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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귀염한복’을 만드는 재일조선인 성이

저고리에 달린 여러 가지 노리개를 빼고 자유롭게   



성이 씨(1981년 생)는 캐주얼한 한복을 제안하는 브랜드 ‘성이한복’의 디자이너 겸 제작자이다. 일본 아이치현에 소재한 조선학교의 교사이자, 두 아들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아이 키우며 직장에 다니기도 바쁜 가운데 ‘귀염’(일본어로는 가와이를 줄인 갸와)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한복을 만들고 있다.

 

▶ ‘성이한복’ 디자이너 겸 제작자 성이 씨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성이 씨는 자이니치(재일조선인) 3세.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조선학교에서 공부했다. 중등부 2학년 때, 여느 때처럼 한복 교복을 입고 하교 중이던 전철 안이었다. 처음 보는 남자가 있는 힘껏 성이 씨의 뺨을 때리며 “조센징(조선인)! 얼른 조선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무서워서 다음 역에서 내려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 후 한동안 교복을 입을 수 없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기억마저 조각조각이에요.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거나 책에 적었더니, 같은 세대로부터 자기나 자기 친구가 같은 일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고, 또 충격을 받았습니다.”

 

북한 ‘핵 의혹’이 보도됐던 1990년대 중반, 조선학교 학생들의 한복 교복이 찢어지는 사건이 일본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 영향으로 조선학교에서는 블레이저 등의 제2교복이 정착되었다. 일본 사회는 자이니치 어린이들의 옷을 빼앗았다. 그로부터 20년.

 

“지금도 조선학교 학생들은 폭언을 듣거나 전철에서 소동에 휘말리곤 합니다. 특히 여자가 계속 표적이 되고 있는 게 괴롭습니다.”

 

한복에 대한 성이 씨의 생각은 복잡했다. 어린 시절의 공포를 극복하고 한복을 입을 수 있게 된 후에도, 긴 소매 저고리는 여름에는 더워서 싫었다. 조선학교에서 선생님도, 학생도 여자만 저고리 착용 의무가 있는 것도 자유롭지 못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여름에 시원하고, 입기 편하고, 빨기 편한 저고리를 직접 만들어봤다. 그랬더니 계속 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저고리를 입으면 원래의 자신이 된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고, 한복을 만들면서 자기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감각도 있었다. 몇 벌인가 만들어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주문이 들어왔고 ‘귀염저고리’라는 호평을 얻었다.

 

2014년에 자이니치와 소수민족, 외국인 등에 대한 혐오발언에 대항하는 ‘차별반대 도쿄대행진’에서 성이 씨의 저고리를 입고 행진하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다. 참가자들의 뜻에 힘입어 ‘귀염한복 부대’가 결성되었다. 일본의 무늬 천으로 저고리를 만들어 성이 씨도 참가했다. 당일, 길 위에 제안을 받아 인터뷰도 했다. ‘귀염한복 부대’ 정보가 전해지자 갑자기 주문이 늘었다. 다음 해인 2015년에 온라인몰 ’성이한복‘을 오픈했다.

 

▶ ‘성이한복’ 저고리  ⓒsungihanbok.stores.jp


‘성이한복’은 한국의 전통을 반영하면서도 디자인은 현대적이다. 원피스인가 싶은 것도 있고, 세련되고 귀엽다! 주문자의 30%는 일본인이다. 혹시 일본인이 한복을 입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진 않을까?

 

“한복을 입을 수 없는 사회를 자신들(일본인들)이 만들어놓고는 한복을 입다니, 문화도용이 아니냐고 생각하는 분도 있더군요. 하지만 한복이 패션으로서 발전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이 입을 필요도 있습니다. 저는 일본인이 한복을 입음으로써 여러 가지를 알게 되고, 생각이 깊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이 씨는 처음에 한복 짓는 법을 알려준 분도 일본인이었다고 말한다.

 

“그 분은 오사카 출신으로, 지금은 히로시마에서 한복가게를 하시는 분이죠. 한복 짓는 법에 관한 책도 일본어로 내셨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지금도 그분에게 연락합니다. 일본인에게서 배우는 제가 신기한가요?”

 

지난 5월, 재일동포를 위한 이오신용조합 나고야 지점에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용의자는 “한국에 나쁜 인상을 갖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때 그 안에는 어른만 있었기 때문에 그래도 충격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같은 일이 학교에서 일어났다면 아이들은 평생 상처를 받을 거예요” 라는 성이 씨의 말을 들으니 머릿속이 하얘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활기차게 자라나고 있습니다. 올해 조선학교에 입학한 첫째 아들은 이웃 사람에게 “조선학교에 다녀요!”라고 활기차게 인사했죠. 고교 무상화 적용(일본의 취학 지원금 제도로, 조선학교만 배제되어 있음)을 호소하며 거리에 나가는 학생들은 주변에서 폭언을 들어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도 자신감을 갖고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역할이겠죠.”

 

성이 씨는 어떤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상태인 ‘조선(국)적’(조선의 독립 이후에도 한국 국적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음)으로 살고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나의 모습도 좋아요. 조선(국)적이라는 ‘틈새’에 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양과 서울, 도쿄를 무대로 패션 일을 하는 것이 꿈입니다. 귀여움은 모두를 잡아끄는 힘이 있고, 차별을 넘고 사람들이 이어지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귀염한복이 일본 패션업계에서 일반명사가 되면 좋을 것 같아요!”

 

“저고리에 달린 여러 가지 노리개를 빼야 한다.”

 

성이 씨는 자신의 책 <귀염한복-가볍게 걸치는 자유>(트랜스뷰)에 그렇게 적었다. 이때의 노리개란 전통, 역사, 상징, 차별, 억압, 기호, 여성다움을 상징한 표현이다. ‘성이한복’에는 옷을 걸침으로써 자유로워진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 온라인몰 ‘성이한복’ http://sungihanbok.stores.jp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구리하라 준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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