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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든 말든, 내 삶에 간섭하지 말라
불임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조그룹 ‘핀레이지’
※ 불임(infertility)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조그룹(self-help) ‘핀레이지’ 회원이자 저널리스트인 구리하라 준코 씨가 기고한 기사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출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어도 입원시키기 쉽지 않은 ‘대기아동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도 큰 문제다. 그런 가운데 작년에는 오사카시의 한 중학교 교장의 발언이 입방아에 올랐다. 교장은 전교생 앞에서 일본의 저출산 현상을 개탄하며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를 둘 이상 낳는 일이다. 출산과 양육은 일에서 커리어를 쌓는 것 이상으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높아진 혼인 연령과 출산 연령이다. 그 배경에는 비정규 고용 증가, 노동의 불안정화, 여성의 가사 부담이 크게 줄지 않은 점, 미혼 혹은 비혼 여성이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러한 배경을 무시한 해당 교장의 발언은 ‘경솔한 발언’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되었다.
또 3년 전에는, 도쿄도의회에서 불임에 대한 지원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 여성의원에게 자민당 의원이 “본인이 얼른 결혼하면 될 걸”, “애를 못 낳나?” 등의 야유를 보낸 일이 있었다. 성과 생식에 관한 건강권을 확산시켜야 할 의원의 인식이 이 정도로 심각하다는 데 실망을 감출 수 없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여성에게 ‘얼른 결혼해라’, ‘아이를 낳으라’고 설교하는 정치가가 더욱 늘었다. 평화헌법을 수호해 온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바꿔버린 정치인들이 태평양전쟁 당시 슬로건인 ‘낳고 늘리자’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삶에 간섭하고 있는 것이다.
‘낳고 늘리자’ 식의 발언은 물론이거니와 여성의 역할을 출산이나 양육으로 국한시키려는 사람들도 있다. 일본 사회에서도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온전한 사람’이라는 가치관이 여전히 뿌리 깊다. 뒤집어 보면 일본은 아이를 낳지 않는(혹은 낳을 수 없는) 여성과 결혼하지 않는 여성에 대한 편견과 무시가 강한 사회라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에서는 예전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성을 ‘우마즈메(석녀)’라고 부르며 ‘불길한 존재’로서 저어했다. 아이를 갖지 않거나 아이가 없는 것은 ‘수치’, ‘불명예’, ‘불행’, ‘불효’라는 오명과 낙인마저 존재한다.
▶ 일본 사회도 ‘여성은 아이를 낳아야 온전한 사람’이라는 가치관이 여전히 뿌리 깊다. (이미지: pixabay.com)
불임여성들 ‘나는 여성으로서 실격 아닐까’ 고민
앞선 교장의 발언이 언론에 보도된 날, 나는 불임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조(self-help) 그룹 ‘핀레이지’ 모임의 회원들과 수다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과 아이 낳기를 포기했지만 스스로의 선택을 확신하지 못하고 아이가 없는 인생에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핀레이지 회원들과 두 달에 한 번 내가 살고 있는 시의 공공시설인 남녀공동참획센터에서 수다모임을 열고 있다.
불임으로 인해 고민해본 사람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나는 여성으로서 실격이 아닐까’,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는 온전한 인간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수다모임에서도 이런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실제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사람은 어딘가 부족하다”거나, “아이가 없는 여성은 이기적이다”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다.
“아이가 없으면 삶이 외롭죠” 라는 말도 종종 듣게 된다. 불임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 주위에서 인사 대신 건네는 “아이는?”이라는 한마디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 경우도 있다. 수다모임에서 괴로운 심정을 토해내다가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이 모임은 괴로운 심정을 억누를 것이 아니라 한탄하고 싶은 만큼 한탄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곳이다.
삶의 형태는 다양하다…핀레이지 모임은?
핀레이지 모임은 1991년 1월에 발족해 올해로 27년을 맞이했다. 리네트 클라인(Renate Klein) 편저의 책 <불임-지금 어떤 일이 이루어지고 있나>의 일본어판이 번역 출판되면서 이를 계기로 만들어졌다. 리네트 클라인이 FINRRAGE(Feminist International Network of Resistance to Reproductive and Genetic Engineer)의 회원이었기 때문에, 일본어 번역그룹이 이 책을 출판하면서 핀레이지라는 이름을 썼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불임여성들의 자조모임이라고 하면 보통은 ‘노력해서 다 같이 엄마가 되자’는 취지의 모임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 모임은 설립 당시부터 조금 달랐다. 모임이 지향하는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불임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장,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경험과 아픔을 공유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의 사람들과 교류함으로써 불임의 문제를 스스로 다시 이해하도록 하자는 것.
둘째, 불임치료와 생식기술의 위험과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의료와 납득할 수 있는 의료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지식을 얻고 생각을 나누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셋째, ‘아이가 있건 없건 억압당하지 않고 차별 당하지 않는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아야 온전한 인간’이라는 가치관에 대해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송하자는 것.
▶ 여성의 아이 낳을 권리와 낳지 않을 권리를 요구하며, 안전한 낙태를 돕는 활동을 펴 온 네덜란드 단체 ‘파도 위 여성들’의 메시지 ⓒWomen on Wave
나는 1993년에 이 모임에 가입했다. 서른두 살 때였다. 20대 무렵, 아이를 낳고 싶었지만 좀처럼 임신이 되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검사 결과 큰 문제가 없어, 타이밍 지도 등의 간단한 불임치료를 받게 되었다. 한 차례 임신했지만 유산된 후, 다시 임신이 되지 않았다. 본격적인 불임치료를 받을 생각은 없어서 아이 낳기를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아이가 없는 인생은 불행하다’는 가치관에 사로잡혀 몹시 고민하고 있었다.
체외수정으로 출산을 한 지인으로부터 “불임으로 고민하면서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심하게 질책을 당하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에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서라도 아이를 낳아라” 라는 내용의 연하장을 받기도 하면서, 깊은 우울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에 핀레이지 모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바로 가입했다.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면서 마음을 치유 받고, 내가 불임치료를 하지 않기로 한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회원들과 불임 고민을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되고 새롭게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가족은 이러해야 한다’는 환상이 사라지면서, 인간의 삶은 다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불임을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 불임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의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줬는지 돌아본다. 아이가 없는 인생은 그 나름대로 행복하다.
불임치료와 생식기술 발달이 우려되는 이유
지금 일본에서는 해외에서 난자 제공자와 대리임신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유로, 제3자의 정자와 난자의 제공, 대리임신을 인정하는 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제3자가 연루되는 생식기술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이를 제공하는 측의 신체적, 정신적 위험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또 태어날 아이의 복지와 권리에도 큰 위험 요소가 동반된다. 불임 당사자와 제공자뿐 아니라 각각의 가족에게도 영향을 준다.
“(불쌍한) 당사자가 그토록 아이를 원하니까”라는 동정심과 ‘아이가 없으면 불행하다’는 사회의 가치관은 생식기술과 의료에 반대하는 목소리들을 덮으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난자(정자) 제공과 대리임신을 법제화하고자 한다면, 제3자와 생식의료를 통해 태어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더욱 많이 경청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입장을 포함하여 국민적 논의를 반드시 거친 후에 추진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 불임치료에 대한 지원 정책은 다른 선택을 가로막는 출산 압박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이미지: pixabay.com)
저출산 현상으로 인해 국가적으로 여성에 대한 지원 정책이 만들어지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지원책이 아이를 낳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출산압박 장치가 될 수도 있다. 특히 불임치료에 대한 지원은 긍정적 효과도 있지만 부정적인 면도 있다. 체외수정 등의 치료비를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은 ‘치료 받지 않는’ 선택을 하기 어렵게 만들며, 불임치료를 통해 아이를 갖도록 부추기는 정책으로 작용하기도 할 것이다. 압력의 장치가 되는 정책은 여성들에게 스트레스와 부담을 준다.
나는 저출산 고령화에 대한 대비책으로,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 ‘선택지 중 하나’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든 안하든, 아이를 낳든 낳지 않든 관계없이, 싱글이라도 아이를 키울 수 있고, 입양을 통해 가족을 만들 수 있고, 동성 간에도 가족으로 함께 사는 등 다양한 삶의 방식이 용인되는 사회라면 어떨까. 고령자나 어린이, 아이가 있는 사람에게도 아이가 없는 사람에게도 바람직한 사회의 모습 아닐까.
사실 일본은 아이를 낳아도 키우기 힘든 사회다. 더 관용적인 사회가 된다면, 아이를 낳고 키우기 쉬워지고, 아이를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늘어날지도 모른다. 저출산이 문제라면 아이를 낳으라고 압박을 주고 불임치료를 지원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인정하는 관용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해결책이 될 것이다. (번역: 고주영) -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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