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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에서 ‘로봇’하는 ‘여성’들이 말하다

<거침없는 2030 여성들의 인생 프로젝트> 걸스로봇 이진주, 이세리


※ 자신의 젊음과 열정을 바쳐 시작한 프로젝트를 통해 동등한 사회를 향한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밀레니얼 여성들을 찾아가 인터뷰하는 시리즈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여성이 로봇공학에서 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2015년 12월에 열린 “걸스 인 로봇틱스” 파티에서 초청 연사로 참석한 MIT 미디어랩의 박혜원 박사가 청중에게 물었다.

 

“여자들이 남자보다 사람을 대하는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좀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아이를 길러본 경험이 있으니까 육아로봇에서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저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대답들이 관중석에서 나왔다.

 

“정답은 이 질문 자체가 바보 질문입니다. 여자가 특별히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남자가 여자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분야도 없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성들이 로봇공학계에 더 조인하면 다양성에 기여한다”는 말에서 ‘다양성’이란, 그냥 다양한 사람이 모여서 각자 다른 접근 방식을 가지고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다양성에 기여하는 것이지 누가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다 라는 구체적인 예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 윤정미 작가 The Pink Project(2005-ongoing) ⓒjeongmeeyoon.com/aw_pinkblue.htm

▶ 윤정미 작가 The Blue Project(2005-ongoing) ⓒjeongmeeyoon.com/aw_pinkblue.htm

 

이와 같이 사회에서 통념화된 ‘남성이 여성보다’ 혹은 ‘여성이 남성보다’ 흥미로워하고 잘 할 수 있다고 단정 짓는 고정관념은 얼핏 들으면 예전 이야기 같지만, 우리 주위의 흔한 물건인 어린아이들의 장난감만 봐도 알 수 있다. 윤정미 작가의 “핑크 앤 블루 프로젝트”는 10년 전의 연작이지만 오늘날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걸스로봇>은 이러한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유아기부터 청소년 그리고 대학생과 사회원이 되어서까지도 자신이 원하고, 재능이 있는 배움의 폭과 진로 선택을 주체적으로 찾아갈 수 있는 그 여정의 스토리를 바꾸어보고자 만들어진 소셜벤쳐이다.

 

“과학이라는 우주에 흩어져,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확신을 갖지 못하고 외롭게 떨고 있는 여자라는 별들이 있어요. 저는 그 별들을 한 데 모아, 은하수처럼 흐르게 하고 싶었어요.” 걸스로봇 소개 페이지에 이진주 대표가 적은 문구이다.

 

걸스로봇의 창업자인 이진주 대표의 이력서만 보면 “로봇덕후”로서의 면모를 한눈에 알아보기 힘들다. 걸스로봇의 핑크와 보라색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와 발레리나 투투를 연상시키는 볼륨 있는 스커트를 입은 발랄한 모습은 “신선한” 로봇덕후로서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 로봇공학 분야 여성들 후원과 네트워킹을 위한 소셜벤처 걸스로봇(Girls Robot) 이진주 대표.  ⓒ걸스로봇 제공

 

한 때 “과학영재”로 서울과학교육원과 대학교 공대를 입학했으나 중간에 언론정보학과로 전공을 바꾸어 중앙일보 공채기자로 합격해 활동하였다.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의 엄마가 되면서 일을 그만두고 제주도에 거주하며 아이들을 키우는데 전념하였다. 그 사이 그녀는 텔레비전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광운대 로보틱스의 박일우 교수가 “휴보의 아빠” 즉, 로봇 휴보의 개발자 중 한 명으로 떠오르는 것을 보고 충격에 사로잡혔다.

 

“같은 영재원, 같은 반, 같은 책상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로봇을 만들며 미래로 나아가는 동안, 저는 결혼을 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거예요. 그 때부터 저는 남몰래 로봇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덕질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마침 광운대 로봇 동아리 한 학생에게 “로봇학계의 여성전문가”로서 강연 부탁을 받고, 그 자리에서 학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그녀는 머리를 맞은 듯한 “아하, 이게 내가 할 일이구나” 하는 경험을 하고, 그 이후 6개월 만에 걸스로봇을 런칭하게 되었다.

 

런칭 후 처음 삼년은 자신의 사비를 들여서 한다는 각오로, 지난 이년 반 정도를 걸스로봇이라는 기업을 우선 알리는데 집중하며 이끌어 왔다. 처음에는 대학교 이공계 혹은 STEM (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and Mathmatics) 전공과목의 여학생들 네트워크 활동을 도와주는 일에 집중했다. 카이스트의 여학생 운동 동아리 “FC 하이힐스”와 전산학부 여학생 모임 “레이디 버그” 등이 있다.

 

“스탬(STEM) 여학생들을 많이 만났어요. 이미 자생적으로 목말라있는 학생들은 조금만 도와주면 조직화가 잘 되기 때문에 그런 네트워크 만드는 일을 도와주는 작업을 전국 학교마다 했구요. 또 이공계 밖에서도 저희와 제휴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과 같이 하여 네트워크가 확장되었죠. 현재 스탬 네트워크에 있는 사람들이 천 명 정도 될 거에요.”

 

▶ 4월 22일 세종문화회관 앞 <2017 함께하는 과학행진>에서. 가운데가 이세리 매니저.  ⓒ걸스로봇 제공

 

이진주 대표가 만난 스탬 여학생 중에 그녀 못지않은 로봇덕후 이세리 학생이 있다. 국민대 기계시스템공학부 4학년에 재학 중이고, 현재 걸스로봇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 이세리 매니저는 인재양성 프로그램의 1기 펠로우로 발탁되었다.

 

이세리 매니저는 밝은 색깔의 풍성한 단발머리와 발랄한 데님 점프수트의 반바지를 입고, 걸스로봇답게 대학밴드에서 보컬로 활동 중인 반전의 매력을 수줍게 자랑하였다. 각종 걸스로봇에서 진행하는 인터뷰 기사 작성과 사진 찍는 일까지 능숙한 멀티테스크 스킬을 가지고 있어 “주문하면 뭐든지 다 해온다”며 이진주 대표가 옆에서 덧붙였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이 물리였고(“F=MA를 처음 배웠을 때 너무 신비롭고 모든 게 다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대학교에서 로봇 축구 동아리에서 휴머노이드의 매력에 빠져, 납땜과 프로그래밍까지 기계를 직접 만지고 만드는 일을 가장 좋아한다. 요즘 취미생활로 3D 프린터로 인체에 무해한 실리콘 재질 맞춤형 생리컵을 만드는데 꽂혔다.

 

로봇 축구대회(robocup.org)는 전세계 무대에서 경쟁하는 로봇 대회이고, 1997년 일본에서 처음 시도되어 2050년까지 휴먼 월드컵 챔피언팀과 경기하여 이길 수 있는 로봇을 만드는 목표를 가지고 매년 열리는 행사이다.

 

그녀가 기계공학부에 입학했을 때 전체 학생인원 120명 중 여학생이 20명이었고, 자동차공학과에는 겨우 두 명이었다. 그리고 전국 대학교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을 만큼 몇 안 되는 국민대 로봇동아리 안에서 여학생은 그녀가 처음 조인했고, 나중에 한 여학생이 더 들어왔다.

 

“동아리 안에서 나 혼자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불편해지는 순간이 있죠. 예를 들어, 족구내기 하러 가자고 할 때 체력적으로 균형이 안 맞으니 저는 자연스럽게 옆에서 응원하며 사진만 찍어주고 있더라구요.”

 

혹은 대회 전에 철야작업을 할 때, 다른 남학생들은 접이식 침대에 다 같이 쪽잠을 자지만 여자 혼자로 침대에 누워서 자기엔 왠지 불편해서 참여할 수 없었다.

 

그런 “외로운” 시간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경험을 하면서 위로가 됐다.

 

“브라질 대회에 나갔을 때 공차고 놀면서 저희 교수님이 일부러 ‘여학생이라고 봐주는 거 없다’라고 하셔서 다 같이 엉켜서 공차고 놀았는데 너무 좋았어요.”

 

로봇을 만지고 만들고 망가뜨리기도 하는 것은 “비싼” 취미생활이기 때문에 관심과 의지만가지고 계속 할 수 있는 활동이 아니라고 이세리 매니저는 말했다. 그런 환경과 열정을 계속 가질 수 있도록 그녀에게 큰 영향을 준 두 사람이 국민대 로봇동아리 교수와 이진주 대표이다.

 

▶ 4월 22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2017 함께하는 과학행진(과실연, ESC 공동 주관)에서  ⓒ걸스로봇 제공

 

이진주 대표가 걸스로봇을 하기까지 여정은 이세리 매니저에 비해 조금 더 험난했다.

 

이 대표가 처음 성차별을 느낀 것은 그녀가 다니던 과학고에서였다. 남녀할 것 없이 우등학생들이 모인 특목고였지만, 학생회장 선거 때 남학생들만 후보에 올랐고 그녀를 포함한 여학생들은 남학생 후보자들이 선거 연설을 할 때 음악 틀어놓고 춤추는 치어리더 같은 역할을 하거나 혹은 비서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후 그녀는 엔지니어인 아버지 영향을 받아 대학교 공대를 진학했다. 그 때는 지금보다 남녀 성비율이 더 열악한 상황이었고 위로 드러나지 않는 성차별이 만연했다. 한 예로, 그녀가 신입생 때 조교가 그녀에게 “대시”를 하였는데 그녀가 거절하자 납득하기 어려운 점수로 보복을 당하는 일을 경험했다.

 

그녀가 중앙일보에 입사했을 당시 그 해 처음으로 신입기자들의 남녀 성비가 바뀌었는데, 이에 대해 선배들이 장난 섞인 말투로 비꼬기를 “여자들이 예전보다 똑똑해졌거나 아니면 기자도 별 볼 일 없는 직업이 되었다”라고 하여 그녀는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현재 39세의 나이로 스타트업계 이전하고 보니, 여전히 여성대표가 전체의 한 1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사회에서 남녀 성비의 불균형은 이공계열의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여성에게 불리하게 씌워진 유리천장의 벽인 것을 느꼈다.

 

현재 15% 내외인 이공계 여성 비율을 20% 에서 30% 정도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걸스로봇의 목표이다. 더 큰 비전으로는 모든 사람들이 성별이나 성적 지향, 외모, 성격 등과 상관없이 재능이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세상을 그린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 2017 함께하는 과학행진에서 아이들과 함께한 걸스로봇 부스.   ⓒ걸스로봇 제공 

 

최근 걸스로봇은 오프라인 메이커 활동을 권장하기 위해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중이다. 매주 금요일마다 ‘걸스데이’를 열어서 세미나나 토크 강연 등을 열 계획이다. 또 ‘핑크랩 어텍’ 프로젝트라고 해서 전국에 열리는 팹랩에 찾아가서 기계, 공구 등 ‘남성적’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여성적인 색’으로 낙인 찍힌 분홍색을 칠하고, 리본과 보석을 달아주는 퍼포먼스도 한다.

 

“분홍색과 기계는 어울리지 않는다 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서 리본을 강조하고 가장 극단적인걸 보여주려는 거예요. 그러면 중간은 편해지는 거죠.”

 

예전에는 이공계 여학생들이 자신의 여성성을 감추거나 없애려고 했다면, 이제는 ‘그물 스타킹과 하이힐을 신고 연구도 잘하는’ 여학생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요즘 페미니스트 학생들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로봇키트나 레고 등을 활용해 아빠와 딸이 같이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긱걸스’(Geek Girls)를 위한 납땜과 코딩을 배워보는 경험도 제공한다.

 

▶ 4월 21일 닷페이스X걸스로봇 주최, 심상정 대선 후보와 함께한 젠더 대담  ⓒ걸스로봇 제공

 

사실 로봇공학, 특히 그 안에서 휴머노이드는 사람과 가장 닮은 로보틱스로 단순히 기계공학과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문제가 아니라 예술, 철학, 윤리까지 다양한 분야와 융합되고 그 영역이 넓어지는 추세이다. 사람과 기계가 점점 하나 되는 사이보그화 또는 AI(Artificical Intelligence) 기계가 점점 인간화 되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던 일들이 현실화되는 것을 이젠 우리 일상생활 안에서 체감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에 전 세계의 관심을 받았던 구글의 딥마인드에서 만든 알파고가 인간 바둑계 챔피언인 이세돌과 커제를 모두 이기면서 AI의 지능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섬뜩함을 느꼈다. 테슬라 자동차의 창립자로 잘 알려진 일런 머스크(Elon Musk)는 나날이 우수해지는 AI에 대비하려면 바이오인공지능 즉, 기계와 인간의 지능이 합쳐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의 새 벤쳐기업인 뉴럴링크(Neuralink)를 통해서 사람의 뇌를 기계와 직접 연결하여 소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이런 담론 안에서 테크노 페미니즘도 탄생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 <네이처>지에 실린 인공자궁으로 조산된 새끼양이 화제가 되었는데, 인공자궁의 기술이 인간의 영역으로 확장된다고 가정할 때,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어떤 의미와 영향을 주는지 사회적으로 충분한 논쟁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걸스로봇이 말하는 “다양성” 즉 문과, 이과로 나누는 전공 혹은 남녀 차이로 규정짓는 이분법적 사고와 편견을 넘어서 다양한 시각과 경험, 그 안에서 나올 수 있는 감수성의 중요성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겠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필자 소개] 강예원 님은 서울에서 외신기자로 활동하였고, 현재 PLATOON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예술문화를 다루는 잡지와 에이전시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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