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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이후,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여자들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야나기 미와의 ‘나의 할머니들’②


※ <노년은 아름다워>(새로운 미의 탄생)의 저자 김영옥님이 나이 듦에 관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기사를 연재합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새 인류공동체

 

▶ 야나기 미와(Miwa Yanagi) ‘나의 할머니들’ 시리즈에서 MIE 


야나기 미와(Miwa Yanagi)가 ‘나의 할머니들’ 시리즈에서 보여준, 이 환상의 아틀란티스를 구성하고 있는 스물다섯 할머니들의 삶은 크게 세 가지의 유형으로 구별된다. 거침없는 친밀성과 욕망을 드러내는 유형, 대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아이들과 함께 새로운 삶을 일구는 유형, 그리고 외로움이 아닌 몰입으로서 홀로 존재함을 표현하는 유형이 그것이다.

 

먼저 대재앙 이후의 미래 세계와 그 안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 이미지를 살펴보자. 높은 탑처럼 보이는 곳에 홀로 앉아 있는 여자(MIE)의 얼굴이 절망도 쓸쓸함도 두려움도 아닌 어떤 초탈의 표정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초탈에는 오랜 육체적 삶의 흔적이 역력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살아남은 사람들이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세상은 완벽한 조화와 평등의 시공간이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동일한 유형으로 분류되는 MIKA는 어떠한가. 그녀는 예전에 자신이 가르쳤던 여학생들과 함께 지구 최후의 장소인 어떤 섬에 살고 있다. 바위 위에 서 있는 그녀 주위로 바닷물에 다리를 담근 소녀들의 자유로운 모습이 보인다. 대재앙 이후 10년 넘게 시간이 흘렀고, 지구의 마지막 생존자들인 이 여학생들이야말로 미래 세계의 첫 인류다. 이들이 어떻게든 제대로 된 미래를 책임지고 구축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 이것이 그녀의 과제다.

 

▶ 야나기 미와 ‘나의 할머니들’ 시리즈에서 MIKA

 ⓒyanagimiwa.net


MIKA와 여학생들이 형성하고 있는 이 평화로운 섬 생활은, 최초의 여성 시인으로 알려진 ‘사포’와 그녀를 흠모했던 여성 제자들의 내밀한 관계를 떠올리게 만든다. 기원전 7세기 후반 레스보스 섬에서 태어난 사포는 최초의 여성 시인일 뿐 아니라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세계관이 아닌 사랑의 열정과 그리움, 질투, 상실감 같은 감정을 읊은 최초의 서정 시인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그녀가 사랑의 열정이나 질투 혹은 상실감을 노래할 때 그 대상은 여성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녀가 태어난 레스보스에서 여성동성애자를 가리키는 레즈비언이라는 용어가 유래한 것도 이 때문이다.

 

어떤 이는 기병이라고, 어떤 이는 보병이라고,

어떤 이는 해군이라고, 검은 대지 위에서

가장 빛나는 자가. 하지만 나는 말하지요.

당신이 사랑하는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이를 깨닫는 일은 너무도 쉬운 일이지요.

누구나 인정할 것이기에.

헬레네를 보세요. 아름다움으로 모든 사람들을 지배했던

그녀는 가장 뛰어난 남편을 버리고 트로이아로

가버렸지요. 아이들과 사랑하는 부모님은 안중에도 없었지요.

아프로디테 여신이 그녀를 데리고 가버렸기에. (…)

이제 나도 아나크토리아를, 사랑스러운 그녀의 발걸음과 

밝게 빛나는 그녀의 얼굴을 리도스인들의 마차와 완전 무장한

보병보다 더 기억하기를 원하지요.

 

-사포 <단편> 16번

(안재원, “마음을 흔드는 사포의 리듬 ‘서정’을 꽃피우다”에서 재인용)

 

어쩌면 MIKA 역시 아나크토리아를 기억하는 사포의 마음과 유사하지 않을까. 세상의 마지막 시간이며 동시에 새로운 세상의 첫 시간이기도 한 시공간을 살면서, 그녀가 최후의 장면으로 기억하고 싶은 것이 저 사랑스러운 여학생들의 밝게 빛나는 얼굴과 발걸음인 것은 흥미롭다.

 

젊은 MIKA의 현재 직업이 혹시 여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자신의 50년 후 모습을 이런 식으로 상상했다는 것이 완전히 자연스럽거나 당연하고는 말할 수 없다. 만약 그녀가 현재의 가부장적이고 생태파괴적인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날카롭고도 냉정한 비판적 시선을 갖고 있지 않다면, 대재앙과 그 이후 여성들만으로 이루어진 새로운 인류의 공동체가 양 축을 이루는 이런 식의 미래 상상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MIE와 MIKA가 상상해낸 이미지를 보면서, 이미 1999년에 그녀들은 2011년 후쿠시마를 강타한 쓰나미 자연재해와 핵폭발 사고를 정확히 예견하고 있었음을, 이제라도 후쿠시마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면 그녀들이 예견한 바로 그 대재앙이 올 수 있음을 알았다.

 

‘나의 할머니들’과 '나의 아이들‘의 조우

 

▶ 야나기 미와 ‘나의 할머니들’ 시리즈에서 MIWA


대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이후의 지구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나의 할머니들’ 시리즈를 기획하고 실현해낸 MIWA 역시 지구 곳곳을 다니며 그녀가 ‘나의 아이들’(my offsprings)이라고 부르는 아이들을 찾아 함께 살아간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50년 후의 자기 모습으로 형상화한 이미지다.

 

미래 세상에서 그녀는 10년 넘게 지구 곳곳에서 아이들을 찾아 데려와 키우고 있다. ‘나의 아이들’을 찾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아무리 멀고 험한 곳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디엔가 새로운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마다, 그녀와 아이들 모두는 그 한 명의 아이를 찾아 함께 여행을 떠난다. 지금 그들은 눈으로 뒤덮인 광야를 지나고 있다. 아이들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거나 뛰면서 까르르 웃고 장난치며 그녀와 산을 넘고 강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함께한다.

 

어려서부터 할머니가 되고 싶었다는 작가 MIWA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할머니의 상은 이런 거였다. 세상에서 그이 자신을 기다리는 아이들 모두를 ‘나의 아이들’이라 부르며, 그들을 향해 지체 없이 발걸음을 떼는 할머니. 이렇게 해서 ‘나의 할머니들’과 ‘나의 아이들’은 서로 조우한다. 세상의 모든 할머니를 ‘나의 할머니들’이라 부르는 아이들과, 세상의 모든 아이를 ‘나의 아이들’이라 부르는 할머니들이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만남의 구체적 내용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것이 지닌 이상은 명백하다. 소유격 ‘나의’를 목적격 ‘나를’과 겹치게 함으로써 ‘나의’라는 편집증적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미래 이미지 작업을 통해, 그 이상이 할머니들과 아이들에 의해서라면 실현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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