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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상인들의 생애를 듣다, 시대를 듣다

<망원시장 여성상인 구술생애사 작가들의 이야기> 여는 글


※망원시장 여성상인 9명의 구술생애사가 담긴 책 <오늘은 맑음>(푸른북스, 2017)을 기록한 작가들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서문을 쓴 최현숙씨는 구술생애사 작가로 <천당과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막다른 골목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왔어>, <할배의 탄생>을 펴냈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망원시장 안에서 2년을 살며


2014년 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망원시장 안에서 살았다. ‘다이소 3층!’ 하면 망원시장을 아는 친구들은 금방 알아먹었다. 보증금 1억짜리 전셋집을 구하며 두 집을 놓고 고민했다. 조용한 골목에 깔끔한 공간과 망원시장 안의 허름한 공간. 작은 아들과 함께 살던 때라 방 두 개가 필요했다.


직전 살던 곳은 반경 200미터 안에 가게 하나가 없었다. 글쓰기에 방해될 소란을 잠깐 고민했지만, 시장의 북적거림에 쏠렸다. 내 어린 시절 첫 기억은 노량진 시장에서 시작하고, 20대 초반 방황과 혼돈의 시절엔 용산 야채시장과 노량진 수산시장의 새벽을 무수히 헤맸다. 이후로도 어딜 가든 시장이 있으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떠돌았다. 인도의 과일시장과 연변의 노점 야채시장에선 모퉁이에 쪼그려 앉아 각양각색의 표정과 흥정들을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 망원시장 풍경 (사진: 이경훈 작가)


더구나 ‘망원시장’ 아닌가. 내겐 로망의 공간이었다. 시장 안에서 사는 2년 동안 활기와 편리와 즐거움을 만끽했다. 냄비 물에 된장만 풀어 안쳐놓고, 쪼르륵 계단을 내려와 두부와 호박을 후딱 사들고 올라가는 맛이라니. 운동과 장 구경을 겸해 저녁마다 시장통을 거쳐 동네를 걸었는데, 집 계단을 오를 때면 떡볶이며 순대가 들려 있곤 했다.


확성기와 플래카드와 문자가 알려주는 시장의 모든 행사들을 달력에 메모했다. 명절 전통놀이 행사 때는 팔씨름 대회에 나가 전통시장 상품권을 탔고, 상인회가 주최하는 일요일 선착순 특별세일 품목에 눈독을 들였다가 일찌감치 나래비를 섰으며, 상품권 당첨에 환호성을 질렀다. 시장 옆 망원공원에서 열리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잔칫날이면, 어린이도 되고 어버이도 되며 어울려 놀았다.


파장시간 ‘떨이’에 충동구매를 하며 사진과 녹취들을 챙겨 모았고, 새벽 두 세 시에 글쓰기가 막히면 가게 진열대에 양반다리를 하고 올라 앉아 하염없이 담배를 피웠다. 창문 아래 망원축산 아주머니의 목청을 견디느라 창문 닫고 귀마개를 한 채 <할배의 탄생> 원고에 매달리다가 “세일, 세일! 만 원에 세 근!” 소리엔 얼른 지갑을 들고 달려 내려갔다.


<할배의 탄생>을 시작해서 마치는 동안, 상인 몇몇을 생애사 주인공으로 내심 침을 발라놓았다. 참기름과 볶은 깨를 사며 웃음도 흘려놓았고, 담배와 족발을 사며 생애 토막들도 모아두었다. 상인회 아저씨 아줌마들에게는 일부러 명함을 주며 얼굴을 팔았다. 간단한 살림이라 소소한 손님에 불과했지만, 홍보로 치면 상이라도 받을 만큼 망원시장의 자랑거리들을 알리고 다녔다.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는 명절대목이면 3층 창문으로 몸을 빼고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계약 기간이 끝나가던 2016년 1월 더 살지를 고민하던 터에, 집주인은 보증금을 1억 3천으로 올려 불렀다. 이사를 작정하면서 아쉬운 건 침 발라놓은 주인공들이었다. 대흥역 인근 독거노인들의 생애사 인터뷰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대흥동 옆 신수동으로 살 곳을 얻어갔다. 같은 1억이지만 이번엔 원룸 전세였다. 작은 아들이 결혼해 나가면서 원룸이면 족했다. 지하철로 서너 정류장 거리니, 점 찍어놓은 상인들이야 내 사정에 맞춰 확 땅기면 자빠져 오려니 싶었다.


2016년 말 <할배의 탄생>이 출간되면서, 나는 망원축산 그 아주머니만큼이나 바빠지고 목청도 써대야 했다. 2017년 초부터 ‘말과활 아카데미’에서 구술생애사 기초반 강좌를 계속 열었고, 3월에 시작하는 심화반은 생애사 글쓰기 반으로 열기로 했다.


2월 말, 망원시장을 중심으로 온갖 지역 활동을 하는 조영권 대표가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나 좀 놔둬. 바빠 죽겠어!”하며 단칼에 잘랐는데, 어쨌든 봐야 한다고 우겼다. 뭐를 하자든 거절할 작심을 하고 만나주었는데, ‘망원시장 여성상인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자는 거였다. 어머나 세상에! 심화반의 탄탄한 필진들까지 준비돼 있는 터였다. 9명 주인공에 9명 필자 선착순으로, 1대 1 짝을 추첨으로 정했다. 다양한 논의에 이어 수차례들의 인터뷰와 글쓰기와 글 합평을 병행하며 작업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 망원시장에 눌러 사는 삼신할매 덕이 아니고는 이토록 착착 맞아 떨어질 수가 없는 거였다.


‘각자 또 함께’ 사는 여성들의 생애를 듣는 일


▶ 망원시장 여성상인 9명의 구술생애사가 담긴 <오늘은 맑음>


독자들은 우선 여성상인 명단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모자나라’ 왕언니만 1950년대 생이고 모두 1960년대 생이다. 고향은 강원도 탄광촌에서 전라도 섬까지 모두 제각각이며,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은 없다. 비슷한 시대에 전국 곳곳에서 태어난 서민의 딸들이, 각자의 형편과 경로를 겪으며 즐겁고 아프게 성장했다. ‘나는 못 가도 남동생과 오빠는 대학을 가야 하는’ 설움을 ‘의례 혼자 삭이며’, 교육과 취직과 탈농과 결혼을 통해 서울로 들어왔다. 1997년 IMF 사태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며 공장과 노점과 식당과 알바 등을 거쳐 망원시장으로 들어왔다. 하여 2017년 현재 마흔여덟에서 예순일곱인 망원시장 여성상인 9명이 ‘각자 또 함께’ 사는 생애를 듣는 것은, 사람과 시대를 들여다보고 세상을 내다보는 일이다.


상인여성들의 생애 굽이굽이는, 손님들 생애의 우여곡절과 겹치고 엇갈린다. 이주와 밥벌이의 내력, 장소와 시절에 얽힌 기억들, 망원동과 망원시장의 역사, 월급쟁이와 자영업자의 애환들은 독자들 자신의 기억의 실마리를 끄집어내 준다.


고향인 일산이 신도시가 되어 번성하는 동안 가족과 원주민들이 어떻게 밀려났으며, 일흔이 다 돼가는 나이에 다시 서울에서 밀려 일산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는 과정. 이북서 피난 나와 머슴을 살다 땅값이 싼 망원동으로 들어와 밭떼기 마늘 장사와 ‘도라무통’ 새우젓 장사를 시작한 시부모님, 그들의 보람이었던 맏아들인 남편이 ‘한국통신을 더러워서 때려치우고‘ 장사를 물려받겠다고 눌러앉아 부부가 고군분투한 이야기. 늘 배고팠던 시절, 버스 창문으로 김밥을 건네준 영숙이를 너무나 보고 싶다는 족발집 여사장. 시집 간 딸이 첫 자식으로 손녀를 낳아 송구하다며 사돈 앞에서 90도 절을 한 친정아버지에 대한 고까움, 박정희 시대를 산 사람들의 공통 기억인 삐라와 학용품, 아카시아 잎과 잔디 씨 모으기, 반공웅변대회와 애향단, 노라노 양재학원과 양장점 시다, 물지게와 숯에 걸러먹던 펌프 물, ‘우린 살다가 결혼 했어요’ 등.


IMF와 월드컵과 세계금융위기와 구제역과 AI와 인근 대형유통매장 개업 등 고비마다에서 꺾어졌다 힘겹게 일어섰지만, 임대료 상승과 상가 주인의 ‘나가라!’는 통보에 속수무책으로 쫓겨났던 이야기. 일수와 계와 사채와 카드대출과 은행대출. ‘저기가 다 시금치 밭이었고, 버스도 없어 합정동까지 걸어 나갔던’ 옛날 망원동 이야기. 물난리에 고무 다라이 타고 성산초등학교로 피난 간 수재민 살이. 단속을 피해 도망 다니던 노점 거리가 지하철 망원역 개통되면서 마침내 ‘아케이드’를 치고 망원시장으로 등록된 과정.


합정동 홈플러스 개점에 반대해 ‘다 문 닫고 집회’와 ‘다 촛불 켜고 장사’와 주민들도 연대한 온갖 집회들로, 전국 최초로 유통재벌에 맞서 따낸 절반의 승리.(합정동 홈플러스 16개 품목 제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망원역점 폐쇄, 망원시장 고객센터 매입자금 지원 등) 전국의 영세자영업자를 대표하는 시의원 배출. 싸움과 배움 과정에서 깨달은 연대의 힘과 세상물정과 ‘시장은 경제민주화의 산실’이라는 통찰, 그리고 시민 권리의식.


주민들에게 보답하는 마음으로 매년 여는 어린이잔치, 노인잔치, 추석과 설날 잔치. 다양한 기부와 주민들에 대한 상인회 건물 개방. 1인 가구와 매식 증가 등 소비행위의 변화에 따른 상인으로서의 고민과 전략. ‘망원동이 뜨는 것’에 대해 ‘열심히 장사해서 건물주 좋은 일만 시켜주는 거 같다’는 임차상인으로서의 푸념. 해고나 명퇴 염려가 없어 부러워들 하지만, 퇴직금이 없고 공적연금이 미비한 자영업자의 노후. 까르푸와 홈플러스를 거쳤는데 지금 또 들어서고 있는 상암동 롯데 쇼핑몰.


시장 상인들은 한 해의 흐름을 두 번의 명절대목이 지나가는 것으로 가늠한다. 명절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에 자녀들까지 나와 장사를 돕기도 한다. 여전히 가족들을 돌보며 매일 삼시세끼와 매년 열 번의 제사를 챙기기도 하지만, 전에는 뒤에서 그림자처럼 했다면 이제는 계획과 합심을 주선하는 사람이다. 시집살이로 생긴 깊은 우울증을 남편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이겨냈고, 매운 시집살이 덕에 배운 음식 솜씨로 반찬가게 사장이 되었다. 어린 시절 밉지만 안쓰러웠던 친정 엄마가 나이 들수록 자주 생각나는 것은, 더 어려웠던 시절을 선배 여성으로 살아온 엄마의 삶을 이제는 알겠고, 엄마의 바람대로 더 당당하고 똑똑한 여자로 살고 싶어서다. 딸과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로 살면서, 누구의 무엇을 넘은 ‘새로운 여성, 나’를 스스로 세워나간다.


주인공들 모두 ‘지금 여기 망원시장 여성상인으로 사는 삶’이, 자긍심도 높고 세상 속에서 자신을 확장하는 가장 즐거운 시절이라고 말한다. 여성상인들의 모임인 ‘십자매’와 ‘해당화’(해가 갈수록 당당한 여자들 모임) 활동도 신나고, 시간을 쪼개서 젬베와 요가와 댄스를 함께 배워 동네잔치에 공연도 한다. 88명의 상인들이 모인 망원시장 상인회 활동에도 참여하고, 주민자치위원 활동으로 골목정치도 챙기며, 상인대학을 통해 더 깊고 넓게 사회와 자신을 배운다.


크고 작은 많은 시장들로도 유사한 작업들이 퍼뜨려지기를 바란다. 수차례에 걸친 주인공과 필진들의 대화 과정에서 훨씬 많은 구술채록이 정리되었지만, 분량 문제로 일부만을 골라야 했다. <오늘은 맑음>에 남지 못한 많은 이야기들로 이후 다른 작업이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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