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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찾으러 떠난 엠버

여성성, 남성성의 경계를 흔드는 이들 



엠버와 여성성

 

아이돌 걸그룹 에프엑스(f(x))의 멤버인 엠버(Amber)가 지난 16일 유튜브에 영상을 하나 올렸다. 영상의 제목은 “내 가슴이 어디 갔지?”(Where is my chest?)이다.

 

f(x)는 2009년 디지털 싱글 ‘라차타’로 데뷔한 걸그룹으로 빅토리아, 크리스탈, 루나, 엠버라는 네 명의 멤버로 구성되어 있다. (설리도 멤버였지만 2015년 탈퇴했다.) f(x)는 다른 걸그룹들과 차별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엠버의 존재였다. 엠버는 기존 걸그룹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던 보이쉬한 중성적인 매력을 뽐내며 나타났다. 그런 모습은 단순히 일시적인 컨셉이 아니었고, 엠버는 지금까지 꾸준히 그 매력을 발휘하면서 또한 진화시켜 왔다.

 

하지만 그 매력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자애냐, 남자애냐?”라는 질문은 데뷔 때부터 쭉 엠버를 따라다녔다.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2015년 MBC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에 나왔을 때는, 반전 매력이라며 바느질 하는 엠버의 모습과 함께 자막으로 ‘규수’, ‘천상 여자’라는 말들이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엠버에게 ‘여자다움’을 강요했다. 때로는 ‘알고 보니 여성스럽다’, ‘속은 천상 여자다’ 등의 말로 엠버를 보호하고자 하기도 했다.

 

엠버는 그런 주변의 혼란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잊지 않고 목소리를 냈다. 솔로 활동을 하면서 발표한 싱글 ‘보더스’(Borders)의 가사에서 경계를 넘을 거라고 했을 때도 그랬고, 팬들에게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라고 얘기할 때도 그랬다.

 

엠버가 가슴을 찾으러 가는 여정

 

그런 엠버가 “내 가슴이 어디 갔지?”(Where is my chest?)라는 약 7분짜리 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걸 봤을 때, 그 용기와 대담함에 다시 한 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영상에서 엠버는 흔히 말하는 ‘악플러’들이 단 ‘악플’을 읽는데 그 중에 첫 번째가 “세상에, 엠버야 도대체 니 가슴은 어딨니?”이다. 엠버는 “좋은 질문이야. 그러게… 내 가슴이 어디 갔을까? 그게 없어진지 좀 된 것 같은데… 우리 한번 같이 찾으러 가볼까?”라고 말한다.

 

엠버의 유튜브 장면 http://bit.ly/2yL5PdS

 

영상에서 엠버는 가슴을 찾기 위해 친구와 밖을 돌아다니면서 또 다른 악플들을 읽으면서 거기에 대꾸해 준다. 엠버의 대응 방식이 너무 기발하고 영리해서 감탄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이 장면이었다.

 

“그녀는 키가 큰데도 우아한 몸을 가지고 있어. 가는 다리와 긴 머리가 그녀를 여성스럽고 순수하게 보이게 만들어.” 라는 어떤 글을 읽고 난 후 엠버가 “흠…”이라고 갸우뚱하다가 친구를 찾아간다. 가는 다리와 긴 머리를 가진 ‘남자’ 친구에게 찾아가서 “나한테 줄 조언 있어?”라고 묻자, 그 친구는 해변 근처에 살면서 햇볕을 많이 쐬라, 야채 먹고 요가하면 된다고 말한다.

 

사회에서 흔히 말하는 ‘여성성’, ‘여성스러움’, ‘여자다움’이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것을 비꼬는 엠버의 모습을 보고, 그 동안 얼마나 많은 경험을 했고 고민을 했는지가 느껴졌다.

 

여성성과 남성성의 경계

 

패션 산업에서는 안드로진(Androgyne,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젠더) 모델들이 눈에 띄게 활약하기 시작한 지 몇 년이 되었다. 안드레아 페직(Andreja Pejic), 레인 도브(Rain Dove), 에리카 린더(Erika Linder) 등의 모델들이 유명 브랜드의 모델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은 남성복 모델이기도 했으며 여성복 모델이기도 했다. 그리고 때로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 나카야마 사츠키의 인스타그램

 

얼마 전에 일본에서 안드로진 모델이 인기를 얻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 기사에 등장하는 나카야마 사츠키(Nakayama Satsuki)는 12살에 소녀들을 위한 잡지인 <피치 레몬>으로 데뷔를 했다. 당시에는 긴 머리카락에 치마를 입고 귀여운 표정을 짓는 작업들을 주로 하던 모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드로진 모델을 보게 되었고, 남자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그 매력에 빠져 자신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에 긴 머리카락을 자르고 치마를 모두 내다버렸다고 한다. 모델 일을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자기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컸고, 결국 그것은 나카야마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주었다.

 

일본에서는 생물학적 남성이고 안드로진인 모델들이 있었고 주목 받았지만, 생물학적 여성이고 안드로진인 모델인 사람은 별로 없었던 탓에 나카야마는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올해 4월, 중국에서는 에이크러쉬(Acrush)라는 그룹이 데뷔했는데 언뜻 봐서는 미소년들로 구성된 이 보이그룹은 사실 모든 멤버들이 여성이라는 것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다. 올해 4월, 미국 GLAAD에서 발표된 보고서(Accelerating Acceptance 2017)에 따르면, 미국의 밀레니얼 세대(18-34세) 중 자신을 시스젠더(Cis-Gender, 사회에서 지정받은 신체적 성별과 자신이 정체화하는 성별 정체성이 같은 사람)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이 12%에 달했다. 그들의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52-71세)의 3%에 비해 4배 높았다.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들

 

논-바이너리(Non-binary), 안드로진(Androgyne), 젠더 플루이드(Genderfluid), 에이젠더(Agender), 젠더리스(Genderless) 등의 말들은 아직 조금 생소하다. 하지만 조금씩 우리 사회와 우리들 삶 속으로 들어오는 중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어떤 특별한 성별 정체성의 호명 없이 자신의 방식대로 ‘여성과 남성이라는 이분법적인 성별’의 견고한 틀을 흔들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

 

며칠 전에 남자 아이돌 그룹 샤이니의 멤버인 태민의 솔로 무대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태민의 춤과 몸동작은 멋있다고만 하기에는 부드러웠고, 요염하다고만 하기에는 파워가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멋있다는 말을 남성적, 요염하다는 말을 여성적이라는 기준 아래에서 생각하는 걸까? 무엇이 여성적이고 남성적인가? 그리고 여성과 남성의 범위는 어디인가?

 

우리는 그 범위를 지키는 사람들인가, 그것을 흔드는 사람들인가?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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