보로 나온 로이 무어(Roy Moore)은 LGBT와 무슬림 등 이민자에게 강한 반감을 가진 매우 보수적인 전직 판사였다. 앨러바마주는 보수 성향이 강한 것으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로이 무어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던 선거운동 중에 몇몇 여성들이 과거 로이 무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발했다. 그 중 두 명은 당시 14살, 16살이었다고 밝혔다. 로이 무어는 사건을 부정했지만, 그 여파는 컸다.


도널드 트럼프가 성추행 논란 속에서도 대통령이 되는 걸 목격했던 여성들의 절망은, 이번엔 강한 행동으로 이어졌다. 성범죄자가 또 다시 권력을 가지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앨러바마주의 특성상, 그의 상대인 민주당 후보 더그 존스(Doug Jones)가 공화당 후보를 이길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 워싱턴 포스트의 앨러바마주 선거결과 분석 중 Ⓒwashingtonpost.com/graphics/2017/politics/alabama-exit-polls/?utm_term=.10c3cd8924fb

 

하지만 선거 결과는 더그 존스의 승리였다. 1992년 이후 앨러바마주에서 민주당이 선거에서 승리한 일이 처음일 정도로 이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 배경을 세부적으로 살펴봤을 때, 더그 존스의 승리에는 여성들, 특히 흑인 여성들의 압도적인 지지가 바탕이 됐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종종 여성의 정치적 영향력은 무시당하지만, 이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의 선택과 영향력이 역사를 만들 수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여성들이 함께 맞서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준 결과이기도 했다.


유색인종, 저소득층 여성을 위한 펀드 ‘타임즈업’


2017년 메리엄 웹스터(Merriam-Webster) 사전이 선정한 올해의 단어로 ‘페미니즘’이 뽑히고, 타임(Times)이 올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자들’(Silence breakers)을 선택했다. #미투(Me too)는 예상하지 못한 커다란 영향력을 가져왔다. 다양한 논쟁 속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지원하고 본격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고자 하는 ‘타임즈업’(Time’s up)이 올해 1월 1일, 발족을 알렸다.


▶ 타임즈업 홈페이지에 있는 성명서 ⒸTime’s Up 2017(timesupnow.com)

 

영화, TV, 연극 분야에서 활동하는 3백명 이상의 여성이 1,300만달러(약 138억원)을 모금하여(주요기부자는 리즈 위더스푼, 숀다 라임스, 메릴 스트립, 스티븐 스필버그와 케이트 캡쇼 부부 등이다) 만든 타임즈업. 성차별과 직장 내 성희롱, 성폭력에 맞설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법 지원 펀드다. 이 단체는 대표 없이 자원 활동으로 운영될 예정이고, 주요 멤버는 미셸 오바마의 수석보좌관이었던 티나 첸(Tina Tchen)을 비롯한 여성변호사들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특히 블루칼라 여성들, 저임금 여성노동자들에 대한 지원 계획을 밝혔다. 그리고 이 펀드를 만들게 된 것은 라틴계 농업 여성노동자로 이루어져 있는 ‘농업 여성노동자 연합’(Alianza Nacional de Campesinas)의 공개 지지 성명이 큰 영감이 됐음을 알렸다.


다음은 2017년 11월 10일 타임(time.com)에 개제된 ‘농업 여성노동자 연합’의 성명서 중 일부다.


“우리는 밝은 무대 조명 아래 혹은 큰 화면에서 일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고 관심이 덜한 이 사회의 그늘인 고립된 농장, 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일은 사람들의 영혼을 채우고 기쁨이 퍼지도록 합니다. 우리의 일은 과일, 채소에 영양을 주고 곡물을 심고 그걸 재배합니다.


비록 우리가 다른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우리는 누군가를 채용하고 해고하고 협박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공통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일자리는 제한적입니다. 그리고 어떤 피해나 불의를 신고하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성추행을 포함한 어떤 문제에 대해 불평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우리의 명성을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략)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주세요. 우리는 당신을 믿고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타임즈업 창단 멤버로 이름을 올린 제작자 숀다 라임스(Shonda Rhimes)는 발족을 알린 뉴욕 타임즈의 기사에서 ‘만약 우리와 같은 위치의 사람들이 권력과 특권을 가지지 못한 여성들의 롤모델이 되도록 싸우지 않는다면, 누가 그런 일을 하겠어요?’라고 말했다. ‘농업 여성노동자 연합’의 용기 있는 지지의 목소리를 그냥 흘려듣지 않은 것이다. 자신들이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으며 그 결과를 만들어냈다.


타임즈업은 성명서에서 모든 여성노동자가 남성과 동등한 가시화, 기회,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백인, 시스젠더, 이성애자 동료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유색 인종 여성, 이주민 여성, 장애 여성, 레즈비언, 바이섹슈얼, 트렌스젠더 여성에 대한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침묵도, 기다림도, 포용도 그만 둘 시간이 됐다


현재 타임즈업 웹사이트에는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그걸 멈추고 대응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당신의 권리 알기>(Know your rights)라는 제목의 소책자 올려놓았고, 어디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하고 있다.


그리고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블랙 드레스/수트’를 입는 공동행동을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보이콧을 하면 되지 않나, 소극적인 행동이다, 라는 비판도 제기됐지만 타임즈업 멤버인 배우 라시다 존스(Rashida Jones)는 인스타일(Instyle)과의 인터뷰에서 “이것은 침묵의 시위가 아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왜 우리가 블랙을 입었는지를 말할 것이다”라고 당당히 의견을 피력했다.


“이제 차별, 추행, 학대에 대한 침묵은 그만, 기다림도 그만, 포용도 그만 둘 시간이 되었습니다.”(No more silence. No more waiting. No more tolerance for discrimination, harassment or abuse. Time’s Up)


타임즈업의 목소리가 여성들에게 어떤 시간을 만들어주게 될지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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