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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여성을 끝없는 원천으로…기지촌의 생태계

다큐멘터리 영화 <호스트 네이션> 이고운 감독 인터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1년 전 이고운 감독을 처음 만났을 때 그가 내민 명함에는 ‘R&R’이라는 영화제작사 이름이 적혀 있었다. R&R은 Rest & Recreation(휴식과 오락)의 약자로, 미군 주둔 지역에서 미군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만들어지는 산업과 공간을 뜻한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바로 성산업이다. 제작사 이름을 R&R이라고 짓다니! 감독의 재치에 웃음이 났다.

 

이고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호스트 네이션>(2016)의 호스트 네이션(Host Nation)은 미군이 주둔하는 국가를 뜻한다. ‘호스트’가 되어 미군을 접대하고, 미군에게 휴식과 오락을 제공하기 위해 가난한 여성들의 몸을 동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이야기다.

 

▶ 이고운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Host Nation, 2016)

 

영화는 필리핀 여성 마리아가 어떻게 필리핀에서 한국의 미군 기지촌에 와서 성산업에 종사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한다. 자신에게 성매매를 강요한 한국인 업주를 고소한 필리핀 여성 조이도 등장한다.

 

그러나 <호스트 네이션>은 필리핀 여성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얼마나 끔찍한 일을 겪는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이 산업에 연루되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해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며, 직접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필리핀에서 여성을 모집하는 매니저 욜리, 그런 욜리와 협업하면서 한국으로 여성들을 보내는 역할을 하는 브로커 ‘미스터 정’, 필리핀 여성들을 받아 한국 기지촌에서 업소를 운영하고 있는 ‘파파 정’까지.

 

감독은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면 어디든 만들어지는 이 생태계가 여자들의 등을 타고 어떻게 돈을 벌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인디다큐 페스티벌 상영을 앞두고 이고운 감독을 만났다.

 

-영화가 이렇게 전개될 줄 몰랐다. 카메라가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따라갔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에, 신선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구조 속에 있는 약자, 소수자의 목소리를 전달하는데 특출난 분들은 따로 있는 것 같다. 나는 그런 걸 찍으면 너무 가슴이 아파서 힘들다. 그보다는 구조 자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구조 안에서 우리가 자주 만나지 못했던 유형의 사람들, 이를테면 가해자라든가 악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미군이 수십 년 전 벌려놓은 판(기지촌) 안에 있는 플레이어(player)들을 최대한 다 드러내서 이 링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가 ‘인신매매범’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얼마나 평범한 얼굴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호스트 네이션>을 만든 이고운 감독

 

-불법 행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촬영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만나게 됐나?

 

“처음 군산 아메리카타운에서 ‘파파 정’(업주)을 만난 건 2013년 미군 측이 미군들의 유흥업소 출입을 금지하는 방침을 발표했을 때였다. (한국의) 인신매매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되자 부대가 나서서 통제하기 시작했는데, 미군들이 출입을 안 하니 당장 업소가 망할 수밖에 없는 거다. 업주들이 화가 나서 시위를 했다.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미군과 기지촌 지역 업주들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군들한테 서비스를 제공해왔는데, 막상 외부에서 비난이 들어올 때는 업주들만 욕하니까.

 

그때 만난 파파 정이 나한테 ‘애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돈 벌러 오는지 필리핀에 직접 가서 한번 보라’고 말했다. ‘인터넷 없던 시절이나 인신매매 당해서 오지, 요새는 다 알고 온다. 다 동의하고 오는 건데 왜 우리들만 인신매매범이라고 욕하나, 여기서 돈 벌어서 부모 수술하게 해 주고 집 사고 다 한다’고. 그래서 무작정 필리핀에 가서, 파파 정한테 ‘나 필리핀에 왔으니까 브로커랑 연결시켜 달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브로커인 ‘미스터 정’하고 매니저 욜리를 만나게 됐다.”

 

-그들은 어떻게 이 일에 종사하게 된 것인가.

 

“만나보니 이 사람들도 빈곤한 계층이고, 자본이라고는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욜리는 그 자신이 성산업 안에서 성장했다. 파파 정은 젊은 시절에 군산 아메리카타운에서 ‘기도’ 역할을 하면서 도망간 성매매 여성들 잡으러 다니는 일을 하다가 자기 업소를 연 것이다. 미스터 정은 미군 상대 클럽에 러시아 모델들 수입하는 일을 하다가, 이 쪽 일을 하게 된 경우다. 중간에 이 일을 그만두고 무역업을 하기도 했는데 홀딱 다 들어먹고 사기 당하고 나서는 또 할 수 있는 일이 이 쪽이다 보니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 이고운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Host Nation, 2016)

 

-영화에 필리핀 여성들이 자국에서 오디션 비디오를 찍어서 E6비자(공연비자, 엔터테이너 비자)를 발급받고 한국에 들어와서 성산업에 종사하게 되는 전 과정이 나온다. 그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달라.

 

“처음 시작은 두 가지다. 필리핀 방방곡곡에 있는 스카우트들이 접근해 와서 “너 한국 가서 일해 볼래?”한다거나, 주변에 자기가 아는 언니나 사촌 중 한국 갔다 온 사람이 있으면 그 얘길 듣고 ‘나도 해 볼까’ 생각하게 된다.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스카우트가 대도시에 있는 매니저랑 연결해 준다.

 

그러면 매니저하고 한국인 브로커한테 가서 오디션을 본다. 시골에 살던 여성들이라 매니저가 숙소를 제공하고 데리고 있으면서 노래 연습을 시키고 비자를 만든다. 노래하는 영상을 찍어 보내서 한국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추천’이 되고 한국 법무부에서 ‘비자를 내줘도 좋다’고 허가하면 필리핀의 한국 영사관에 가서 인터뷰할 수 있다.

 

인터뷰를 통과하면 한국으로 오는데, 필리핀에서 바로 한국으로 올 수 없다. 필리핀에서는 한국 E6비자 가진 사람의 출국을 금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E6비자가 성매매 창구가 되고 있다는 국제 사회의 비난이 거세니까, 아예 출국 금지를 시켰다. 그래서 기술자를 사서 여성들의 여권에 있는 E6비자를 티 안 나게 뗀다. 그렇게 관광비자로 제3국에 가면, 그쪽 업자들이 한국행 비행기를 알아봐 주고, 거기서 다시 E6비자를 붙여서 비행기를 탄다.”

 

-필리핀 정부는 인신매매 문제로 불허하는데 한국 정부는 뭐하고 있는 건가 싶다. 필리핀 여성들이 오디션 보고 한국에 들어오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

 

“한국으로 오는데 짧게는 9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린다. 이 기간 동안 합숙을 하는데 처음에 나는 이들이 왜 합숙을 하는지 몰랐다. 시골에 살던 사람들이라 집이 너무 멀고 집에 갈 돈조차 없는 것도 이유다. 하지만 합숙 기간 동안 밥만 먹여주고 다른 돈벌이를 못 하게 되면, 부양할 가족이 있는 경우 빚을 지게 된다. 1년이 지나면 빚이 쌓이니까 빼도 박도 못하게 된다. 막상 한국에 와서 업주가 이상한 일을 시키면 ‘어? 이상하네?’하면서도 쉽사리 돌아가지 못한다. ‘싫어, 나 돌아갈래’ 하기에는 빚도 있고 가족들의 기대도 있고 ‘바보야, 그걸 속아서 가서 빚을 지고 빈털터리로 돌아와?’ 하는 시선도 견디기 힘든 거다. 그래서 ‘빚 갚을 때까지 한 달만 더, 한 달만 더…’ 이런 사연들과 책임감으로 버티게 된다.”

 

▶ 이고운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Host Nation, 2016)

 

-마리아가 한국에서 일하면서 “행복하다”고 말하는 장면은 쿨한 직업처럼 보일 소지도 있는 것 같다. 술시중 드는 것 외에 성매매를 강요당하는 여성들도 많지 않나. 필리핀 여성들이 파파 정 말처럼 정말 다 알고 오는 것일까?

 

“경우의 수는 다양하다. ‘클럽에서 일하니까 남자들이랑 술 마시는 정도는 하겠지’, 그 정도는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기도 한다. 영화에서 매니저 욜리가 ‘이런 일은 너 하기 나름이야’ 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데 사실 그럴 수 없는 조건이지 않나. 한국에 도착하는 날 저녁에 업주 친구들이 성폭력 가해를 해서 여성들 기를 확 죽였던 사례가 있다. 그러면 여성들은 ‘이게 뭐지?’ 당황한 상태에서 룸에 들어가서 온갖 쇼들을 해야 한다.

 

파파 정은 여성들을 학대하거나 2차(성매매)를 강요하는 업주는 아니다. 하지만 나이스하게 보이는 사람들은 또 다른 기술들을 갖고 있다. 나이스한 것처럼 보이면서 친구들, 그 친구의 친구들을 계속 공급받고 더 대규모로 하는 거다.

 

필리핀 여성들을 가까이서 보니, 한국의 나이 든 기지촌 여성들이 증언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분들도 가난한 부모, 형제, 자식들 먹여 살렸고 그 중에는 심하게 학대당하고 심하게 이용당한 분이 있는가 하면, 마치 동아줄을 잡은 것처럼 미군과 결혼해서 빈곤을 탈출한 분도 있다. 지금도 다양한 경우가 있다. 이주여성들이 기지촌에 와서 이 험한 곳에서 어떻게 헤쳐 가느냐는 1차적으로는 운에 달렸다. 어떤 사람의 손에 떨어질 것인가, 어떤 업주나 매니저를 만날 것인가가 운이라면 2차는 본인의 재치, 기지에 달려있는 것 같다.”

 

-파파 정이나 미스터 정 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변호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독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궁금했다.

 

“한국 사람이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오늘날 한국의 이런 모습을 만든 건 사실 ‘돈이면 된다, 성공해야 된다’는 신화이지 않나. 업주 중에 나이든 아줌마나 할머니 업주들 얘기 들어보면 다 ‘허허벌판 공터에서 빈손으로 내가 이만큼 일궜다’는 자부심이 있다. 어떤 사람이 희생됐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런 건 다 잊었더라. ‘난 자식들한테 떳떳해, 내가 다 유학 보냈고 집 샀어.’ 그게 한국인인 것 같다.

 

또 업주들을 만나보면 다 필리핀 여성들을 비난한다. 게으르다고…. 이런 데서 일 하면 돈 절약해서 성공할 생각을 해야지 놀고먹는다고.(웃음) 이게 한국 사람인 것 같다.”

 

▶ 이고운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Host Nation, 2016)

 

-E6 비자가 계속 사회적 논란이 되어 왔는데… 기지촌 성산업 안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한국 정부는 이제 와서야 문제가 불거지니까, 출입국관리소에서 기지촌 유흥업소들에 나와서 비자 검사를 한다. 비자 떼었다 붙인 흔적이 있으면 잡아서 추방시키고 있다. 필리핀 여성들이 집중 타겟이 되다보니까, 브로커들이 너무 많이 개입하게 되고, 업주 입장에서도 지불할 돈이 많아졌다. 게다가 부대에서도 미군 출입을 통제하니까, 이제는 아메리카타운 내 미군 전용 업소가 내국인을 상대로 하는 업소로 많이들 바뀌었다.

 

군산 지역에 내국인 상대 업소가 늘어나면서, 이 부근이 인근 지역의 인기업소가 됐다더라. 예를 들어 대전에서 1차로 술 먹고 총알택시로 쏘면 두 시간이면 온다고 한다. ‘외국인 여자들 나라별로 초이스하는 맛이 있다’ 이러면서. 이주여성은 외국인 출입 업소에서만 일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인을 상대로 한 업소에서 이주여성을 들여오는 건 불법인데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럼 파파 정도 지금은 한국인을 상대로 영업하고 있나?

 

“파파 정도 키르기스스탄에서 여성들을 들여오고 있다. 최근에는 러시아 여성들도 다시 들어오고(E6 비자로 입국하는 러시아 여성의 성매매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러시아 정부에서도 통제에 나서자, 한국 정부는 2003년 비자 발급을 중단했으나, 최근 다시 발급이 재개됐다.) 키르기스스탄이나 카자흐스탄 지역 여성들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관광비자로 들어와서 몇 달 동안 일하다가 잠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일하는 식이다.

 

키르기스스탄은 중앙아시아 최빈곤 국가 중 하나인데,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년~2014년. 9·11 테러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영국의 군사작전에 의해 시작된 전쟁. 침공 목표는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고 알 카에다를 파괴하는 것이었다)을 하면서, 키르기스스탄 공군 기지가 미군 기지가 됐다. 전투기가 거기서 떠서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했다. 원래 이슬람 문화여서 이런 물을 안탔던 곳인데 미군 기지가 생기면서 한국남자들이 따라가서 성산업을 정착시켰다.

 

미군은 3년 전에 떠났지만, 미군이 철수한다고 해도 한번 생태계가 조성되면 이제 그 생태계는 자동으로 굴러가는 세계가 된다. 끊임없이 여자를 필요로 하고 여자 등에 타서 돈을 벌어 먹는다.”

 

▶ 이고운 다큐멘터리 <호스트 네이션>(Host Nation, 2016)

 

-결국 근본적인 문제는 ‘군대가 여자들의 몸을 필요로 한다’는 것에서 출발하는 건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군이 있는 곳은 어디든 이 장면이 펼쳐진다. 그게 필리핀 여자든 중국 여자든 얼굴 색깔은 상관없는 거다. 인종만 교체될 뿐이다. 그리고 공급 소스는 가난한 나라의 여자들이다. 자국에 여성의 좋은 일자리가 없고 해외로 이주해도 딱히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 없는 가난한 여성들이 성산업의 영원한 원천이 된다. 만약 필리핀이 경제수준이 높아지면 또 다른 나라의 여성들이 이걸 대체할 거다.”

 

-다큐멘터리를 보러올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애기가 있다면.

 

“한국을 비롯해서 전 세계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자신들의 몸으로 이 지구를 부양하고 있는지, 이 구조의 면면들을 봐 주셨으면 한다.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땅에 건물지어서 세 주면서 업소를 유치하는 사람부터, 아주 작게는 업소에서 봉고차로 여성들 태우고 다니는 사람, 업소의 바텐더까지 모든 조력자들이 사실 다 알면서도 이걸로 돈을 벌어먹고 살고 있다.

 

필리핀 여성들이 송금하면 필리핀에서 그 돈으로 먹고 사는 가족들도 있고, 심지어는 여성들이 송금할 때 드는 수수료로 돈을 버는 은행들까지 다 연결되어 있다. 한국의 1960~1970년대 미군 기지촌 여성들이 달러를 벌어들였던 것처럼 이 여성들이 자신의 몸으로 돈을 벌어주고 있는데도, 그 여성들이 가장 쪽팔려야 하는 사람들이고 가장 손가락질 받는 존재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파파 정이나 욜리, 미스터 정, 각자의 얘기는 촬영의 한계 때문에 조금씩 부족할 수도 있다. 그걸 힌트로 해서 큰 그림을 그려보셨으면 좋겠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 <호스트 네이션> 17회 인디다큐 페스티벌 상영 일정

-3월 25일(토) 15시 30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

-3월 29일(수) 11시 (sidof.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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