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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여성들에게 체육관도 내주지 않는 사회에서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에서 든 의문들
퀴어여성의 체육활동과 ‘미풍양속’의 관계
다가오는 토요일(21일)에 열릴 예정이었던 “제1회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 게임은 시작됐다”의 대관 취소 사태(관련 기사: 배드민턴 치려면 궐기대회 해야 하는 여성성소수자) 이후, 그 부당함을 알리는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가 18일 저녁 대관을 취소한 동대문구청 앞에서 열렸다.
▶ 성소수자에게 체육관을 열어라. 2017 여성성소수자 궐기대회 참여자들이 동대문구청 곳곳에 붙인 스티커 ⓒ일다
동대문구체육관 측은 생활체육대회를 주관하는 퀴어여성네트워크에 대관 취소의 사유로 ‘미풍양속’ 위배를 언급한 바 있다. 퀴어여성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하는 것과 미풍양속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어 미풍양속의 뜻을 한번 찾아보았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미풍양속의 의미는 ‘아름답고 좋은 풍속이나 기풍’이다. 그리고 ‘풍속’의 의미는 1)옛날부터 그 사회에 전해 오는 생활 전반에 걸친 습관 따위를 이르는 말 2)그 시대의 유행과 습관 따위를 이르는 말이다. 또 ‘기풍’의 의미는 어떤 집단이나 지역 사람들의 공통적인 기질이라고 나온다.
여성들이 근대 올림픽에 첫 참가한 것이 1900년, 한국여성들이 처음 올림픽에 참가한 것은 1948년이다. 거의 70년 전이니까, 여성이 체육대회에 참가하는 것이 옛날부터 전해 오는 아름다운 습관에 어긋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2016년 리우 올림픽의 한국 선수단은 여성 101명, 남성 102명으로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거의 동일했다. 2016년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주 2회 이상 운동을 하는 여성은 49.3%, 남성은 49.2%다. 그러니 현 시대의 유행과 습관의 관점에서도 여성들의 운동과 체육 참여를 미풍양속 위배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여성들의 운동, 체육 참여는 증가하는 추세다.
왜 차별하나요?
그렇다면 문제는 ‘여성’이 아니라 ‘퀴어’여성이라는 지점으로 보인다. ‘퀴어여성은 여성이 아닌가?’ 지난 대선 토론에서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가 동성애 반대 발언을 한 이후, 성평등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했을 때 “저는 여성이고 동성애자인데 제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라고 외치며 항의했던 한 인권활동가의 외침이 떠오른다.
퀴어여성은 여성 범주에 들어갈 수 없는가에 대한 ‘논쟁이 될 수 없는 논쟁’을 뒤로 하더라도, 퀴어여성에 대한 차별은 과연 정당한가?
▶ 퀴어여성네트워크에서 배포한 피켓 ⓒ일다
우리는 공공체육시설인 동대문구체육관과 그 관리 주체인 동대문구청이 “생활체육에 있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한 생활체육진흥법 제3조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필요가 있다. 국가 공공기관이 어느 개인들의 건강과 관련된 기본적인 요구를 거부한 것과, 미풍양속을 운운하며 개인의 몸과 건강에 대한 주체성을 억압하는 결정을 한다는 것, 이것이 명백한 차별 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
미풍양속을 근거로,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혐오하는 이들의 ‘민원’을 이유로 체육관을 대여해 주지 않는 행위의 정당성이 있는지 동대문구청에 묻고 싶다.
생활체육하는 모든 이들에게 체육관을 열어라
궐기대회 중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를 위해 풋살팀을 만들고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는 발언자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런 체육대회, 함께 모여서 운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세상에 자신과 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고 자기 자신에 대해 긍정하는 마음을 더 일찍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실제로 <2016년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체육활동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설문에서 참가자들은 10점 만점에 평균 7.8점을 주었다. 체육활동이 행복감을 느끼는데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체육 동호회를 희망하는 이유’라는 질문에는 ‘여러 사람과 어울려 운동하는 것이 좋아서’라고 대답한 사람이 가장 많았다. ‘지속적으로 건강 및 체력을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 체육활동 참여 유인책이 되기 때문에’가 그 다음 순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유로 함께 운동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나 모임을 찾고 있다. 퀴어여성 생활체육대회의 목적도 그것이었다.
동대문구청 측과 구청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사람들은, 퀴어여성이 ‘미풍양속을 해치려고’ 운동을 하고 체육대회를 한다고 생각한 것인지 궁금해진다.
▶ 불꽃페미액션에서 준비한 피켓. 어떤 역사로 남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은 이미 던져졌다. ⓒ일다
역사에 어떤 기록으로 남을 것인가
근대올림픽을 만든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올림픽의 창시자로 역사에 기록되었지만 또 다른 기록이 있다. 여성이 올림픽에 참가한다면 그건 비현실적이고 재미없고 미학적이지 않으며 부적절할 것이라며 여성의 올림픽 참여를 반대한 사람. 이 오명은 계속 회자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것이 역사이기 때문이다.
궐기대회를 지켜보면서 생각난 영화와 장면이 있었다. 나사(NASA)에서 일한 흑인여성 과학자, 공학자들의 실제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에는 ‘흑인’과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차별과 그것에 투쟁한 장면들이 다수 등장한다.
나사(NASA)에서 일하는 최초의 여성 엔지니어에 도전하는 메리 잭슨이 당시 ‘백인’들만 입학할 수 있었던 학교의 차별 행정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후 법정에서 판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최초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저는 제 피부색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전 선택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최초로 나사에서 엔지니어가 될 계획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백인 학교에 가야 합니다. 오늘 있는 여러 심리 중에 어떤 심리가 판사님을 ‘최초’로 만들까요? 향후 100년간 어떤 심리가 중요하게 남을까요? 판사님 선택이면 가능합니다.”
▶ 나사(NASA)에서 일한 흑인여성 공학자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
동대문구청은 여성소수자 혐오에 굴복하고 퀴어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하며 체육대회도 열지 못하게 한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 혐오에 굴복하지 않고 퀴어여성에게 체육관을 내어주고 퀴어여성들의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알리는데 일조하는 최초의 사례로 역사에 남을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을 매년 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대여와 관련하여 오락가락하는 행정을 보이는 서울시 측에, 지난 9월 부산퀴어문화축제 장소 사용 허가를 하지 않았던 부산시와 해운대구 측에, 다가오는 10월 28일 열릴 예정이지만 장소 사용을 “제주 정서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취소한 제주시에도 던진다.
향후 100년간 어떤 선택이 역사에 남을 것인지, 그 역사에 어떤 기록으로 남을지 생각하고 결단해야 할 시점이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전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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