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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대면하지 않고는 평화를 찾을 수 없어요”
<영화로 읽는 페미니즘> 디 아워스(The Hours)
※ 필자 소개: 지아(知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공연을 만드는 사람입니다. 영화칼럼을 비롯해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으로 전방위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버지니아 울프
“그녀 때문에 자살 충동을 이길 수 있었어요. 돌을 호주머니에 잔뜩 넣은 채 강물로 혼자 걸어 들어가던 버지니아 울프의 모습이 다시 살아갈 힘을 주더군요.”
글쓰기 수업에서 만난 한 여성은 ‘울프’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다.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일 때마다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가 강에 빠져 죽으려고, 호주머니에 돌을 넣는 모습을 떠올렸다고 했다. 역설적으로, 그 장면은 그녀를 살아가게 했다. 강바닥에 완전히 가라앉기 위해, 마치 허기를 채우듯 허겁지겁 호주머니에 돌을 집어넣는 버지니아 울프는, 아프지만 강한 삶의 충동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 스티븐 달드리 <디 아워스>(The Hours, 2002, 미국)에서 니콜 키드먼이 연기한 1923년 버지니아 울프
영화 <디 아워스>(스티븐 달드리 감독, 미국, 2002)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 장면으로 시작한다. 일상의 삶과 예술의 불가능한 요구 사이에서 깊은 절망을 느꼈던 그녀가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자, 강은 바닥없는 심연이 되고 물줄기는 세대를 초월하여 오로지 여성들만의 서사로 이어진다.
영화를 다시 보며 글쓰기 수업의 그녀, 울프가 생각났다. 마음이 아파왔다. 그녀의 삶은 버지니아 울프의 호주머니 무게보다 얼마나 더 무거웠을까? 지금 이 시간에도 강물 속으로 들어가려는 울프는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여러 물음이 강물 위로 떠올랐다.
# 시공간을 뛰어넘어 연결된 세 여성
<디 아워스>에는 세 명의 여자가 나온다. 1923년 영국의 리치먼드에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 중인 작가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분), 1951년 미국 LA에 사는 임신 8개월의 평범한 중산층 가정주부인 로라(줄리안 무어 분), 2001년 미국 뉴욕에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클라리사(메릴 스트립 분). 각기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여자들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해서 나온다. 그것도 하루 동안 이들에게 일어난 일. 영화 <디 아워스>는 단 하루 동안의 이야기다.
버지니아 울프는 끝내 자신이 붕괴될 것 같은 불안을 느끼며 런던에서 곧 집에 도착할 언니와 조카를 파티로 맞이하려고 한다. ‘로라’는 어느 것 하나도 주체적으로 선택하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 공허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세 살배기 아들 ‘리처드’와 함께 집에서 남편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다가 돌연 혼자 호텔에 가서 자살을 시도하지만, 결국 자살을 포기하고 둘째아이가 태어나면 집을 떠나리라 결심한다. 동성 애인이 있는 클라리사는 에이즈로 죽어가는 옛 애인이자 시인인 ‘리처드’(에드 해리스 분)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 중이다. 리처드는 어린 시절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 ‘로라’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살아온 남자다. 그는 파티 이야기를 하려고 집에 찾아간 클라리사 앞에서 창밖으로 뛰어내린다.
얼핏 착란적으로 보이는 세 가지 이야기는, 마치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보인다. 다른 시공간을 살았던 세 여자의 하루는 신기하게도 서로 닮아 있다. 또 이들은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 작품을 쓴 실존 작가 버지니아 울프와,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위로와 영감을 얻는 로라,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을 지닌 클라리사는 먼 시공간을 뛰어넘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소설 「댈러웨이 부인」도 한 여성의 일생을 하루라는 시간으로 압축한 작품이 아닌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The Hours)에서 줄리안 무어가 연기한 로라 브라운. (1951년)
세 여성은 모두 한결같이 우울하다. 남편과 애인의 사랑을 받아도, 파티를 준비하는 일상이 즐거워 보여도, 그들 중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입은 것처럼, 버지니아와 로라는 결혼제도 안에서 사소한 일상과도 시시때때로 불화하고, 커리어 우먼인 클라리사는 옛 애인 리처드를 자기희생이란 명목으로 도와주며 자신 안의 고통은 못 본 척, 덮으려고만 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 아니 가장 절박한 것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방. 시대와 공간은 다르지만, 세 여성 모두 같은 세월을 살고 있는 이유다. 대학시절 나의 친구처럼.
# 그 고통을 아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거예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친구는 고향인 서울을 떠나 머나 먼 남쪽으로 내려갔다. 스무 살 언저리, 우리는 문학 동아리에서 함께 시를 썼다. 빛날수록 어두워지는 것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노래하는 시, 우리는 세상이 이름 붙인 가치들을 전복하고 날마다 새로워지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예비 시댁이 재촉한다는 이유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둘러 결혼한 친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빨간 머리 앤의 친구들처럼 우리는 오랜 시간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결혼하니 외롭다’고 친구가 편지에 썼던 걸 기억한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보낸 편지는 지금도 꺼내볼 때마다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결혼은 나를 많이 변화시켰어. 자꾸만 낡은 사진첩의 흑백사진이 머리에 떠오른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의 아버지의 모습이 있고 아주 가냘픈 소녀였던 엄마도 있다. 러시아의 영화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글이 떠오른다.
“너 자신에 관한, 너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에 관한 영화다. 너처럼 살아갈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일 뿐인 인간에 관한 영화이다.”>
설이나 추석에도 서울의 친정집에 한 번도 올라오지 못했던 친구는 외아들에 대한 집착이 심한 시모의 강요와 폭언으로 한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친구가 보낸 편지에는 그래서, 그 시절 사막처럼 무성했던 절망이 늘 불안하게 스며있다.
<내가 무수히 그냥 스쳐 지나갔던 소중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생각을 하면 숨이 막히려고 해. 지금 이 순간 내가 보아야 할 연극이 이 지구 어딘가에서 올려지고 있지. 그리고 내가 만나야 할 좋은 사람들, 나의 발길을 기다리는 어느 아름다운 도시가 있다. 그런데 나는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집안의 평화’라는 명목으로 여성의 희생을 당연히 강요하는 것이 한국의 결혼제도라는 것을 친구를 보며, 또 주위에 숱하게 회자되는 기혼여성들의 크고 작은 애환을 들으며 절감했다. 아무리 남편이 사랑하고,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도, 공유하지 못하는 내밀한 절망은 그들 안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그 무엇이었다.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디 아워스>(The Hours)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클라리사 본. (2001년)
친구의 예는 극단적인 경우지만, 곧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유교적인 가부장 문화가 서슬 퍼렇게 살아있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게 결혼은 여전히 자신을 일정 정도 포기하고 억압해야만, 또 길들여져야만 생존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아닌가. 그래서 <디 아워스>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남편에게 말하는 대사는 들을수록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하다.
“난 어둠 속에서 혼자 고통 받아요.
깊은 어둠. 그 고통을 아는 건 오직 나뿐이라는 거예요.“
# 자기만의 방이 필요한 여성들
명절만 지나면 이혼율이 급증한다고 한다. 지인 중에는 설날에 남편이 설거지를 했다는 이유로 다음 날 갑작스럽게 이혼을 한 여성도 있다. 산처럼 쌓여 있는 설거지를 남편과 함께 나눠서 했을 뿐인데, 귀한 아들이, 소중한 남동생이 손에 물을 묻히고 설거지를-그것도 시댁에서-한다는 사실이 가부장적 사고를 지닌 시모와 시누이의 심기를 건드렸던 것이다. 설날 아침 사소하게 촉발된 싸움은 그동안 묵었던 감정까지 건드리면서 결국 두 사람은 이혼까지 이르렀다. 우리 사회에서 결혼을 기피하는 여성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라는 게, 절로 이해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아닌가.
얼마 전 카페에서 우연히 듣게 된, 옆 자리 낯선 여성들의 대화도 이 사회가 여성에게만 특별히 짐 지우는 결혼의 무게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30대 후반쯤일까. 친구 사이로 보이는 두 여성은 신나게 남편과 아이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돌연 말을 멈추었다. 한 여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 던진 말 때문이었다.
“그런데, 집에만 있으니까 내가 그냥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져…
꼭 기계가 된 것 같은 기분 있지?”
그 여성도 버지니아와 로라, 클라리사처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해 보였다. 해결되지 않은 문제는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유전된다고 했던가. (결국 나중에 자살하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소설을 쓰면서 자기 파괴의 욕구를 견뎌내며 가출을 시도했다 실패한 것에 반해, 자살을 포기한 로라는 소설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나중에 가출을 실행한다. 또, 로라의 가출로 인해 그녀의 아들 리처드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다가 결국 클라리사가 보는 앞에서 자살을 하는 것은 또 어떠한가.
▶ 스티븐 달드리 감독의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 2002, 미국) 중에서
그렇다. 영화 <디 아워스>처럼 세상의 모든 삶은 서로 이어져 있다. 친구의 네 살 배기 아들은 자신의 엄마를 괴롭히는 할머니를 적대시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자폐 증세를 보였다. 친구의 고통이 아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상처의 악순환 같았다.
이 모두가 가부장제의 폐해라고 뭉뚱그려 말하기에는, 여성들이 겪는 고통은 집요하고 구체적으로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직장 일을 하는 기혼여성에게는 참으로 가혹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사회 환경이다. 여성이 일하는 것을 장려하는 분위기에서 일도, 살림도, 슈퍼우먼처럼 완벽하게 해내는 여성을 원하는 사회라니! 결혼한 여성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육아휴직이나 보육 환경과 같은 제도적 뒷받침은 잔인할 정도로 미비한 채 말이다.
어느 진보정당에서 공약으로 내건 ‘슈퍼우먼 방지법’은 그래서 반가우면서도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슈퍼우먼 방지법안에 의하면 산전후 휴가도 길어지고 남편이 함께 육아에 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한다. 보육 정책이 발달된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 제도가 부럽다고만 말하지 말고, 이제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대책이 절실히 필요한 때. 그동안 많은 여성들이 슈퍼우먼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당한 걸 생각하면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 ‘당신의 삶은 어디에 있냐’는 질문
오래 전 집에서 살림하는 남자를 취재했을 때도, 여성에게 주어진 살림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었다. 일곱 살배기 딸을 데리고 약속 장소에 나타난 남자는 먼저 점심을 먹고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는 미리 알아봐 둔 식당이 있다며 빠른 걸음으로 앞장을 섰다. 그를 따라 들어간 곳은 샹들리에가 있는 뷔페식당이었다. 점심 한 끼 먹는 밥집을 예상했던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밖에서 일하는 대신 집에서 살림만 하며 아이를 키우게 된 것은, 그가 공무원인 아내보다 살림을 잘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아내는 살림이 적성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소질도 없었다. 하지만 한여름에 좁은 부엌에서 선풍기 한 대를 의지한 채 비지땀을 흘리며 딸의 천기저귀 더미를 솥에 넣고 삶아내는 일은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고 남자는 고백했다.
일한 만큼 대가를 받는 바깥일에 반해 집안일은 생색도 낼 수 없는, 해도 해도 끝없는 무임금 노동이라며, 집에 하루 종일 있다 보면 유일한 즐거움이 아주 가끔씩 나가서 먹는 외식이라고 남자는 말했다. 그때서야 너무도 행복한 표정으로 뷔페식당을 종횡무진했던 그를 이해할 수 있었다.
▶ 리처드(애드 해리스)는 생을 떠나기 전, 클라리사에게 ‘당신의 삶은 어디 있냐?’고 묻는다.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많아지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과거보다야 집안일을 분담하는 부부가 많아졌겠지만, 우리 머릿속에는 그래도 ‘가정 살림의 책임자는 여성’이라는 시각이 여전히 익숙하다. 더구나 한국사회처럼 결혼한 여성에게 이중으로 덧씌워지는 ‘시집에 대한 며느리 도리’ 등과 같이 보이지 않는 덕목과 의무들은 여성들을 더욱 압박한다.
이런 판국에 지난해 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 간 임신과 출산 통계를 한눈에 확인하고 비교할 수 있는 ‘대한민국 출산지도’ 서비스를 시도했다가, 여성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중단된 사실은 여성이 고통 받는 현실에 대한 이 사회의 몰이해를 단번에 보여주는 것일 터. 이는 ‘출산율이 낮은데 왜 아이를 낳지 않냐?’고 여성들을 일방적으로 다그치는, 어찌 보면 엄연한 폭력이 아닌가. 거기에 집안 살림과 일을 모두 완벽히 해내는 슈퍼우먼을 여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또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
영화 <디 아워스>에서 리처드가 생을 떠나기 전 클라리사에게 던진 ‘당신의 삶은 어디 있냐?’는 말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여성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더 늦어지기 전에 찾아가야 한다. 여성들이 자기만의 방을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루는 평화가 아닌, 진짜 평화, 행복을.
그 행복을 찾기 위해서, 영화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그을음을 토해내듯 말하는 대사를 복기해야 하는 것은, 허무하게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여성들이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삶을 대면하지 않고는 평화를 찾을 수 없어요.”
▶ 스티븐 달드리 감독, 니콜 키드먼, 줄리안 무어, 메릴 스트립 주연 영화 <디 아워스>(The Hours, 2002)
[디 아워스를 좀 더 잘 읽기 위한 영화미학]
영화의 모태가 된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결혼 전에는 규범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으로 살았지만, 결혼 후에는 침묵을 덮는 화려한 파티를 여는 걸 즐겨 하게 된 공허한 댈러웨이 부인이 하루 동안 겪는 의식의 흐름을 쫓는 소설이다. 주인공 댈러웨이 부인의 이름이 클라리사라는 사실은, 소설 「댈러웨이 부인」과 영화 <디 아워스>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있음을 말해주는 것일 터.
의식이 흐름을 쫓는 소설의 형식미를 영화는 정교한 교차 편집으로 담아냈다.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세 여성들의 삶이 수평적으로 교차하면서 영화의 메시지를 강도 높고도 압축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실존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자살과 동성애 성향, 정신증도 영화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리처드의 자살과 클라리사의 동성 애인, 로라의 분열에 가까운 불안 등이 바로 버지니아 울프의 반영물이다.
그것은 동시에, 과거에는 꿈꿀 수 없었던 동성애와 가출과 이혼의 자유로움을, 시간이 흐르면서 살게 된 여성들의 삶을 점층적 진화로 펼쳐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속 세 명의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파티를 준비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은, 한 명의 여성이기도 하다.
꽃은 이 영화에서 중요한 상징이다. 파티를 위해 꽃을 사고, 꽃다발로 식탁을 장식하는 모습은 살아있음의 아름다움과 스러져가는 생명의 허무함을 동시에 품은 꽃이란 존재를 통해 영화 제목이기도 한 ‘디 아워스’, 시간의 의미를 반추하게 해준다.
한편 분석심리학 관점에서 물이, 무의식이 자아를 사로잡는 죽음과 사고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버지니아 울프가 자살하기 위해 들어간 강물과 로라가 자살을 시도하려고 들어간 호텔방에 차오르던 물은 (결국 로라가 자살을 포기하고 나중에 가출한 것을 생각한다면) 죽음과 재탄생을 강렬한 상징으로 보여주는 장면들이 아닐 수 없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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