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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대를 불태워라

안전한 생리대를 사용할 권리를 말한다


※ 필자 김신효정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리대는 어디에

 

생리대를 불태우고 싶다. 광화문 사거리에 나가 지금껏 내가 써왔던 수천 개의 생리대를 불태우고 싶다.(그러나 실제 그렇게 하면 방화죄로 벌금 500만원을 물어야 한다.)

 

배와 허리가 아프고 밑이 빠질 것 같았던 그 통증은 언제나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메아리로 돌아왔었다. 통증의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나는 스스로를 자책했다. 고기를 먹어서, 유제품과 밀가루를 먹어서, 술을 마셔서, 야근을 해서, 운동을 안 해서 이렇게 아픈 것이라고 나를 손가락질했다. 한 달에 한 번 자궁을 들어내고 싶은 통증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조금 더 강력한 진통제를 찾아 먹은 후 참는 것뿐이었다. 생리통의 원인이 내가 마트에서 고르고 골라 할인 가격으로 샀던 생리대 때문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8월 24일 여성환경연대의 ‘일회용 생리대 부작용 규명과 철저한 조사를 위한 기자회견’  ⓒ여성환경연대

 

너무 화가 난다. 생리대에 뭐가 들어있는지, 어떤 생리대가 안전한지 소비자로서 알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왔다는 것이. ‘생리대 유해물질’ 사태가 발생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우리에겐 안전과 관련한 정보가 없다는 것이.

 

두 세배 더 비싸더라도 안전하다고 소문난 생리대를 구입하고 싶지만 언제나 품절이다. 면 생리대는 주문이 밀려서 내년이 되어야 배송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생리혈이 비치기 시작하면 무얼 써야 덜 위험할까 고민하지만 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또 문제가 되었던 일회용생리대를 사용한다. 생리대를 차고 있는 내내 찝찝하다. 어떤 화학물질이 들어있는지, 이것이 내 몸으로 들어와 어떤 반응을 할지, 아랫배가 묵직해지기 시작하면 불안에 휩싸이고 만다.

 

생리컵과 면 생리대가 정말 대안일까?

 

생리컵과 면 생리대가 대안으로 급부상했지만, 막상 사려고 하니 비용이 만만치 않다. 사용하는 방법은 더욱 어렵다. 유투브로 생리컵 사용 영상을 돌려보고 또 돌려봐도 신통치 않다. 비싼 생리컵을 실패 없이 구매하려면 내 몸에 맞는 것을 선택해야한다. 먼저 자궁 경부의 길이를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재야할지 막막하다.

 

더구나 생리컵이나 면 생리대는 독립된 화장실과 생리대를 말릴 햇볕이 드는 공간이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에겐 꿈같은 이야기이다. 고시원, 반지하, 쉐어 하우스에 사는 사람들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장애가 있는 여성들에게도 생리컵은 그림의 떡이다.

 

그리고 하루 종일 임금노동에 매어있는 많은 여성들에게 있어서 면 생리대를 씻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일은 가사노동에 더해지는 부담스런 노동이다. 우리에겐 안전하고 (자연에도 해가 되지 않는) 일회용 생리대가 필요하다.

 

 다양한 면 생리대. ⓒ여성환경연대

생리대 사태가 발생한 이후 벌써 두 달째 차상위 계층 십대여성들에게 지급되던 무상생리대 지원이 끊겼다는 소식도 들린다. 깔창 생리대를 쓰던 소녀들은 지금 어떤 생리대를 쓰고 있을까.

 

식약처는 누구를 위해 일하는 기관인가

 

생리대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는 뒤늦게 한국에서 시판되는 56개사 생리대 896품목에 대해 86종의 휘발성유기화합물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생리대 하나에는 약 200여 가지의 화학물질이 검출된다고 한다.

 

식약처는 오는 9월 말까지 휘발성유기화합물 10종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연말까지 나머지 76종의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벌써부터 식약처의 조사 결과가 의심스럽다. 식약처는 늑장대응으로 불신을 키운데다가 이번 전수조사에서 휘발성유기화합물 외에 문제가 되었던 독성 화학물질인 다이옥신, 중금속, 잔류농약, 인공향 등을 조사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식약처의 생리대 안전 검증위원회에는 여성·환경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위원회의 일부 회의는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위원 명단을 제공하지 않는 등 생리대 사태에 대한 식약처의 안전불감증은 이미 임계치를 넘어섰다. 대체 식약처는 국민이 아닌 누구의 편에 서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 9월 5일 정부서울청사 앞. 여성환경연대가 주최한 생리대 유해성분 전수조사와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내 몸이 증거다 나를 조사하라” 기자회견 이후 진행된 퍼포먼스.  ⓒ여성환경연대

 

국감에서 생리대가 아닌 여성단체를 문제 삼겠다고?

 

이런 와중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대구 서구)은 오는 10월 국정감사에서 여성환경연대를 특정 생리대 기업과의 유착 관계를 밝히기 위한 증인으로 채택해 논란이 되고 있다.

 

여성환경연대는 지난 3월 생리대 안전성 문제를 수면 위로 공론화하고, 3천 건이 넘는 생리대 피해 사례를 접수하는 등 여성건강권 운동을 전개해오고 있는 여성단체다. 그런데 국감에서 생리대 안전성을 확보하는 일보다 생리대 유해성 문제를 지금과 같이 촉발시킨 여성단체를 문제 삼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유한국당의 정치공세에서 뭔가 냄새가 난다. 숨죽였던 고통을 소리 높여 외치고 사회의 구조적 차별을 밝혀내는 여성들을 향한 ‘마녀사냥’의 전형적인 프레임이다. 나는 김상훈 의원에게 묻고 싶다. 그래서 생리대는? 생리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기업들이 수십 년간 수 천 억이 넘는 돈을 벌면서 팔아온 ‘유해 생리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원치 않는 순간에, 원치 않는 공간에서 매달 피를 흘려야 하는 여성들에게 필수품인 생리대를 어떻게 안전하게 만들 것인지가 주요 안건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금까지 여성의 몸을 담보로 돈을 벌어왔던 기업들을 전부 국회에 불러 모아 신문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회는 자유한국당과 생리대 기업과의 유착 관계를 조사할 일이다.

 

▶ 5월 26일 여성환경연대가 광화문 광장에서 주최한 세계 월경의 날 기념 기자회견. ⓒ사진: 불꽃페미액션

 

바야흐로 ‘여성 건강 혁명’이 시작된다

 

안전한 생리대가 없는 나라, 낙태가 불법인 나라, 출산을 강요하는 나라. 지금 여성들이 몸으로 싸워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와 자본의 민낯이기도 하다. 이름 없는 통증과 기약 없는 공포 속에서 언제까지 숨죽여 기다려야 하는가. 누군가가 안전한 생리대를 만들어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기엔 이미 내 몸은 충분히 겪었고 고통스러웠다.

 

우리는 서랍 속 생리대를 불태워야 한다. 그리고 나의 몸에도, 환경에도 지속가능한 안전한 생리대를 사용할 권리를 되찾아오자. 여성들이 마음 놓고 월경하는 그날까지, 여성 건강을 위한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생리대 유해물질 전수조사와 인체 역학조사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월경하는 여성들) http://bit.ly/2wQZVYD

 

※ 식약처에 일회용 생리대 모든 유해성분 규명 및 여성건강 보장을 요구하는 글로벌 행동 커뮤니티 ‘아바즈’ 시민청원 (여성환경연대) http://bit.ly/2yE8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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