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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들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즐기는 방법
‘2018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 준비 중
선수들의 성별 논란…스포츠계의 강고한 젠더 규범
“스포츠의 목적은 승리하고 뛰어넘고 통달하는 것임에도 스포츠 내 성차별과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는 여성,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운동선수들의 성취에 제멋대로 한계를 설정합니다. 그리고 어떤 선수가 한계를 넘어서 성취를 하면 성별에 대한 의혹과 논란이 불거집니다.” (케프 세넷/ 캐나다 성소수자 스포츠 인권활동가)
▶ 7월 18일 캐나다 대사관에서 <성적소수자 커뮤니티를 위한 프라이드 하우스 만들기> 강연 중인 케프 세넷 ©일다
스포츠는 젠더 규범이 공고한 분야다. 강하고 빠르고 공격적인 기질은 ‘남성적’ 자질로 취급되며 장려된다. 그리고 여성선수가 최고가 되면 그 사실만으로 젠더 규범을 어긴 것으로 취급받는다.
대표적인 예가 한국 여자축구 박은선 선수다. ‘축구천재’, ‘한국 여자축구 간판 스트라이커’로 인정받던 박 선수는 체격이 건장하고 기량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성별에 대한 의심을 받아왔다.
박은선 선수는 2013년 WK리그(한국여자축구경기전) 시즌 22경기 19골을 기록하며 득점왕과 함께 소속팀인 서울시청 준우승의 주역이 됐다. 그러자 그해 말, 서울시청을 제외한 WK리그 6개 구단 감독들이 박 선수의 성별에 의문을 제기하며 리그 보이콧을 선언했다. 남자인지 아닌지를 밝히기 위해 ‘성별 검사’를 실시하라고 요구한 것.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WK리그 해당 감독들에게 인권침해에 대한 징계 조치를 권고했으나, 축구협회와 여자축구연맹은 경고 조치하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 또한 200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 800미터 경기에서 우승한 후 성별 검사를 받아야했다.
▶ 2010년 최초로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프라이드 하우스 (출처: 2018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 홈페이지)
‘프라이드 하우스’란?
스포츠 분야가 갖고 있는 이러한 가부장적 젠더 규범은 자연스럽게 성소수자 선수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기도 한다. 캐나다 성소수자 스포츠 인권활동가이자 ‘프라이드 하우스 인터내셔널’ 이사인 케프 세넷(Keph Senett)은 “스포츠 내에서의 여성차별과 성소수자 혐오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계집애 같은 놈’이라는 성차별 발언과 ‘호모새끼’라는 혐오 발언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성애자라고 하더라도 스포츠 선수들은 늘 이런 말을 들어요. 이런 성차별적이고 호모포비아적인 문화는 스포츠를 갉아먹습니다.”
케프 세넷은 미국 프로풋볼선수 마이클 샘이 커밍아웃 후, 호모포비아들로 지탄을 받고서 풋볼을 그만두고 파트너와도 헤어진 사례를 이야기했다. 또 나이지리아 여자축구 코치가 “우리 팀의 레즈비언은 정말 큰 문제다. 내가 코치를 맡으면서 우리 팀에 더 이상 레즈비언은 없다”고 말한 사례도 들려줬다.
케프 세넷은 지난 18일 캐나다 대사관 스코필드홀에서 열린 강연 <성적소수자 커뮤니티를 위한 프라이드 하우스 만들기>(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주한캐나다대사관 공동 주최)에 참석 차 방한했다.
‘프라이드 하우스’는 성소수자들이 환영 받으며 편안하고 안전하게 올림픽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성소수자의 인권과 스포츠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2018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pridehouse.kr)을 준비하고 있다.
최초의 프라이드 하우스는 2010년 캐나다 벤쿠버+휘슬러 올림픽과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에서 운영됐다. 게이 관광업계가 고안한 아이디어가 성소수자 인권운동과 만난 것이 시초가 됐다.
당시 성소수자 운동선수와 팬들이 올림픽을 즐길 수 있도록 안전한 휴게소를 두 곳 설치해 운영했고 워크샵과 전시, 뉴질랜드의 게이 스케이트 선수 블레이크 스켈러럽과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케프 세넷에 따르면,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프라이드 하우스를 거쳐 갔다고 한다.
이후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과 패럴림픽, 폴란드와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유럽축구 선수권대회, 2014년 브라질 상파울루 남자 월드컵, 201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패럴림픽 등에서도 프라우드 하우스가 운영됐다. 그리고 1년 전에는 국제기구인 ‘프라이드 하우스 인터내셔널’이 정식 창립됐다.
▶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프라이드 하우스의 <커밍아웃한 스포츠 선수들 전시회>
‘원격 프라이드 하우스’등 국제적 연대의 힘 보여줘
프라이드 하우스는 단순히 올림픽이나 스포츠 경기가 열리는 곳에 특정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국의 상황과 역량에 따라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 폴란드나 우크라이나에서는 2~3일 동안 성소수자들이 작은 바(Bar)를 빌려서 함께 모여 경기를 관람하는 것으로 프라이드 하우스를 운영한 바 있다.
스포츠 안에서의 성소수자 차별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해외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는 활동이라면 어떤 것이든 프라우드 하우스가 될 수 있다. 프라이드 하우스는 ‘장소’가 아니라 ‘운동’인 셈이다.
특히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프라이드 하우스는 국제적인 연대의 힘을 보여줬다. 동계올림픽이 열리기 1년 전, 러시아 의회는 ‘동성애 선전 금지’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르면 미성년자에게 성소수자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성소수자 관련 행사를 개최하거나 옹호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면 벌금을 물거나 구금을 당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프라이드 하우스를 운영하지 못하게 되자, 캐나다의 벤쿠버, 미국의 로스엔젤레스, 영국 런던 등 세계 20여개 도시의 성소수자들이 러시아의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원격 프라이드 하우스’를 자신의 도시에서 운영했다.
또한 올림픽 경기 중에 러시아 LGBT연맹의 제안으로 ‘동성 간 손잡기’ 운동이 진행됐다. 선수와 스태프, 언론인, 관중, 팬들이 곁에 있는 동성 누구든 그와 손을 잡고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운동이다. 단순한 제스처이지만 러시아를 비롯해 해외 수많은 성소수자들의 호응을 받으며 참여를 이끌어냈다.
▶ 러시아 소치올림픽 당시 세계 각지에서 러시아 성소수자들을 응원하기 위한 ‘동성 간 손잡기’ 운동이 벌어졌다. 사진은 호주 마디그라에서 열린 동성 간 손잡기 행사. (출처: 2018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 홈페이지)
평창에서 ‘스포츠와 성소수자’ 논의의 발판 만들 것
한국에서는 아직 ‘스포츠 내에서의 성소수자 차별’ 이슈가 진지하게 다뤄진 적이 없다. 여성선수들의 인권 문제도 코치나 감독의 성폭력, 구타 등으로 일부만 표면화되었을 뿐 전반적인 차별문화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이제 ‘2018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까지 남은 기간 D-day 200. 프라이드 하우스를 준비 중인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의 캔디 활동가는 국내에서 ‘성소수자와 스포츠’라는 이슈를 제기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2018 프라이드 하우스 평창’이 한국 스포츠 분야에서 성소수자 인권이 존중되려면 어떤 것이 마련되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프라이드 하우스는 어떤 모양새를 띠게 될까? 한국에서도 성소수자들의 존재와 운동이 가시화되고 있는 만큼, 스포츠 내 차별에 대해서도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나랑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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